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왔다(來了)!-노신과 그의 시대
10-4. 왔다(來了)!-노신과 그의 시대(1982년, 분단)
나는 노신(魯迅)의 글은 창작 못지않게 ‘잡문’을 좋아한다. 노신은 겸손했던 탓인지 자기의 사회시평을 ‘잡문’이라고 낮추어 불렀다. 그의 잡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이지만 그보다 훨씬 짧은「왔다(來了)!」라는 잡문도 짜릿한 맛이 있어 좋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노신의 글은 많이 번역 출판되어 있어 대개 읽고 있을 줄 믿지만, 혹시 아직 못 읽은 이를 위해서 인용해본다. 인용하기에는 조금 지루한 글이지만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면 참을 만하다.
라이러(來了)!
최근 들어 사람들은 “과격주의가 왔다!”고들 한다. 신문에서도 날마다 ‘과격주의가 왔다’(過激主義來了)라고 흥분하고 있다(과격주의는 공산주의를 말함 — 필자).
돈깨나 가진 사람들에게는 언짢은 말이다. 관리들도 자기 나라 노동자들을 경계하고, 러시아인의 감시에 야단인 듯하다. 검찰 당국도 관하기관들에 ‘과격당의 단체 결성 유무’를 엄중 탐사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다.
야단법석인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고, ‘엄중 조사’도 그럴 법하다. 그러나 한 가지 묻고 싶다. 과격주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웬일인지 그들은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 또한 알 도리가 없지만 다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과격주의’란 절대 올 리가 없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 ‘온다!’는 올 것이고, 그것이 무서운 일이다.
우리 중국인은 박래(舶來)의 어떤 주의(主義)에도 흔들리는 일이 절대로 없다. 그것을 말살하고 박멸할 힘이 있기 때문에! 군국주의는 어떠한가? 우리가 언제 제대로 외세와 싸운 일이라도 있는가! 무저항주의는 어떠한가? 우리는 유럽(제1차) 대전에 참가하지 않았는가! 자유주의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러한 생각을 말하기만 해도 처벌되고 입만 뻐끔 열어도 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인도주의는 어떠한가? 우리의 인신(人身)은 지금도 매매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어떤 주의도 중국을 어지럽게 할 수가 없다. 동서고금, 어떤 분쟁도 주의가 원인이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없다. 예를 들자면…….
그 모든 것은 ‘왔다!’가 왔을 뿐이다. 만일 온 것이 주의라면, 주의가 이루어지면 끝날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흥분이 단순히 ‘왔다!’때문이라면, 완전히 온 것도 아니고, 다 와버린 것도 아니고, 온들 어떻게 된다는 것도 분명하지 않다.
민국(民國, 1911년 신해혁명)이 성립하자, 내가 살던 작은 읍에서도 사람들은 재빨리 백기(白旗)를 올렸다. 그리고 남녀노소가 정신나간 듯이 야단법석이었다. 성내(城內) 사람은 시골로 도망가고시골사람은성내로도망왔다. “무슨일이일어났소?”
라고 묻자 그들은 허겁지겁 대답했다.
“뭔지, 하여간 왔다고 합니다.”
모두가 떠들썩 두려워하는 것은 ‘왔다!’였다. 나도 그랬다. 그 당시에는 다수주의(多數主義, 공화제의 뜻– 필자)가 왔을 뿐 ‘과격주의’는 없었던 때인데도 말이다.
노신의 이 짧은 글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글이 씌어졌던 시대적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타락ㆍ탐욕ㆍ무능ㆍ전제의 세계적 상징이던 만족(滿族)의 청조(淸朝)가 무너지고 한족(漢族)의 중화민국이 들어섰다. 질식할 듯 몸부림치던 중국인 지식인들은 이제부터 속임수가 없고, 순리가 통하고, 소수의 압제가 다수에 의한 공화적 정치로 대치되는 것으로 알고 가슴 뭉클했다. 중국 천지를 무겁게 억누르고 있던 비리(非理)와 역리(逆理)의 구름이 탁트이고, 그곳에 단순한 민중적 상식의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올 것으로 알고 기뻐했다. 노신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들을 배반했다. 그 혁명은 꼭대기의 사람을 바꾸었을 뿐, 정작 필요한 사회혁명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구ㆍ미ㆍ일 선진 제국주의 세력의 비호를 받는 군벌들이 한 사람의 황제를 대신해서 지배자로 들어앉은 것뿐이었다. 지식인의 자유와 정의는 말뿐이고, 민중의 무지와 빈곤은 오히려 날로 더해갔다. 혁명가(당시는 손문을 비롯한 중화혁명동맹회)의 피는 헛되이 흘려졌고, 그나마 잊혀가고 있었다. 천지에 다시 암흑이 깔렸다.
