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한반도 핵위험의 구조: 그 해부와 대안」

핵문제·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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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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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한반도 핵위험의 구조: 그 해부와 대안」(1991년 7월, 새는)


 


 


북한의 핵개발 계획에 대한 미국의 전 세계적 규모의 위기의식조성과 한국 군부 책임자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기습공격의 의사표시로 절정에 달했던 한반도의 ‘군사위기’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시설 사찰을 수락할 뜻을 밝힘으로써 잠시 누그러진 감이 있다. 북한은 1991년 7월, 마침내 원자력기구와의 개별적 협정에 가서명함으로써 그들의 핵개발 노력이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것이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핵무기를 제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혹시 현대의 ‘궁극무기’에 대한유혹이 있었다면 그것을 포기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셈이다. 그것은 반가운 일이다. 위기의 일부가 제거된 셈이다.
하지만 데모크리토스의 머리 위에 가는 실오라기로 매어진 창끝처럼, 한반도와 남ㆍ북 민족의 머리 위에 상시적으로 드리우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성과 가능성은 조금도 줄어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위험의 창끝은 이 민족의 머리 위에 더 가까워진 감마저 있다.
어째서인가? 답은 간단하다. 원인은 북한의 핵시설이 가진 위험보다도 더 큰 위험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험의 요소들은 복잡하고도 거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45년 8월, 인간의 두뇌 속에서 나온 핵에너지의 프랑켄슈타인은 일본의 두 개 도시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것으로 대전쟁이 끝났다. 그 후 1980년까지 35년 사이에, 미국 군부가 전세계에 걸쳐 핵폭탄을 사용하기로 결정ㆍ구상ㆍ협박 또는 준비한일이 26회나 있었다. 그 26회 중 한반도가 미국 핵폭탄 사용 목표로 정해졌던 것이 5회나 된다. 한 나라에 대해서 5회의 기록은 달리 없다. 데모크리토스의 머리 위에 드리웠던 창끝은 이 민족의 머리 위에 상시적으로 바짝 내리닿아 있었던 것이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가입을 정했는데도 그렇다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은 복잡하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고는 우리의 머리위에 바짝 드리워 있는 창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남한의 북한 핵시설 선제공격 계획

북한이 보유 또는 건설 중인 핵시설은 과학ㆍ연구용 원자로 2기, 플루토늄 채취를 위한 제련(재처리)시설 1기가 확인된 것이다. 1960~70년대에 소련이 건설ㆍ지원한 소형의 4메가와트(MWt)급원자로는 순수 실험용이다. 이 원자로는 완공 후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와 개별적 협정을 체결하여 사찰을 받고 있다.
다른 하나는 30메가와트급으로 비교적 큰 규모다. 이스라엘이 1960년대 말 프랑스와 미국 등의 간접지원으로 초보적 핵폭발물을 제조한 것이 30메가와트급으로 알려져 있고, 이것이 미국과 한국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영변에 있는 우라늄 원료의 원자로는 미국의 핵전문가 레오나드 S. 스펙터의 연구에 따르면 1987년경부터 북한의 독자적 사업으로 가동 중이라고 한다.
국제원자력기구와 한ㆍ미ㆍ일 3국이 엄격히 문제 삼는 것은 세 번째 시설로, 영변에 있다고 미국 항공첩보사진이 주장하는 플루토늄 채취시설이다. 우라늄의 농축ㆍ제련으로 얻어지는 이 플루토늄 시설은 약간의 중국의 지원으로 북한이 독자적 노력으로 건설 중이라고 한다.
미국 정부는 이것이 1993~95년경에 가동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주장에는 “모든 필요한 부수시설과 재료 및 조건이 갖추어진다면”이라는 미국 정부 자신이 말하는 단서를 붙여서의 이야기다. 그 같은 가정과 단서가 충족될 경우라면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1년에 핵폭발물 1개 정도를 만들 만한 플루토늄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밖에 우라늄을 비롯한 원료의 처리시설이 2개 있다고 한다.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가정한다 해도, 북한의 핵시설과 핵과학ㆍ기술 수준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느냐 하는 평가에서는 미국 국방부 내에서도 가능과 불가능 의견이 반반으로 갈려져 있다고 스펙터는 쓰고 있다.
북한의 핵장치ㆍ자료ㆍ기술ㆍ지식ㆍ정보의 주요 제공자인 소련은 1990년 8월에 지원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정부, 특히 국방부와 중앙정보부(CIA)에 가까운 정보에 따르더라도, 소련은 또 북한에 제공하려던 4기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지원계획도 백지화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 핵무기의 잠재적 위협”이 진정 어느 수준의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요소가 많다.
1991년 4월 12일, 이종구 국방장관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기습(엔테베식) 공격구상 공개발언은, 그 직후 정부의 발언 취소에도 불구하고 거의 확고한 기정방침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핵전쟁 가능성은, 한ㆍ미 양국 정부의 군부 책임자들 사이에서 걸프전쟁 직후부터 긴밀한 협조 아래 공표된 다음과 같은 일련의 발언을 토대로 이해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군부가 3월 초(1991) 의회에 제출한「1991년 종합 합동군사정세 평가」보고서에서 밝혀진 이른바 북한에 대한 ‘120일 고강도 전쟁구상’과, 북한 핵시설의 국제적 사찰문제를 놓고 한ㆍ미 양국 정부의 대북한 기습선제공격 계획이 선명해짐으로써 한반도의 분위기는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3월 1일: 미군 병력 20만을 투입한 가운데 북한에 대한 소위 ‘120일 고강도 전쟁구상’이 체니 미국방장관의 대의회보고서에서 밝혀졌다.
3월 6일: 미국 국무성 동아시아ㆍ태평양지역 담당 차관(리처드솔로몬)- “미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반대한다. 핵확산의 책임은 오직 북한에 있다.”
3월 13일: 리스카시 주한미군(한미연합군)사령관의 의회 보고서- “김일성과 북한은 후세인과 이라크보다 악질적 존재다. ……사막인 이라크와는 달리 북한의 지형 때문에 공군력만으로는 북한군의 섬멸이 어려우므로 지상전이 뒤따라야 한다.”
4월 1일: 칼 포드 국방 제1부차관보- “지구상의 모든 지점에 미국 군사력의 긴급 이동능력을 위해서 남한ㆍ일본ㆍ필리핀에서 미군은 떠날 수 없다. ……동아시아 안정에 가장 심각하고 위험한 존재는 북한이다.”
4월 8일: 미국 합동참모부장(콜린 파웰 대장)의『아미 타임스』(Army Times)와의 인터뷰 발언- “(후세인 이후) 때려잡아야 할 악마가 이제 몇 남지 않았다. 다음은 카스트로하고 김일성 차례다.”
4월 10일: 보통 미국 군부와 우익 정치세력의 의사를 대변하는 레슬리 H. 겔브의『뉴욕 타임스』기고문- “신의 이름으로 저주받아야 할 자,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흉악한 나라는 북한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가 힘을 합쳐서 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에게, 북한이 다음의 이라크가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
4월 12일: 이종구 국방장관 발언(선제기습공격 구상).
1991년 7월 15일 현재,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의 핵시설에 대한 공격 계획을 승인한 것은 북한에 대한 결의의 예비적 경고로 해석된다. 미국은 1981년 7월, 미국의 하수인인 이스라엘 공군으로 하여금 이라크의 오시라크 핵시설을 기습공격케 하여 이를 파괴한 전력이 있다.

