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일본 재등장의 배경과 현실」

한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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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1-2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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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일본 재등장의 배경과 현실」(1971년 <창작과 비평>, 전논)


 


문제에 앞서 생각해야 할 일들

주한미군의 감축은 마침내 현실문제로 제기되었다. 1945년 9월 8일, 미군 선발대가 일본 점령군의 일부로 인천에 상륙하고 6ㆍ25를 거쳐 증강을 계속하면서 한국 안보체제의 밑돌이 되어온 지 25년 만에 한ㆍ미 간의 군사협동체제는 분명히 중대한 새로운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2만이라고도 하고 3만이라고도 하는 주한미군의 일부 병력 축소를 ‘감축’이라고 할 것인지 ‘철수’라고 할 것인지에 관해서 정부는 몹시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을 둘러싸고 전개되어온 극동의 전반적 정세변동과 이에 장기적으로 대응ㆍ대비해나가려는 미국의 ‘국가정책’의 추이를 살펴볼 때, 그와 같은 표현의 의미론적 차이에는 별로 의미가 없는 듯싶다. 감축이라면 다소 안심하고, 철수라면 야단이라는 그런 자의적인 해석으로 현실을 호도하기에는 너무도 뚜렷하고 돌이킬 수 없는 미국의 대아시아ㆍ대극동 정책의 변화가 엿보인다.
문제는 아시아 전체는 고사하고라도 70년대의 극동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냐 하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상황판단이다. 이것 없이 미국의 대한정책의 전개방향을 점칠 수는 없으며, 따라서 한국이 그 위에서 움직여갈 극동정치라는 좌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도 없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나 한 국민이 서 있는 위치는 전체적 정세의 변동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객관적인 자기위치의 인식’없이 한 정부나 지도자나 국민이 내일의 생존을 기약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국제사회에서의 ‘객관적인 자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국민에게 ‘주체적인 자기’가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7월 10일 주한미국대사가 한국 정부에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일부 철수’(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지만)를 통고했다는 사실이 발표된 이후에 나타난 이 사회의 반응은 이 국민이 얼마나 객관적 정세변동에 어두웠고 그 결과로서 사고와 행동에서 얼마나 심각한 ‘주체의 상실’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역력히 보여준다.
미군 감축은 확실히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국민 전체의 정세변화에 대한 ‘불감증’과 ‘주체상실증’이 아닐까 한다.
필자에게 주어진 논제인 “미군 감축과 앞으로의 한ㆍ일 안보관계의 전망”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생각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려는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이 있다.



……그러면 휴전선의 전신(前身)인 삼팔선을 만들어 우리에게 동족상전(同族相戰)의 비극을 던져준 미국은 당연히 휴전선이 없어지는 날까지 우리와 운명을 같이해야 할 의무가 있고 빚이 있다(정일형 국회의원ㆍ신민당안보위장,「한국과 미국─시련의 전환기」, 『동아일보』, 7월 11일).




이것은 정치가로서, 또 한 정당의 지도자로서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려는 뜻으로 한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소위 지도자들과 학자들과 일반국민이 이른바 ‘한미혈맹’이니 ‘운동공동체’니 하는 슬로건적인 사고방식으로 미국을 보고 자기보존을 의탁해왔는가 하는 점은 생각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한ㆍ미 관계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오늘날(옛날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국가와 국가의 관계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도 눈이 떠 있어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강대국과 약소국의 냉전시대 특성인 종적 관계란, 약소국 국민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과 같은 강대국의 “애타심에 있기보다는 강대국의 독자적 이해판단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어두웠지 않았나 한다.
“……또한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고전하고 있을 때 한국은 흔연히 주한미군보다도 많은 병력을 베트남에 파견하여 지금도 싸우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주한미군마저 대폭 철수시키려 하는데 이러한 처사는 신의의 배반이며 우호의 반감(半減)을 뜻하는 몰지각한 행동이다(같은 곳, 진한 글씨–필자)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만 베트남전에서 입장이 곤란해지자 개인과 정권과 체제의 생명을 걸고 미국의 동맹자로 싸워온 티우나 키 등의 베트남 정권에 대해 베트콩과의 연립정부 수립을 통한 베트남 내란 해결방안을 강요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공식태도를 한번 상기하면 충분하지 않겠나 생각된다.
이런 말도 들린다.