새 군벌 통치자들은 이 같은 현실에 대한 민중의 의식이 트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원세개, 단기서, 장훈(張勳), 풍국장(馮國璋) 등 군벌들의 통치 무기로서 ‘과격주의 왔다’가 등장한다. 그들의 절대적 통치에 불편한 것은 그 무엇이나 가릴 것 없이 ‘과격주의’의 탓으로 돌려졌다. 군벌 통치의 지적ㆍ이데올로기적 봉사를 맡은 지식인과 신문과 잡지(당시는 아직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없던 시대다)는 날이면 날마다 과격주의 ‘왔다’를 외쳐댔다.
왔다!……
왔다!……
무엇이 왔어?……
……하여간 왔다!……
이 상황은 노신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거의 절망 상태에 빠졌다. 이 상태에서 그는 해병장교(南京江南水師學堂), 광산ㆍ철도기사(江南陸師學堂附設 礦務鐵道學堂), 의사(日本仙台醫學專門學校)의 길을 버리고 문학의 길을 택한 것이다. 노신은 통치자들의 ‘대중몽매정책’에 대항해서 중국 대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것이 자기의 할 일이라고 깨달은 것이다. 이 같은, 중국 사회의 절망으로부터의 탈출(극복)이 노신의 문학적 출발에 결정적 동기가 되었다는 것은 어느 노신 전기나 한결같이 쓰고 있는 것이기에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는 칼과 대포, 측량기, 청진기와 메스를 놓고 펜을 들었다.
노신이 해군 제독이 되었다면 그 자신과 중국 해군은 어떠했을까? 그가 광산왕이 되고 철도 재벌이 되었다면 차라리 중국을 위해서 낫지 않았을까? 그가 이름난 의과대학 교수나 의사가 되었더라면 수많은 중국 민중이 5천 년의 신체적 질병에서 구제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중국 사회와 중국인의 문제는 물질적 쇠약함이나 신체적 질병이기보다는 통치세력과 그 제도에 의해서 길들여진 ‘정신적 무기력’과 ‘지적 몽매’라고 진단한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은 의사가 되기에 실패한 노신의 유일한, 그리고 가장 위대한 진단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역사는 그 진단이 옳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왔단 말인가?
5억의 ‘길들여진 인간’ 아큐(阿Q)가, 잠에서 깨어 눈을 뜨고 귀를 후비면서 입을 벌려, 무엇인가 외치려고 꿈틀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앞에 펜 하나밖에 든 것이 없는 노신이 보인다. 잠에서 깬 중국 민중의 입을 벌리려는 순간, 여기저기서 귀에 익은 소리가 더욱 무섭게 윽박지른다.
과격주의가 왔다!
과격주의가 왔다!
이것은 무서운 소리다, 누구도 되물어서는 안 되는 소리다. 되물으면 바로 ‘과격주의자’가 된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고 질문한 바보가 그 전날 어떤 꼴이 되었는가를 그들은 똑똑히 보아서 알고 있는 터다. ‘왔다!’면 온 것이지, 그 이상 물을 것도 알 것도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 온 것’이다! ‘하여간 온 것’이다!
겨우 무엇인지 어렴풋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아득히 들릴 것도 같았던 중국 민중은 겁에 질린 얼굴로 다시 그 자리에 드러누우려고 움츠렸다. 몽매하고 무기력한 중국인에게는 하나의 위대한 지혜가 있다. 그리고 영원히 잠드는 것이다. 깊이 잠든 민중을 군벌과 향신(鄕紳)들은 지극히 사랑할 만큼 자비롭고 너그럽다는 것을 중국인은 체험으로 터득한 지 오래니까. 그것이 바로 동시대의 임어당(林語堂) 같은 서양인의 사랑을 받는 문인들, 군벌이 치세우는 도희성(陶希聖) 같은 학자들이 달콤한 목소리로 민중의 귀에 대고 속삭여주던 ‘중국의 지혜’라는 것이었으니까.
