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국가보안법 없는 90년대를 위하여」
4-3. 「국가보안법 없는 90년대를 위하여」(1989년 『사회와 사상』, 자유인)
이 달로서 1989년이 가고 또 80년대도 간다. 올해는 이른바 ‘공안정국’이라 하여 국가권력이 이성을 상실하고 폭력화한 한 해였다. 그 포악성이 박정희 정권하의 어느 해보다 더했고 전두환정권하의 어느 시기보다도 광적이었던 사실은, 올해 들어 하루 평균 정치범ㆍ양심범 구속이 과거 최악의 시기의 두 배를 훨씬 넘었다는 정부 발표의 공식통계가 웅변으로 말해주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민주사회의 시민의 권리와 자유는 전국 도처에서 ‘법률’의 이름으로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다. 비명소리가 땅과 하늘에 가득차 있다.
1989년은, 잠시나마 88년 ‘민주화의 겉치레’를 경험한 직후인 만큼 그 포악성과 포악상이 두드러진다. 군인 독재의 27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서 땅에 뿌려진 그 많은 피와 하늘로 흩날린 목숨과 사무친 원한은 88년의 몇 달 동안만 위안을 받았을 뿐이다. 본질적으로 89년은 88년의 연속이고 1988년은 80년 광주민중항쟁으로 상징되는 억압과 자유를 위한 투쟁의 긴 연속선상의 한 점에 불과하다. 민중의 손에는 긴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획득했던 꽃 한 송이, 열매 한 톨 남아 있어 보이지 않는다.
88년의 한 순간만 해도, 서양의 격언대로 피를 먹고 자란 허약한 민주주의의 가지에 몇 송이의 꽃이 피고 몇 개의 열매나마 달리는 것같이 보인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꽃송이와 열매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광풍에 의해서 땅바닥에 날리고 짓눌리고 말았다. 슬픈 일이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법률’은 1949년 12월에 공포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폭력정권 유지를 위해 개악을 거듭한 끝에 오늘과 같은 흉악한 것이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무생명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이 피조물은 햇볕을 쐰 순간 추악한 속성과 포악한 힘을 갖게 되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든 골라가며 시기하고, 비틀고, 꺾고, 깨고, 부수고, 찢고, 그리고 피를 빨아 죽여버려야만 만족한다. 그것은 용서하는 것이 없다. 죽음을 먹고 사는 괴물이다. 아, 법률의 프랑켄슈타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속성의 ‘법률’이 폭력을 일삼고 있던 1980년대에 외부 세계는 어떠했는가?
훗날 역사는 1980년대를 ‘죽음’(死)으로 달려가던 인류가 ‘삶’(生)을 찾은 시대로 기록할지 모른다. 증오와 살육의 ‘미침’(狂)에서 이해와 껴안음의 기쁨을 알게 된 ‘합침’(和)의 시대로 회상될지 모른다. 적어도 제2차 대전 종전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서로가 상대방의 죽음으로써만 자신의 삶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었던 프랑켄슈타인적 이데올로기가 허구였음을 처음으로 깨달은 제2의 사상적 르네상스로 기록될지 모른다. 지구상의 인간은 지금 ‘사고의 대전환’을 요구당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새로운 생각’(또는 ‘새로운 사상’) 없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어쩌면 80년대와 질적으로 다를 90년대의 시대에서 정신적ㆍ도덕적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 세계는 이미 ‘국가보안법’의 시대가 아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우리의 눈동자를 잠시 멈추고 크게 역사와 세계를 살펴보자. 이 달로 ‘역사’속으로 물러가는 80년대는 전쟁이 평화의 대치물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류에게 깨닫게 했다. 힘과 군사력과 전쟁의 광신자였던 미국 대통령 레이건조차 그것을 깨닫고 마침내 정치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소련과 사회주의를 ‘영원의 악’으로 선전하고 믿었던 자본주의와 냉전사상이라는 ‘정치종교’도 그의 뒤를 따라서 사라졌다(아직도 그 종교를 믿는 소수의 광적인 신도들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도처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함께 그 반대쪽 신전에 모셔졌던 공산주의의 우상도 쇠퇴했다. 개인의 창의와 자유보다 당의 영원함과 지도자의 불가류성(不可謬性)을 신으로 모셨던 공산주의 혁명의 종교도 80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 신통력을 상실하고 있다. 우리는 이 역사적 대변혁의 증언자들이다. 80년대는 인류가 이성(理性)을 회복한(하는) 시대다.