한반도의 항시적 핵전쟁 위협

핵분열 물질의 무기화는 수천 년간의 인간사회에서 ‘싸움’의 개념을 질적으로 변화시켰다. 최초의 원자탄이 1945년 8월, 일본의 두 도시에 투하된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이 내렸다. 그 후, 적대적 성격과 이해관계를 가진 인간집단들의 손에 핵폭탄이 쥐어짐으로써 ‘공포의 균형’ 상태가 형성되었다. 핵무기사용의 위험성과 가능성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최초의 원자탄 폭발 이후 두 번째가 없이 반 세기가 지났다. 인간의 이성과 도덕적 지각이 뛰어나서라기보다, 보복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 [표 1]핵무기 사용계획ㆍ위협ㆍ작전


 


미국


소련


시기


사건


시기


사건


1945.8


히로시마ㆍ나가사키


 


 


1946.3


이란사태에서 소련에 대해


 


 


1946.11


미국 공군기를 격추한


 


 


 


유고슬라비아에


 


 


1948.1


우루과이 대통령 취임


 


 


1948.4


베를린 봉쇄, 소련에


 


 


1948.6


베를린 봉쇄, 소련에


 


 


1950.7


한국전쟁 발발, 북한에


 


 


1950~53


중공군 개입, 만주지역에


1950~53


미국의 원자폭격 대항


1954.4~5


베트남의 프랑스군 패전,


 


 


 


월맹에


 


 


1954.5


소련권에 가입한 과테말라에


 


 


1954.8


중공과 대만 충돌위기, 중국에


 


 


1954.11


중국에


 


 


1956.10


수에즈운하 전쟁


1956.10


수에즈운하 점령한 미ㆍ영ㆍ


1958.7


레바논사태, 이라크에


 


이스라엘에


 


레바논사태, 요르단에


 


 


 


중국ㆍ대만 충돌 금문도사건


 


 


1959.5


베를린 봉쇄, 소련에


1959.5


 


1961.6


베를린 위기, 소련에


1961.6


 


1962.10


쿠바의 소련 미사일 배치


1962.10


쿠바 설치 미국 목표 핵미사


 


 


 


사용 위협


1963.4


터키 배치 핵무기에 대한


1963.4


미국 위협에 대항


 


소련 위협


 


 


1968.1


미국첩보함 푸에블로 호 북한에


 


 


 


납치


 


 


1968.2


베트남 케산전투 패배, 월맹에


1968


중ㆍ소 대립 적대화 사태,


1969.11


베트남 북폭


 


중국에


1970.9


중동사태 격화, 요르단ㆍ시리아에


 


 


1973.10


아랍ㆍ이스라엘전쟁


같은


 


1980.1


이란혁명 위기


시기


중동사태의 대전쟁촉발시 대비



핵무기를 소유한 초강대국(미국과 소련)이 핵폭탄 사용을 잠정적으로 결정했거나 계획했던 사건은 앞의 표에서처럼 여러 번 있었다.
1980년 이후에도 박정희 대통령 살해(1979)에서 광주사태(1980)에 이르는 기간 중 미국은 핵공격 태세로 일관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35년간에 세운 핵무기의 사용 결정ㆍ계획ㆍ위험ㆍ작전태세의 26회 중 북한이 그 대상이 된 것이 4회에서 5회다. 그 빈도는 중동지역 전체에 대한 것과 맞먹는다.
그것을 실제 사용한다면 남한까지를 합친 한반도 전체의 물질적 존재와 그 반도상에 생존하는 한(조선)민족의 일대 재앙으로 끝나리라는 것은 물을 필요조차 없다. 한반도와 이 민족은 미국핵무기의 항시적 파괴 위협 아래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한 강경정책의 배경과 논리

