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지식인의 기회주의」
9-9. 「지식인의 기회주의」(1987년 7월 6일 『동아』, 자유인)
지식인의 기회주의
최근 정치의 풍향이 바뀐다 싶으니 지식인의 발언이 소연하다. 바람이 거셀 때에는 꼼짝않고 엎드려 풍향침만 노려보고 있다가, 바람 흐름의 조짐이 보이자 너도나도 뛰어 나오는 것 같다. 바야흐로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의 시대가 도래하는가보다.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면서, 언제부터 이 나라의 지식인들이 이렇게도 민주주의적 사고(思考) 행동양식에 투철했으며, 언제부터 이렇게 애증을 초월해 화해와 타협과 관용의 미덕으로 살았느냐하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말하는 사람마다 옳고, 글쓰는 사람마다 그른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박학(博學)과 경륜(經綸)에는 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그런데 그 말이 너무나 고매하고 글들이 슬기로워서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슬퍼지기까지 하는 것은 웬일일까.
요사이 지식인들은 입을 열었다 하면 ‘대화합ㆍ타협ㆍ관용ㆍ용사’(容赦)로 시작해서, 글을 썼다 하면 ‘아량ㆍ이해ㆍ불보복ㆍ망각’의 미덕을 역설하는 설교로 끝난다. ‘과거사(過去事)는 과거 속에 묻고 잊어버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미덕’이라고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말들이 너무나 쉽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 어제까지 철두철미 반민주적 언행으로 이름났던 어떤 대학총장이 박종철(朴鍾哲) 군의 위령탑을 그 대학 캠퍼스 안에, 그것도 4ㆍ19의거 학생탑 옆에 세울 생각이라는 말까지 하고 나섰으니 이제는 있는 말은 다 나온 성싶다.
‘대타협ㆍ화해로……’로 시작해서 ‘관용ㆍ아량……’에 이르는 ‘미덕’에 대해서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보복ㆍ망각’에 이르러서는 뭔지 석연치 않은 뒷말이 남는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봐서 덧붙이거니와, 보복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를 잊어버리자’는 말은 지난 7년간 독재의 직접 당사자나 그 협력자격이었던 일부 지식인들의 입에서는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될 말이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자’는 덕행은 지난 시기에 뼈에 사무친 박해를 받아온 피해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가해자가 함부로 할 말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인간적 권리를 위해서 싸우다가 고문으로 병신이 된 이가 얼마나 많은지를 그들은 모를 것이다. 1.1평의 관(棺)과 같은 캄캄한 독방 속에서 몇백 날을 보내야 했던 정치범들과 양심범들의 고통을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용공 좌경’이라는 추상적이고도 황당한 조목으로 꽃 같은 인생의 파멸을 강요당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신음소리는 그런 기회주의적 어용 지식인들의 귀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체제를 위해서 지난 날 ‘적극적’으로 공범자로서의 역할을 해온 지식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분명히 불의임을 알면서도 방관자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체제의 ‘수혜자’로 살아온 지식인도 무엇인가 생각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려는 조짐이 보이자 그런 부류 지식인들의 입에서 ‘대화합ㆍ타협ㆍ관용ㆍ아량ㆍ용사ㆍ이해ㆍ불보복ㆍ망각……’미덕이 소리 높이 외쳐지고 있다.
민주화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마치 민주화가 이루어지기나 한 듯이 정세를 호도하고 있음을 본다.
아! 지식인의 기회주의!
풍향계보다도 더 재빠른 변신!
우리는 광복 직후 시기의 친일파, 반민족 행위자들의 변신을 보았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몰락 후 어용 지식인들의 변신도 보았다.
지금은 축하할 때가 아니라 괴로워해야 할 때다. 지금은 준엄한 공리(公理)가 강조돼야 할 때지 얼버무릴 때가 아니다. 광주사태를 비롯해서 지난 7년간에 저질러진 모든 큼직한 사건들이 밝혀져야 할 때다. 그리고 그 책임이 추궁돼야 할 때다.
노신(魯迅)이 1929년에 쓴「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는 글이 있다. 그는 이 글의 제목에 관해서 본래 ‘물에 빠진 개(犬)는 때려야 한다’라고 하려다가 ‘너무 모가 나서 고쳤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중국 군벌들의 학정과 포악을 ‘관용과 타협으로 용서하고 과거는 잊어버리자’라는 임어당(林語堂)의 글「페어플레이를 하자」를 비판한 글이다. 여기에 노신의 그 글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기는 ‘아직 시기상조’인 듯하다. 그 글의 정신만을 노신의 말을 그대로 빌려 옮기자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요약하면, ‘물에 빠진 개’는 때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실컷 때려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건져준 사람에게 덤벼들어 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신의 글은 원래 익살로 이름난 바 있어 말대로 들을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의 말에는 오늘의 한국 지식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조건 관용과 망각만을 미덕으로 섬기는 듯한 어설픈 ‘민주주의론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늘 우리의 사태는 민중의 힘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필리핀’과는 다르다. 구정권의 죄악과 과오가 민중의 힘과 뜻을 바탕으로 한 신정권에 의해서 단죄된 ‘아르헨티나’와도 다르다. 그러기에 현실정치의 문제로서 타협과 화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나라의 지식인들은 오랜 잠에서 깨어난 민중을 무조건적 관용과 타협이라는 최면술로 다시 잠재우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학생과 민중이 독재의 나무를 흔들어 피의 대가로 손에 넣은 고귀한 열매를 어느 누구도 가로챌 수는 없다. 국민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책망을 들어야 할 곳이 이른바 언론기관과 언론인들이다. 지난날, 멀리는 유신체제와 지난 7년 동안에 걸쳐서 언론기관과 언론인들이 놓였던 고달픈 처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목탁을 자처하는 그들이 국민을 배신한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각 언론기관에서 민주주의적 자유언론을 위해서 싸우다가 쫓겨난 수많은 언론인들을 복권해주는 일에서부터 언론기관이 그들의 민주적 번신(飜身)을 전국민 앞에 입증해야 한다.
지금은 관용과 타협, 화합과 망각에 못지않게 옳고 그름을 가리는 준엄한 민주주의적 정의(正義)가 확립돼야 할 때다. 페어플레이는 페어플레이를 이해하는 상대에게 적용될 때 비로소 공정한 게임을 기대할 수 있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동아일보』, 198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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