이성을 상실했던 현대의 종교전쟁인 이란–이라크 10년전쟁에서 수억의 아랍인들은 ‘광신’(狂信)의 무익함을 깨달았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간섭이 베트남에 이어서 실패한 뒤를 이어,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패권주의의 무모함을 깨달았다. 작은 패권주의자로 화했던 베트남은 캄보디아에서 그 비싼 대가를 치르고야 정신을 차렸다. 중국의 동남아 간섭주의는 80년대에 끝나는 단막극을 연출했다. 노선과 정세는 당분간 좌ㆍ우로의 진동을 계속하겠지만, 중국 인민은 80년대의 막바지에서 체험한 국가적 폭력의 상처에서 90년대를 살아갈 지혜를 터득했을 것이다.
40년간 종교전쟁ㆍ민족전쟁을 거듭해온 아랍 세계와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의 분쟁도,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도 80년대의 폐막을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인류양심에 꽂힌 가시인 소수백인 지배주의 남아공화국도 예외가 아니다. 30년 가까운 투옥에도 굴하지 않은 흑인해방운동 지도자들이 석방되고 있다. 최고 지도자인 만델라의 석방이 예상됨과 동시에 악명 높은 남아공화국의 소수 백인 지배체제도 90년대의 문턱을 넘으면서 정의의 길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 대륙에 남아 있는 유일한 미해방흑인 식민지 나미비아에서는 연말로 닥친 독립선거로 80년대의 종막을 장식하는 세계적 희소식을 전해줄 것이다.
소련이 동유럽 세계에 대한 오랜 패권주의의 폐기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진정한 민족자결, 민주주의, 자유…… 등의 거센 물결이 일고 있다. 우리는 90년대에 유럽 문명ㆍ문화의 역동적인 변화를 목격할 마음의 채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동유럽 세계에 대한 소련의 역사적 정책 전환과 대담한 ‘새로운 사고’에 대응하지 않는 낡은 정책과 ‘낡은 사고’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지역이 있다. 미국의 지배하에 있는 라틴아메리카다. 아직도 미국은 세계적 시대정신에 역행하면서 라틴아메리카를 북미합중국의 ‘뒤뜰’로 착각하고 있다. 인민의 증오의 대상인 군인독재 체제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다가, 그 효용에 한계가 왔다고 판단하면 문민정부로 민주화를 가장하면서 시간을 벌고있다. 80년대는 미국의 그 같은 낡은 사고와 낡은 정책에도 이제 한계가 왔다는 증거들을 라틴아메리카의 인민들이 보여준 10년간이었다. 칠레, 니카라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쿠바, 콜롬비아, 파나마, 그레나다…… 등에서 그것이 보인다. ‘소련제국’의 해체과정과 병행하는 ‘미국제국’의 해체를 1990년대가 보여줄 것인가? 그에 대한 답변은 다음달 막을 열 90년대에나 기대해야 할 것 같다.
아직도 무력숭배 사상과 패권주의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미국의 국가정책으로 말미암아 세계적 불안의 요소가 말끔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 군사예산ㆍ군사력 및 군사행동을 자발적으로 그리고 미국과 그 자본주의 동맹국가들의 대응 조치 없이 일방적으로 감축하고 있는 ‘새 사고’는 평화의 기회를 증대하고 있다. 국가와 계급이 사고의 기준이었던 사회주의도 국가보다 시민과 사회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즉 추상적인 ‘국가’에 두었던 가치를 구체적 존재인 ‘인간’에게 옮기고 있다. 그 새로운 사고는 당연히 ‘국가주의적 세계관’에서 ‘전 인류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수반한다. 국가보다 시민 개인의 권리와 행복이 우선되는 인간관ㆍ사회관……, 이것이 90년대에 꽃필 새 사고며 새 사상이다. 권위주의적 국가관과 국가 지상주의 사상의 장송곡이 울리고 있다. 시민 개인의 희생 위에 존재하는 국가를 거부하는 ‘새 시대’다. 실체 없는 ‘무슨무슨 주의’를 보호한다는 허구의 명분으로 문명사회가 공인하는 인간의 자유를 감옥에 가두는 국가주의자들의 논리가 부정당하는 시대다. 이것이 우리가 눈앞에 보는 1990년대의 정신이다. 이데올로기적 광신이 아니라 이성을 회복하는 시대다.