미국은 반드시 북한에 대해서만 ‘핵무기 국가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대해서 특이한 사실은, 세계의 많은 그 어떤 현재적ㆍ잠재적 핵지향 국가에 대해서보다도 완강한 그 태도다. 선제공격을 불사하는 대응 태도는 직접 전쟁상대였던 이라크를 제외하면 북한에 대해서뿐이라는 데 그 가공할 특징이 있다.
세계에는 북한이 가입한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도 안 하고 비준도 하지 않은 국가들이 1990년 현재 28개국이나 된다. 핵확산금지조약에는 가입했으면서도 국제원자력기구와 사찰협정 체결을 거부하고 있는 ‘핵무기 개발국가’ 또는 그 단계에 있는 나라도 11개가 된다. 이스라엘ㆍ리비아ㆍ브라질ㆍ아르헨티나ㆍ남아공화국ㆍ파키스탄ㆍ이라크ㆍ이란ㆍ북한ㆍ대만ㆍ인도가 그것이다. 미국은1980년대 말과 90년대에 들어와서 갑자기 핵개발국가 또는 그 잠재적 국가에 대해서 강압적 태도로 돌변했다.
1960년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핵무기 개발국가들은 미국의 이익에 대해서 모두가 반드시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적대적 성향의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1960년대에 이미 이스라엘은 ‘사실상’의 핵국가가 되었다. 인도는 70년대 초반에, 극단반공주의ㆍ인종격리주의의 남아공화국은 1980~81년 사이에, 파키스탄은 1986년에 ‘핵국가’가 되었다. 70년대 초중반에 장개석 총통의 대만과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이 핵무기 제조계획을 추진했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중지한 사실은 우리가 주지하는 바다.
같은 시기에 친미적이란의 샤(王)가 비밀리에 핵무기 제조를 시도했고, 1980년대에 역시 친미적 브라질이 핵무기 보유 국가의 문턱을 넘으려는 단계에 이르렀다. 리비아가 1970년대에 중국 지원으로 핵국가화하려던 계획은 좌절했다. 이라크 역시 81년 7월 이스라엘 공군의 오시라크 원자로에 대한 선제 기습폭격으로 좌절했다. 이라크에 대한 이스라엘의 행동은 미국의 스파이 인공위성의 촬영과 이라크 공군의 요격을 피할 수 있는 미국의 기술 지원으로 가능했다. 즉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작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이익에 적대적인 3개 국가가 핵국의 문을 열려고 했다. 이라크ㆍ이란ㆍ북한이 그것이다. 두 아랍국가의 핵국화는 직접적으로는 중동 석유자원과 간접적으로는 북대서양동맹(NATO)에 대한 위협으로서 미국의 이익에 위협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미국의 적대논리는 다음과 같다. ① 남한에 대한 중대 위협, ② 주한미군의 안전 위협, ③ 주한미군핵전력의 남한 방위 목적의 대북한 억지력 상실, ④ 남한 정권의 대응적 핵무기 개발 재개, ⑤ 남ㆍ북한 사이의 전쟁행위 재발 가능성 증대, ⑥ 한반도 정세 불안에 따르는 일본의 대대적 핵전력 보유(또는 충동), ⑦ 한반도 주변 역관계를 구성하는 남한ㆍ북한ㆍ일본ㆍ중국ㆍ소련ㆍ미국 전원의 핵군사국가화와 그 불안정성, ⑧ 일본의 핵무장이 필연적으로 자극할 중국의 대항적 군사증강, ⑨ 일본 핵무장이 초래할 동남아시아지역 국가들의 심각한 불안 요소, ⑩ 북대서양동맹과 바르샤바동맹의 명확한 통합된 군사체의 경우와는 달리, 아시아 전역에서 개별적 행동동기를 가진 다수 국가의 핵무장력이 초래할 예측불허성 등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베트남에서의 미국 철수를 ‘미국 핵우산’의 무력화의 증거로 보고, 유신독재체제 확립을 전후해서 ‘자력국방’의 구호 아래 핵무기 개발계획을 추진했다. 대만의 장개석 정권도 동시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의 간섭과 ‘핵우산’ 보호의 공약으로 양국은 75년 초에 그 계획을 일단 포기했다. 그 결과로 75년 10월 31일, 대한민국 정부는 그때까지 미루어오던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락하는 협정에 서명한다(핵확산금지조약에는 이 조약의 발효 직후인 1968년 7월 1일에 가입했다).
노신영 외무장관이 서명한 이 협정은 주요 골격이 이른바 ‘표준형’으로 98개조에 이르는 장문이다. 사찰과 관련된 기술ㆍ원료ㆍ행정ㆍ경제ㆍ재정ㆍ상권ㆍ신변안전 등이 상세하게 규정돼 있는 이 협정은 깨알 같은 영문활자로 자그마치 32쪽 분량이다.
이 협정의 서문(전문)은 핵확산금지조약의 서문을 그대로 인용했다. 본문에도 대한민국의 개별적 입장 또는 특수한 요구조건을 기술한 것은 없다. 북한은 원자력기구와의 협상기간 중 남한 배치미국의 핵무기에 관한 언급을 서문에 삽입하려고 무던히 애썼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컨대 결국 ‘표준’조약문에 서명한 것으로 믿어진다.

북한 핵시설과 주한미군 핵무기의 연계 문제

북한은 핵시설의 국제사찰 수락 조건으로 다음 조건 중 하나 또는 복수의 미국 측 대응조치를 일관되게 요구해왔다. 그 중요성 순서로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남한 배치 핵무기의 전면철수, ② 한(조선)반도의 비핵화 또는 비핵지대화, ③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 공약(문서 형식으로, 또는 미국 정부의 공식발표), ④ 핵무기철거 의사표시, ⑤ 원자력기구와의 협정문 서문에 주한미군 핵무기에 관한 문구 삽입.
북한의 이 주장과 요구는 다시 ① 국제조약의 법적 해석, ② 평화를 위한 정치ㆍ군사적 실제적 조치, ③ 한국 휴전협상상 책임의 각도에서 규명되어야 한다. 국제조약의 권리ㆍ의무의 차원에서만 말하자면 북한의 다섯 가지요구 중 어느 한 가지도 엄격하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했으므로 그 제3조 4항의 의무로서 당연히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규정을 수락하는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3조 4항: 체약국(締約國)인 비핵무기 국가는 이 조의 요건(비핵책임)을 충족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 헌장에 따라서 개별적 또는 다른 국가와 공동으로 국제원자력기구와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이 조약 발효의 날부터 180일 이후에 비준서 또는 가입서를 기탁하는 국가는 그 기탁서 제출의 날 사이에 그 협정을 위한 협상을 개시해야 한다. 그 협정은 협상개시일부터 18개월 이내에 효력을 발하는 것으로 한다.




즉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에 추후 가입(1985.12)했기 때문에 그 가입서를 기탁하는 날까지의 사이에 원자력기구와의 사찰협정에 관한 교섭을 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협정은 협상개시일부터 18개월 이내에 발효케 해야 하므로 1987년 6월에는 매듭을 지었어야 할 의무를 진 것이다. 이 의무규정은 핵무기나 각종 핵폭발장치의 ‘제조ㆍ취득ㆍ보유ㆍ원조 수락’을 포기하도록 되어 있다.
미국 핵무기의 남한 배치는 유엔헌장 제51조(자위권 조항)의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군사적 조치”인 까닭에 국제원자력기구에 대한 의무를 지지 않는다. 그것은 별개 범주의 조약의무다. 따라서 미국 정부가 북한 측의 주한 미국 핵무기에 대한 다섯 가지 또는 그중 몇 가지 조건을 거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북한 측의 소위 ‘연계방식’ 해결안은 법적ㆍ조약적 측면에서는 근거가 희박하다.
그러나 북한이 그와 같은 요구를 끈질기게 들고 나올 때는 아마도 두 가지의 다른 국제조약의 원용(援用)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는 바로 원자력기구 헌장의 모범인 핵확산조약이고 다른 하나는 ‘트라테롤코’조약이다. 미국은 이 두 조약에 의해서 북한 주장을 전적으로 ‘근거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핵확산금지조약 제6조는 다음과 같이 핵보유국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제6조: 각 체약국은 핵군비경쟁의 조속한 중지 및 핵군비감축에 관한 효과적 조치를 취하고, 엄중하고도 효과적인 국제관리하에서의 전면적이고도 완전한 핵군축을 실현할 조약체결을 위해서 성실한 교섭을 이행할 것을 약속한다.




