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

남북관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21 17:20
조회
1019

4-1.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1988년 『사회와 사상』, 자유인)


-한반도의 평화 토대 구축을 위한 모색1)


이 시론의 목적, 범위 및 방법

이 글은 우리 사회에서 건국 이후 진지한 이론적ㆍ실증적 검토 노력 없이(또는 허용되지 않은 까닭에) 일반적 믿음처럼 고정관념화 되어버린 북한의 소위 ‘군사력 우위’론 또는 전쟁 감행(‘남침전쟁’)론을 분석적ㆍ실증적 방법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는 목적에서 시도되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어떤 결론이 도출되기를 희망한다.
이 연구는 그 구성과 내용에서 기본적으로는 1988년 8월 4일 국회 통일정책특별위원회 공청회에 제출ㆍ발표한 논문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 후 2년간의 변화 사항을 관련 부분에 첨가한 형식을 취했다.
이 작업은 한 시민 개인으로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시도인 까닭에 필자 자신의 능력과 지면의 한계를 설정해 고찰의 범위를 협의의 군사력ㆍ광의의 전쟁수행 능력의 물질적 요소들에 한정했다. 즉 문제의 제1차적 결정요소인 군사력과 그것을 지탱하는 종합적 생산력 및 경제력의 군사 전용 효과, 그리고 전쟁에 개입하는 국제적 환경 등이다. 남ㆍ북 각기 사회 내부의 정치ㆍ사상ㆍ신념체계…… 등은 물론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남ㆍ북 민족 간의 위기 구조가 주로 군사적이라는 기본 성격을 고려해 이 연구에서는 일단 제외했다.
우리 정부(미국 정부를 포함), 특히 정보 당국과 군부는 오랫동안 쌍방의 전쟁능력에 관한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자료를 국민에게 공개ㆍ제공은 하지 않으면서 ‘전쟁 위험ㆍ남침 가능성’만을 강조해왔다. 때로 북쪽의 군사력에 관한 단편적인 수치를 발표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런 자료들은 대개 정부와 군부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그때그때 시국의 정세 변화에 맞추어진 방향과 내용이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자주 확인되었다. 또 그것들은 미ㆍ소를 비롯한 외국 정부ㆍ외국 연구자들의 자료와 적지 않은 갈등을 보였다(북한의 자료는 일단 이 글에서는 도외시했다). 다시 말해서 객관적 신빙성이 결여됐던 까닭에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비교ㆍ분석ㆍ평가ㆍ판단의 근거로 삼기 어려웠다.
작업에서 필자는 비판적 분석의 입장에 서 있다. 한국과 미국의 정부와 군부의 발표나 주장이나 입장을 처음부터 부정하는 입장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책적 의도를 가지고 단편적으로 주어진 ‘관급’(官給) 자료를 신용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필자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었던 자료들을 토대로 해서, 그 자료들이 이끄는 방향대로 논리구성을 진행하는 것이다.
필자는 한 시민으로서 정부와 군부의 예정된 결론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결론까지를 포함한 작업을 시도한다는 것이 여러 모로 어려움을 예상케 한다는 사실을 십분 짐작하는 바다. 실제로, 어쩌면 대한민국과 군의 창설 이후 한 개인으로서 이런 작업을 시도하고 발표한(하는) 최초의 사례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 시민의 개인적 작업이므로, 필자로서는 소론의 결론이나 부분적 기술이 전부 옳다고 고집할 생각은 없다. 작으나마 학문적 시도이므로 과학성과 논리성의 인도를 받으면서 진실에 ‘가까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필자의 이 작은 시도가 계기가 되고 또 토대가 되어서, 다른 이들의 보다 과학적이고 충실한 연구의 결실이 뒤따른다면 이 시도는 그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다.
제한된 원고지 분량 때문에 더 많은 자료와 통계표ㆍ수치 및 설명이 생략되거나 제외되었다. 이 점도 아울러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군사력 분석에서는 주한미군과 핵군사력은 제외했다. 우선은 남ㆍ북한으로 구성되는 틀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민족문제로서의 이같은 도전에 접근하는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석과 평가의 준거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대규모 군사공격, 즉 소단위의 병력이 국소적 공간에서 단시간의 전술적ㆍ일회적 전투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총동원령을 선포하고(선전포고의 유무와는 관계 없이) 전선과 후방에 걸친 장기간의 총력적 군사작전을 전개할 경우, 전쟁 이론의 일반적 준거로서 다음의 여섯 가지 요소를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부’에 대한 확실한 자신이 있어야 한다. 북한이 남침전쟁을 구상하거나 준비하거나 계획한다면, 이 여섯 가지의 치밀한 검토에서 모두 남한에 우월하다는 확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① 개전(開戰)의 시점에서 현재 보유한 군사력이 남한의 그것에 비해서 우세해야 한다.
② 단기적 속전 방식으로 승리를 기대하려면, 공격군은 병력ㆍ무기ㆍ화력ㆍ기동력 등 종합 전력이 수비 측에 비해서 일반적 군사이론에 따르더라도 최저 2배 내지 3배가 되어야 한다. 남ㆍ북한의 경우는 심지어 ‘6배 필요 전력론’까지 있다.2)
③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구전 또는 전면전을 계획할 경우에는 전쟁 과정에서 군사력으로 전환, 투입될 국가의 총자원(민간부문 자원ㆍ능력)이 남한의 그것보다 월등 우월해야 한다.
④ 전쟁 당사자 쌍방과 관련된 현 시점에서의, 그리고 예상 전쟁 기간 중의 국제적 조건과 환경이 북한에 유리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⑤ 승리를 확신한다 하더라도 그 전쟁 행위의 결과로 예상되는, 또는 사전 계산된 전쟁 피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전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의 가치가 우월해야 한다. 즉 북한이 전쟁을 기도한다면, 그 결과로서 북한이 예상ㆍ기대하는 통일의 형태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까지를 합친 한반도의 전쟁 파괴의 피해와 그 장기적 복구 건설에 소요될 희생의 양보다 월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⑥ 위의 다섯 가지 조건을 무릅쓸 각오와 그 계산 위에서도 전쟁을 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쟁 의지’는 ①~⑤에서 우월할 때만 보강되고, 그 반대일 때는 약화된다.
①, ②, ③은 합하여 ‘전쟁수행 능력’(capability)을 구성하며, 전쟁 계획의 제1차적 조건이 된다. ①은 단기전을 위한 조건인 바, 월등히 취약한 상대방에 대해서만 효과가 있다. ③은 장기전에서의 절대적 조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파시스트와 일본은 각기 ①과 ②의 조건은 갖추었으나, ③의 조건에서 실패한 가장 좋은 선례다. 북한이 남침전쟁을 계획한다면 ②와 ③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2~3배의 전력과 국가적 종합능력이 있어야 한다. 1988년 7월에 끝난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은 그 당사자 어느 쪽도 ①, ②, ③을 전혀 갖추지 못한 채 강행된 무모한 전쟁의 전형적 실례다. 리승만 대통령(1948.8~1960.5) 또한 ①, ②, ③의 조건은 전혀 갖추지 못한 조건에서 ‘북진통일’, ‘무력북침’을 밤낮으로 부르짖은 좋은 예다.
④의 국제적 조건ㆍ환경은 작은 나라일수록 크게 작용하는 요소다. 현대 전쟁은 국제적 조건의 평가를 도외시하고는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강대국조차 그렇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실패가 전형적 예다. 북한의 6ㆍ25 침공은 ①, ②, ③의 조건 위에서 개시되었으나, ④의 역조건 때문에 실패한 약소국 전쟁의 전형이다.
승리의 대가로서의 희생과 파괴가 승리로 얻은 목표의 가치보다 월등 크다면 그 전쟁은 할 가치가 없는 전쟁이다. 북한의 6ㆍ25전쟁은 북한의 지도자들 자신이 그 후 확인하고 시인하고 있듯이, 목표의 가치보다 파괴의 희생이 더 큰 ⑤의 경우의 좋은 예다. ①~⑤까지의 계산이 긍정적이라면 ⑥의 전쟁 의지는 보강된다. 전쟁 승리는 확실성이 입증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①~⑤의 조건의 종합이 부정적이라면 아무리 전쟁 의지가 강해도 그 의지는 부정된다. 이 글에서 검토하려는 목적은 바로 ①~⑤의 조건들을 분석한 뒤에, 그것이 ⑥을 보강하는 것이냐 반대로 부정하는 것이냐의 결론을 도출하려는 것이다. 만약 ①~⑤가 긍정적으로 판명된다면 우리 정부나 군부가 주장하는 대로 북한의 ⑥의 의지가 실천화 될(즉 남침전쟁) 가능성은 커진다. 반대로 그것이 부정적으로 판정된다면 남침전쟁 기도설은 부정된다. ①~⑤의 부정적 조건의 종합을 무릅쓰는 ‘의지’를 가진 자는 광인(狂人)뿐이다. 이 글은 남과 북의 정치ㆍ군사 지도자들이 광인이 아님을 전제로 한다.