……로저스가 예산문제로 감군(減軍)한다지만 주한미군에 소요되는 돈은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박준규(朴浚圭) 의원(공화당) 국회본회의 안보질의, 『한국일보』, 7월 12일.『동아일보』기사는 ‘조족지혈’대신에 “주한미군 연간 비용 10억 불은 극소액이다”로 되어 있다).




어쨌든 미국이 얼마나 경제적 난관에 처해 있으며, 미국 의회가 얼마나 군사비 삭감에 ‘단군 이래’가 아니라 ‘와싱톤 이래’의 대정부투쟁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발언이다.
한국 국민이 미국 원조라면 으레 수억 달러 또는 수십억 달러로 생각하게 된 이른바 ‘경제수치 치매증’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연간 10억 달러의 돈이 미국 의회에서 지난 몇 해 동안 얼마나 큰 정치문제가 되고 행정부 군사정책에 대한 압력이 되어왔는가를 모르고는 주한미군 감축문제의 전반적 의미도 파악하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추후에 나올 문제와 이에 대한 주체적 대비 방법에 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겠다.
몇 가지 신문보도를 훑어보기만 해도, 미군감축 문제가 아니더라도 대체로 우리 지도자들이나 국민들이 ‘근시에 난시까지 곁들인’안식(眼識)으로 세계정세와 대한민국의 위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와 같은 정치이데올로기 만능의 사고체계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국제정세를 보는 이와 같은 눈이 미군 감축설의 현실화와 동시에, 바로 그 순간에, 마치 무슨 조건반사와 같이 일본을 향하게 한다.
이 나라의 책임을 맡은 지도자들이 벌써 공언했고, 국민들도 자기보존의 일종의 본능과 같은 충동으로 일본과의 군사적 제휴 또는 군사동맹을 생각하는 듯 보인다. 이른바 ‘한ㆍ미ㆍ일 안보체제’라는 것이 이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한ㆍ일 군사동맹’구상도 가끔 들려온다. 미국이 한국 방위(정확하게는 한반도정세의 현상유지)에 관한 책임분량을 줄이고, 일본에게 그 분량만큼 넘겨주려고 생각한 것은 요새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이른바 ‘닉슨 독트린’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원초적인 발상은 한국전쟁 발생 직후에 체결된 미ㆍ일 강화조약에서 이미 싹트고 있음을 본다.
미국 정부는 케네디 대통령 시대에 이미 이른바 ‘신축성 있는 대응전략’또는 ‘유연대응전략’의 편성으로 주한 지상병력과 핵전략을 일본과의 유기적 협력체제로 개편하는 구상을 완성했다.
가장 구체적으로 그것을 대표하는 발언으로는 한ㆍ일 국교정상화의 군사적 의의를 강조한 다음과 같은 당시(1964)의 길패트릭 미 국방차관의 언약을 들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일본이 장차 아마도 한반도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을 방위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감시전력—공격전력이 아니라 방위력—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는 한반도에서 다시 분쟁이 일어나더라도 미국은 미국의 지상군 사단을 증강할 필요 없이 이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世界週報』, 1964.5.7).