그와 같은 새 정신, 새 사고, 새 가치관의 시대의 개막을 배경으로 할 때 ‘국가보안법’이라는 법률의 존재가 문제된다. 국가보안법의 기능이 기존의 여타 법률들로 충분히 대치ㆍ집행될 수 있다는 법 이론에는 유력한 근거가 있다. 국가보안법은, 허물어져가는 이승만 독재정권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입법에 반대하여 농성하는 야당의원들을 국회의사당에서 물리적으로 끌어내고 경호권을 발동한 속에서 통과시킨 악법이다. 30년 전의 악명 높은 ‘2ㆍ4파동’의 사생아다. 이 법률의 성격과 목적은 그 입법 후의 이력서가 스스로 말해준다.1960년 4월혁명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이 법률은 간신히 폐기의 운명을 모면했다. 무난한 골격으로 개정된 채 유지되었다.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은 구호를 앞세운 박정희 정권은 1962년 9월, 죽어가던 이 법률을 본래보다도 더 흉악한 얼굴로 개악해 소생시켰다. 악명 높은 ‘반공법’과 쌍둥이 악법으로 개인의 자유와 시민의 권리를 부당하게 유린하는 수단이 되었다. 80년대에 들어와 전두환 독재정권은 ‘반공법’이라는 이름의 법률을 가진 국가의 대외적 체면을 생각하게 된다. 두꺼운 눈까풀에도 세계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 까닭이다. 세계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 까닭이다. 세상이 그만큼 달라진 것을 조금은 깨달은 것이다.
올림픽을 치른다는 ‘문명국’으로서 낯이 간지러워진 정권은 ‘반공법’을 슬그머니 국가보안법 속에 묻어버린다. 내용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반공법’이 없어진 국가에서 그 뒤 더 많은 ‘공산주의자’가 생겨났다. 관제(官製)의 요술이다. 20년간의 반군사독재 투쟁의 결과로 1988년 민주주의와 인권과 자유의 시대가 열리려 하자, 이 법률은 폐기될 운명에 직면했다. 그러나 오로지 이 악법의 폭력 하나에 자신의 생존을 의탁하는 반민주적 개인과 집단들은 국가 내부와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민주화와 자유의 물결 앞에서 공포에 질려버렸다. 1989년의 ‘공안정국’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90년대를 향해서 도도히 흐르는 세계사와 시대정신에 대한 반역이다.
국가보안법이 박멸하겠다고 외치는 세계의 공산주의 사회들에서는 지금 그에 대응하는 악법들이 저항과 지도자들의 ‘새로운 사고’에 의해서 휴지처럼 폐기되고 있음을 본다. 그곳에서는 오랫동안 인간의 자유와 시민의 권리 위에 군림했던 그밖의 악법들이 불살라지고 있다. 80년대 인류사에 길이 남을 거대한 진보다. 그런데 동북아시아 반도의 일각에서는 인류의 진보와 발걸음을 함께 하려는 아무런 기운도 움트지 않고 있다.
그러면 국가보안법의 대전제는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보호하겠다는 것인가? 그 법률이 상정하는 존재(상대자)의 성격은 무엇인가? 뒤집어서, 이 법률은 법률 효과의 대상을 어떻게 성격화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상상할 수 있는 온갖 그리고 모든 인간활동ㆍ사회활동은 물론 심지어 법률의 촉수 대상 밖이어야 할 머릿속의 생각까지 단죄하려는 이 법률의 대전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국가보안법 사건의 공소장 본문의 첫머리에서 규정된다. 즉 “북한 공산집단은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 조직된 반국가단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온갖 인간행동을 이 서른 네 글자의 규정에 결부시키기만 하면 가벌적 ‘국가사범’이 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국가권력의 대행인이 ‘그렇다’고 기소하기만 하면, 지난 40년 동안 어떤 재판관도 ‘안그렇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이 이 비논리의 희생물이 되었던가!