단기속전을 위한 현재의 군사력 비교

“(한국) 국방부는 한국의 3야당 총재와 야당 관계자 약 60명을 초청하여 한국의 안보정세, 북조선의 실정을 설명하고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바로 노태우 대통령의 공약을 앞선 것으로서, 한국의 국방 당국이 야당에 안보 문제와 북조선 실정을 설명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서 설명된 북한의 군사력은 1962년부터 87년까지 15년간 병력은 약 40만에서 약 85만으로 2배 이상 증가하고, 같은 기간에 탱크는 5.4배, 야포는 3.7배, 함정은 3.7배, 항공기는 1.7배 증대했다. 고도로 훈련된 간첩이나 특수부대 요원 수는 9만 6,000명에 달했고, 그중에서 해상ㆍ공중ㆍ터널을 이용해서 남침할 수 있는 병력은 5만 3,000명이 된다”고 한다.3)
국방부 설명에서 병력은 수치를 명시하고 있으나, 주요 전력인 탱크, 야포, 함정, 항공기 등은 수치는 없고 증가된 ‘비율’만이 제시되고 있다. 수치 없는 비율만의 표시는 판단의 기준으로는 불완전하고 위험하고 오도되기 쉽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병력의 규모

북의 병력이 85만 명이라는 평가는 미국 CIA의 추산인데, 카터 대통령 정부가 주한미군 부분 철수를 발표했다가 한국과 일본 정부 및 미국 군부의 반발로 철수 계획을 백지화한 1977~78년 1년 사이에 북한 병력이 갑자기 11만 2,000명이나 증강되었다는 발표에 근거하고 있다.4) 이 1978년은 이란 혁명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미국 정부가 미국과 동맹국의 급격한 군사력 증강을 다그친 해다. 미국은 카터 정부의 ‘인권정책’에서 ‘군사대결 증가’로의 정책 전환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구실삼아 소련의 군사력 평가를 그 전해에 비해서 급격히 상향ㆍ증대 평가했다. 동시에 동맹국가들의 군사력 증강에 압력을 가하는 구실로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동맹 국가들, 베트남, 북한의 군사력을 상향 평가했다.
북한의 그 시기의 정치ㆍ경제정책을 토대로 볼 때, 그러한 급격한 정규 병력의 증대, 그것도 1년 동안에 11여만의 정규군 증대 능력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 정보부의 연구발표 기관인 『내외통신』은 1985년판에서 북한 병력을 70만으로 계산하고 있다.5) 그렇다면 1985년에서 87년 사이에 15만 명의 정규군이 또 증대되었다는 말이다. 같은 해의 일본방위청 통계도 ‘약 70만’으로 되어 있다.6) 카터 정부 때인 1977~78년 사이의 1년간에 11만 2,000명을 증강한 후에, 레이건 정부 시기인 1985~87년에도 15만, 합계 26만여의 정규 병력을 증강시켰다는 계산이 된다. 가능한 일일까? 북한이 당 6차 대회에서 결정한 10대 건설사업에 공병ㆍ보병 10만 병력을 투입하고 있는 현장은 1990년의 ‘세계청소년친선대회장’ 건설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서방 측 관측자들에 의해서 확인되고 있다. 국방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정확한 자료 제시가 아쉽다.
육군 병력의 차이는 질로 보완된다. 즉 한국군의 지휘관급 직업장교들과 하사관들은 베트남전쟁에서의 다년간의 실전 경험을 갖고 있다. 북한군은 6ㆍ25전쟁 당시의 지휘관들밖에 실전 훈련이 없고, 그들은 모두 퇴역했다. 남한(한국)군은 또 장비ㆍ보급ㆍ사기ㆍ훈련면에서 북한군보다 우월하다. 이것은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바다.
한편 북한은 1980년대에도 70년대와 다름없이 그 정규군 병력을 55만 명선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력의 취약성 때문에(그 사실은 우리 정부의 모든 공식 발표에서도 8~10 대 1로 남한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대로) 남ㆍ북한 정규병력의 감축을 꾸준히 제의ㆍ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그들이 1979년 이후 착수한 대규모의 10대 건설계획(예컨대 남포갑문 공사)에 공병사단과 보병사단을 투입ㆍ전용하고 있다. 북한 군대는 휴전선에 배치된 병력까지도 방어진지 후면의 농토를 개간해 교대로 내려가 농업 생산에 종사하면서 식량의 부분적 자급자족을 하고 있다. 남한에 비해서 병력 가용인구가 절반(총인구 4,300만 대 2,200만, 1990년 말 현재)밖에 안 되는 북한은 군병력을 증대할 여지가 없다. 게다가 남한 군대의 합계 30만 명이 베트남전쟁에서 정규 유격작전 전투 경험을 갖고 있다. 북한이 모든 한반도 문제의 군사적 해결방안에서 병력 감축을 제1항목으로 제의하는 하나의 절박한 이유다. 그와 같은 군무 외의 작업에 시간과 체력을 소모해야 하는 북한 병력과 완전 보급으로 유지되는 남한 군대의 전투능력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 사령관 겸 한미연합군 사령관(1977년)을 역임한 미국 연합참모부의장 존 베시 대장은 미상원 군사위 증언에서 그같이 평가한 바 있다.7)

지상ㆍ해상ㆍ항공 등의 전력 비교

전쟁의 주요ㆍ기본 무기인 이들에 관해서는 실수(實數)를 비교할 수 있을 만한, 우리 국방부 당국에 의해 일관되게 공개된 자료가 없다. 외국 정부 또는 권위 있는 저명한 군사연구소들의 연구조사 결과들과 견주어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같은 긴장 상태로 군사적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서유럽의 북대서양동맹과 동유럽의 바르샤바동맹은 서로 이 같은 기본 무기의 수치를 공개하고 있다. 이웃 일본도 군대(자위대) 연감에서 해마다 자기 군대의 기본 무기의 실세는 물론 증강계획의 전모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 비밀주의가 지배하는 한, 우리 정부(군부)에 의해서 단편적으로 발표되는 수치를 토대로 한 남ㆍ북의 전력 비교나 주장은 신빙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그 같은 전제 아래 먼저 미국 정부의 공식문헌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1983 현재).
북한의 수치는 끝자리 수까지 제시하면서 남한의 수치를 개략적 수치로 제시한 것부터 통계자료로서는 신빙성을 의심케 하기에 족하다. 미국 국방부의 ‘대의회 보고서’ 작성 정책 변경 탓인지, 1988년 대의회 보고서에는 남ㆍ북한 병력 무기 비교가 없어서 정확한 비교가 불가능하다.9)

●[표 1] 미국 정부 공식발표로서의 남북 장비전력 비교8)


국방부가 표시한 비율을 다시 중앙정보부(안기부) 『내외통신』의 해설 속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10)

●[표 2] 남한 측 발표로서의 남북 장비전력 대비(1)


이 비교는 남ㆍ북의 비율과 그 기초로서 북한 측만이 수치(추정)를 제시하고 있다. 북한의 수치를 토대로 그 비율로 역산하면 남한의 수치가 나올 것이다. 그러면 수치로서 다음과 같이 된다(1985년 현재).

