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재단은 새로운 전환시대를 맞아,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나은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열린 강좌를 만들어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 확장을 위하여 노력해 온 많은 민주주의자들과 더불어, 국내외의 다양한 실험을 탐구하고 나아가 현실적 적용가능성을 탐색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리영희 저널리즘 스쿨 2022] 7강 유튜브 저널리즘으로 바꾸고 싶은 세상_신혜림
유튜브 저널리즘으로 바꾸고 싶은 세상 / 신혜림(유튜브 씨리얼 피디)
리영희 저널리즘스쿨 8강은 CBS 유튜브 채널 씨리얼의 신혜림 피디였다. ‘가려진’ 목소리를 ‘쉽게’ 전달할 것을 모토로 유산(legacy)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유산이 되려는 사람. 신혜림 피디는 말보다는 자신의 작품으로 많은 것을 전달하는 강사였다.
용돈 없는 청소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과 선생님들, 부모를 부양하는 청소년, 관심병사였던 청년들.... 이들의 인터뷰 영상에는 신비화도 없고 온정주의도 없다. 할 말 많은 이들이 믿음을 갖고 말할 수 있게 섬세하게 판을 깔아줬을 뿐 동정이나 공유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얻은 영상은 숫자와 통계로 설명되던 세상의 단면을 깊숙이 잘라 보여준다. 세상의 한 부분을 열어놨고 닫힌 전체가 아닌 열린 부분을 드러낸다.
100만 조회, 댓글 5천개. 하나의 영상에서 하나의 커뮤니티가 발생하고 자란다. 댓글 속에서 또 아이템을 찾고 여기서 섭외가 이뤄지고 서로는 이어진다. 그 판에서 신뢰를 얻은 독자들은 이제 연결되고 확대된 세상을 보여줄 또다른 컨텐츠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각자 세상의 한 부분의 진실을 담지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가능하게 된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신 피디는 본인이 깊게 느낀, 그 느낀 것으로부터 생각을 풀어낸다고 말한다. 깊게 느끼는 것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느낌으로부터 의문을 갖고 질문을 제기하는 것. 영상을 강의시간에 틀어주면서 지겹도록 봤을 그걸 다시 쳐다보는 신 피디의 따뜻한 표정은 그가 어떤 상황이건 긍정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긍정하기에 강사가 말한 대로, 불편한 얘기를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꺼리지 않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 또한 훈련이 필요한 영역이다.
씨리얼의 모토 중 하나는 ‘쉽게 전달한다’ 이다. ‘쉽게’란 비례대표에 대한 설명을 300개의 병뚜껑으로, 제주 4.3에 대한 설명을 해안선으로 둘러쳐진 화산도를 흙으로 직접 빚어 보여주면서 하는 것이다. 쉽게 잘 만든다는 건 단지 보기 좋고 깔끔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었다. 내용에 관한 충실성만큼이나 방법에 대한 충실함 또한 독자에 대한 정성임을 인간에 대한 성실함임을 느끼게 해준 영상들이다.
강사는 레거시와 뉴미디어의 차이는 어떻게 일하는가에 있다고 했다. 컨텐츠가 쫀쫀할 수 있었던 건 정기성을 포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구독자 수 30만에 머무르는 것으로 정기성이 가져다줄 구독자 수 50만을 포기하고 컨텐츠의 질을 고수하는 용기. 원칙을 코에 걸고 다니지 않는다, 원칙을 지키면 밥이 나온다에 대한 확신.
실제로 기후위기 관련 영상은 조회수가 230만에 이른다. 원칙을 지키면서 자기로부터 출발해 점점 더 다양한 이 세상의 부분들과 만나고 있는 씨리얼과 신혜림 피디의 앞으로가 궁금해지는 강의였다.
수강생 강좌 후기 | 씨리얼이 바꿔놓은 세상
정인욱(리영희 저널리즘스쿨 2022 수강생)
공백을 채우는 것은 인터뷰이 한명, 한명의 얼굴이다.