즉 핵확산조약의 발기국가이며 다른 비핵국가들에게 비핵의무를 지우는 그 조약의 가입서 기탁국인 미국ㆍ소련ㆍ영국은 “전면적이고도 완전한” 핵군축을 조속한 기간 내에 실현할 엄중한 의무를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세 발기국 중 소련은 거의 ‘전면적’인 핵군축을 요구하고 있으나 영국과 미국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은 1970년 3월에 발효했다. 그리고 유효기간은 25년으로 정해져 있다(제10조). 이 제10조는 25년간의 조약 만기 후에 조약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 가입국 회의를 소집하기로 규정하고 있다. 기간만료 5년을 앞둔 1990년 봄 이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에서 제3세계국가들, 그중에서도 잠재적 핵무기국가들은 핵보유국들, 특히 미국에 대해서 이 제6조의 의무와 책임의 불이행을 격렬히 비난했다. 결국 이 회의는 핵확산금지조약의 5년 후의 문제에 관해 결론 없이 폐회했다.
둘째의 ‘트라테롤코’조약은 정식 명칭이 ‘라틴아메리카 지역 핵무기금지에 관한 조약’(1968.4 발효)이다. 31개조로 구성된 이 조약은 이 지역의 ‘비핵화’ 및 ‘비핵지대화’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조약기간은 “영구적 성격을 가지며 무기한의 효력을 갖는다”라고 되어 있다(제30조). 이 조약 적용 지역에서 미국 영토는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조약에 대한 ‘제2추가의정서’에 다른 공식 핵보유국가들과 함께 서명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의무를 수락한 것이다.



제2추가의정서 제3조: 다음의 전권위원에 의해서 대표되는 정부(즉 5개 핵보유국)는 이 조약의 가입국(들)에 대해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과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하지 않을 것을서약한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는 이런 엄숙한 서약을 하면서, 같은 비핵국가인 북한에 대해서는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소련과 중국은 한반도에 대한 핵무기불사용선언, 또는 지역국가회의를 통한 남북한 비핵화에 찬동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것은 미국과 남한뿐이다.
미국의 압력에 대해서 북한과 유사한 ‘연계’조건을 제시하는 국가가 있다. 쿠바다. 쿠바 영토의 동북단에 있는 관타나모는 미국의 해ㆍ공군기지로서 카스트로 혁명 이전의 바티스타 독재정권시대부터 조차되어 있다.
카스트로 정부는 혁명 초부터 관타나모 기지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은 영구점령 의사를 거듭 밝혀왔다. 쿠바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와의 사찰협정 체결조건으로 관타나모 기지의 ① 완전반환, ② 부분적 반환, ③ 반환 의사표시, ④ 미국의 식민지적 성격이었던 구정권과 체결한 관타나모 기지 대여 조약의 폐기 또는 수정, ⑤ 쿠바에 대한 군사공격을 않겠다는 공약을 요구했다.
인도 또한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수락협정 체결의 전제조건으로서 미ㆍ소 핵초강국의 단시일 내의 전면적 핵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후진 핵개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그 이중 성격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사찰요구나 선제공격 협박은 그것이 초강국 ‘미국 국가이기주의’의 자의적 표현이라는 견해도 있다. 조약의무를 해석하는 미국의 이중기준적 행동은 미국 정부의 진의를 의심케 하는 바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미국 정부는 미국의 세계패권질서 구조의 종속적 지위를 거부하는 국가ㆍ정권ㆍ국민ㆍ지도자에 대해서는 그들의 핵시설을 직접행동으로 공격하거나 대리자로 하여금 파괴적 공격을 하게 하는 반면, 친미주의적 국가에 대해서는 조약위반을 묵인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1980년 7월 7일, 이스라엘에 의한 이라크의 오시라크 연구용 원자로 기습공격 파괴, 86년 리비아와 카다피 대통령에 대한 미국해ㆍ공군에 의한 기습공격, 80년 이란혁명을 말살하기 위한 이라크(후세인)의 군사행동 지원 또는 파키스탄이 친미적 노선일 때의 그 핵시설과 핵개발계획에 대한 묵인은 친소적일 때의 각종 압력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만약 북한이 친미적 노선인 이스라엘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았다면 미국의 태도는 판이할 것으로 믿어진다.
이스라엘은 1990년 말 현재, 100 내지 200개의 핵전력을 제조ㆍ보유하기에 이르렀다. 그뿐만이 아니다. 1,000파운드의 핵탄두를 장착ㆍ운반할 수 있는 사정거리 2,000마일 이상의 미사일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1988년과 90년에 핵탄두 운반용 강력 로켓을 사용하여 인공위성을 우주궤도에 발사ㆍ정착시킨 바 있다. 이스라엘은 미ㆍ소ㆍ영ㆍ중ㆍ불의 핵무기 보유 인정국을 제외한 최강의 종합 핵전력국가가 되었다(Leonard S. Spector, Nuclear Ambition, 1989~90, pp. 149~170).
1957년 프랑스의 핵원료와 기술 이전으로 시작한 이스라엘의 핵무기 제조계획은 1960년대에 이미 초보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 단계에서부터는 미국을 원천으로 하는 원료ㆍ노하우ㆍ기술ㆍ시설 등으로 진행되었다.
이스라엘의 핵탄두 생산에 사용된 고농축 우라늄은 미국 정부의 관리 아래 운영되는 펜실베이니아 주 아폴로 지방 소재의 ‘핵물질ㆍ장비회사’(NUMEC)의 우라늄 저장창고에서 인도된 사실이 폭로된 일이 있다. 세계의 비핵국가들, 특히 아랍세계 국가들로부터 강력한 책임추궁이 일어난 것은 당연하다. 이 세계적 공격으로 궁지에 몰린 미국 정부의 에너지위원회와 중앙정보국은 ‘진상조사’를 공약한 후, 그것이 그 창고에서 누군가에 의해 “도난당했다”고 발표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해서도 미국의 대응은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경ㆍ영토분쟁, 종교분쟁, 동남아시아에서의 영향력 경쟁 등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서 각기 미국ㆍ소련ㆍ중국과의 얽히고 설킨 변화무쌍한 관계구조의 궤도를 그려왔다. 미국은 그 두 나라 정부의 미국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삼아 묵인과 협박을 반복했다.
세계의 일치된 규탄대상이던 소수 백인지배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중기준이 적용되었다. 아랍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스라엘과 같은 기준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무기 보유는 아프리카 흑인세계에 대한 극우ㆍ반동적 소수 백인권력의 궁극적 지배수단이 될 것이었다.
미국 정부의 묵인이 아니었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보유 노력은 초기에 봉쇄ㆍ좌절됐을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것은 미국 정책의 대표적인 위선(僞善)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미국 핵무기의 유무수량유형성능