왜 보려고 하는가? 왜 들으려 하는가? 왜 알려고 하는가? 왜 생각을 하려는가? 왜 입을 열려고 하는가? 왜 주먹을 쥐려고 하는가? 왜 생각을 하려는가? 모두 철없는 짓이다. 하나를 보면 둘을 보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소리를 들으면 뜻을 알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알게 되면 감정이 격하게 마련이다. 생각을 하면 절규하게 마련이다. 주먹을 쥐면 부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뛰면 몸을 다치게 마련이다. 모두 헛된 일이다. 그 모든 것은 힘 있는 사람과 학식과 덕망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나른한 몸으로 달콤한 꿈을 꾸어라. 꿈은 현실이다. 현실을 깨면 너에게는 꿈마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과격주의가 올지도 모르지 않는가!……
노신이「왔다!」를 쓴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도대체 “뭣이 왔단 말인가?”
기억도 아득한 한 시대 전 일이라 확실치는 않지만, 우리 주변에도 ‘왔다!’가 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뭣인지 크고 작은 일이 벌어지면 으레, 힘 있는 어른들과 학식 많고 덕망 높은 지식인들은 입을 모아 ‘왔다! 왔다!’라고 친절하게 우리를 깨우쳐주었다. 그럴라치면 또 으레, 신문과 잡지가(이때는 노신의 시대보다 발달하여, 라디오라는 것과 텔레비전이라는 문명의 이기까지 들러붙어) 하루 종일, 아니 1년 내내, 화성과 지구의 충돌 시간이나 다가온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하도 세상이 떠들썩하기에 좀체 동할 줄 모르는 지둔하고 무감각한 나이지만 왕년의 중국인처럼 부스스 잠을 깨어 귀를 기울였다.
왔다!
무엇이 왔어?
왔다!
뭔지, 하여간, 왔어!
금세라도 천지가 무너질 듯 소란스러운 소리의 홍수 속에서 간혹가다 들리는 말이 있었다. ‘의식’(意識)이라는비명소리였다. 더욱 귀를 기울여보니, 온 누리를 시끄럽게 하는 그 소리들은 ‘의식이 왔다!’는 것 때문에 가누어 들을 수가 있었다. ‘의식화’(意識化)가 왔다는 겁나는 소리도 들린다.
정신을 못 차리고, 넋을 잃은 듯, 세상이 시끄러울 때마다 몇 권의 책 이름이 들먹거려진다는 것도 차츰 알 수 있었다. 꽤 옛날 일이라서 지금은 그 책과 저자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우상과……』어쩌고, 『전환시대의……』가 어쩌고저쩌고 했던 정도의 어슴푸레한 기억밖에 없다. 글쓴이의 이름도 공자나 노자의 동시대 인물만큼이나 기억의 안개 속에 희미하다. 워낙 오래전 일이고, 나의 머리는 오랜 잠에 취해 있던 터이라 양해해주기 바란다. 그것은 어쨌든, 왔다면 의식이고, 의식 하면 루소도 아니고 헤겔도 아닌, 노신은 더군다나 아닌, 이름도 들어본 일이 없는 그『……과 이성』이니『……의 논리』니 하는 저서가 들먹여진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만이 뚜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책을 읽으면 뭔가가 온다는 것이었다.
책은 방방곡곡의 서가에서 거두어들여졌다. 온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무서운 병원균을 박멸하는 것과 같은 정열이었다. 지식인들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겁먹은 표정으로, 읽어보지도 못한 그 이름을 놓고 수군댔다고 한다. 많은 대학생과 지식인이 그 ‘병원균’에 감염되었기 때문에 격리되어 모진 치료를 받았다고도 들린다.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재판도 매일같이 열렸다고 한다. 그러자니 나라의 재정이 적지 않게 낭비되었으리라는 것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 왔다고 외쳐대는 이들은 왔다는 의식이 무엇이며, 어째서 그토록 태산이 명동해야 하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못하더라는 이야기였다. 그 사회의 이름은 ‘민주주의’였다고 한다. 민주사회의 시민이 민주사회의 원칙들에 관한 의식을 갖는 것이 어째서 죄가 되어야 하느냐를 이해하지 못한 나는 어느 날 전문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그분은 친절하게 나를 깨우쳐주는 것이었다. 그의 말인즉, 세상이 ‘왔다!’고 떠드는 그 책들은 다만 민주사회의 초보적 상식에 관한 평범한 내용이라는 것, 그 저자라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별로 배운 것도 없고, 놀랄만한 이론도 철학도 가진 것이 없는, 나나 별로 다름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분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단순히 세상의 일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마음이 괴롭지 않은 선량한 시민에게는 명명백백한 이야기밖에는 씌어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읽을 가치도 없다는 말이었다. 읽어봐야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책들이니 아예 읽어볼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친절한 그의 충고만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그래도 뭔가 미진한 느낌이었기에 한마디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야단들이지요? 건전한 상식밖에 아무것도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분은 발을 돌려 가려다 말고, 질문의 뜻을 알겠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바로 그 건전한 상식이 문제인 거지요.”