미국 정부의 군사 전략가들이 오늘날 일본 군사력을 증강ㆍ현대화시켜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책임을 분리시키려는 대아시아정책은 이미 20년의 역사를 가지는 것이다. 그 가장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은 한ㆍ일 국교정상화라는 것을 앞서의 길패트릭 국방차관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는 한일 양국정부의 의도는 어찌 됐든 그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추진하는 원동력이 된 미국으로서는 경제ㆍ정치적인 성격과 아울러 군사적인 ‘기본계획’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 식민지관계를 청산한 지 25년 만에 사실상의 어떤 군사적 관계를 논해야 할 역사 반복의 시점에 다다른 것같다.
25년 전에는 상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중국 대륙국가의 탄생과 강화, 한반도 분단민족의 대립, 자본주의 세계에서 일본의 제3위적 경제강국화, 미국의약 100년에 걸쳤던 대아시아 세력확장정책의 단계적 축소정책,특히 베트남전을 고비로 한 미국 대외정책의 철저한 재평가, 중국 대륙정권을 상대로 한 미국ㆍ일본의 장기적 화해노선의 긴급성 등으로 도식화할 수 있는 아시아 및 극동정치의 격동 속에서 한반도의 정세는 형성되어가고 변화해가고 있다.
일본과의 문제를 한국의 안보라는 초점 주위에 집약한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보다 기본적이고 선행적인 여러 조건의 객관적인 고안 없이는, 마치 앞서 본 바와 같은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하던 ‘자기중심적’이고 이데올로기 일변도적인 난시적(亂視的) 사고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1950년대를 ‘냉전체제’의 시대라고 한다면 60년대는 세계적 규모의 ‘냉전해소’또는 ‘군사적 양극화와 정치적 다원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전환의 시대’라고 한다. 물론 모든 국부현상이 이 특성을 따랐다거나 따른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한국과 한반도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국가적 안보라는 문제를 50년대의 냉전시대적 사고방식으로 재단할 수는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된다.
반공주의와 ‘반공전초(前哨)’를 유일한 국가생존의 이데올로기로 내세우며 미국과의 ‘혈맹관계’가 ‘영원한 형제애’로 지속될 것이라는 사고는 너무도 단선적이고 불모적이 아닐까 한다. 50년대ㆍ60년대의 시대적 성격의 변화는 이제 70년대에서 우리의 자세 변화를 아울러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70년대의 극동은 중공, 즉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 미국의 앙땅뜨 모색의 시대라고 봐야 할것 같다.
여기에 소련까지 곁들인 중ㆍ미ㆍ일ㆍ소의 강국정치가 현재의 불균형상태를 안정시키려고 모색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한반도의 위치가 정해지지 않을까 한다. 주위에서 형성되고 조성되는 이들 강대국들에 의한 파워 폴리틱스의 변화하는 국면에 처해서 분단된 남ㆍ북한 민족이 또 한 번 민족상잔의 비극을 치르지 않으려면 이들 강대국들의 의도와 능력과 제약을 명찰(明察)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쩌면 70년대는 1800년대 말기에서 1900년대 초기의 이 민족과 한반도를 싸고 전개된 역사와 흡사하게 재구성되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청국(淸國)이 강하면 청국을 섬기고, 노국(露國)이 세력을 확장하면 통치자는 이를 불러들여 아관(俄館)에 몸을 피하려 하고 일본이 득세하면 김옥균(金玉均)과 개화파 세력의 삼일천하가 시도되고, 그러다가 꿈이 깨어질 때 미국에 청원하면 이미 ‘가쯔라—태프트’비밀협정이 있었다는 식의 우리 조상들의 불각(不覺)과 몽매에서 70년대의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찾을 만큼 현명해야겠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통치자들의 잘못은 언제나 대중의 희생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서 비로소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안보관계라는 문제를 고찰할 수 있다.