남한 영토상에 핵무기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미국의 소위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불시인ㆍ불부정’= ‘양부’(兩否))정책 때문에 공식적 확인(시인) 외의 다른 경로와 방법에 의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문제의 규명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미국은 유럽국가들에 대해서는 핵무기의 배치상황을 그 국가 정부에 통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위 ‘양부정책’은 유럽(또는 백인)국가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정책이다. 막강한 소련의 핵군사력의 상존적 위협 아래 있기는 유럽 국민들이나 남한 국민들이나 마찬가지다(적어도 지난 2년 전까지는). 미국 핵무기의 남한 배치상황은 다음의 근거들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① 미국 정부 내 권위자의 문서ㆍ발언 등으로 추정.
1975년 6월 3일 미국 하원의원 로널드 딤롱즈의 발언: “남한에는 1,000개의 핵탄과 54대의 핵운반용 비행기가 있다.”
1975년 9월 30일 미국 하원(예산위원회)의원: 하원 본회의에서의 퍼싱(Pershing) 미사일 문제에 관한 토의석상, “이 신무기는 남한에도 배치될 것이다.”
1975년 6월 20일 슐레진저 국방장관: “미국이 유럽과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한 사실은 널리 알려진 것으로 믿는다.”
1983년 9월 21일 와인버거 국방장관: “신형 핵무기 중성자탄은 유럽국가들에 배치하기는 어렵지만 남한의 경우는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91년 3월 6일 미국 국방차관보 리처드 솔로몬의 한반도 정세관계 의회 증언: “어떤 대응적 조치의 대가로서 미국의 핵무기를 철수하는 행위는 미국의 ‘핵억지력’을 손감시키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
② 주한미군(사령부)의 핵관계 편제ㆍ조직ㆍ교분ㆍ특수구축물ㆍ전화번호 등에서 추정.
③ 군사훈련에서 사용된 가상하의 작전 성격에서(예: 1985년 팀스피리트 작전) 추정.
④ 미국군 해외주둔의 “지상군+핵무기 입체전략”-미국 지상군은 접적(接敵)지역에서는 핵무기체계의 직접적 엄호(방패)하에만 배치된다. 지상군이 있는 곳에는 핵무기가 있다. 따라서 그 어느 쪽의 철수나 감축은 자동적으로 다른 쪽 전력의 철수 또는 감축과 연계된다.
⑤ 핵탄두 장착용 무기류의 존재로부터 핵무기의 수량을 산출한다. 각 무기는 고유의 기능과 목적을 위해서 설계된다. 핵무기장착ㆍ투하ㆍ발사용 무기 유형의 존재로서 핵무기의 존재를 확인한다.

● [표]


유럽 북대서양동맹(NATO)의 미국군에서 공인되어 있는 유형ㆍ수량 산출 방법을 남한 영토에 배치된 각종 체계에 적용하여 초기(1976)의 핵무기 배치상황을 보면 위의 표와 같다.
1980년대 중반에 새로 배치된 F-16기 32대(군산기지)의 핵공격력은 F-4기에 비해서 월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따라서 핵무기의 성능도 강화되었고 그 수량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어네스트 존 미사일에 장착되는 폭발력 100킬로톤의 핵탄두는 그 병기 종별 명칭이 ‘W-31’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수정으로 남한에 남아 있던 어네스트 존의 마지막 대대가 1979년에 한국군에 이양되었고, 핵탄두는 미군이 보유하는 체제가 되었다.
핵지뢰는 병기체계 분류로는 N-167, M-172 또는 M-175의 명칭이며, 탄두 유형은 W-45다. 핵지뢰는 1985년 현재 279개가 유럽에, 21개가 괌섬과 남한에 배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 한국에 있는 수는 알 수가 없다(Tom Gervasi, America’s War Machine, Grove Press, 1984).
핵무기는 그 운반수단 유형으로 크게 비행기에 의한 투하방식과 로켓에 의한 발사방식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그 운반체인 로켓(미사일)을 핵탄두와 함께 검토하는 것이 군사학의 일반 개념이다. 남ㆍ북한의 핵탄두용 로켓 전력을 세계의 권위 있는 한『핵무기연감』(Leonard S. Spector, Nuclear Ambition: The Spread of Nuclear Weapons)의 최신(1989~90)판은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다.

● [표]


한국은 1995년까지 ‘통신용’인공위성 발사를 목표로 생산계획을 추진 중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 계획에서 주목할 사실이 있다. 이 인공위성은 ① 궤도에 올려져서 기능할 통신중계용 장치, ② 궤도까지 정확히 비행시킬 유도장치, ③ 장치를 운반할 로켓의 3부분으로 구성된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①과 ②는 제작기술 부족 때문에 국제입찰에 맡겼으나, ③의 로켓 제작만은 국내기술로 하기로 결정했다. 핵미사일의 경우는 핵탄두에 해당하는 로켓 첨단에 장착될 중계용 장치의 중량은 그 발표에서 언급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가들의 선례로 미루어 통신중계용 발사 로켓은 사실상 적어도 중거리 탄두미사일의 성능을 갖는다.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의 ‘위협’이 정부기관에 의해서 갑자기 요란하게 선전되기 시작했다. 반면 남한의 미사일 생산기술과 현재의 개발 현황에 관해서는 구체적 발표가 없지만 아마도 북한이 위협을 느낄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핵무기가 불필요한 정세변화

6ㆍ25전쟁 기간 중 여러 차례의 사용결정, 계획, 위협 그리고 상시적 사용태세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았다. 모든 자료와 근거는 미국이 원자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인도주의적 배려에서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맥아더 원수의 “전쟁에서 승리의 대치물은 없다”라는 한국전쟁 중의 발언은 설득력이 있다.
미국이 끝내 북한에 대해서 핵무기를 쓰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원자탄 보유수의 부족(1950년의 보유량 약 400개), ② 북한과 만주의 핵공격 목표 부적당(재래식 폭격 효과), ③ 영국ㆍ프랑스 등 정부의 반대, ④ 남한 또는 일본에 대한 소련의 원자탄 공격 가능성, ⑤ 유럽전선의 대소 전쟁대비 원자탄 전력의 감소, ⑥ ‘평화애호적’ 중국에 대한 핵공격으로 인한 세계적ㆍ정치적 반미 역효과, ⑦ 일본 히로시마ㆍ나가사끼 이후 황인종에 대한 제2차 핵공격으로 인한 비백인세계 감정격화 등이 그것이다.
위에서 적시된 저해요소들을 보면 현재의 정세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결심할 경우에 40년 전보다 미국에 유리하게 변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군사적 보호자이던 소련은 그 의무를 거부했다. 북한과 소련의 ‘상호원조조약’(1961.7 조인) 제2조는 상호간 다음과 같은 의무를 수락했다.



