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

에세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21 20:33
조회
190

10-1. 「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1976년 월간 『농민운동』, 우상)


 


 


임군.


팔다리 걷어붙이고 분무기 둘러메고 논밭 속에 묻혀 노동하는 임군을 오래간만에 보고 돌아온 후부터 나는 농촌생활에 관해 자꾸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네. 그전에도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괴물과 같은 이 대도시 서울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모두 임군과 같이 농사짓고,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 환경문제와 관련시켜서 생각하는 동기가 되었단 말일세.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농촌문제나 농민에 관해서 말하는 이 사회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농업과 농민의 복지니 발전이니 하는 구호를 앞세우는 정부, 관료, 지도자들에게 거의 신뢰감을 갖지 않게 된 지 오래지. 그런 까닭에 대도시에 앉아서 지식인의 한 사람을 자처하면서 사는 자신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소리가 아니고서는 할 말이 없다고 스스로 반성하는 거야.


오늘은 그런 답답하고 괴로운 심정을 못 이겨서, 극진한 대접으로 나를 맞아주었던 그 며칠 동안, 임군과 임군의 가정과 그 마을의 주변에서 보고 느꼈던 일을 몇 가지 적음으로써 임군과 가족의 호의에 답하고 싶어 펜을 들었네. 추수도 대강 끝날 무렵일 테니 한가한 시간이 나면 이 글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보세. 내가 그곳에서 보면서 느꼈던 것을 두서없이 적어볼 테니 무슨 심오한 이론이나 학설이나 정책이 들어 있지 않다고 실망하지는 말게. 나는 본시 학자도 아니며, “농민과 농촌을 사랑하고 걱정한다”고 말끝마다 되풀이하는 정부나 정치계나 관료들과는 관계도 없는 사람이니까.


 


임군 가정도 많이 달라졌더군. 라디오야 없는 집이 거의 없게끔 됐으니까 그만두고라도, 텔레비전도 갖추어놓고, 서울에서 출판되는 주간지도 있었으며, 정기적으로 구독은 안 한다지만 중앙의 신문도 보고 있는 것을 알았네. 한마디로 말해서 농촌의 문화가 발전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그래서 오늘 이야기하고 싶어진 것은 그 農村文化라는 것에 관해서일세. 그 많은 음파와 전파와 활자의 혜택이 농촌 구석에까지 미치게 된 것을 난들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속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나서 그 소위 ‘문화’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네.


며칠 동안 묵으면서 보고 들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읽은 잡지와 신문 그 속의 어느 하나, 어느 짧은 시간이나마 진정 농촌과 농민을 위하고,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꾸며진 내용이 있었던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이 나라의 都市 文化, 그것도 ‘서울 문화’를 그대로 농촌과 농민에게 내려 먹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시골에서 듣고 볼 때 더욱 확연해지더군. 많은 마을사람들이 그것들을 즐기는 듯했고, 사람이야 집에 있건 없건, 하루 종일 틀어놓은 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가운데, 이미 도시인들을 완전히 타락시켜버린 찌꺼기 문화가 농촌 사람들을 침식시키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불쾌감을 금할 수가 없었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도시문화, 특히 농촌을 덮어버리고 있는 ‘서울문화’란 그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농민을 희생으로 해서 만들어진 文化形態이고, 조금 더 크게는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지배에 대한 이 민족 대중의 저항감을 심정적·심리적 측면에서 쓰다듬는 마취적·최면술적·아편적인 문화 내용이라고 생각하네.


물론 전적으로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하나하나의 글이나 말이나 놀음 모양이 그것을 위해서라고 단언하는 것도 아닐세. 공업화니 현대화니 하는 것이 끊임없이 외국의, 특히 최근에는 일본의 정치·경제·군사·문물의 개입과 작용으로만 가능한 그런 방향으로 치닫고 있으니, 자연 우리 사회의 가치관도 선진공업국의 그것으로 물들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들 사회의 가치관이 무엇인가? 그것은 ‘物質主義’, 즉 물질적 생산을 위해서는 인간적 가치는 거의 돌볼 필요가 없으며, ‘돈’ 즉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인간다운 조건’도 거의 무시되는 원리가 아니겠는가. 이익만 있으면 사람을 죽이는 음식도 제조해내는 실례를 임군도 잘 알 테지. 왜 그렇게 많은 광고가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잡지를 채우고 있는가. 그 물건과 그런 생활방식이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것들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것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 자본, 기업이 끊임없이 대중의 소비성향을 자극하고 조성하고 조장해서 ‘돈을 벌겠다’는 오직 한 가지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小費文化’라고 일컫는 것을 임군도 잘 알고 있을 걸세.