문제의 제기

withdraw라는 말로 표현되는 미국의 한국 방위책임 감축과 그에 따른 소위 ‘한ㆍ미ㆍ일 안보체제’라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검토되어야 할 것 같다.
① 미국은 왜 방위책임을 줄이려 하는가?
② 미국이 구상하는 미ㆍ일 대한(對韓)공동안보체제란 어떤 것인가?
③ 일본 국민과 정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④ 일본의 아시아정책 속의 군사정책은 어떤 것이며 그 성격ㆍ능력과 제약 및 계획은 어떠한가?
⑤ 일본 군사력은 한반도를 지향하고 있는가?
⑥ 한반도 정세의 제반 ‘상황’상정과 일본의 군사적 관련 형태의 가능성은?
⑦ 선행하거나 수반되는 문제점은 없는가?
이와 같은 순서로 문제를 관찰하는 방법으로서 필자는 될 수 있는 한 공식 기록이나 자료ㆍ문서들을 많이 인용하려고 한다. 많은 공식 기록이나 자료의 인용이 문제를 관찰하는 객관성이나 타당성을 자동적으로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독자에게 제시함으로써 읽는 사람은 보다 넓은 문제파악에 도움이 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 필자와 반대 내지는 상이한 독자적인 관찰과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의도

대아시아정책의 수정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감축은 닉슨 현 대통령의 발상은 아니다. 앞서 한일협정 체결에 즈음해 당시의 길패트릭 미 국방차관이 언급했듯이, 대한 군사책임의 감축은 케네디 대통령의 광범위한 미국 대외정책 재검토에서 비롯된다.
이것을 잘못 알면 미군 철수나 감축 결정이 오랜 미국정책의 전개선상의 한 단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그것은 이제 민주당이나 공화당 가운데 어느 쪽이 미국에서 집권하든, 하나의 돌이킬 수 없는 장기정책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따라서 이른바 닉슨 독트린이라는 것은 그와 같은 장기적 대외정책 수정의 출발점이기보다는 그 결과이며, 집약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한국정책에 수정 또는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보다 큰 세계정치의 현실파악 및 새로운 대응정책 가운데 구체화하는 대아시아정책의 수정이라는 선행적 상황과 조건 위에서 파악된다.
닉슨 대통령은 1969년 1월 취임 직후 베트남전쟁으로 촉발된 미국 국내정치의 대립ㆍ분열 및 사회불안 상태를 해소하고 특히 아시아정책의 재검토를 시작했다. 그 기본적 자세는 아시아지역 국가의 자주적 군사ㆍ경제 노력을 강조함으로써 아시아 각국에 대한 오버코미트먼트(過剩介入) 상태를 축소하고 보다 높은 국제 정치ㆍ군사의 차원에서 미국의 프리핸드(행동의 자유)를 넓히려는 것이다.

중공을 지향하는 닉슨 독트린의 양면성

닉슨 대통령 자신은 이 기본자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70년대의 새로운 전략으로는 평화의 전략이 필요하며, 나는 미국의 입장에서 효과적인 평화전략을 수립할 것을 약속한다. 그것은 해외에서 미국의 공약은 신중하고 또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것만에 한정하여, 다른 자유진영 국가들이 스스로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하되 미국이 이전과 같이 그 임무를 떠맡지는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전국 주지사회의에서의 연설, 1969.9.1).




해외공약에 대한 이와 같은 닉슨 행정부의 정책 재검토를 우리와 직결된 아시아정책의 분야에만 초점을 좁혀본다면 그 핵심은 일본과 중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닉슨의 아시아정책은 ① 베트남전쟁 종결을 위해 종래의 베트남 정책을 단계적으로 수정한다. ② 아시아국가들의 자주국방 강화로 미국의 부담을 축소한다. ③ 아시아 우방국가들의 집단협력체제 강화에 일본의 지도적 공헌을 증대한다. ④ 중공과의 접촉범위를 점차 확대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어렵지만 장기적인 미ㆍ중 관계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로 요약된다.
미국의 장기적 아시아정책의 핵심은 이미 사실상의 정치ㆍ경제ㆍ군사 및 사상ㆍ문화 면에서 강대국화한 중공과의 ‘세력관계의 안정’을 모색하는 데 있다.
닉슨 정부는 이른바 닉슨 독트린을 구체화하는 단계에서 종래의 대중공 자세를 대폭 완화했다. 즉 그 후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다시 중단되기는 했지만 1969년 11월 20일 2년 만에 미국과 중공은 바르샤바에서 미ㆍ중 대사회담(158차)을 갖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에 앞서 미국 정부는 대중공 여행ㆍ무역 제한조치를 대폭완화하고(7월 21일), 대만의 국부(國府)정권 보호의 상징적ㆍ실제적인 조치였던 제7함대의 대만해협 경계 규모를 축소했다(12월 24일).
그러기에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베트남전쟁을 끝낸 뒤의 미국이 일반적 한국인의 사고로는 상상도 못 할 어떤 대중공 조치를 발표한다 해도 놀라운 일은 못 된다.
미국의 현재 대중공정책을 요약하면