제2조: 체약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방해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떤 연합이나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 의무를 진다.




소련과 대한민국의 정식 국교수립으로 이 조문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소련은 또 군사적 원조의 의무도 거부했다. 이 조약의 제1조 후반은 다음과 같은 의무를 부과했던 것이다.



제1조: ……체약 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군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하여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그리고 온갖 수단을 다하여 군사적 및 그밖의 원조를 제공한다.




이 조항은, 남한에서 1961년 5월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선언한 군사정권이 집권한 즉시, 그것을 미국의 작품으로 해석한 북한이 이른바 ‘북침’ 위험에 대비해서 체결한 군사동맹적 의무규정이다. 이 상호 의무관계는 한미 방위조약에서보다 훨씬 강경하고 구속적이다. 그러나 제2조가 백지화됨으로써 소련은 북한에 대한 어떤 군사적 의무도 거부한 셈이다. 형식상으로는 ‘조소 상호원조조약’은 1995년까지 유효하다. 그러나 이 조약은 사문화되었고, 소련의 새로운 국가정책 결정구조는 차라리 남한과의 동맹관계를 희구하는 상태다.
이종구 국방장관의 대북한 선제기습공격 발언은 이 상황변화를 배경으로 할 때 그 진의가 한결 선명해진다.
남ㆍ북한의 전쟁수행 능력은 남한 정부의 대외적 주장과는 반대로, 실제로는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하다(상세한 설명은 생략). 참고로 한국 국방부의 공식발표에 의한 남ㆍ북의 1990년도 군사비는 남한이 99.7억 달러, 북한 54.4억 달러, 91년도는 남한 110억 달러, 북한 53.3억 달러다(『국방백서』, 1990, 117쪽).
미국 태평양지역 군사령관 헌팅턴 하디스티 제독은 이미 1990년 2월, 그의 관할지역 정세에 관한 하원 군사위원회 증언에서 “소련의 평화정책, 동서관계의 변동 등으로 말미암아 남한에 대한 북한의 군사공격 가능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약해졌다”고 언명했다(Information Update No. 16, 1990.4). 주한미군사령부의 한 고위 장교에 의하면 “북한이 보유하는 최신예 공군전투기인 소련제MIG-29의 조종사들은 연료공급의 극단적인 악화 때문에 1년간4시간밖에 공중조종훈련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와싱톤 포스트』1991.6.6, 서울 발신 주한미군사령관 로버트 리스카시 대장 인터뷰 기사). 이 같은 상태의 북한 군사력의 ‘남침위협’이란 허구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군사력에 대비해서 가공할 미국 핵전력이 남한에 존속해야 할 구실은 없어 보인다.
북한 지도자들은 북한이 “남조선을 공격할 생각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실토한다. 그들 발언의 진실성을 차치하더라도 이상과 같은 객관적 전쟁능력 평가는 충분한 근거에 입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조약이나 법적 측면과는 별도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지역의 평화구조 설립을 위해서 남한 내 미국 핵무기의 감축ㆍ철거ㆍ선제공격 부인 공약ㆍ비핵지대화 등은 개별적 조치로서도 적극 환영할 일이다.
비핵지대화는 남ㆍ북한의 초토화 위험성을 제거하고, 통일의 과정에서 거쳐야 할 군비축소 조치의 첫 단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북한은 그들의 성실성을 국제사찰을 수락하는 행동으로써 입증해야 한다. 미국의 정부ㆍ의회ㆍ군ㆍ민간에서 최근 북한의 사찰수락과 병행해서 남한 배치 미국 핵무기의 감축ㆍ철거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미국 핵무기와 대한민국 주권의 위상

주한미군의 핵군사력은 북한과의 관계형태, 국제기구 또는 다른 지역국가들과의 국제법 및 조약상 권리ㆍ의무관계에서도 문제가 많지만 남한과의 관계형태에서도 검토돼야 할 문제들이 없지 않다. 여러 가지 중에서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① 현행 휴전협정과의 관계, ② 한미 방위조약과의 관계, ③ 미국 핵무기의사용권과 대한민국 주권과의 관계다.
첫째, 휴전협정과의 관계에서: 1953년 7월, 3년1개월에 걸친 한국전쟁이 잠정적으로 끝났을 때 북한에 있는 북한과 중국의 무기나 남한에 있는 남한과 미국의 무기는 다같이 심대한 파괴를 당한 상태였다. 반도 전역이 파괴된 고물 무기류의 거대한 쓰레기장이었다.
전쟁당사자 쌍방은 휴전협정 조인일 현재의 쌍방 무기보유 수준을 동결하여 무기 증강에 의한 군사력 균형의 변경을 방지하기 위해 휴전협정 제2조 ‘정전 및 정전의구체적조치’ 속에 ‘A, 총칙, 제12장 (d)’라는 규정에 합의했다. 이 조항은 쉽게 요약하면 남ㆍ북 두 지역의 파괴된 무기를 1 대 1로만 교체할 수 있다는 의무조항이다. 그 규정은 다음과 같다.



조선* 국경 밖으로부터 작전용 비행기ㆍ장갑차량ㆍ무기 및 탄약의 반입을 정지한다. 다만 정전기간에 파괴ㆍ파손 또는 소모ㆍ마모된 그것들은 동일한 성능과 같은 유형의 것을 1 대 1로 교환하는 기초 위에서만 교체할 수 있다. ……이러한 작전용 비행기ㆍ장갑차량ㆍ무기 및 탄약을 교체의 목적으로 조선 내로 반입할 때는 반입의 필요를 확증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반입할 때마다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단에 보고해야 한다.
(*휴전협정은 유엔군을 대표한 미합중국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군사대표가 서명했다. 대한민국은 작전지휘권을 미국군사령관에 양도했고 휴전협정 체결에 반대했기 때문에 협정조인 당사자가 아니다. 그래서 휴전협정문은 “동등한 효력을 가진” 영어, 조선어, 중국어의 세 국어로 작성ㆍ조인되었다. 우리나라의 정부 조약집이나 공식문서들이 휴전협정의 Korea를 ‘한국’으로 번역 기술하고 있으나 협정 원문에서는 Korea는 모두 ‘조선’이다.)