소비적 사회를 만들어야 이 사회에 투자한 외국의 자본은 큰 이익을 올리는 것이고, 그 외국 자본과 밀접한 정치·경제·사회의 권력은 ‘적극적으로’ 소비문화를 조장하게 마련이지. 외국 자본이나 외국의 기술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야. 450억 달러가 넘는 외채가 말해주듯이, 그들의 이익을 받들어서 경제와 정치의 힘을 계속 누려가는 체제를 이 사회의 원리로 만들어버린 그것이 큰 일이라는 말일세.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특히 주간지 따위의, 이른바 매스 미디어라는 것이 그 手足役割을 하는 가장 중추적 매체이지. 그런데 임군이나 임군의 아내, 어린 것들, 그리고 그 시골 농촌마을, 또 그 사람들이 즐기는그런 매체들은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를 보세. 하나도 빠집없이, 없어도 되고 어쩌면 없는 것이 차라리 건전한, 개인생활과 이 민족생활에 도움이 안되는 그런 소비적 생산을 하고 있는 자본가와 기업들이 이 매스미디아의 소유자라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할 일일세.


그런 외국 자본과의 관계에서 우리 한국 대중에게 해로운 것까지라도 이익만 생길 수 있다면 만들어 팔아먹어야 하는 돈가진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지.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잡지를 접하는 농민에게, 그 인조눈썹, 귓구멍 뚫어서 꿰차는 소 코뚜레가 아닌 인간의 귀뚜레, 수천수만 가지의 화장품, 한 해에도 몇 차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여자의 스커트,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는 남자의 넥타이와 양복의 스타일, 손톱 발톱에 물들이는 수십 종의 물감, 농민이 들으면 세상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생각밖에 나지 않을, 한 자리에 앉아서 계집 끼고 수백만 원 쓰는 서울의 환락가와 그렇게 돈을 물(그것도 구정물) 버리듯이 쓰고 다니는 사람들……. 이 모든 유행과 생활양식이 바로 소비경제에 바탕을 둔 이 사회의 경제체제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임군,


군의 집에서 막걸리 상을 차려놓고 마주 앉아 이야기하던 그 저녁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각나는가. 하기야 그 프로그램만이겠는가. 라디오, 신문, 잡지, 텔레비전을 떠들썩하게 하는 노래와 춤과 이야기와 유흥물이라는 것들, 무슨 배우, 무슨 탤런트, 무슨 인사의 정사 이야기, 가을의 여자 옷이 파리의 유행을 따르고, 겨울옷은 도쿄의 유행을 따른다는 식의 온갖 내용이 농민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런 소리, 그런 내용 없이는 소위 문화의 매체라는 신문, 방송,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등은 운영을 못 하게 되어 있는 것일세. 그런 ‘문화’를 일반화시키는 일도 돈 벌고 행세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으니 말일세. 그들은 시골에 사는 것이 아니라 도시, 그중에서도 서울에 살고 있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지.


이 겨레, 특히 농촌의 농민과 도시의 하급 노동자와 영세민이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그들에게 주어야 하는가 따위는 대체로 이 소비문화의 제조가들과는 무관한 일이지. 소비문화를 대중화함으로써만 움직임을 계속할 수 있는 전체적 경제의 원리와 구조, 그것을 힘과 제도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정치의 원리와 구조, 이것이 문제란 말일세.


그런 제도들과 그런 문화양식을 나는 시골 처녀들의 몸차림과 얼굴에서, 그 가정의 기구들 속에서 많이 보았네.


우리는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네. 농민에게는 그럴래야 돈이 없으니까 관계없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야. 벌써 해방 이후 30년, 물질주의 문화는 농민의 한계적 저항을 무너뜨리고 농민의 가치와 의식을 깊이 좀먹어 들어가고 있으니까 말일세.


그럼, 그런 제도를 지배하는 사람들의 성분이랄까, 속성을 알아야 하겠지. ‘지식인’의 문제야. 그것은 이 사회의 교육, 그 본질의 문제와 깊이 관련되지.