●[표 3] 남한 측 발표로서의 남북 장비전력 대비(2)


군사력 비교에서 자료의 신뢰성 결여 문제

병력

1985년의 남한 군용기 수(247대)가 83년의 군용기 수(380대, 〈표 1〉)보다도 적다는 것은 바로 공식발표의 신빙성을 의심케 하는 단적인 실례다. 이 사실을 도외시하고 주어진 대로 수치를 비교한다면 대체로 1985년 현재 북한의 군사력은 그 주요 무기에서 수적으로는 남한보다 우월하다. 그 차이는 북한의 대남공격을 가상할 경우, 공격군은 수비군에 대해서 3배의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군사적 상식의 비율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그래도 약간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 수치의 차이는 카터 정부의 군사증강 정책으로의 전환시(1977~78)와, 레이건 대통령이 대소련 군사공격 전략으로 미국 자신과 동맹국들의 무제한 무력증강을 촉진한 1983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설득력 있는 근거 제시 없이 소련과 그 공산주의 동맹국가들의 군사력을 대폭 상향 평가한 결과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터의 주한미군 감축 결정을 백지화하면서, 북한의 경우는 그 전해에 비해 병력 16~26만(특공대 10만이라는 수를 포함), 탱크 650대, 병력 수송용 장갑차 250대, 야포 5,000~1만 문, 대공포 2,500~3,500문……을 상향 수정발표했다. 단번에 약 30~50퍼센트의 상향 수정 평가다.11)

지상 장비

탱크의 경우 미국의 권위 있는 무기연감은 이미 1984년 현재, 남한(한국)이 48패톤(PATTON) II형 640대, M–47형 920대, M–3AI형 및 M–5AI형 80대, M–4셔만(SHERMAN)형 210대, 합계 1,850대를 보유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12) 이것은 이미 1984년 현재로 85년 현재의〈표 3〉수치인 1,280대보다 570대나 많은 수다.
『국방백서』의 남ㆍ북 비교 자료는 신빙성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 『88년백서』와 『90년백서』의 수치를 대비하면〈표4〉와 같다.
2년간 탱크는 북한만 100대 증가하고 남한은 1대도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장갑차에서도 북한이 350대나 증가하는 동안 남한은 단 1대의 장갑차도 생산ㆍ배치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야포에서도 북한이 1,600문이나 새로 생산 또는 구입한 2년 동안 남한은 200문밖에 구입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자료는 국방부가 그간 자랑해온 국방력 증강(특히 무기)과 국방예산의 증대, 미국 장비의 이전 등과 전적으로 배치된다.

●[표 4] 국방부 발표 자료13)


사실은 남한은 미국의 제네럴 다이너믹스 회사의 라이선스와 국내 설계에 의한 최초의 국산탱크(XK–1 또는 ‘대한민국 자체 생산 탱크’, 즉 ROKIT라고 불리는 것)의 양산체제를 가동 중이다. 이로써 한국은 M–16 소총에서부터 탱크, 전투기, 군함까지 육ㆍ해ㆍ공군의 기본 무기류의 전면적 국산 단계에 있다. 북한도 전투기와 구축함급을 제외한 기본 무기의 국내 생산체제를 갖춘 것으로 보도되었다.
병력 수송용 장갑차(APC)는 1983년 미국 국방장관 대의회 보고서에서 남한 840대, 북한 1,140대로 되어 있다(〈표 1〉그러나 앞서의 공개적 무기 연감에는 남한이 M–113A1형 및 M–577A1형 장갑차 2,400대를 보유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공식 발표된 수치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또 미국 육군과 해병대의 표준형(12.2톤)이며, 동맹국 44개국에 공급 판매된 다량의 장갑차 가운데 한국은 서독의 3,350대에 이어 2,400대로서 제2위의 다수 보유국으로 열거되어 있다.14)
미국의 레이건 정부 등장 후, 한국 군사력의 대폭적이고 급속한 증강은 GNP가 8~10 대 1인 북한으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무기 생산의 증대 외에도 주로 미국제 선진무기에 주력한 결과 한국군의 무기는 노후한 북한군 무기를 질적으로 훨씬 능가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한 군사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남한은 이미 1983년, 제3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수입하는 20개 상위 국가군 속에서 제8위에 속하는데, 북한은 20위 서열 속에 들어 있지도 않다.15) 미국 정부도 1972~82년의 남ㆍ북한의 무기 수입비를 남 37억 달러 대 북 16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남한이 북한에 비해 2.3배나 더 많은 무기를 구입하고 있다.16)
남ㆍ북한 간 탱크전의 성격도 변모했다. 그러나 6ㆍ25의 경험에 따라서 탱크 방어태세는 남ㆍ북이 사실상 거의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다. 반전차 장벽이 여러 겹으로 도로를 차단하고 지뢰대, 함정, 반탱크포(지상과 공군)의 성능이 우수하다. 탱크의 대치 통로인 하천은 휴전선을 따라서 댐을 구축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이같은 입체적 반탱크 태세는 남ㆍ북 어느 쪽도 탱크전을 구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6ㆍ25의 반복은 있을 수 없다. 탱크의 이동은 첩보인공위성을 비롯한 각종 탐지장치로 빠짐없이 포착된다. 탱크의 대수가 몇이냐 하는 것은 가상적인 한반도 전쟁에서 큰 요소가 되기 어렵다.

공군 장비

남ㆍ북의 항공장비 전력 비교도 지상군 장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대비 자료가 없다. 자료의 출처마다 상이한 수치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국방부의 『국방백서 1990년』은 다음의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총계:남한 1,200 대 북한 1,600, 전술기:남한 500대 북한 840, 지원기: 남한 720 대 북한 760. 이 수치는 2년 전의 『국방백서 1988년』에서 제시한 것과 거의 동일하다).17)
현대전의 총아인 공군력은 대체로 양(겷)적 균형 상태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 항공기의 거의 57퍼센트는 MIG–15형과 MIG–17형 등으로서 한국전쟁(1950~53) 당시의 고물 기종이다.18) 정확하게는 MIG–15는 1949년형이고 MIG–17은 53년형이다. 두 형 모두 음속 이하 속도이며 야간전투도 못 하고 전천후 용도 아니다. 레이더와 조준장치도 원시적이다. 이 사실은 한국정부 당국도 오래전부터 인정하고 있는 바다.19) MIG–19형은 한국전 휴전 후인 1955년부터 제공되었다. 그러나 성능은 MIG–15, MIG–17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낙후된 것이어서 소련 자신이 50년대 말에 생산 중단한 것이다.
그것들보다 우수한 초음속 기종으로 1980년대 들어서 도입된 MIG–21형은 160대, 86년부터 소련이 제공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MIG–23, MIG–29, SU–25 등 신예 기종 수는, 미국의 정보기관이 단편적으로 발표한 것을 종합하면 약 50대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모두 방어용 요격기이며 대지 공격용이 아니다.
한편 공개된 무기연감과 다른 자료들에 의하면 이미 1984년 현재 헬리콥터와 수송기를 제외하고도 남한의 전술기는 590대(F–5250대, F–5EㆍF–5F(국내 공동생산) 66대, F–4DㆍF–4E 76대, F–86F 70대, CV–1000 24대, A–37 30대, 5A 10대, S–2A 20대, O–2A 14대, T–33A 30대)에 이르렀으며, 90대의 F–16 (Falcon)이 구매 과정에 있었다.20) 그 후 남한은 F–5 기종의 국내 생산과 세계의 현역 전투기 중 최신ㆍ최강으로 인정되는 미국 FA–18형 120대의 구매 및 자체 생산 계획이 진행 중이다. 결론적으로 수에서도 북한과 비등할 뿐 아니라 그 성능은 월등 우월하다.
북한 공군력의 ‘압도적 우세’를 국민에게 선전해온 정부도 남한 공군기의 질적 우월성과 조종사의 기술적 우월성(1인 비행훈련 시간 약 1,100시간으로 북한 조종사의 그것의 약 1.5배 이상)을 공식ㆍ공개적으로 확인하게 되었다.21)
그밖의 소수의 수송기, 정찰기, 대전차 공격기, 대잠수함 공격기, 관측기 등에 관해서는 지면상 생략한다.
헬리콥터를 이용한 북한의 특공대 침공작전 위협을 남한 정부가 국민에게 경계ㆍ선전해온 그 기동 헬리콥터의 보유수는 남한 대 북한이 530 대 280으로 남한이 오히려 거의 두 배의 우세임이 공식적으로 시인되었다.22)
북한은 1985년 이후 한국군이 사용하는 주력 무기의 하나인 미국 휴즈 M–500형(OH–6 SAYUSE) 87대를 유럽에서 ‘밀매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군부는 북한이 이것을 남한에 대한 야간 후방 기습 특공대용으로 사용하려 한다고 비난하고 국민에게 후방 야간 특공대 기습작전의 위험을 경고했다.
그런데 휴즈 M–500형 헬리콥터의 성능은 시속 175마일, 항속거리 380마일, 적재 중량 2,000파운드로, 무장군인은 보통 4명을 태운다. 7명이 한계다. 북한이 ‘밀매입’했다는 87대 전체를 남김없이 특공대 야간 기습 목적으로 무장특공대 5명씩을 태워서 투입해도 최대 435명을 수송할 정도다. 게다가 소리가 크고 속도가 느려서 탐지와 요격의 좋은 표적이 된다. 한국은 1985년에 미국 휴즈회사와 라이선스 합작 형식으로 국내 생산체제에 들어가 1985년에만도 이미 100대를 생산하고,23) 그 후 계속 생산해 국방부가 시인했듯이, 현재는 북한에 비해 약 2배의 대수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 격차는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공군력의 종합 비교