휴전협정의 이 조문규정이 당시의 무기, 즉 재래식 무기를 말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핵무기는 휴전협정상의 무기와 질적으로 다르다. 핵무기는 “조선반도 영토”의 어디에도 없었다. 따라서 미국의 핵무기가 남한에 있다면 그것은 휴전협정 위반의 요인이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중립국감시위원단에 보고됐을 까닭이 없고 보고된 사실이 없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이다.
둘째, 미국 핵무기의 사용권과 대한민국의 주권의 측면에서: 대한민국 영토 내에 있는 미국의 핵무기는 어떤 형식과 형태로든 대한민국 주권의 통제하에 놓이는가? 또는 대한민국 주권의 간섭을 인정하는가?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은 자신의 영토 내에 들어와 있는 ‘극한무기’에 대해서 어떤 권리를 갖는가?
레이건 대통령하의 미국 정부는 1983년 2월에 작성한 ‘동시다발전쟁’ 계획에서, “소련이 중동 산유지역에 개입할 경우, 미국은 소련의 군사력을 분산시키고 석유자원지대를 미국의 수중에 확보하기 위한 일차적 전략으로, 동북아시아의 동맹국 군사력으로 하여금 북한을 공격케 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공격을 감행한다”(1983년 2월 와인버거 국방장관 비밀보고서)고 했다. 중동지역분쟁을 위해서 한반도 민족이 희생돼야 한다는 전략이다.
이 ‘북한 핵공격’ 전략은 같은 시각 서울에서 육군참모총장 에드워드 마이어 대장의 다음과 같은 보충설명으로 그 위험성과 모험주의, 그리고 약소국의 주권을 전적으로 무시한 미국 패권주의의 실체를 입증했다.
① 미국의 기본전략 개념은 재래식 전쟁이 장기화할 때는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며 이 개념은 한국(조선)에도 적용된다.
② 핵무기의 사용은 원칙적으로 야전군사령관의 판단에 따르며, 남한에서는 주한미군사령관 겸 미ㆍ한 연합군사령관이 결정하여 양국 대통령에게 정치적 결정을 건의한다.
③ 남한에서의 핵무기 사용 결정은, 15개 동맹국 정부와 사전협의를 거쳐야 하게 되어 있는 북대서양동맹의 경우보다 덜 복잡한 문제다.
④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북한에는 아직 핵무기가 없는 것으로 믿고 있다.
미국 군부(정부)의 이 같은 전쟁계획은 우리에게 다음의 문제를 제기한다.
① 한반도에서는 어느 쪽에 의해서 전투행위가 일어나든 핵무기 사용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다는 것.
②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사실상의 핵무기 사용권이 부여돼 있는 문제. ‘양국’ 대통령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을 것이며 실제상 미국의 일방적 결정을 뜻한다.
③ 미국의유럽지역 동맹국들에 비해서 대한민국의 주권과 그 국민의 생명에 대한 배려는 거의 전적으로 배제한 핵전략이라는 점.
이처럼 미국의 한반도 핵전략은 남ㆍ북한 민족의 생존공간의 초토화와 남한의 국가ㆍ국민적 주권의 부재(不在)를 전제로 해서 수립되어 있다. 중동지역에서 분쟁시 소련 군사력의 분산을 위해, 160개나 되는 지구상의 많은 국가들 중에서 어째서 하필이면 북한의 동포민족이 미국과 남한의 재래식 및 핵무기의 공격대상이 돼야 하는가? 그리고 미국 정부는 남한에 대한 소련의 핵반격으로 남ㆍ북한이 동시에 초토화될 것이 분명한 군사전략을 두고 남한 국민과는 일언반구의 협의도 할 필요가 없다.
북대서양동맹의 15개 국가는 남한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핵보호를 받는 대가로, 그 국토 내에 미국 핵무기의 배치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국가들과 대한민국은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서 다르다.
① 미국은 미국 핵무기 수용국가 정부에게 핵무기의 종류ㆍ위치ㆍ수량ㆍ교체ㆍ위치변동 등 정보를 제공한다.
② 유럽국가들 정부는 국민주권기관인 국회에 이 정보를 보고하고 국회(국민)의 동의를 얻는다(1983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퍼싱II 크루즈 미사일 신규 배치의 경우에 그랬듯이).
③ 유럽동맹국들은 유럽에서의 미국의 독단적ㆍ자의적 핵무기전략을 규제하기 위해서 5개국으로 구성된 유럽핵협의회로 하여금 미국의 핵전략에 관여시키고 있다.
④ 통일 전 서독은 미국에 대하여 서독 배치 핵무기는 동독을 목표로 할 수 없다는 조건을 붙였다.
대한민국 정부의 국방장관은 주한 핵무기에 관한 국회질의에 대해, “미국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안 하니 알 수가 없다”라고밖에 답변하지 못한다. 미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국방장관인지 ‘대한민국’ 국방장관인지조차 판별할 수가 없다. 남한은 미국의 ‘군사기지국가’로서 주권상실 상태다.
셋째, 한미 방위조약과 미국 핵무기의 존재: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신의 군사적 안정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한미 방위조약’은 다음과 같이 합의하고 있다.



제4조: 상호합의에 의하여 대한민국은 미합중국의 육군ㆍ해군 및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 영역에 배치하는 권리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남한은 그 국가ㆍ민족ㆍ국민의 생존의 마당인 영토ㆍ영공ㆍ영해를 통틀어 미국의 군사적 이용을 위해서 아무런 제약ㆍ제한ㆍ조건ㆍ유보 없이 주어버린 것이다.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조차 미국과의 방위조약에 이런 굴욕적인 불평등조항을 허용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한미 방위조약 제6조는 “이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통고 1년 후에 조약을 종지시킬 수 있다”는 단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권리의행사가 한국과 미국 어느 쪽 당사국의 선택을 위한 것인가는 불문가지라 하겠다.
미국이 자국 식민지였던 필리핀과, 그리고 대만(중화민국)과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이 대한민국과 같은 기한 없는 조약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패전국 일본과 체결한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 조약’은 10년의 기본기간을 두고 그 후에는 “일방의 종료 의사표시가 있을 때 1년 후에 종료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필리핀 및 대만과 동격이다. 일본인보다는 몇 계단 밑의 존재다.
한미 방위조약의 제4조(남한 영토의 무제한 대미 군사목적 위임)와 제6조(그 무기한 규정)에 의해서 미국의 핵무기는 ① 대한민국의 영토ㆍ영해ㆍ영공 어느 곳에든지, ② 대한민국의 허가ㆍ승인ㆍ동의ㆍ협조ㆍ반대 여부와 관계없이 ③ 무기한으로 배치ㆍ존속할 수 있다.
이상의 엄연한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논리가 성립된다. 한국인(현재는 재야의 민주ㆍ통일운동세력과 야당 일부)이 “미군 철수와 미국 핵무기 철거”를 요구할 때,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그것을 무조건ㆍ무제한 허용하는 권리를 미국에 부여한 한미 방위조약의 폐지나 수정을 먼저 요구하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그 조약에 의존하는 자기 정부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한미 방위조약을 당연시한다면 미국에 대한 한국의 국가ㆍ정부ㆍ국민ㆍ사회ㆍ개인의 주권이나 요구를 제기할 근거는 부정된다.

