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미국과 탈단극의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 / 차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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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10-0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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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트럼프의 미국과 탈단극의 세계, 그리고 한국의 선택



 


 


 


 


 


차태서(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냉전 종식 후 지난 30여 년은 국제정치사에서 유례없는 단극 체제의 시대였다. 미국이 압도적 패권을 행사했고, 그에 기반한 자유국제질서가 지구적 범위에서 확산되는 듯 보였다. 한국은 이 단극적 계기의 대표적 수혜국이었다. 안보는 한미동맹의 틀에 의해 보장되었고, 경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흐름 속에서 번영을 누렸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은 (적어도 세계체제의 중심부 지역에서는) 현대사에서 매우 안정적이고 풍요로웠던 시기로 기억된다. 그러나 지금 그 따듯했던 긴 여름의 계절은 끝나고 있다. 국제정치의 기후는 바뀌었고, 새로운 한파가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 긴 겨울을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이다.


긴 여름에서 긴 겨울로: 탈냉전 30년의 귀결


1991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역사가 결정적 종착지에 도달했다고 믿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인류의 최종적 발전 단계라는 ‘역사의 종언’ 담론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했다.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민주화가 진전되었고, 아시아와 남미 등지에서도 권위주의 정권이 잇따라 무너졌다. WTO 체제의 출범, 유럽연합의 통합 심화, 인터넷 혁명은 모두 인류가 하나의 문명표준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미국은 이 규칙기반질서의 설계자이자 수혜자였다. 1990년대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황금기였다. 걸프전의 압도적 승리는 단극시대 미국이 군사적으로 독보적 위치에 있음을 과시했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경제적으로 미국의 금융·IT 자본을 세계 곳곳으로 확산시켰다. 한국은 이 흐름 속에서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하며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이 낙관적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단극시대 미국의 예외주의적 행보가 정점에 달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말기에 이르러 팍스 아메리카나의 균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2001년 9·11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초기의 빠른 승전보와 달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네오콘 세력이 주도한 국가건설(nation-building)의 시도는 실패로 귀결되었고, 민주주의 전파라는 이상주의적 슬로건은 폭력적 개입과 파괴로 점철되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유방임 자본주의 체제의 민낯을 드러냈다. 자유무역과 금융자유화가 낳은 불평등과 불안정은 선진국 내부의 중산층을 붕괴시켰고, 경제적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격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2010년대 중반 이후 반격(backlash)의 시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우선, 2015년 브렉시트,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은 대서양 세계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의 분출이었다.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와 민주주의 제도의 기능 부전 등은 모두 탈냉전기의 자유 패권 프로젝트가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2021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자유주의적 국가 건설 전략의 종말을 알렸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나토 확장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지정학적 차원에서 미국이 주도한 자유 패권 프로젝트의 실패를 웅변했다. 다시 말해 중심부에서의 자유민주주의 확산 전략과 주변부에서의 네이션 빌딩 전략이 모두 좌초했음이 증명된 셈이었다. 이로써 지정학적 레벨과, 정치경제적 레벨 모두에서 자유세계질서는 쇠퇴하고, 대신에 강대국 경쟁 혹은 다극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오늘날의 역사국면이다.


혼돈 속의 미국: 정체성 전쟁과 킨들버거 함정


이 같은 지구적 규모의 변동의 한복판에 조응한 것이 또한 미국 내부정치의 변화과정이었다. 2016년, 2020년, 2024년 세 번의 대선은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미국 사회가 국가 정체성을 두고 두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 벌인 내전이었다.
오늘날 민주당이 대변하는 한쪽의 사회세력은 미국을 하나의 관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조 바이든이 말했듯, “미국은 하나의 아이디어(America is an idea)”이며, 자유·평등·행복추구라는 독립선언서와 연방헌법에 적혀있는 자유주의, 보편적 시민민주주의 가치가 미국을 정의한다는 것이다. 공화당이 대표하는 다른 편의 사회세력은 미국을 백인·기독교적 특수 정체성에 뿌리를 둔 나라로 이해한다. 이 두 세계관은 근본적 세계관의 차원에서 충돌하며, 미국을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신조로 갈라놓았고, 지난 세 번의 대선은 이 갈등을 표면화한 사건이었다.
이 같은 “미국의 영혼을 둘러싼 전투”는 국제정치 영역에도 심대한 함의를 갖는다. 1930년대 전간기를 분석한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당시 세계 대공황이 길어진 이유를 패권국의 역할 부재에서 찾았다. 기성 패권국은 이미 쇠락해 버려 영국은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할 의지는 있었으나 능력이 없었고, 신흥 강대국 미국은 공공재를 제공할 능력은 있었으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핵심논지이다. 오늘날 미국 역시 그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른바 ‘킨들버거 함정’의 도래가 우려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내 정치의 분열과 대외전략 노선에 대한 여론의 고립주의화로 인해 글로벌 공공재를 제공할 국가적 의지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미국이란 패권국의 객관적 능력보다 주관적 의지의 후퇴가 더 급격한 상황, 이것이 오늘날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트럼프 2기의 국제정치: 국익우선주의와 강압적 패권