결론적으로 말하면, 남한은 공군기 수에서도 대등할 뿐 아니라 성능이 월등 우월하다. 게다가 전폭기, 헬리콥터 등 공군기종의 자체 생산체제가 가동 중이기 때문에, 종합적 공군 능력에서 북한보다 훨씬 우월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 공군 조종사의 훈련 시간은 북한 조종사의 훈련 시간보다 3배 길다(공식 확인은 1.5배). 이것은 실전에서의 우월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지금보다 10여 년 이상을 앞선 시점, 즉 겉으로는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공군력의 열세를 대대적으로 광고하던 1974년 단계에서 이미 미국 공군대장 조지 브라운은 “북한 공군은 기본적으로 본질적으로 방위 지향적이지 공격 목적 체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24) 같은 시점에서 당시의 미국 국방장관(슐레진저)은 한국 공군력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군사력 강화 5개년 계획으로, 특히 공군에게 많은 F–5E 제트전투기를 포함한 15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남한은 미국의 지상 지원군이 없더라도 북한의 공격을 격퇴할 만한 충분한 병력화력 방위진지체제를 갖추고 있다.”25)

해군력

일본군 정보 평가에 따르면 주요 함정 분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수적으로는 일견 북쪽이 우세한 것을 알 수 있다(〈표 5〉).
한국 측 자료26)에는 북한의 잠수함이 21척, 총척수는 537척으로 되어 있다. 권위 있는 군함 연감(JANE)이나 세계전략연구소의 수치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표 5]1985년 현재의 대비(일본 측 평가)27)


해군력은 함정의 크기에 대체로 비례한다. 대형은 원해 작전능력ㆍ공격용이고, 소형일수록 방어용이다. 우선 총척수와 총톤수의 관계에서 남쪽의 함정은 1척당 평균 707톤(99,000톤/140척)이며, 북한은 척당 평균 136톤(68,000톤/500척)임을 알 수 있다. 즉 남한 해군력은 북한 함정에 비해 평균 5.2배의 대형 함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형 함정은 소형 함정에 비해서 그만큼 화력과 작전 범위가 크다. 다시 말해서 북한 해군력은〈표 5〉에서 분명하듯이, 단거리 연안 작전을 목적으로 하는 요격용 미사일, 어뢰 발사용 소형(경량급) 함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은 전체 함정 척수 중 400척이 이에 속하는 데 반해서, 남한은 그에 해당하는 것이 35척뿐이다. 이 차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말하자면, 남한 해군은 권투에서 ‘강펀치’용이고 북한 해군은 잇따른 ‘잽’용이다. 또한 남한 해군은 정규 규모의 전쟁용 규격과 편성이고, 북한해군은 상대방의 우월한 공격력에 대한 게릴라전법의 요격용이라고 할 수 있다. 『국방백서 1990년』은 「남북한 해상장비 비교」에서 190척 대 690척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방백서』, 83쪽, 114쪽). 그러나 계산된 함정 크기의 기준도, 특히 중요한 총톤수도 밝히지 않았다. 남한 해군의 질적 우월성은 모든 해군력 통계에서 반드시 밝혀야 할, 그러나 밝혀지지 않은 이 두 기준 속에 숨어 있다. 북한 해군은 적에 대한 ‘히트 앤드 런’체제다. 상대방 해안선과 함정 상선을 교란하거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간첩침투용에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남한 해군의 화력과 항속거리에서 우월한 구축함대처럼 정면공격의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남한은 구축함의 자체 생산으로 그 전력이 증대하고 있다.
다만 잠수함에서는, 남한은 1983년에 176톤급으로 알려진 비교적 소형의 것을 시험적으로 자체 건조했고, 독일로부터 2척의 대형 잠수함 구매가 추가되었다. 이것은 지상에도 공개된 바 있다. 그 후 어느 정도 크기의 잠수함이 몇 척이나 건조되었는지는 어느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북한의 잠수함은 남한에 비해서 수적으로 우세하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1940~50년대, 60년대에 건조된 소련 및 중국의 ‘불하품’이라 할 수 있다. 70년대에 독자적으로 건조된 것이 12척 있으나 소형으로서,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 실베스타 쿨리 제독은 전쟁이 일어나면 그런 것들은 거의 즉시 ‘바다 속의 관’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을 피력한 바 있다.28)
남ㆍ북한의 어느 쪽이 전면 선제공격을 시도하거나, 전쟁 발생 후에 상대방 영토 점령을 위한 상륙작전을 가상할 경우에는, 상륙정(차량, 탱크, 병력용 등)의 태세가 중요시된다. 지상과 해상으로부터의 협동적 양면 공격작전의 주요 수단이 된다. 우리 정부의 견해는 북한 해군이 “300여 척의 고속상륙정을 주력으로…… 동서해안에서 각종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경계한다.29) 외부의 평가는 우리 정부의 주장인 ‘300여 척의 고속상륙정’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앞서 구스의 논문은 113척을 제시했다. “숫자로 보면 이것은 상당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탱크나 그에 버금가는 중량급 장비를 수송할 수 있는 크기의 것은 몇 척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제일 큰 것은 4척의 ‘한태’형이라고 부르는 상륙정인데, 1980년부터 자체 건조에 들어간 것으로서 중형(中型) 탱크 3~4대의 적재 능력이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평균적 함정의 크기와 화력 및 행동반경에서 훨씬 우세하다. 특히 한국의 함정 건조 능력은 세계 제2위의 조선(造船)산업으로서, 1980년대부터 600톤급의 호위함과 5인치포를 장치한 ‘울산’형으로 불리는 HDP1000 구축함(배수톤수 1,400톤)을 계속 건조하고 있으므로 척수의 비교로 제시되는 위협은 성능으로 상쇄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ㆍ북한 해군력의 전쟁능력 비교 평가에서 한반도의 지리 형태적 특성은 북한 해군에 결정적으로 불리하다. 정부(안기부)의 평가와 견해를 대표하는 앞서의 내외통신의 ‘북괴 군사력 해설’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우월 유리한 체제’처럼 잘못 설명하고 있다. “북괴 해군은…… 동서해에서 개별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지위체제를 확보하고 있다.”30)
남한은 동서해가 남해를 경유해 해로(海路)로 연결되어 있다. 해군 작전에서는 물론이지만 민간해운에서도 이 지리적 조건은 동해ㆍ남해ㆍ서해의 항로 기지 보급의 활용ㆍ운용이 일체화된 체제하에서 유기적으로 가동된다.
이와는 반대로 북한 해군은 남한의 남해와 대한해협의 봉쇄로 차단되어 있다. 즉 동해의 원산ㆍ청진ㆍ나진 등 기지의 동해 해군력은 서해의 해주ㆍ남포 등 기지의 해군력과 분리 차단되어 상호고립되어 있어, 일체화된 유기적 행동체제하에서 작전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북한 해군은 그 함정의 수(數)적 능력이 어떻든 실제로는 2분의 1의 기능밖에 발휘할 수가 없다. 이것은 북한 해군에게는 한반도의 지리 및 휴전선으로 인한 운명적 조건으로서 극복할 방법이 없다. 북한 해군이 남한 해군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서 해안에서 “개별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지휘체제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북한의 우월한 ‘작전체제’처럼 국민에게 선전해온 것은 해군의 특성과 작전의 초보적 상식도 없는 해석이거나 의도적인 국민기만책이었다. 『국방백서 1990년』에서 비로소 정부는 “북한 해군은 지형의 특성상 동(東)ㆍ서(西) 함대로 분리 운영해야 하는 불리한 점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시인했다.31)
『국방백서 1990년』에서 제시된 남ㆍ북 함정수 비교는 190척 대 690척이다.32) 그러나 그 전쟁능력은 위에서 검토한 여러 기준에서 볼 때 정확한 비교 평가가 불가능하다.