그러고는 한참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중국의 작가 노신의 글을 읽어본 일이 있소?”
나는 왠지 무시당하는 듯한 가벼운 반발심이 속에서 일어남을 느끼면서, “예, 한 두가지는……”하고중얼거렸다.
“그럼 됐습니다. 노신의 시대, 중국 민중에게 필요했던 것은 요란한 경륜이나 난삽한 이론이 아니라 다만 ‘건전한 상식’이었어요. 그리고 그 건전한 상식을 민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평이한 표현으로, 실례를 놓고 설명해주는 일이었어요. 노신의 작품에는 단 한 편의 글도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서양의 말에, 어려운 이론이나 철학으로 풀리지 않을 때에는 건전한 상식에 물어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당신도 아시지요? 그의 글들은, 민중에 대한 사랑을 갖지 않는 권력자나, 박사학위를 몇 개씩 가졌다는 이들이 들러붙어, 요사스러운 이론과 남에게서 빌려온 철학으로 토막내고, 비틀고, 뒤집고, 난도질할수록, 평범하고 착한 마음의 눈에는 더욱 그 뜻과 정신이 선명히 드러나 보였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것이겠지요.”
그는, 지금 한창 구설에 오르는 책들은 보잘것없는 것임을 강조하면서도, 시간의 낭비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한번 읽어봐도 무방하리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내부 비판을 겁내는 사람들
이런 긴 과정과 오랜 생각 끝에, 이런 계몽적 민주시민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나도 그 책들을 구해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무식할수록 잘 이해된다는 격려의 말이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합법적 절차를 거쳐서 출판된 책이라는 보장이 준법정신에서 누구에게도 뒤지기를 원치 않는 나의 용기를 돋워준 것도 적어야겠다.
나의 실망은 컸다. 밤을 새워 읽고 난 나의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고백해둔다. 허탈감도 대단했다.
“이럴 수가 있을까?”
나는 다 읽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내려놓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세상이 온통 나를 속인 것만 같았다. 공자의 말씀으로 말하자면, 우리 같은 범부야 생이지지(生而知之)할 만큼 영특하기는 고사하고, 학이지지(學而知之)할 만큼 깨우칠 줄도 모르는 둔재다. 그런 나인데도 그처럼 세상이 무너지기나 할 듯이 ‘왔다!’고 떠들어대는 그 책들에는 이렇다 할 만한 ‘의식화’될 새롭고 어려운 것이란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나 같은 배우지 못한 사람이 그러거늘 각 영역에서 이 나라를 주름잡는다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왔다!’ ‘왔다!’라고 법석을 떠는 것이 기이하게 생각되기만 했다.
나의 고민은 그치질 않았다.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 사실들을 놓고 이토록 온 누리가 시끄러울 때는 내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무슨 심오한 지식이라도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일까? 그 책을 읽거나 심지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문에 났을 정도라면, 아직 내가 깨우치지 못한 것이 있을 게 확실하지 않겠는가? 굉장한 조직을 가진 기관들이 그렇게 단정하고, 학식과 덕망을 아울러 갖추었기에 현란한 지위에 올라 있는 분들이 병원균에 닿은 듯이 치를 떤다면 확실히 오기는 온 것이 아니겠는가? 온 것이 뭣이냐?
그런 자기반성 끝에 다시 책을 들었다. 벌써 몇 밤을 읽고, 생각하고, 지새웠는지 모른다. 이젠 무식도 위안일 수가 없고, 요사한 이론에 병들지 않았다는 순박한 마음도 자랑일 수 없어 보였다.
이번에는 한 가지 한 가지 메모를 하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과연 무슨 의식이 온 것일까? 아니면 다만 ‘왔다!’가 온 것일까? 낱낱이 점검을 해볼밖에 도리가 없다.
처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민이 각기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불현듯이 아득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외국 영화의 한 토막이었다고 기억한다.
