시간이 약이라고 슬픔은 조금씩 엷어졌지만, 가끔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선생님, 시계추가 저쪽으로 가더니 안 오네요. 언제나 이쪽으로 다시 올까요?”라고 질문도 하고 싶다.

든든하게 기댈 수 있었던 스승은 떠나시고, 긴 겨울은 추웠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2012년 12월 6일. 윤관석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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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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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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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
당대를 살아간 모든 한국인에게 험난했던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 한국 언론계에서 선생님의 존재는 큰 축복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가신 지 벌써 2주기가 됐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의 언론과 사상의 현 주소를 뒤돌아 볼 때 선생님의 빈자리가 더욱 커져만 갑니다.

 

선생님은 생전 언론인으로서 평생 당대 수구언론의 기회주의와 정치권력과의 유착, 후안무치한 상업주의, 사실과 진실에 대한 왜곡에 대해 구체적인 비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청사에 남을 지식인의 표상으로서 선생님이 걸으신 그 한 길을 후학들이 따르고자 하지만 머릿속에 자꾸 잊혀져 가고 있는 현실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선생님은 6.25전쟁, 이승만과 박정희, 신군부의 독재정권 등 암울했던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맨몸으로 생채기하며 살아온 시대의 증인이셨습니다. 생전에 독재, 군부정치세력들이 왜곡한 시대에 정면으로 맞선 공로로 '실천적인 지식인'이라는 명예로우면서도 뒤늦은 훈장을 달게 됐지만 그 훈장을 달기까지 한 인간으로서 참으로 감내하기 힘든 고초를 단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이유로 겪어야만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론인으로서 다른 언론인들이 권력에 부화뇌동하여 제 한 몸 안위를 도모할 때 언론사에서 두 번, 대학에서 두 번 쫓겨나고 다섯 차례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감옥을 드나들며 비록 '친북좌파', '빨갱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들었지만 선생님이 걷고자 한 삶의 원칙은 한마디로 '진실 추구'였습니다.

 

선생님은 이성을 무기삼아 우상들을 낱낱이 깨뜨리며 어떤 이념과 주의에도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90년대 들어 사회주의 정권들이 차례차례 붕괴될 때에도 선생님의 비판정신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는 선생님이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 자본주의의 병폐와 폐단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회주의적 가치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사회양극화, 소득불평등, 경제민주화 구호, 1%의 99% 지배 등은 모두 선생님이 일찍이 간파했던 자본주의 폐단이었습니다. 사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 정도의 자유와 역동성을 가지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이 추구했던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선도적 헌신과 선견지명 있는 혜안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식인이란 남보다 먼저 배우고 많이 안다고 해서 지식인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인에게 모자람을 채워주고 일깨워주어 사상의 영역을 올바르게 보람되게 이끌어주는 지식인이어야 진정한 우리시대의 지식인일 것입니다. 그 점에서 리영희 선생님은 단재 신채호 - 씨알 함석헌 - 청암 송건호의 계보를 잇는 한국 근현대 언론인의 정맥을 지켜 오신 분이십니다. 이 땅의 맑은 영혼들은 모진 세월 속에서도 한 치의 타협 없이 진실의 펜으로 이성을 일깨워준 '사상의 은사'이신 선생님께서 지도해주신 대로 열렬히 호응하며 실천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지식인의 길을 걸어오신 당신의 가르침은 이제 점점 박제되어 실천하기에 벅찬 역사가 되고 있어서 선생님 빈자리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은 커져갑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온갖 시름 다 내려놓으시고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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