북의 군사비 및 그 평가방식의 문제

한ㆍ미 양국 정부와 군부는 오랫동안 북한의 ‘군사력 우위’의 근거로서 남ㆍ북한 군사비의 대GNP 비율을 국민에게 제시해왔다. 보통 북쪽이 20퍼센트, 남쪽이 6퍼센트인 것으로 발표되고 주장되어왔다. 그러나 GNP 대 군사비 비율의 수치는 ‘군사적 우위’ 또는 ‘남침위협’의 충분한 증명 근거는 되지 못한다. 정부의 주장대로 남한과 북한의 GNP 대비가 10 대 1이라고 가정할 때, 10×6퍼센트=60 대 1×20퍼센트=20, 즉 남ㆍ북한 군사비의 실액은 60 대 20으로서, 남한이 북한에 비해 3배에 가깝다. 비율의 요술에 가려져온 진실이다.
정부도 마침내 이 오랜 수법의 대국민 여론조작의 한계를 깨닫고 1990년의 남ㆍ북 군사비의 절대액을 99억 7,000만 달러 대 54억 4,000만 달러로 처음으로 제시했다.33) 121억 달러 대 41억 달러라는 평가도 있다.34) 남ㆍ북의 군사비 대비가 2 대 1 내지 3 대 1인 것으로 평가된다.
미ㆍ소 양국 간에서 으레 그렇듯이, 특히 미국 정부가 군사비 소요액을 국회에 요청할 때 소련의 군사비 비율을 상향평가하고 미국의 그것을 하향평가함으로써, 즉 ‘소련 군사력의 우위 위협’을 강조하는 방식은 널리 알려진 바다. 이 같은 산출방식을 가리켜 ‘적 최대평가ㆍ아방 최하평가’방식이라고 한다. 이 비교 방식으로 ‘군사력 우위’나 ‘침공 위협’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과학성을 결여한 것일 뿐만 아니라 유해한 것이며, 그 의도를 의심할 수도 있다. 미국이 소련 군사비를 과다평가하는 산출 근거, 미국 군인(각 계급) 1인당 유지비와 각종 무기 생산비를 그대로 소련의 병력과 무기 총량에 산술적으로 적용한 결과다. 마찬가지로 남한의 비용기준을 북한의 그것에 산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북한의 군사비는 자동적으로 고평가된다. 남한군의 인건비는 북한군의 2.25~4.11배다.35) 즉 북한군의 병력 유지비가 2.25~4.11배나 과다평가되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 정부 관리들은 여러 해 동안 북한이 GNP의 20퍼센트 또는 그 이상을 쓰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1984년 초에는 심지어 26퍼센트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군비관리 및 군축담당국’(US Arms Control and Disarmament Agency, ACDA)이 발간한 문헌들은 그와는 다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비율은 1970년대 초반에는 20퍼센트를 오르내렸고, 1975~79년간은 11퍼센트를 오르내렸으며, 1979년에는 가장 낮은 9.4퍼센트까지 내렸다. ACDA는 1980년도 평가를 처음에는 8.2퍼센트로 했다가 18.9퍼센트로 상향조정했고, 레이건 정권이 군비경쟁 정책을 개시한 1982년에는 북한 군사비 비율을 갑자기 21.6퍼센트까지 올려 잡았다.36)
1982년은 레이건 대통령이 군사력 증강, 대소 및 대공산권 군사대결 정책을 강화하면서, 국회에 대해 ‘소련 군사력 우위’론을 가지고 군사예산 증대를 요구하는 동시에, 동맹국가들에게 각기의 가상적인 군사력을 상향평가하면서 군사력 강화와 군사비 지출 증대의 압력을 넣기 시작한 해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GNP 대 군사비의 비율을 상향 수정한 ACDA인데도 1982년도의 군사비 실액은 남한 48억 달러, 북한 35억 달러로 평가했다. 즉 남한이 북한보다 군사비를 37퍼센트 더 쓰고 있다는 계산이다. 런던에 있는 저명한 군사 연구기관인 국제전략연구소(IISS)는 1982년도의 남한 군사비 43억 달러, 북한 군사비 17억 달러, 즉 남한 군사비가 북한 군사비에 비해서 약 2.5배인 것으로 평가했다.37)
미국 군비관리 및 군축담당국(ACDA)은 이상하게도 1983년과 84년의 군사비 평가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다른 기관들과 IISS는 다같이 1983년의 남한 군사비를 44억 달러, 1984년 43억 달러로 평가했다. 같은 해의북한 군사비에 대해서 미국 정부기관들은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IISS는 1983년 북한 군사비 19억 달러, 1984년은 2배 이상의 군사비를 사용했다고 평가했다.38) 이것이 이른바 ‘GNP 대 군사비 비율’= ‘군사공격 위협’설의 이면이다. 우리 정부가 ‘북한군 우월’의 근거로 제시해온 GNP 대 군사비 비율 비교의 이면에는 이같은 진실이 숨겨져 있다.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보다 월등하다는 정부의 주장과는 반대로 훨씬 열등하리라는 사실은, 군사력의 중심이며 기본인 무기와 장비의 구입비 비교에서도 역력하다. 남한은 북한에 비해 경제력이 약했던 1974년까지는 북한에 비해서 무기ㆍ장비 구입비가 적었으나, 그 후부터 큰 차이로 북한을 앞질러 남한이 매년 10억여 달러의 무기를 구입하고 있는 데 비해서 북한의 무기 구입비는 1~3억 달러다. 즉 남한의 무기 구입비는 북한의 세 배를 넘으며, 앞으로 그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1975년 이후의 무기와 장비의 구입비 추세는 〈표 6〉과 같다.

●[표 6] 무기ㆍ장비 구입비 비교


한국 정부는 1990년대 후반 또는 말에 가야 남ㆍ북의 군사비 투자 누계(累計)가 같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때까지 계속 매년 군사비 총액, 특히 그중의 무기 및 장비 구입비를 〈표 6〉과 같이 약 3배 비율로 계속 증대하려는 계획인 것 같다. 그러나 남한이 북한을 연간 군사비 지출에서 능가하게 된 분기점인 1974년 이전의 북한의 군사투자, 특히 무기 구입비의 우월차액은 연간 1~2억 달러선이었으며, 그 비율도 0.60배 이하의 근소한 것이었다. 한 대 가격 5,000만 달러의 FA–18형 전투기 120대의 구매 등으로 대표되는 무기 투자의 비율이 이미 3배를 넘어선 1982년부터 90년대 후반까지 10여 년간 계속될 경우, 그 차액누계는 1975년 이전의 북한의 우월 차액누계를 몇 배로 초과할 것으로 평가된다.