어떤 마을에서, 동네를 무척 시끄럽게 하던 청년이 주민회의 결정으로 마을에서 쫓겨난 후, 국가가 위기에 처했던 전쟁에 나가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전공을 세우고, 용약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제2차 대전 때의 일이다. 마을 사람들은 형식적이나마 이 용사의 귀향을 환영할 것인가를 놓고 회의를 열어, 표결에 붙였다. 만장일치일 줄 알았는데 개표 결과 한 표의 반대가 있었다. 모두 깜짝 놀란 것은 당연하다. 용사의 귀향은 ‘만장일치’로 환영해야 할 것이 아닌가? 영광스러운 훈장을 가슴에 단 지난날의 탕아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자랑스럽게 입장했다. 박수는 우레와 같았다. 그때, 용사의 아저씨가 단상에 올라가 조카를 힘껏 포옹하고는 군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까 여러분이 놀란 반대표는 내가 던진 것이요. 이 영웅을 맞는 기쁨이 나보다 더한 이는 없을 것이요. 그렇지만 나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만장일치는 싫소. 어떻게 모두가 꼭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단 말이오. 그러기에 나는 반대표를 던지고, 이렇게 만장하신 여러분의 누구보다도 나의 조카의 귀향을 환영하는 바요.”
모두가 두 번 놀랐다. 박수가 두 번 공회당을 흔들었다.
중국의 현대사에 등장하는 원세개는, 구한말에 12년이나 이 나라에 체류하면서 한국의 조정과 정사를 쥐고 흔들었던 흉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노신의 글에는 원세개의 작태가 동기가 된 것이 여럿 있다. 수많은 혁명가와, 당시 중국 민족의 가장 선량하고 애국적인 정열에 불타는 지식인들의 피로 이루어진 신해혁명의 함성이 가라앉기도 전에 원세개는 손문에 이어 민국총통이 된 지 3년도 못 되어서 황제가 되고자 했다. 그가 황제가 되기 위해서 우매한 중국 민중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노신이 미워했던 것은 시대 역행적인 황제제도의 복구 못지않게, 전국 400여 주에서 북경에 모인 ‘국민대표’ 1,993명이 1,993표의 찬성표를 던진 사실이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을 읽고 보니 결국 ‘일사불란’이나 ‘만장일치’는 반드시 미덕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또 결과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그 절차와 과정에 불순함이 없어야 하는 것도 비로소 깨우치게 되었다. 이 저자는 일사불란과 만장일치가 최상급의 미덕으로 추앙되었던 나라나 사회가 어떤 길을 걸었는가를 특히 힘주어 설명하려는 인상이었다. 파쇼 이탈리아, 나치 독일, 군국주의 군인 지배체제의 일본, 스탈린의 소련, 프랑코의 스페인, 장개석의 중국, 대외 의존적 소수 지배의 베트남 등 현대사에 명멸한 수없이 많은 실례를 그 속에서 읽으면서도 깨달음이 없었던 나의 몽매와 암우(暗愚)를 비로소 뉘우치게 되었다.
만장일치주의와 일사불란주의는 내부적 비판을 사갈시(蛇蝎視)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속에서 지적된 그 많은 만장일치주의의 지도자들은 관념주의를 좋아했다는 공통성도 차츰 알아차렸다.
상대적 가치가 있을 뿐, 절대적 가치란 없다는 것을 배운 것도 그 속에서였다. 절대화된 가치개념은 추상화 논리를 전제로 하는데, 그 결과가 국가지상, 민족지상, 질서지상, 안정지상 등 ‘지상주의’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배운 것은 적지 않은 수확이었다. 구체적인 ‘인간’의 ‘구체적’인 차이성, 개성, 행복과 염원 등 구체적인 요소들을 사상해버리고 추상화된 ‘관념적 존재’들을 숭상하게 될 때, 바로 그 사회는 그 주장하는 목표와는 반대로 분열되고, 타락하고, 창조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도 그 책이 나에게 가르쳐준 귀중한 교훈이었다. 한마디로, 다양성을 토대로 한 통일, 자율ㆍ자발성을 원칙으로 하는 복종과 지지의 중요성도 비로소 배웠다. 그 책들에는 바로 그와 같은 구체적ㆍ현실적인 사례가 무수히 열거되어 있었다. 나 같은 추상적 이론은 질색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아, 그렇다면 이것이 그토록 몰매를 맞는 ‘의식’이라는 것인가보다!