나는 최근『한겨레신문』이 북한을 취재보도하기 위해 기자단을 보내려고 구상했던 일과 관련된 이른바 방북취재기획사건의 법정심리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전문(前文)의 그 대전제가 객관적 진실 검증에 견딜 수 있는 것인가를 반박했다. 모든 국가보안법 사건의 열쇠는 그 해명에 달려 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례로 규명해보자.
가. 휴전선 이북 지역의 정치적 성격 규정
휴전선 이북의 지역을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 조직된 반국가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규정하려면, 그 단체가 활동하거나 지배하는 지역에 대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통치권 또는 행정권이 행사되었던 실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동시에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으로 분할됐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반국가단체’가 지배한다는 그 지역에 대해 대한민국은 통치권을 행사해본 역사적 사실이 없다.
나. 승계국가 여부 문제
헌법이나 그밖의 선언적 문서에 그렇게 기술했다는 것만으로는 그 효과가 없다. 대한민국은 한반도 전 국토를 통치했던 조선 왕조의 ‘계승국가’도 아니고 일본 식민지하의 조선총독 통치를 계승한 국가도 아니다. 따라서 반도 전토에 대한 주권 행사의 역사적 실적이 없다(물론 북쪽도 마찬가지다).
다. 유엔 결의의 ‘유일합법정부’ 해석의 문제
국가보안법의 대전제의 근거로 주장해온, 또는 과거에 일반적으로 그렇게 믿어져왔던 이른바 ‘유엔 총회 결의에 의한 한반도에서의 유일합법정부’론은 유감이지만 사실과 다르다. 그 결의는 유엔 총회 결의 제195호Ⅲ(1948.12.12)으로서, 그것은 일본 식민지에서 광복한 KOREA— ‘한국’도 ‘조선’도 아닌 하나의 지역과 민족으로서의 ‘코리아’—의 독립문제에 관한 1947년 11월 14일 유엔 총회 결의 제112호 II에 입각한 것이다. 결의 195호 Ⅲ의 제2항이 핵심 내용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유엔)임시위원단이 감시 및 협의할 수 있었고, KOREA 인민의 과반수(majority)가 거주하고 있는 KOREA의 그 지역에 대한 효과적인 행정권과 사법권을 갖는 합법적인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 이 정부가 KOREA의 그 지역 유권자의 자유의사의 정당한 표현이며 (유엔)임시위원단이 감시한 선거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정부가 KOREA의 그 지역에서의 그와 같은(such) 유일한 정부임을 선언한다.”
이 유엔 총회 결의 제195호 Ⅲ은 그 정식 명칭이 ‘대한민국의 승인 및 외국 군대의 철수에 관한 결의’다. 그 제2항의 내용은 1947년 11월 14일 총회 결의 제112호 Ⅱ에 의거해서, 미국의 주동하에 KOREA 반도에 통일ㆍ독립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유엔 감시하의 선거를 실시하기로 한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5ㆍ10) 선거가 ‘실제로 실시된 그 지역’을 두고 말한다. 유엔 감시위원단은 결의에 따라서 KOREA에 왔으나, 위임 사항인 독립정부 수립을 위한 ‘정치단체ㆍ지도자들과의 협의’는 북위 38도선 이남에서만 이루어졌다. 그에 따르는 선거도 북위 38도선 이남에서만 실시되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정부는 그 같은 지역에서의 유일합법정부가 되었다. 선거가 실시되지 않은 38도선 이북 지역은 유엔 결의에 관한 한 ‘공백 지대’로 남겨진 것이다.