조금 어려운 말이 되지만 ‘인간의 存在被拘束性’이라는 말이 있네. 쉽게 풀이하자면, 누구나 그가 사회생활을 해나가는(또는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조건을 그의 생활목적·생활양식·가치관·사고방식·행동 형태로 무의식중에 체험하기 마련이라는 말이지. 농민에게 농촌지도를 한다는 관리나, 농민의 이익을 도모하겠다고 약속하는 정치가ㆍ국회의원ㆍ지도자들, 농민에게 필요한 물자를 제조하는 자본가나 기술자, 농민의 안방까지 파고들어가는 매스컴을 움직이거나 그 속에 나오는 사람들, 심지어 임군의 어린 아들과 딸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들……, 이 모든 사람이 소위 ‘인텔리’라는 社會分子이고, 그것을 양성해내는 기관의 제도가 교육이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의 교육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을 통한 전 과정의 목표, 교육 내용, 교육 방법, 그리고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 자신의 동기가 이마에 땀 흘리고, 손발과 등뼈를 가지고 노동하려는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덜 일하고, 조금이라도 덜 육체노동을 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기보다는 책상머리에 앉아서 남을 지배하고, 명령하고 부릴 수 있는 그런 인간을 우러러 보는 것을 이념으로 하고 있다고 보여지네. 노동을 멸시하고 천시하여 오직 머리와 턱을 가지고 펜대를 움직여 편안하게 명령하면서 살아가거나, 돈 버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교육의 특성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내 자신도 몇 해 동안 대학생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지만, 예외적인 젊은이를 발견한 기억이 나질 않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교육의 과정에 바친 돈을 서양의 자본주의 경제이론으로 ‘투자’라고 말하면서, 투자를 한 이유는 ‘육체적 노동’에서 면제되기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더군. 그 부모도 물론이고 교사도 그렇고, 교육 내용도 물론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런 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意識이 농촌 출신이면서도 농민과 노동자를 멸시하게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지. 그런 교육을 받은 인텔리가 정부·관청·경제·금융·교육·매스컴·법원· 생산 기술.....의 이 사회의 온갖 ‘제도적 파수병’이 되고 있으니 ‘투자’에 대한 ‘이윤’을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으며, 농민이나 노동자를 경멸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교육을 받아 그런 의식을 갖게 되고, 그런 위치와 기능을 담당하게 된 사람들이 바로 국회의원·행정부 관리·판사·장교·기술자·교육자·기업가·회사원이며 그들이 이 나라 지도계층을 구성하고 보면 어떻게 농민이나 노동자나 가난한 대중을 위한 정치나 경제가 진정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들 자신의 직접적·개인적 이익은 소비사회의 각종 제도를 유지하고 더욱 굳혀나가는 데 있는데, 어떻게 자신의 이익과 상반되는 농민이나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법률을 만들고, 정치를 하고, 재판을 하고, 물건을 만들고, 가르치고, 신문기사를 쓰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짜는 등등의 일을 해주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 성분의 인간 계층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문화(통틀어 제도와 정책)란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하층의 가난한 사람들이 그런 제도에 대해서 비판력과 반항심을 갖지 않도록 정신적·심리적·의식적 마취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라고 임군은 생각해본 일이 없는가?


나는 서울 시내의 으리으리한 호텔·바·카바레·관청·무역회사....의 뒷골목에서, 때로는 출근길에 빈민촌을 지나갈 때마다 목격하는 한 가지 장면이 있네. 천대받고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면서 그 갖가지 매스컴이 뿜어내는 ‘가진 자’ 취미의 마취적 향락에 넋을 잃고 도취하는 모습 말이지.


사람이란 아무리 괴롭고 울화가 치밀어 올라도 울고만 살 수는 없는 동물이니 웃기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야겠지. 그렇지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그 사회 속에서 消費文化가 뿜어내는 마취적 작용 때문에 마치 자기도 그 혀 꼬부라진 노래, 그 돈 많은 사람의 생활, 그 탤런트의 값진 옷,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돈을 뿌리는 사람들이 고급 요정에서 노는 작풍……그것들과의 아무런 違和感도 반항감도 없이 일체화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만 괴로움에 가슴이 조여드는 것을 느끼곤 하네. 이 사람들이 대부분 소비문화를 찾아 서울로 모여든 남녀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나는 중국에 관해서 다소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노라고 책도 읽고, 생각도 하다 보니, 얼마 전에 죽은 모택동이라는 사람의 말을 가끔 곰곰이 음미할 때가 있네. 임군은 들어보지 못한 것이겠기에 참고삼아 적어보지.


 


만약 당신은 大衆이 당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거나 대중의 한 사람이 되고자 하거든, 오랜 기간의 그리고 심지어 뼈를 가는 듯한 고통스러운 自己改造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나는 학생으로 시작하여 학생의 습성을 학교교육 과정에서 몸에 지니게 되었다. 자기 물건 하나 챙길 줄 모르거니와 어깨로 짐하나 매어 나르는 것을 창피스럽게 생각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도 육체를 움직여 일을 한다는 것을 수치스러운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 나는 이 세상에서 깨끗한 사람은 오직 인텔리뿐이고, 농민은 인텔레 앞에서는 아주 추한 인간이라는 생각이었다.


