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약이라고 슬픔은 조금씩 엷어졌지만, 가끔 뵙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선생님, 시계추가 저쪽으로 가더니 안 오네요. 언제나 이쪽으로 다시 올까요?”라고 질문도 하고 싶다.

든든하게 기댈 수 있었던 스승은 떠나시고, 긴 겨울은 추웠다.

리영희 선생님께 (2013. 7. 30 마루프레스 님 작성)

작성자
재단 사무국
작성일
2018-10-11 07:08
조회
635
선생님, 평안하시지요?

선생님께 편지를 쓸 때면 항상 글머리에 '존경하는'이라고 씁니다만, 이런 격식도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불편해 하실 듯 합니다. 그래서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선생님을 불러 봅니다.

한여름입니다. 중복도 지났고, 두 주일이 넘게 하늘은 어둡고, 먹구름이 내리누르듯 어둑한 하늘에서는 줄곧 빗줄기가 쏟아졌습니다. 여름이면 장마며, 홍수며, 물난리가 일상이긴 합니다만, 언제나 그렇듯 늘 서민들만 힘겹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셨으니, 이런 자연현상에 대해 어떤 감상적인 형용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듯 합니다. 저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서, 자연현상은 자연현상대로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객관적인 판단의 힘이 바로 '이성의 힘'이라는 것을 바로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땅, 한반도에서 살아오신 한 평생은 고난과 역경의 세월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쓰신 많은 글을 통해, 선생님의 자식 세대인 저는 지성의 아버지인 선생님을 통해 올바른 역사인식과 세계관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감옥에 가야 했던 이유가 오로지 진실을 밝힌다는 것이었으니, 이 땅에서 '진실'이란 곧 유형과 감옥, 고통과 피눈물의 다른 이름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선생님께서는 앞서 가는 발걸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반듯하게 역사의 길을 걸어가셨고, 많은 후학과 어리석은 (저와 같은) 세대가 선생님의 길을 따라 길을 잃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늘 중국의 지성인 루쉰을 존경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국에 루쉰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리영희'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감생심이라고 하시겠지만, 저에게는 루쉰과 리영희는 서로 다른 나무이긴 하지만, 거대한 두 고목임에 분명합니다.

'호부견자'와 '견자호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훌륭하긴 하지만, 저처럼 호랑이 아버지인 선생님에 비해 겨우 강아지에 불과한 저 자신을 볼 때마다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어떤 스승이던 '청출어람청어람'하기를 고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견부호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스승의 보람이기도 할 것입니다. 감히 스승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함에도 그런 능력과 실력을 갖추지 못해 부끄러움 속에서 살고 있으니, 선생님을 떳떳이 뵐 낯이 없습니다.

다른 많은 후학들처럼 저도 선생님의 저작 '우상과 이성'으로 처음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후 '전환시대의 논리', '분단을 넘어서', '역설의 변증', '중국백서', '자유인, 자유인', '10억인의 나라', '역정', '동굴 속의 독백', '반세기의 신화', '8억인과의 대화', '반핵', '스핑크스의 코' 등을 찾아 읽었으며, 선생님의 마지막 저작인 '대화'와 선생님 사후에 나온 '리영희 평전'까지 선생님과 관련한 저작은 거의 모두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겨레신문'의 창간발기인이자 이사, 논설고문으로 활동하셨고, 저는 '한겨레신문'의 창간주주로 벽돌 한 장을 보탰습니다. 선생님을 비롯한 동아, 조선의 해직기자들로 구성되었던 초기의 한겨레신문은 날카로운 펜을 휘둘렀습니다만, 지금의 '한겨레신문'은 선생님이 계실 때만큼 날카롭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생전에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마음으로는 늘 사모하고 있었습니다만, 직접 찾아뵐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늘 높은 곳에 계신다는 생각이었고, 저처럼 평범하고 어린 사람을 만나주실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산본으로 이사 오셨을 때, 저는 얼마나 놀랍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도 1992년부터 산본에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바로 옆 단지에 선생님께서 이사오셨습니다. 한국 최고의 지성과 같은 마을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훌륭한 스승을 찾는 것은 배움을 찾는 자의 당연한 도리요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세대에서는 선생님이 계셔서 올바른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판단할 때, 리영희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봅니다. 리영희를 읽은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사회에 관한 사유체계가 올바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기준도 편협한 일방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가 흔히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들이 마르크스, 촘스키, 하워드 진 등을 거론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과 함께 리영희를 읽는 것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20대에 선생님을 만나서 지금까지 저에게 가장 가까운 스승은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의 저작은 제 책상 바로 옆, 늘 손에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해서도 이미 선생님께서는 한 편의 논문으로 완벽하게 정리한 바 있습니다.

이것을 여당에서는 전직 대통령을 짓밟으면서 문제를 왜곡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까요? 한국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에 관해 선생님의 저작을 찾아보면 문제의 원인과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아직도 분단과 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 나라에서 문제의 본질이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그것을 분석하고 문제의 핵심을 짚어낸 선생님의 저작들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남북한의 평화통일과 자본주의의 해체만이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할텐데, 그러기에는 주변 강대국의 간섭과 통제가 극심해서 시간과 관계없이 불가능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루쉰도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듯 평화통일과 시민사회의 발전에 관해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되겠지요.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파괴되어 폭발한 사건이 있었는데,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재해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일본은 현재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섬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현상이 일본에만 국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일본이 핵폭발로 멸망하게 되면, 그들은 당연히 가진 힘을 동원해 주변 나라를 침략할 생각을 가질테고, 그 시도가 설령 실패한다해도 동아시아는 파괴와 죽음의 지역이 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도 일본에서 수입한 수산물에 방사능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가 당연히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텐데, 이에 대한 대비책은 아직 들은 바가 없습니다.

우리 세대의 잘못을 우리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것처럼 무책임한 짓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대가 바뀔수록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남기신 저작이 다음 세대인 저희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을 바라보면, 희망과 기대보다는 절망과 슬픔이 앞섭니다. 그래서 더욱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선생님의 혜안과 뜨거운 일갈이 우리 사회에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선생님께서는 '고귀한 정신'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저희가 할 일은 선생님의 뜻을 더욱 넓게 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정신이 헛되지 않도록 적은 힘이지만 노력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2013년 7월 말

백건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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