① 중국 대륙 주변의 미국 영향하의 국가들을 묶는 대중공 군사포위망의 구성ㆍ강화.
②‘변경’반공국가ㆍ지역의 국내 경제ㆍ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통한, 일본을 중심으로 한 비공산지역의 항구적 구축.
③ 이와 같은 중공대항체제의 유지 과정 속에서 미국의 장기적인 대중공 정치적 접근.



이것을 순군사전략적인 국면에서 본다면, 미국이 여태까지 중요시해온 재래식 국지전이나 그 이하의 유격전 같은 것에 대처하는 능력은 주로 그 당사국에 지워지며 미국은 주로 전략적 핵무기의 차원에서 중공을 억제해나가려는 데 높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한미 안보체제의 여러 측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보호의무는 두 가지 법적 근거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나는 한미 방위조약이고, 또 하나는 유엔 결의에 의한 결의 발의국 및 유엔군 총사령관 국가로서의 그것이다.
우리는 이 모두가 법적(조약)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의무를 영구히 불변하게 규정한 것으로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은 미국의 법적ㆍ정치적 의무는 오히려 그 의무를 제한ㆍ축소ㆍ폐기하는 데 용이하게 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1) 미국 방위의무의 법적 한계

1) 한미 방위조약의 일방성
한국 방위의 방패로 믿고 있는 한미 방위조약은 한국 측의 권리보다 미국 측의 군사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권리가 훨씬 많다. 그것은 한반도정세의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미국의 집약적 의사표시다.



제1조: 당사국은 관련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라도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고……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갈 것을 요구한다(외무부 발행『조약집』, 진한 글씨–필자).




이것은 조약목적인 북쪽으로부터의 어떤 무력행사에 대항하는 것을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에 의한 여하한 도발이나 분쟁조성의 가능성도 사전에 방지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현상유지 목적을 수행하는 군사적 보장은 다름 아닌 주한미군사령관(명목상 유엔군사령관)에 의한 대한민국 작전권의 장악이다. 6ㆍ25 직후에 체결된 소위 대전(大田)협정과 그 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과 이승만 대통령 사이에 교환된 각서로서 대한민국 군대의 작전권은 유엔군사령관을 겸하는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조약의 비준서를 교환할 때 기록된 미국 측의 ‘일방적인’양해사항이 있다.



미국은 전시(前示) 조약 제3조에 있어서 어느 당사국도 타 당사국에 대한 도발되지 않은 외부로부터의 무장공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당사국을 원조할 의무가 없으며……(외무부 발행『조약집』, 진한 글씨–필자).




진한 글씨 부분의 뜻은 미국이 남쪽에 의한 무력도발 가능성과 그로 인한 만약의 분쟁발생 및 분쟁에 본의 아닌 법적 개입을 세심하게 회피하려 하고 있다는 분명하고도 강력한 의견표시다. 즉 북쪽의 공격이 있더라도 그것이 남쪽의 선제행동에 의한 것이거나 도발에 의한 것일 때는 군사적 보호의 의무를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조약에 부기된 양해사항의 후반부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또 대한민국의 행정관할권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미국이 인정한 영토에 대한 무장공격의 경우 이외에는 미국이 한국에 대한 원조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해석할 아무 조건도 없다고 이해한다(같은 글, 진한 글씨–필자).