결론과 대안

위에서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하면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한반도의 상시적 핵전쟁 위기는 북한과 남한 그리고 미국의 공동책임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난받아야 할 요인은 미국이다. 남한을 일본 보호의 전초기지, 미국의 동북아시아 대공전의 전초기지로 유지하려는 냉전시대 전략이 한반도에서만은 변화할 의지나 상황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1991년 3월 초, 미국 국방장관이 의회에 제출한 군사행동계획에서 북한에 대한 소위 ‘120일전쟁’ 시나리오는 막강한 미국 군사력이 ‘다음의 이라크’로서 동북아시아의 골목 끝에 자리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노리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 시나리오는 미국군부가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하는 단순한 ‘통상적 계획안’의 수준을 훨씬 넘은 밀도와 내용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반도의 민족이 남ㆍ북 공동으로 모색해야 할 내일의 삶의 방식은 한반도의 ‘비핵화+비핵지대화’구조다. ‘비핵화’는 직접 관계 당사자들이 각기, 그리고 합의에 의해서, 그 해당 지역(영토ㆍ영해ㆍ영공)에(서) 핵무기의 제조ㆍ수락ㆍ보유ㆍ배치ㆍ통과를 금지하는 결정이며, 그 결정이 이행된 ‘핵무기 공백’의 상태다. ‘비핵지대화’는 그 결정과 구조를 한 단계 확대하여, 간접적(또는 외곽) 국가들까지 합쳐서, ‘비핵화’ 조치의 내용에 ‘핵무기의 사용금지’를 추가한 구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ㆍ미합중국ㆍ대한민국 3자로서 ‘비핵화’를 이루고, 소련ㆍ중국ㆍ일본을 합쳐서 남ㆍ북한(한반도)을 ‘비핵지대화’하는 것이다. 그 좋은 전례가 앞에서 설명한 라틴아메리카비핵지대화(트라테롤코) 국제협정이다. 한국(남한) 영토(지상)배치 핵무기를 철수하는 것만으로는 그 효과가 없다. 즉 남ㆍ북의비핵화만으로는 핵 위험은 계속 남는다. 미국의 해군과 공군이 비핵화국가에 대한 핵무기 사용(권)을 포기할 때만 그 효과가 있다. 그리고 진정한 해결은 그것 없이는 기대하지 못한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 그것을 서약한 지 오래다.
트라테롤코 협정에는 인접국가인 미국은 당연하지만, 그밖의 공인(公認) 핵보유국인 소련ㆍ영국ㆍ중국ㆍ프랑스가 ‘추가의정서’의 형식으로 참여했다. 핵보유국도 아니며 지금은 직접적으로 이지역의 영토보유국도 아닌 네덜란드까지 가입한 것은 그 효과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이 핵평화구조 창설에 대해서는 소련ㆍ중국ㆍ북한이 적극 찬성하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수차에 걸쳐 그 실현을 위한 소련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문제는 미국ㆍ남한ㆍ일본이다. 미국과 한국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본문에서 충분히 밝혀졌으리라고 믿는다. 어느 쪽에 진정 평화의 의지가 있는가 시험될 단계에 와 있다. 이민족의 생명에 치명적으로 중요한 그 같은 평화구조의 창설을 위해서 우선 다음의 조치들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재래식 군축, 즉 남ㆍ북의 군축과 주한미군 철수는 병행적이거나 그 이후에 실시해도 무방하다).
북한은 조건 없이 원자력기구와 협정을 체결하여 그들의 핵시설을 공개한다. 그리고 한(조선)반도 비핵지대화의 선창자적 구체안을 제시한다.
남한은 미국의 핵무기 배치를 무제한 허용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핵무기 사용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한도 배제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한미 방위조약)의 전면적 수정을 실현한다. 당장의 상황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 제4조만이라도 제거해야 한다.
이 조약을, 특히 제4조를 그대로 둔 채로는 대한민국은 영원히 미국의 ‘군사적 식민지’일 수밖에 없으며, 그런 법적 지위관계에서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 반대ㆍ비난, 또는 거론할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미국은 본래의 군사적 효력이 없어진 주한 핵전력을 철거한다. 그럼으로써 한(조선)민족의 머리를 상시적으로 누르고 있던 핵전쟁 위협과 그로 말미암은 전 민족 말살의 위험 요인을 제거할 수 있다. 이제 미국은 이것을 거절할 아무런 구실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 내에서도 북한의 핵사찰 수락과 교환으로 주한 미국 핵무기의 감축 또는 철수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미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① 북한과의 외교접촉 경로를 통해서 그 의사를 통보한다(비밀이 보장된다). ② 남한 정부로 하여금 공개적ㆍ공식적으로 “남한 영토에는 미국 핵무기가 없다”고 발표하게 한다. ③ 중국 또는 소련의 정부를 통해서 북한 정부에 미국 정부의 공식 의사를 전달시킨다. ④ 동북아시아지역 국가와의 핵문제 관련 회의를 제의하거나 소련의 제의를 수락하는 형식을 취한다(그럼으로써 주한 미국핵무기의 문제를 논할 수 있다는 간접적 의사를 확인한다). ⑤ 직접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나 ‘비핵지대화’에 찬동하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한다.
이상의 획기적 평화조치의 실현을 돕기 위해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한 가지 남아 있다. 남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핵무기 숭배사상을 타파하는 일이다. 특히 “핵무기와 주한미군 없이는 불안하다”는 미신과 같은 주술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과장되고 조작된 이 미신의 주술의 사슬을 끊지 않고는 이민족의 삶의 터에서 외국 핵무기의 요괴가 물러갈 날은 요원해 보인다.

•19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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