군사정보 사전탐지 공격 억제 체제

미ㆍ소 초강대국은 현재 전 세계와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치밀하고도 정교한 각종 첩보용 인공위성망 체제(spy satellite systems)를 거의 완벽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 첩보망의 성능으로 말미암아 가상적의 기습공격, 위장공격, 군사이동, 군사작전을 그 초기단계에서부터 탐지ㆍ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탱크 한 대의 이동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포착된다. 항공물리학, 로켓 분사력, 전자공학, 사진광학, 정보처리, 레이저광선 등 과학 발달의 종합적 결과다. 그 성능의 신빙성을 극적으로 입증한 것이 최근의 미ㆍ소 중거리 미사일 철폐 협정 합의다. 그토록 여러 해를 끌어온 협상이 타결된 것은 현지검증에 합의가 이루어진 까닭도 크지만, 그에 앞서서 지금은 상대방이 아무리 은폐를 시도해도 첩보위성의 탐지능력을 속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 확인능력이 제일 중요한 원인이다.
미ㆍ소 양국은 전 세계에 걸친 탐색망의 일부로서 각기 한반도의 휴전선 이북과 이남의 군사행동을 샅샅이 살피고 있다. 쌍방의 첩보위성은 예를 들어 비행장 활주로에 나와 있는 소형차량은 물론, 거기에 타고 있는 사람까지 식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위성에는 그 탐지방식에 따라서 ① 육안 관찰, ② 광학 방식(사진 촬영), ③ 전파 방식, ④ 레이저광선 방식, ⑤ 열감(熱感) 방식 등이 있다.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 예를 들자면 광학(사진) 방식은 5~6시간마다 선회하면서 같은 지역을 촬영해 그 직전의 필름과 오버랩(중복)시키면 1피트(0.3미터=33센티미터) 크기의 물체, 즉 농구공 정도의 정지 물체는 물론, 이동 물체의 이동상황이 자동적으로 검출된다.39) 지상 물체, 해상 선박, 공중 비행물, 해저 잠수함, 인공위성, 로켓 등을 탐지ㆍ사찰ㆍ감시하는 특수 목적의 위성체제가 완벽하다. 레이저광선 위성은 지하터널이나 지하에 은폐된 무기ㆍ부대를 탐지하는 능력이 있다. 이동 물체의 위치 측정의 정밀도(또는 오차)는 15피트(4.6미터) 정도로 완벽하다.
이 같은 첩보위성 체계가 미ㆍ소 양국에 의해서 휴전선 남ㆍ북 영토를 정기적으로 사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의 정찰비행기, 지상 전파탐지기, 지하 진동 자동탐지기 등 보조수단은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미ㆍ소 첩보위성은 그 모든 종합적 방법으로 한반도의 남ㆍ북에서 준비 중이거나 진행 중인 군사적 동태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6ㆍ25전쟁처럼 북한의 탱크가 기습남침을 한다는 따위는 옛말에 속한다. 지상 및 지대공대전차 장벽 및 무기의 성능과 체제에 관해서는 앞에서 기술한 바 있다. 한마디로 남침도 북침도 미ㆍ소가 원치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장기 종합 전쟁수행 능력 비교

이상에서 간략하게 중점적으로 고찰한 것은 ‘현재’의 시간에서의 쌍방 군사력, 현재의 능력을 비교한 것이다. 보다 상세한 자료와 수치(예를 들면 각종 무기의 자세한 성능, 재원 등)를 낱낱이 제시할 지면이 없어서 설명된 부분보다도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은, 유감이지만 별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세부적 사실들은 대세를 좌우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이같이 처음부터 계획된 누락을 참작하더라도, 종합적으로는 남ㆍ북한의 군사력이 대체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와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역시 처음부터 검토 대상에 넣지 않은 주한미군과 미국의 핵군사력을 제외하고도 그렇다. 그것을 남한의 ‘현재’의 군사력에 합친다면 군사력의 ‘질’적 차이 때문에 비교의 차원이 달라진다. 중요한 결론은 주한미군과 그 핵군사력을 제외하고도 남ㆍ북한의 군사력은 ‘균형’(parity) 상태라는 사실이다. 쌍방의 어느 쪽이 그 재래식 군사력의 어느 부분이라도 계속 증강한다면 이 ‘균형’은 깨어지게 마련이다. 이 불균형 상태는 거의 자동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타방의 대응적 군사력 증강 노력을 유발한다. 그 대응 노력은 먼저 증강하는 쪽에서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결정은 다시 말해서 균형 상태를 깨려는 계산된 의도이며,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의 군사적 안정과 안전 상태를 원치 않는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상과 같은 결론은 지금까지 고찰한 현재의 군사적 균형 상태를 전제로 하고도 그렇다. 그런데 남ㆍ북은 각기 다른 체제와 국가지도 원리에 따라서, 의도하거나 또는 의도하지 않은 방향과 내용의 국력증대를 추진하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쌍방은 상이한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다. 이 과정을 일컬어 ‘종합적 전쟁수행 능력’ 또는 ‘장기적 군사경쟁 잠재력’으로 표현한다.
현재 갖추고 있는 군사력이 발동될 경우에는 ‘현재’ 상태로 그 국가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인적ㆍ물적 생산력, 경제체제와 구조, 과학과 기술, 정신문화적 범주의 자원과 능력이 총동원된다. 이것이 ‘종합적 전쟁수행 능력’이다. 전쟁이 아닌 상태에서 오랜 기간을 두고 군사력 경쟁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남ㆍ북 민족이 통일되거나 그에 준하는 정치적 평화 공존체제를 이룩할 때까지는 장기적으로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국력’의 내용이 대립적 존재 집단의 상대적 우월을 결정한다. 이것이 ‘장기적 군사경쟁 잠재력’이다.

인적 자원 및 동원력

장기 종합적 고찰의 제1요소는 인적 자원이다. 남ㆍ북의 인구는 1985년 중간시점 기준으로 남 4,300만, 북 2,200만으로 2 대 1로 계산할 수 있다. 인구 증가율은 남 1.25퍼센트, 북 2.23퍼센트인 바, 이것은 북쪽이 남쪽과의 장기적 군사경쟁의 필요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부족한 경제노동력의 요청 때문이기도 하다. 종합적 국력의 기조적 요소인 경제활동인구는 북 852만, 총인구대 43.1퍼센트, 남 1,555만, 총인구대 37.9퍼센트다.40)
경제활동 인구는 바로 군사적 소요 인적자원과 대체로 일치한다. 북쪽 경제활동인구 비율에서 남쪽보다 높지만, 그것은 여자의 경제ㆍ사회활동 참여가 증대한 결과다. 그러나 전쟁 상황에서의 병력 동원 잠재력으로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남한이 북한에 비해서 2 대 1로 우세한 산술적 계산에 변함이 없다.

장기전을 뒷받침할 경제(생산)력(GNP)

장기적 총체적 군사행동의 토대가 되는 경제력에서, 한국 정부의 비교는 대체로 남 2,000억 달러, 북 210억 달러로 9~10 대 1로 본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제도의 GNP 산출은 상당한 정도로 자본주의 제도에 가산되는 사실을 감안하여, 정확한 근거는 아니지만, 편의상 7~8 대 1로 평가하더라도 남한이 1단위의 군사력 증강을 위해 GNP의 1퍼센트를 더 투입할 때 북한은 그 GNP의 7~8퍼센트의 투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 총경제력 차이는 두 가지 면에서 더욱 중요한 작용을 한다. 전쟁 발생시 단시간 내에 민간부문 자원을 군사용으로 전환할 경우 남한이 즉각적인 군사력 우위를 누릴 수 있고, 둘째는 전쟁이 장기화된다고 가정할 때 그 지속능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성장률의 효과도 마찬가지다.

경제구조적 동원력

GNP의 우월에 못지않게 경제구조의 차이가 큰 의미를 지닌다. 농업은 전쟁수행에 필요한 능력 동원에서 공업보다 훨씬 그 효과가 적다. 농업의 GNP상 비율의 정확한 수치는 평가자에 따라 다르지만, 1985년 현재 대체로 남 17퍼센트, 북 35퍼센트로 볼 때, 상대적 전시 생산 동원능력은 남한이 북한보다 7.5배나 크다고 보는 평가도 있다.41)

민간부문 자원의 전시 군용 전환능력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전쟁 발생시와 전쟁의 장기화시에 전쟁능력의 우월을 결정하는 요소는 전쟁 발생시(즉 현재)의 순수 군사력보다는 민간부문의 총체적 자원력이다. 곧 ‘민간부문의 군용 전환능력’이다. 이에는 여러 가지 부문이 있으나 지면 관계상 주요 부문 몇 가지만 골라서 설명하기로 한다.