씨리얼은 ‘Why not see real?’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지고 있다. ‘진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뜻과 간단하게 먹을 수 있지만 충분히 영양가 있는 씨리얼 영상을 만들겠다는 뜻에서 정해진 씨리얼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내용으로 레거시 미디어가 놓치고 있는 공백을 채우고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만큼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레거시 미디어가 놓치고 있는 공백 말이다. 현재 한국의 레거시 미디어는 이전까지의 강의에서 들은 것처럼 형식적인 객관주의를 지키고 자기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레거시 미디어가 내보내는 다양하지만 파편적인, 굵직하지만 내 삶과는 먼 이야기들로 누군가를 설득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진짜 ‘삶’이 있는 이야기들은 그런 정보의 바다 사이에서 부유하면서 누군가 들어주기를 애타게 외칠 뿐이다.
씨리얼은 그렇게 부유하고 있는 삶이 딛고 설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었다. 씨리얼에는 크게 두 가지의 콘텐츠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인터뷰 영상이다. 인터뷰이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들의 삶은 오로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어떤 순간에는 슬프다가 기쁘기도 하고 때로는 담담하게 하고 전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씨리얼이 던지는 질문을 만나서 고맥락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고맥락의 이야기는 레거시 미디어가 놓친 틈을 메우며 사람들에게 다가가 진짜 세상을 보여주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한명, 한명을 설득하고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드는 ‘씨리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인터뷰를 씨리얼 콘텐츠의 한 축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한 축은 뭘까? 바로 익스플레이너(explainer: 설명하는 사람) 영상이다. 신혜림 PD님은 씨리얼이 인터뷰라는 중요한 한 축을 얻을 수 있었던 기반이 “쫀쫀하게 잘 만든” 익스플레이너 영상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씨리얼이 처음 만들어지고 기획을 고민하던 시절, 청년들에게 잘 다가갈 수 있는 영상을 고민하며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을 만들고자 했고 ‘1. 지루하지 않은 2. 어렵지 않은 3. 불필요한 장면이 없는’ 이라는 3가지의 포인트를 잡게 되었다. 때로는 병뚜껑 300개를 모으고, 드릴로 지구본에 구멍을 뚫는 노가다를 하더라도 설득력 있는 설명의 흐름과 직관적인 이미지로 어렵고 불편하게 느끼는 이야기를 너무도 잘 설명해내면서 점차 씨리얼이라는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형성하게 된 거 같다고 했다.
그렇게 씨리얼이 신뢰를 얻어가는 시간 동안, 씨리얼을 만들어가는 구성원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씨리얼의 영상이 좋은 설명의 흐름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영상을 한 명의 PD가 제작하기 때문인데, 제작자가 성장하니 다른 곳보다 제작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 씨리얼의 영상 또한 점차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씨리얼이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당사자가 발화할 수 있는 장으로서 역할이 생기고,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초창기 ‘나로부터 시작하는 콘텐츠’를 넘어 ‘계속해서 고민하고 타인과 닿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금에 이르렀다. 신혜림 PD님은 이렇게 변하고 성장하는 씨리얼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살아있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씨리얼이 ‘레거시’ 미디어가 된 세상을 만드는 것까지 말이다.
‘유튜브 저널리즘으로 바꾸고 싶은 세상’
‘유튜브 저널리즘으로 바꾸고 싶은 세상’이라는 제목이 2022 리영희 저널리즘스쿨을 처음 추천받았을 때부터 한눈에 꽂혔다. 아니 사실 이 강의를 듣기 위해서 전체강의를 듣기로 마음먹었다고 해도 될 거 같다. 그만큼이나 이번 강의의 제목은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으니 말이다.