라. 유엔 결의의 ‘권고 사항’
그 유엔 총회 결의 제195호 Ⅲ의 제9항은 그 사실을 강조하면서, 유엔 회원국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회원 국가와 그밖의 국가는 대한민국 정부와의 관계를 수립함에 있어서 본 결의 제2항에 적시된 제사실을 참고하도록 권고한다.”이 권고 조항에 따라서 그 뒤 대한민국과 국교 수립을 하는 국가들은 38도선 이남지역에서의 유일합법정부라는 전제에 서고 있다. 일본 정부도 최근 남ㆍ북한 문제와 북한 정권과의 정치관계를 예상하면서 유엔총회 결의의 그 같은 성격을 내세우고 있다.
마. 북한의 ‘국가’적 자격 문제
‘국가’는 유엔(총회)이나 타국가의 승인을 필요치 않는다. 국제법에서나 현실 문제로서나,인민ㆍ영토ㆍ정부(정치조직)의 ‘국가 구성 3요소’를 갖추면 국가가 된다. ‘국가’의 자격ㆍ권리…… 등의 근거로서 가장 널리 원용되는 1934년 발효의 ‘제7차 아메리카 지역 국가국제회의’의 국가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약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1조: 국제법상의 인격으로서의 국가는 다음의 자격, 즉 ㄱ. 영구적 인민(주인), ㄴ. 명확한 영토, ㄷ. 정부, ㄹ.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제3조: 국가의 정치적 근거는 다른 국가에 의한 승인과는 무관하다(……행정권ㆍ사법권ㆍ독립보위권…… 등등에 관한 규정 생략). 위의 제반 권리의 행사에 대해서는 국제법에 의한 다른 국가의 권리행사 외에 아무런 제한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남ㆍ북에 존재하는 정치적 실체는 각기 대등한 독립ㆍ주권국가가 된다.
바. 북한 지역에 대한 대한민국의 통치권 유무 문제
유엔 총회 승인이 ‘한반도 전역에 대한 유일합법정부’라는 한국의 주장은 유엔 자신에 의해서 부정되었다. 6ㆍ25전쟁에서 유엔군이 반격ㆍ북진해 북위 38도선 이북 지역의 태반을 장악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그 지역에 대한 ‘유일합법정부로서의 행정권 행사’를 위해 대한민국 정부의 ‘민정장관’을 평양에 임명ㆍ파견했다. 이 조치에 대해 유엔은 이같이 결정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 KOREA 임시위원단이 협의 및 관찰할 수 있었던 선거가 실시된 KOREA의 그 부분에 대하여 효과적인 통치를 하는 합법정부로서 유엔이 인정했고, 따라서 KOREA의 나머지 부분 지역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통치를 하도록 유엔이 인정한 다른 정부가 없음을 상기하고…….”유엔이 그 지역에 대한 행정을 직접 임시로 담당했던 것이다. (더 상세한 사실과 내용에 관해서는 대한민국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발행『국제연합 한국통일부흥위원단 보고서 1951ㆍ1952ㆍ1953』입법 참고자료 제34호, 특히 그중 ‘제2부 정치 문제, 제3장 유엔의 북한 통치 A. 한국임시위원단의 조치’, 35~46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사. 100개 이상의 국가에 대한 교차승인
“대한민국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 조직된 반국가단체로서의 북한 공산집단”을 독립ㆍ합법ㆍ주권국가로 승인한 국가들을 대한민국 정부가 승인하고 있는 사실의 모순. 대한민국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정식 승인하는 국가와의 상호 승인, 국교 수립을 1960년대 말 무렵까지 거부했다. 국가보안법 같은 대전제에 입각한 당연한 정책이었다. 그 원칙을 ‘할슈타인 원칙’이라 한다. 서독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동독을 승인하는 국가들에 대해서 취했던 외교정책의 기본 원칙으로, 그 원칙의 입안자인 할슈타인 외무차관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1989년 10월 말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을 독립ㆍ합법ㆍ주권국가로 승인하고 있는 102개 국가 중 73개국과 수교 관계에 있다(전체수교국가 수는 132개).
아. 한국전쟁 휴전협정의 조인 당사자 지위 문제
3년 2개월에 걸친 한국전쟁을 끝맺은 휴전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최고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화인민공화국 지원군사령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KOREA(조선) 군사정권에 관한 협정’으로 되어 있다.