화물자동차

군사작전이 확대되면 병력 및 군용물자 수송량은 급증한다. 그 소요는 ‘현재’의 군용자동차로는 감당할 수 없다. 모든 나라가(우리나라도) 정상시에도 민간트럭의 비상 동원체제를 운영하는 까닭이다.
남한은 북한에 대해서 전시 전용 가능 화물자동차의 세력에서도 대체로 3 대 1에 가까운 우세다. 정확히는 1986년 말 현재 한국의 화물자동차 수는 54만 6,450대로, 북한의 약 22만 대에 비해서 2.7배로 우세하다.42)

항공 수송능력

비상시에는 민간항공기가 병력과 병참물자 수송용으로 전환한다. 그 외에 상대방 영토에 대한 특공대 투입작전 수송을 담당하게 된다. 제공권을 장악하는 이러한 중요한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남한의 우월성은 압도적이다.
1988년 7월 현재, 남한은 대한항공(KAL)이 주축인 대형 제트여객기 44대, 수송기 8대, 합계 52대를 보유하고 있다. 관공서 민간의 각종 소형기 61대를 합치면 113대다.43) 같은 해의 북한의 민간항공기 현황은 자료가 없으나, 1987년 현재의 비교는 남 108대(각종 합계), 북 16대다.44) 그 후 아시아나항공회사의 창설과 약 20대의 대형 항공기를 가산하면 그 우열은 더욱 커진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 어떤 큰 규모의 특공대 투입 침공이나 지속적인 대규모 공중행동을 감행할 능력은 더욱 희박해진다.

해상 선박

해상 수송력은 항공 수송력보다도 더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 분야에서의 남ㆍ북한 전쟁능력은 특히 북한의 열세를 입증한다. 장기화될 전쟁을 준비하거나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선박 보유량과 종합적 조선(造船) 능력이 적보다 우월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의 북한의 열세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보다 현저하다.
남한이 국제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에서 세계의 최상위급인 것은 새삼 재언할 필요조차 없다. 북한 경제는 무역입국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수송선의 보유나 건조에 치중하지 않았다. 남한이 30만 톤급의 선박을 건조하는 수준임에 비해서 최근 북한은 2만 톤급 건조 수준이다. 한국의 신조선 건조량은 1986년에 이미 279만 톤(그로스톤), 1990년에 357만 톤으로 세계 제2위이며, 세계에서 20만 톤(배수톤)급 이상의 건조용 독(dock) 시설을 2개 소유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45) 선박 보유량은 900만 톤으로서 북한과는 비교가 성립되지 않는다.

토목ㆍ건설기술ㆍ시설ㆍ장비

전쟁은 피아간에 각종 시설의 막대한 파괴를 수반한다. 특히 6ㆍ25전쟁에서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의 대규모 지속적 폭격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되어버린 쓰린 경험을 가진 북한의 정치ㆍ군사ㆍ건설ㆍ공업 지도자들일수록 이 점에 대한 인식은 남한의 상대자들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북한을 방문한 외국의 지도자들에게 이 경험에 대한 쓰라린 회고담과 함께, 6ㆍ25의 잿더미 위에 처절한 고생과 희생으로 건설한 국가(북한)의 재화를 다시 파괴할 전쟁은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46)
북한은 국내 건설사업에서는 대체로 남한과 비등한 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남한은 1970~8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토목건설 공사의 국제하청을 맡아 그 분야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룩했다. 특히 중동지역에서는 일시에 6만 명의 기술자 기능공ㆍ노동자가 각종 건설공사에 종사한 기술적 경험을 가지며, 그 연인원은 수십만을 넘는다. 이것은 세계적 규모의 건설공사에서 사용한 우수한 각종 장비와 그 조작 정비 능력의 훈련과 함께, 북한으로서는 추종하기 어려운 강점이다.

국제적 조건과 환경의 구조

북한은 단기적ㆍ장기적 군사력과 국가적 전쟁 자원, 그리고 민간 부문의 군사용 전환 효과 등에서 남한보다 훨씬 열세한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 사실은 바로 물질(물리)적 전쟁수단에서는 북한이 어떤 방법으로도 이른바 ‘남침전쟁’을 감행할 수 없다는 판단을 가능케 한다.
이 부인할 수 없이 분명한 열쇠를 어느 정도 보완하는 유일한 조건은 국제적 환경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경우다. 그러나 중국ㆍ소련은 북한의 군사적 행동을 반대하는 방향에서 확고하다. 남한과 소련의 국교수립으로 소련의 국가 이익은 남한과의 우호관계에 중점이 이동했다. 중국 또한 그 궤도를 따르는 과정에 있다. 1961년에 체결된 중ㆍ조, 소ㆍ조 우호협력(방위)조약은 한ㆍ미 방위조약과 마찬가지로 군사적 방식에 의한 한반도문제의 해결은 반대하고 북한의 남침행위에 대해서는 중국도 소련도 지원 의무를 거부하는 것이다.47)
북한과 소련 및 중국과의 관계는 줄곧 격심한 기복ㆍ고저ㆍ근원의 곡선을 그리면서 서로 ‘불가원ㆍ불가친’의 관계로 지속되었다. 현재와 장래의 관계도 중ㆍ소의 국가 이기주의적 정책, 특히 소련의 고르바초프 정책은 오히려 한반도에서의 현상유지를 원하는 구상인 것이 분명하다. 1990년 11월, 소련ㆍ북한은 경화(硬貨)에 의한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경제력 외화 보유가 없는 북한은 앞으로 소련의 무기 구입에서 국제 가격을 지불해야 하며, 그것은 북한 군사력 유지에 큰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쟁 목표와 전쟁 피해의 가치 비교 및 전쟁 의지: 잠정적 결론

압도적으로 우세한 남한의 군사력 전쟁수행 잠재력을 상대로 한 전쟁은, 전쟁 목표가 혹 ‘민족통일’이라는 고귀한 가치라고 하더라도, 전쟁의 승리 여부와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사전에 계산할 때 그 최종적 평가는 전쟁 부정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 가치평가에서 전쟁을 택하게 할 긍정적ㆍ적극적 요소는 한 가지도 없어 보인다.
6ㆍ25의 잿더미에서 헐벗고 굶주림을 참으면서 현재와 같은 복구와 건설을 실현한 북한의 지도자, 전략가, 인민대중이 이 같은 총체적 열세를 분명히 인식하면서 다시 그 피와 땀의 성과를 잿더미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는 많은 근거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남한에 주둔하는 막강한 미국 군대와 그 핵무기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쌍방이 군사력 증강을 서두르기보다는 현재의 선에서 증강 노력을 정지, 동결하는 데 합의한다면 그 결과는 쌍방에 유리할 것이다. 더욱 소망스러운 것은 쌍방이 현재 수준에서 군사력을 단계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감축해가는 데 합의할 수 있다면 그로 말미암은 이익은 더욱 클 것이다.
군사력 증강 노력은 상대방에 대한 대응적 증강 때문에 결국은 끝간 데를 모르는 무한정의 나선적 위기 증강을 초래한다. ‘현재’의 군사력을 균형적으로 감축하는 길만이 전쟁 방지와 무모한 자원 낭비를 예방하는 것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남ㆍ북 동포사회의 대중과 그 정부, 그리고 특히 직업적으로 제1차적으로 관계되는 군부가 냉철한 이성과 분별력을 회복 견지해야 할 절대적 책임이 여기에 있다.
이제 ‘무력통일’이라는 방식은 남ㆍ북 각기의 여러 가지 통일 방법에서 탈락했음이 거의 분명하다. 오히려 종합적 전쟁능력에서 북한보다 월등 우세한 남한의 태도가 불확정적 요소로 남아 있다고 함이 옳을 것이다. 그 초보적 의사표시가 노태우의 7월 7일 6개 항목 공존정책으로의 전환이라면, 앞으로 남ㆍ북에 요청되는 과제는 무엇보다도 이 도발적이며 낭비적인 군사대결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쌍방 군사력의 감축을 서두르는 일일 것이다.