2024년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 따른 트럼프의 귀환은 이 같은 불안정성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트럼프의 세계관은 간명하다. 오직 좁은 의미에서의 국익만이 우선이며, 바이든과 달리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라는 이념적 대결은 무의미하다. 즉, 그는 전통적인 미국의 예외주의와 민주주의 전파론을 ‘엘리트의 환상’으로 치부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중산층의 붕괴는 그에게 명확히 폐기해야 할 반면교사였다.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고 자비로운 패권국의 역할은 포기하는 현실주의가 그의 대안적 전략이다.
이런 이념적 배경하에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반년여 동안 우선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을 조기 종식시키려 노력해 왔다. 이는 단순한 고립주의가 아니라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이라는 현실주의적 전략, 즉 중국 견제에 국력을 집중하기 위한 정지작업이다. 가령, 트럼프가 일견 친 푸틴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이른바 ‘역 키신저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70년대 닉슨이 마오와 손잡아 소련을 견제했듯, 지금은 중국을 겨냥해 러시아와 협력하려는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트럼프는 중동에서도 궁극적으로 아브라함 협정 2.0을 추진해 빠져나오려 한다. 시리아, 이란 등 적대국들과 관계를 일정정도 개선하면서 역내의 세력균형을 안정적으로 맞춰 놓음으로써 미국이 지역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와 관세전쟁이 전면적으로 추구되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세계화와 그 배후의 엘리트 질서에 대한 정치적, 이념적 프로젝트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기성 세계화는 미국 노동계급의 공동체를 붕괴시켰으며, 이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제조업 르네상스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세력의 신념이다. 따라서 경제적 효율성보다 포퓰리즘적 목표가 우선한다. 그 결과 트럼프 2기 시대의 미국은 패권안정론의 개념틀에서 봤을 때 ‘자비로운 패권국’에서 ‘강압적 패권국’으로 전환하는 도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글로벌 공공재를 무조건적으로 제공하지 않고, 동맹과 파트너들에게 비용 분담을 강요하며, 협력은 조건부로만 제공된다.
이에 더해 2기 트럼프 행정부가 그리는 국제정치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어 눈길을 끈다. 즉, 그는 강대국들이 서로의 지위를 승인하며 타협하는 ‘협조 체제’를 꿈꾼다. 19세기 유럽 열강이 세력권을 획정하며 상호간의 평화를 유지했던 ‘Concert of Europe’의 21세기적 재현이다. 이는 이전 바이든식의 ‘역사의 변곡점’ 혹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서사와는 매우 대조적인 세계상을 제시한다. 트럼프에게 국제정치란 가치에 기반한 진영간 대결이 아니라 체스판 위의 게임과 같은 것며, 일정한 ‘급(status)’이 되는 강대국만이 이 게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카드’를 지니고 있지 못한 약소국은 우크라이나의 경우처럼 영토가 할양되는 등의 수모를 감내해야 하는 운명을 조우하게 된다.


한국 외교의 딜레마: 연루와 방기의 이중 압력과 북한문제의 성격전환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전략적 딜레마에 봉착한다. 대만 문제는 한국을 전형적인 동맹 딜레마로 끌어들인다.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 한국을 ‘불침항모’로 활용하려 할 경우, 우리는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이 내향화로 기울며 대만을 포기하거나 중립화한다면, 한국 역시 버려질 위험에 직면한다. 이른바 연루와 방기의 이중 딜레마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문제도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탈냉전기 30년간 북한은 자유세계질서의 핵심규범 위반자로서 ‘깡패국가’, ‘악의 축’ 등으로 규정되었고, 따라서 국제사회에 의한 제재와 고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런 국제사회의 처벌은 실패하였으며, 지금은 북한문제가 새로이 미·중·러 강대국 게임의 일부로 재편되고 있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자력갱생과 핵균형을 추구하며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미국 내에서도 CVID 같은 전면적 비핵화 의제에 회의론이 대두하면서 대신 군비통제론(arms control)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제한적 협상으로 관리하려는 현실주의적 접근이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외교를 재개한다면 이처럼 비핵화가 아닌 군비통제가 협상의 주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북한은 당연히 이같은 변화를 반길 것이다.


현실주의적 윤리와 한국의 선택


HBO의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중심 테마를 원용하자면, 냉전 이후 30년간의 단극 시대는 한국에게는 긴 여름과도 같은 자비로운 지정학적 여건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이제 끝났다. “Winter is coming.” 팍스 아메리카나 이후, 혹은 탈단극이라는 긴 겨울의 도래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 겨울을 어떻게, 어떤 철학을 지니고서 살아낼 것인가이다.
현실주의적 윤리는 이 세상에 완벽한 해답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국제정치의 공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정치적 선택은 항상 차악을 고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도덕적 용기다. 라인홀드 니부어나 한스 모겐소 같은 현실주의자들이 설파했듯,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와의 불만족스럽고 일시적인 타협(modus vivendi)을 정치적 해법으로서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 같은 현실주의적 사유 위에 탈단극시대를 맞이하는 한국의 전략적 대안의 몇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역내 위기관리다. 미중 경쟁 속에서 연루와 방기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위기관리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이는 일정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면서 동북아 지역에 우발적 확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간의 대화와 군비통제 제도화를 구축해 가는 노력을 의미한다. 둘째, 자강이다. 방위비 분담 압박과 미군 역할 변화에 대비해 일정한 수준에서 독자적 군사·경제 역량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셋째, 부분적 타협이다.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군비통제와 위기 안정성 확보라는 임시적 해법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당분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주권국가가 한반도에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둘 간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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