협정의 서명 부분인 ‘제5조’ 부칙 제63조는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유엔연합군총사령관
북미합중국 육군대장 마크W. 클라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군최고사령관 김일성
중화인민공화국
인민지원군총사령 팽덕회
참석자
유엔군대표단 수석대표
북미합중국육군중장 윌리엄 K. 해리슨Ⅱ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군
중국인민공화국 인민지원군 대표단
수석대표 조선인민대장 남일
대한민국은 조인하지 않았다.
자. ‘7ㆍ4남북공동성명’의 상호 국가승인
박정희 대통령에 의한 7ㆍ4남북공동성명(1972.7.4)은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 조직된 반국가단체”를 처음으로 대등한 정부로 인정한 정치적 결정이다(교섭과 서명은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명의지만 실제 효과에는 변함이 없다). 북한이 국가보안법의 전제인 그와 같은 집단이라면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ㆍ방법으로써의 타도가 정당화된다. 그런데 반란집단에게 서로 무력을 행사하지 말고 평화적 방법으로 민족통일을 합의하고, 사상과 제도 및 이념의 차이를 초월하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휴전선 남ㆍ북에 존재하는 두 정치적 실체 사이의 최초의 ‘실제적’상호 승인 선언이다(정부는 그에 대해 구구한 단서를 사후적으로 발언했지만 그것은 대국민 흥보용이었다).
차. 김일성(국가) 주석 호칭의 공식화
전두환 대통령은 남북 최고책임자 회의를 갖고자 ‘김일성 주석’에게 거듭 제의했다(1981.1, 6 그리고 1985.1) ‘. 반국가단체’의 ‘괴수’를 어떻게 ‘주석’으로 정식 호칭할 수 있는가?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개회사(1981.6.5)에서 한 대한민국 대통령의 제의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본인은 이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에게 아무런 부담과 조건 없이 서로를 방문하도록 초청한 지난 1월 12일자 제의의 수락을 다시 한 번 강조해두는 바입니다.”(1월 12일에도 같은 호칭을 사용했다.) 국가 원수가 주석이라고 공식화한호칭을 국민이사용하면 처벌돼야 하는가?
카. ‘한미 방위조약’의 남한 행정권 지역 제한 규정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의 국가적 운명을 의탁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중대한 ‘대한민국과 북미합중국 사이의 상호 방위조약’(한미 방위조약)은 대한민국의 합법적 영토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이 조약을 비준할 때(1954.11.17) 미국 상원이 일부러 조약 말미에 추가한 ‘북미합중국의 양해 사항’은 다음과 같이 제한하고 있다.
“……이 조약의 어떤 규정도 대한민국의 행정적 관리하에 합법적으로 존재하기로 된 것과, 북미합중국에 의해서 결정된 영역(영토)에 대한 무력 공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에 대해 원조를 공여할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이 추가 조항은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전쟁 개입 또는 무력 행위의 의무를 제한하려는 의사표시다. 그러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행정권이 미치는 범위를 사실상 1953년 7월에 조인된 휴전협정에 따르는 ‘휴전선 이남’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행정적 관리하에 합법적으로 존치하기로 된’지역(영토)이다. 또 그것은 ‘미국에 의해서 결정된’, 즉 미국이 휴전협정 조인 당사자로서 수락한 휴전선 이남 지역을 뜻한다.
바야흐로 막이 오르려는 1990년대는 어느 모로 보나 국가보안법이 비정상적 방법으로 태어난 1940년대가 아니다. 40여 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첫째, 국가보안법을 폭력으로 탄생시킨 정권과 그것을 폭력으로 휘두른 정권들이 폭력으로 몰락했다는 교훈이다. 지금의 정권은 과거의 어느 정권보다도 국민적 지지를 누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진실이라고 믿어진다. 그럴수록 모든 상식에 어긋나는 국가보안법을 역사에 묻어버릴 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권위 문제다.