1) 이 글은 국회 통일정책특별위원회가 198884일에 열린 공청회에서 요약된 형식으로 발표한 바 있으며, 한 달 후 사회와 사상9월호에 전문이 게재되었고, 1990년에 간행된 自由人, 자유인에 수록되었다. 이 글은, 역대 군부독재 정권과 그 권력 기반인 광적인 극우반공세력이 그들의 영구집권을 위해서, 북한의 군사적 우월성을 부당하게 과장해 고의적으로 대북한 공포불안의식을 조성하던(누구나가 그렇게 믿고 있던) 시기에 그들의 주장이나 선전이 진실이 아님을 논증하려고 발표한,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나온 공개적 연구 결과다. 이 논문이 국회에서 공개되고 그 후 출판물에 의해서 사회에 소개됨에 따라 사회 공론이 비등해지자 정부()는 종래의 군사 기밀주의 및 남침위기론의 상황적 부당성을 깨닫고, 대국민 홍보용으로 석 달 동안 화급히 국방 관계 자료들을 6360페이지로 편찬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의 국방백서 1988(國防白書)을 발간공표했다(1988.12 발행). 이어서 1990년에는 백서의 구성과 내용의 향상을 기했고, 국방백서 1990(199011월 발행)에서는 마침내 남한의 군사적 질()적 우위와 종합적 전쟁수행 능력의 우위를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10년 전에 연구발표한 이 논문을 이 책에 다시 수록하는 까닭은, 남한과 북한 사이의 군사문제 및 군사적 관계를 고찰하고 판단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기본적 준거의 틀을 비전문가 시민에게 제공하려는 목적에서다. 이 글의 내용은 발표 이후 시간의 경과와 정보의 증대로 큰 차이 없이 입증되었다. 발표되었던 그대로, 수정 없이 수록한다.
2) General John Singlaub, former Chief of Staff for U.S. Forces in Korea, pointed out when discussing the superiority required by the North for a successful attack that “if you are in the offense, generally speaking, it is recognized that you need a 6 to 1 advantage to be successful at the point of decision.” North Korea’s forces fall short of 3 to 1 superiority over South Korea’s forces in manpower, tanks, armored infantry vehicles, and artillery. The Defense Information, vol. XIX, no.2(Washington, D.C: Center for Defense Information, 1990).

3) 일본 아시히신문, 1988616.

4) U.S. CIA, World Factbook 1984, pp.126~128; IISS, Military Balance 84~85, pp.102~103.

5) 내외통신 종합판(31), 1985.1.1~6.30, 381.

6) 防衛要覽, 昭和60(日本紀元), 自衛隊朝雲新聞社, 287.

7) “My own assessment is that they’re a gritty, tough, determined, capable fighting force. Man for man, and division for division, I’d put them up against anybody.” General John Vessey, Jr.,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1982~85), The Defense Information, March 1977, p.3.

8) 1983년 미국 국방부장관의 대의회 보고서에서, 중앙일보, 198323일자 제2면 보도.

9) Annual Report to the Congress, Fiscal year 1988, Casper Weinberger, Secretary of Defense, Part 1 Defense Policy, p.32. 이 장의 b. East Asian Balance(동북아의 군사력 비교)Korea 부분에서는 다만 이렇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의 지역적 군사력 균형은 미국의 지극히 중요한(critical) 이해적 관심사다. ……북한은 그 형편없는 경제에 파멸적인 결과를 돌보지 않으면서 그 강대한 군사력의 현대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미국의 지원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북한의 4배나 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균형을 이루기 위한 군사력 현대화를 추진해왔다. 북한의 이 경제적 대조는 남한 군사력의 장기적 대북 위치를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10) 앞의 내외통신 종합판, 381~382.

11) Stephen D. Goose, “The Military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Korea Scope(1985), p.16.

12) Arsenal of DemocracyIII, America’s War Machine, Tom Gervasi(1985), pp.274~275.

13) 국방백서 1988, 149쪽과 국방백서 1990, 112쪽의 설명적 자료를 도표화한 것임.

14) America’s War Machine, p.227.

15)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Year Book, Stockholm, 1983, p.270.

16) The Arms Control and Disarmanent Agency(ACDA), WMEAT 1972~1982, p.75.

17) 국방백서1990, 87, 국방백서1988, 151.

18) 앞의 The Defense Monitor, p.4.

19) 앞의 내외통신 종합판군사부 자체가 남북한의 각종 무기전력 비교에서 침략전쟁의 가능성과 위협을 강조한 결론부에서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북괴가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가장 애로를 느끼고 있는 것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병기들이 구식 병기여서 수명이 다해가고 있으며 병기 부속품의 부족과 함께 병기운영에 필요로 하는 막대한 경비조달이 어렵다는 문제다. 현재 북괴가 보유하고 있는 무기체제가 대부분 구식 무기여서 현대전에 대비한 무기로서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군장비를 현대화하기 위한 대소 접근 노력이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378). 이 사실은 국방백서에서도 공인되고 있다.

20) America’s War Machine; Stephen D. Goose, “The Military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참조.

21) 국방백서1990, 115~116.

22) 국방백서1990, 115.

23) 앞의 무기연감, 227; American Arms Supermarket, State University of Texas Press, 1984, p.166.

24) The Defense Monitor, Washington: Center for Defense Information, 197410월호; 미국 대외정책의 군사화, 7.

25) 같은 글.

26) 앞의 내외통신 종합판, 376.

27) 일본방위요람, 1985, 287.

28) Stephen D. Goose, “The Military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p.15.

29) 앞의 내외통신 종합판, 376.

30) 같은 곳.

31) 국방백서1990, 114~117.

32) 같은 곳.

33) 같은 곳.

34) 앞의 The Defense Monitor, p.2.

35) 23)의 자료.

36) Stephen D. Goose, p.7.

37) IISS, Military Balance, 1984~1985, p.141.

38) 같은 책, p.102.

39) Curtis Peebles, Battle for Space, New York: Handford Press, 1983, pp.23~46.

40) 국토통일원, 남북한 경제현황 비교, 1985, 31.

41) The Changing Balance, South and North Korean Capabilities for LongTerm Military Competition, 1985, p.36. 이것은 한국의 국방연구원(KIDA)과 미국의 유명한 군사관계 연구전문기관인 RAND Corporation의 합동 연구조사서로서, 그 이름대로 남북한 간의 장기적 군사경쟁에서의 우월관계를 가장 종합적으로 검토연구한 공식문서다. 그 연구 조사사업은 와인버거 미국 국방장관의 지시로 진행되어, 공식문서로 제출된 것이다. 미 양국 정부의 남북한 관계에서 종합적 장기적 정책전략 구상의 기초가 되고 있는 중요한 공식자료다.

42) 한국의 수치는 교통부, 교통통계연보, 1987, 335. 북한의 수치는 국토통일원, 남북한 경제현황비교, 1987, 64쪽의 1985년 말 현재의 수치다. 1985년 현재 남한의 각종 자동차 총수는 1113,000대로서 북한의 22만 대의 5배다. 그러나 북한은 그 수의 대부분이 화물자동차이므로 2.7배 정도가 타당한 대비라고 평가된다.

43) KAL기 통계는 대한항공 조사개발과에 문의한 결과이고, 전국 통계는 교통부, 교통통계연감, 1987, 335.

44) 앞의 국토통일원, 남북한 경제현황 비교, 65.

45) 한국조선공업협회, 조선자료집, 1990, 44, 82.

46) 이 회고담은 1985년 일본의 잡지 世界에서 읽었으나, 그 기사를 보존하지 못한 까닭에 자세한 자료는 제시할 수 없다.

47) ‘()()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6: “체약쌍방은 조선의 통일이 반드시 평화적이며 민주적인 기초 위에서 실현되어야 하며, 그와 같은 해결이 곧 조선 인민의 민족적 이익과 극동에서의 평화 유지에 부합된다고 결정한다.”


 

전체 0

전체 58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5
4-5. 「‘주체사상’ 이데올로그, 황장엽과의 대담」
관리자 | 2021.01.21 | 추천 0 | 조회 1391
관리자 2021.01.21 0 1391
4
4-4. 「동북아지역 평화질서 구축을 위한 제언」
관리자 | 2021.01.21 | 추천 0 | 조회 859
관리자 2021.01.21 0 859
3
4-3. 「국가보안법 없는 90년대를 위하여」
관리자 | 2021.01.21 | 추천 0 | 조회 828
관리자 2021.01.21 0 828
2
4-2. 「‘북방한계선’은 합법적 군사분계선인가?」
관리자 | 2021.01.21 | 추천 0 | 조회 921
관리자 2021.01.21 0 921
1
4-1.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
관리자 | 2021.01.21 | 추천 0 | 조회 1019
관리자 2021.01.21 0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