혁명가가 됨으로써 나는 혁명군의 노동자·농민·병사들 속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차츰 그들과 친숙해지고 그들도 나와 친숙해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야 비로소 부르조아적 교육이 나의 머리와 몸에 뿌리박아 놓은 부르조아·소시민적 관념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진정코 추한자는 개조되지 않은 인텔리라는 사실, 노동자와 농민은 손에는 흙이 묻고 발에는 소똥이 묻었어도 궁극적으로 깨끗한 것은 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의식이 변하면 그 사람이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변한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와는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말은 아니지. 그러나 생각해 볼만한 적지 않은 시사를 주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의 말의 해석이나 느낌은 임군에게 맡겨두지. 다만 나로서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에서와 같은 교육을 받은 인텔리(통틀어 지식인 계층)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제도를 움직이는 한에서는 진정 농민·노동자를 위한 발상이 참으로 어려우리라는 확신일세.


와 같은 사람조차 그렇게 意識을 바꾸기란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하물며 의식의 개조같은 것은 존중되지 않고 권장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소비문화적·물질주의적·귀족취미적·지배자적·명령자적 생활을 지향하는 생존양식과 의식이 조장되고 있으니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니 2,3년의 군대생활을 하고 나면 농촌으로 돌아갈 생각은 이미 없고, 차라리 도시의 뒷골목에서 비인간화된 생활을 갈망하게 되는 젊은이들의 사례를 많이 볼 수밖에. 시골의 색시들이 도시, 서울에 와서 그 생존을 이어가는 많은 현실적 사례는 차마 여기서 말하기조차 거북할 지경일세. 나는 道學者가 아닌 까닭에 나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일도 적지 않지만, 그런 아가씨들을 대하면서 이 여성의 시골에 있는 부모형제는 무엇을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겠는가를 늘 생각해보네.


언젠가는 영등포의 초라한 술집에서 친구 두 사람과 겨우 3천원 남짓한 술을 팔아주었더니 나오는 길에 그 집 아가씨들이 밤중에 따라 나오지 않겠는가. 갈 곳이 있으며, 여자의 서비스는 그것으로 족하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따라가겠다는 거야. 웃지 말고 들어주게, 임군.


사연인즉, 셋이서 그만큼 팔아준 손님은 단골로 잡아야 하니 함께 가서 밤시간을 즐겁게 해주라는 ‘마담’의 명령이라는 걸세. 만약 그렇지 못하면 그대로 돌아갈 수 없고 갈 곳이 없으니, 사정을 봐달라는 하소연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보게. 3천원어치를 셋이서 팔아준 것뿐일세. 그러니 그 시골 처녀들의 그 술집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겠는가는 짐작이 갈 줄 믿네.


시골서 놀고먹을 수 없는 일이니 도시에서 몇 푼이라도 버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 좀 더 유식하게 말하기를 좋아하는 학자들은 진의는 딴 곳에 있으면서 거짓을 합리화하려는 정부지도자들이나 경제계의 기업주들은, ‘就業의 기회가 확대되고 雇傭率이 높아졌다고도 말하지. 인간을 비인간화하려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대가도 그들이 말끝마다 내세우는 국민소득(GNP)의 증대 속에 포함되고, 국가 현대화 방식이라면 우리는 그와 같은 원리구조내용이 경제와 경제제도, 그리고 그것을 움직이는 정치와 그 제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지금 가을이 된 서울의 중심가에 농촌에서 올라온 수학여행 길의 국민학생, 중고등학생들의 대열을 다시 보게 되었네. 修學旅行의 뜻이나 서울에 오기까지 집안에서 비용 만들기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지. 다만 그 학생들의 대열을 볼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서울이나 도시의 국민학교,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어째서 농촌에 내려가서 농사짓는 것을 배우는 ‘수학’을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일세. 그런 생각은 아예 이 사회에는 불필요한 것이고 교육이란 것이 바로 그것을 낭비라고 보는 듯싶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사회의 모든 지배이념은 ‘지배자 지향 이념’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은 앞서 이야기를 끝낸 터이니까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지. 농민·노동자의 처지와 농사 짓고 물건 만드는 일일랑 ‘지배자 이향’적 사회원리와는 역행한다는 것일까.


나는 농민이 좀 더 정치적 감각과 사회에 관한 문제의식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네. 그것은 ‘생각한다’는 뜻인데, 이 사회에서는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 제일 편하게끔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닐세.


임군, 생각한다는 것은 더욱이 생각한 결과를 말한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자신에게 형벌을 가하는 일이 된 듯싶네. 그러나 정치는 내가 할테니 너희는 농사만 지으면 된다는 말이야 성립될 수 없지 않겠는가.


우리 농민은 너무 오랫동안 복종과 순응만을 해 온 것 같아. 생각하고 저항할 줄 아는 농민을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네.


 


11월 서울에서


(『농민운동』, 1976년 11월호) *볼드체로 표시한 곳이 수정 혹은 삭제된 부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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