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약이라고 슬픔은 조금씩 엷어졌지만, 가끔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선생님, 시계추가 저쪽으로 가더니 안 오네요. 언제나 이쪽으로 다시 올까요?”라고 질문도 하고 싶다.

든든하게 기댈 수 있었던 스승은 떠나시고, 긴 겨울은 추웠다.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으나 크게 보이는 분 (2012년 12월 6일, 정대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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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1-02-23 14:29
조회
1537

2012년 12월 6일 한양대학교 경영관 SKT홀에서 '故 리영희 선생님 2주기 추모 강연회'가 '우리 시대의 리영희 선생을 생각한다'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선생의 동료 교수였던 정대철(한양대 신방과 명예교수) 교수의 추모사를 옮깁니다.


2010년 12월 5일 존경하는 리영희 선생님께서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선생님의 영정을 두고 허허로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는데 벌써 떠나신 지 두 해가 되었습니다.

 

저와의 인연은 1968년(합동통신 외신부장) 한양대학교 신문학과에서 시작하여 1995년 정년퇴임하실 때까지만 쳐도 30여 년이 됩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리영희 선생님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신방과 교수로서 함께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특히나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신방과 교수로 선생님과 같이 호흡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은 동료교수로서 큰 기쁨이었습니다. 저에게 리영희 선생님은 학자로서 연구자의 길을 같이 가는 도반이기도 하였지만, 거목 같은 큰 스승이기도 하였다는 점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년퇴임식에서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큰 사람입니다.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으나 크게 보이는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계시나 안 계시나 역시 큰 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추모하고 기억하면서 후배 교수들과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점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선생님의 학자로서의 실증주의적인 연구태도입니다. 선생님은 연합통신과 조선일보의 외신부장으로 재직 시 외신기자로서 많은 특종기사를 써냈습니다. 그것은 기자가 기본적으로 충실해야 할 다각적인 데이터와 분석에 기반 한 진실보도의 사명을 실천하는 자세에서 나온 결실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저널리스트가 견지해야할 기본이고 덕목입니다. 선생님은 학교에 오셔서도 출간하신 많은 저서들에서도 오직 자료와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주옥같은 논문들을 발표하셨습니다. 이는 실천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학술적인 측면에서도 연구자이시고 분석자로서 성실함과 꼼꼼함을 보여주셨습니다. 마땅히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이지만 아무나 지킬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음은 선생님의 균형 잡힌 시각과 정치권력에 연연하지 않으신 학자적 양심이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쓰신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도 밝히셨지만 세상과 사물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고자 노력하신 분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특히나 학문연구에서도 시세적이거나 편향된 해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수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단 한 번도 정권에 기웃거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어떤 정권 아래에서도 학자적인 양심에 따라 비판의 촉각을 거두신 적이 없습니다.

 

언론인과 교육자의 자리에 있었지만, 언론인의 비중을 더 두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론인으로서 진실을 추구하는 사관의 역할과 잘못된 것을 파헤쳐 바로잡으려는 언관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고집하셨습니다. 특히 어려운 시대에 언론인이 지켜야 하는 표상이자 교훈을 주는 적장자이셨습니다. 

 

저 또한 벌써 정년퇴임을 하고 이제는 명예교수로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끊임없는 연구대상이 됩니다. 어느 것을 정답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답 찾기를 포기할 때도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이 계셨다면 정답을 주실 것 같은데, 아쉬움이 더 큽니다.

 

선생님이 평소에 사표로 삼고 계셨던 시를 통해 저도 선생님과 같은 학자의 길을 가고 있는지?  학자로서 또 한 번 경계를 삼고자 합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 가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지? 오늘 2주기 추모 기념을 맞아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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