대부분 우리가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은 양적 자료로, 구조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여 일반화와 ‘보편적 사실’에 도달하는, 누군가를 ‘납득’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것에 집중하다 보니 세상사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인데, 언젠가부터 사람의 삶이 드러나지 않는 정보만이 미디어를 가득 채웠다. 아마도 객관이라는 게 인간의 판단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탈진실의 시대’라고 명명되는 이 시대는 허위와 진실이 뒤섞이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누군가의 온전한 삶을 대가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더욱이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진실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진실이란 무엇일까? 객관적 사실이란 존재하는 걸까? 우리는 이 지점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널리즘이 다루는 정보는 대부분 현실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는 애초에 그 사건을 누군가의 입장에서 취사선택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배제해보려 한들 객관적 사실과 무결한 진실에서 인간이 배제될 수 없다.
기사화할 때 독자적인 판단을 가져달라는 말이다. (…) 독자 대중에게 그것을 전하는 당신들은 최대한의 과학적ㆍ상식적 판단력을 동원해 그 진실을 규명할 책임과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고 발표문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자위하거나,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적대감정을 부채질하는 사족까지 첨부하면서 득의만면한다면 당신은 ‘타스통신’ 기자나 『로동신문』 기자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럴 수는 없다. --「후배 기자들에게 하는 당부: ‘신문지’를 만들지 말고 ‘신문’을 만들자」(1988년)
그렇기에 리영희 선생님의 이 말씀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저널리즘은 과학적 판단력, 즉 과학적인 방법을 토대로 진실이라는 최대한 명확하고자 노력한 결과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영희 선생님이 기사를 쓰는 방식처럼 수많은 공부와 정보를 취합하여 알아낸 ‘진실’이라는 것은 진리는 아닐지언정 최대한 명확하게 사안을 분석해낸 하나의 과학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내가 아는 한 분명히 사회과학의 태도이다. 그러니 저널리즘은 자신의 역할을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 선을 긋고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비판적 지식인이 견지해야 할 태도는 비교를 통한 판단이다. 사실과 진실은 언제나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누군가의 삶은 언제나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사실과 진실은 언제나 사회와 연결되어있다.
씨리얼이 레거시 미디어의 공백을 채우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하나의 방식인 인터뷰 컨텐츠는 일종의 에스노그라피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개인의 삶으로부터 맥락화되는 구조적 힘을 발견하는 하나의 사회과학적 방법론이다. 그리고 지금 씨리얼은 이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내고 있다. 사람은 없고 숫자만이 존재하는 스스로 ‘과학’적이라고 하는 이야기만큼이나, ‘과학’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설득하고 있다. 안수찬 교수님의 강의에서 한국 출입처 기자와 영국 기자의 차이점을 이야기한 것을 기억한다면 좀 더 이해가 잘 될 것 같다. 영국의 기자들은 교육담당 기자라면 항상 학교에 가 있다고 했다. 그들이 쓸 기사는 당연히 교육 당사자의 삶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이 없어야 사실이 되고, 진실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있어야만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상을 통해 시청자에게 도달할 당사자의 내용, 단어, 목소리, 표정, 태도, 감정 그 모든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씨리얼의 인터뷰가 오히려 가장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씨리얼이 당사자가 발화할 수 있는 장소가 되고, 당사자로부터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될 것이라는 신뢰를 얻고, 납득이 아닌 ‘공감’으로 설득당한 시청자가 씨리얼을 칭찬하는 지금의 상황이 굉장히 고무적이다. 유튜브 저널리즘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1 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대는 하루 평균 3시간12분 가량을 스마트기기를 활용하여 미디어를 시청한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을 유튜브와 OTT 서비스에 사용한다고 한다. 나도 그런 보통의 청년 중 한 명이었다. 이러한 ‘보통의 청년’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시간을 쏟는 곳에서, 그들의 언어로 설득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가장 익숙하기도 한 곳에서 시작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긴다. 유튜브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은 분명히 가능하고, 씨리얼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니 유튜브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신혜림 PD님의 목표가 더욱 와닿고, 공감을 넘어 나의 목표가 된다. 이런 좋은 강의를 듣게 해주신 리영희재단에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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