둘째, 국민의 지적 수준과 법적 생활의 성숙은 국가보안법 없이 민주주의적 질서와 발전을 유지할 수 있다. 정권의 주장과는 반대로 자유민주주의가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의 폭력적 집행으로 인해서 자유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른바 공산주의자, 용공분자, 좌익ㆍ극좌, 의식화 등의 낱말로 표시되는 현상에 겁을 집어먹는 태도는 옳지 않다. 지금 세계의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듯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ㆍ사회에서는 오히려 자유ㆍ인권ㆍ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어째서 ‘공산주의, ……의식화’를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 이론과 사상에 대항할 만한 이론과 사상을 갖지 못했다고 패배를 자인하는 말이다. 극우사상ㆍ국가 절대주의ㆍ반공 이데올로기 등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굳이 이분법적으로 말하자면, 오늘의 문제는 새로 ‘의식화’하는 ‘좌’적인 것보다는 차라리 과거 40여 년 동안 친일파들에 의해서 부추겨져온 ‘극우’적 사상과 그것에 의거해서 이익을 얻고 있는 기득권자 측에 있다 할 것이다.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사회도 새로운 자극과 조건 변화와 도전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작용을 통해서 진화하는 것이다. 최근에 김수환 추기경이 적절히 말했듯이 “좌적인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우는 패배”하고 말지 모른다. 새도 우와 좌의 날개(우익과 좌익)를 평형으로 발육시킬수록 잘 날 수 있다. 우주만물의 생존 원리와 인간 및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넷째,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으로만 북쪽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남ㆍ북 역량 관계는 지금 전도되었다. 우익과 정부당국은 국민생활의 모든 면에서 북쪽보다 우월하다고 자랑한다. 그러면 ‘인간의 생각’에서는 열등하다고 주장하는가?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을 놓지 않기 위한 궤변이 아니라면 논리적 착오다.
다섯째, 국가보안법을 휘둘러야 할 필요성이 많다는 것은, 이 국가사회에 대중적 공감을 줄 수 없는 모순이 심각할 만큼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정치ㆍ사회ㆍ문화면에서는 물론, 무엇보다도 경제면에서 부정의(injustices)가 너무 많다. 이에 대한 정의의 요구가 기득권의 입장에서는 모두 좌로 보일지 모른다. 그것은 중대한 착각이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사회의 경제ㆍ정치구조는 이런 인식착오에 대한 좋은 각성제가 되어줄 것이다.
여섯째, 세계의 전반적 정세는 분명히 전쟁 반대ㆍ군축ㆍ평화ㆍ협조ㆍ민주화ㆍ인권ㆍ악법의 폐지 쪽으로 가고 있다. 이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관성을 지니고 ‘세계화’하는 중이다. 이에 대한 관찰은 이미 앞에서 끝난 바 있다. 이 나라ㆍ국민ㆍ정부ㆍ지도자들도 세계적 조류와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만큼은 정치적 식견을 갖추었으리라 믿는다.
일곱째, 바로 이 세계적 대변혁은 남한에 미쳤듯이 북한에도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가 소련과 동유럽보다 더디더라도 전 인류의 대열에서 초연할 수는 없다. 실제로 상당한 ‘생각의 변화’를 우리는 보고 있다. 정책의 수정도 분명해 보인다. 남ㆍ북한 문제에 대한 노선도 유연성을 띠게 되었다.우리가 이 글을 통해서 충분히고찰했듯이, 휴전선 이북에 존재하는 정치적 실체를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 조직된 반국가단체’라는 짙은 색안경을 벗고 보자. 그러면 많은 새로운 발견에 스스로 놀랄 것이다. 역대 대통령ㆍ역대 정부ㆍ국회ㆍ총리ㆍ장관ㆍ재벌 등은 이미 그 안경을 벗어버린 지 오래다. 어째서 국민에게만 ‘색맹’이기를 계속 강요해야 하는가?어째서 국가보안법이계속 필요한가?
이 달이 지나면 1980년대는 과거 속에 흘러간다. 80년대는 인류사적 차원과 세계적 규모에서 대변혁이 발동한 기간이었다. 1990년대는 그 동력이 더욱 가속화하고 확대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우리는 국가보안법 없는 90년대와 21세기를 맞기 위해 ‘새로운 사고’를 가져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보자.
•『사회와 사상』, 198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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