무슨 무슨 주의를 절대화하는 사람들일수록 그 행동은 의심스러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한 깨달음이었다. 한 시기전의 일이지만, 나라를 제일 사랑하고, 반공을 제일 강하게 부르짖던 지도자들이 있었다. 정의와 민주와 국민복지를 입버릇처럼 훈시하던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권력의 자리에서 추방되자, 그들이 틀고 앉아 있던 둥지에서, 현금 수천억 원, 토지 몇백만 평, 금송아지, 금병풍, 다이아몬드더미, 버스를 타고 달려도 한 시간이 걸리는 광대한 농장, 수십억 원짜리 저택과 별장, 남의 이름으로 돌려놓은 수천억 재산의 기업체ㆍ증권ㆍ사채, 도피된 외화, 네로 황제가 아연실색할 사치ㆍ방종ㆍ타락의 사생활 등이 드러났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 그토록 아름답고 숭고한 말과 그토록추악하고 범죄적인 행동의 뿌리를 이해하게 된 것도 그 책 덕택이었다.
진정한 의식은 오고 있는가
1930년대의 중국의 일이라고 노신은 쓰고 있다. 일본이 만주를 삼키고 화북(華北)을 말아먹어, 국토의 3분의 1이 일본의 손에 들어가고 있을 때, 장개석과 그 지도자들은, 그리고 그 추종자인 학자ㆍ교수ㆍ문인들은, 중국 국민의 반일감정을 마비시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 반일적인 행동은 ‘반국가적’로 처벌되었다. 외국에 대한 비판자나 행위자는 ‘국적’(國賊)으로 다루어졌다. 그들의 그 같은 이데올로기와 법률과 정책의 철학적 명분이 다름 아닌“과격주의가 온다!”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과격주의가 온다!”의 한마디는 모든 반상식적인 사고와 행동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영효(靈効)를 발휘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거꾸로 서 있는 시대상을 그의 작품은 너무나도 실감나게 말해준다.
노신의 문학을 문학으로 이해할 능력이 없다 보니 그 정신인들 이해할 수 있으랴마는, ‘왔다!’식 사고방식에 마비된 중국 민중의 인식을 깨우치려는 뜻이었던 것만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현대적 표현을 빌리면 ‘의식화’라고나 할까.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맑은 의식을 갖게 된 민중이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비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민중의 높은의식을 환영하고, 사회정신으로 부추기고 아낄 수 있는 제도가 민주주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의 큰 수확이었다.
지나간 한 시대에, 이 나라에서 ‘왔다!’언론의 기수를 자처하고, 글을 썼다 하면 ‘왔다!’로 시작하여 ‘왔다!’로 끝나는 C라는 신문의 S라는 논객이 있었다고 들었다. 베트남전쟁 시절이 그 논객의 가장 화려한 활동기였다고 한다. 베트남 사정을 만고불역(萬古不易)의 모범으로 설정하여, 마치 노신 시대의 ‘왔다!’주의자들처럼 ‘왔다!’주의가 철저하지 못해서 베트남이 망했다고 주장하는 ‘왔다!’유일사상의 신봉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큰 이변을 보았다. 나라의 경제를 밑뿌리에서부터 흔들어놓은 어떤 여인과 권력자들에 의한 무슨 천문학적 숫자의 금융부정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사건과 관련된 높고 낮은 모든 사람은 지난 날 ‘왔다!’를 직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정치, 사회, 경제, 도덕, 윤리, 안보 등 한마디로 국가적 존재의 바탕이 되는 권력자들에 대한 ‘신뢰감’이 전면적으로 휘청거린다고 야단들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왔다!’라고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변이라는 것이 다름 아니라 그 C신문의 S씨의 사태 분석이었다.
이 저명한 논객은 신문 한 면을 이러쿵저러쿵, 좍 써내려간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베트남의 비극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바로 이번 사건과 같이 권력자들의 부패와 부정과 타락이 그 사회의 중추부를 병들게 한 것이 베트남의 오늘을 만든 최대 원인인 것이다.”
낱말 하나하나의 정확한 인용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결론이었다. 그것을 읽으면서 이것은 확실히 이변이라고 생각했다. 이 고명하고 정열적인 논객은 지난 2,30년 동안, 모든 사회적ㆍ국가적 비극은 오직 ‘왔다!’주의 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만 주장했던 분이다. 이런 희대의 이론가가 설마 정신에 이상이 생겼을 리는 없는 일이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도 비로소 ‘의식’이 싹튼 것일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진실로 위험한 것은 ‘왔다!’를 외치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왔다!’를 앞세우고 오는 바로 그것들이 위험한 것임을. 이 논객은 자기논리의 자가당착속에서 깨어난 셈이다.
‘전환시대’가 어쩌고 ‘우상과 무엇’저쩌고 한 그 책들은 바로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왔다! 만세” “의식화 만세”다.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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