진한 글씨 부분은 이 조약 체결 당시의 휴전선 이남 지역에 대한 책임은 지되, 만일 한국이 어떤, 미국이 합법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방법과 수단(즉 무력행사)으로 추후 획득할지도 모를 영토나 지역에 대해서는 책임을 안 지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휴전 당시의 상태를 미국으로서는 ‘현상유지’하고 싶다는 것이고, 모든 무력에 의한 대북괴 행동을 사전에 억제하겠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한미 방위협정의 이중ㆍ삼중의 일방적인 미국 측 ‘안전장치’는 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책임을 최소한도로 줄이려는 정책이 오늘에서야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미 휴전 때부터 확고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1ㆍ21사태와 동해지구 공비 대량투입 사건 및 최근 서해 방송선 피폭(被爆) 사건 때마다 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국군 작전권의 일부 이양 요구마저 미국 정부가 거부하고 있는 것도 이 현상유지 정책의 일부라고 해석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 상원의 타이딩스 의원이 상원에서 증언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미 방위조약은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원하는 미국정책의 문서화라고 할 수 있다.

2) 유엔군으로서의 의무와 권리
주한미군의 또 하나의 법적 요소인 유엔군 및 유엔군 최고사령 관국으로서의 자격은 유엔이 유엔군 창설결의를 지속시키는 때까지의 것이다.
1950년 7월 7일, 유엔은 한국전쟁 발생 이후 제4차 안보이사회를 소집하고 미국이 임명하는 사령관 휘하에 통합군사령부를 설치하여 유엔 가맹국이 제공하는 병력 기타 원조로 통합ㆍ사용케 하고, 작전 중 참전 각국의 국기와 함께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결의를 가결했다.
이 결의는 그에 앞서 취해진 유엔의 한국전 개입결의가 소련 대표가 안보이사회에 결석 중이었던 탓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우연성’과도 곁들여 유엔 내의 정세변화에 따라 총회가 취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 탄트 유엔 사무총장은 1967년 가을 주한유엔 군사령부가 유엔군의 군사적 실정에 관해 과거 7년 동안 한 번도 총회에 보고한 바 없다고 말함으로써 주목할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2) 미군 철수의 한계
그러나 조약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할 수 있는 가능성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여러 가지 요소가 교차하는 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이 한계점은 한국의 군사적 안전을 위한 marginal effect다(필자는 이것을 한계효용적 역할이라고 한다). 미군 감축이라는 너무나도 큰 충격 때문에도 그렇거니와 거의 분석되지 못하고 있는 이 한계효용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성립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미국은 주한미군을 가능하면 전부라도 철수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방위조약이 존속하는 한, 그리고 유엔 결의가 번복되지 않는 한 한국 방위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한반도의 분쟁 재발을 방지하고 이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은 상징적인 ‘미군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에 대한 군원을 감독하고 또 (있을 리가 없지만) 어떤 대북도발 행동을 견제하는 데 충분할 만큼의 군사적 병력과 기구의 유지를 원할 것이다.
오늘날 실질적으로는 유엔군이 미국 군대만인 실태이지만 유엔 결의가 존속하고 또 미국이 한국의 이용도를 인정하는 한, 유엔군 사령부로서의 기구와 요원은 남겨야 한다. 한국 측은 만일 견제적이면서 보호적인 효과를 발휘할 만한 것으로 판단되는 최소한의선 이하로 미군 병력과 기구가 축소되면 당연히 자주국방의 견지에서 현재 미8군사령관(유엔군 총사령관)에게 양도한 국군 작전권의 환원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미군이 계속 한국에 주둔하면서도 작전권을 환원하지 않으려면 바로 이 ‘최소한의 적정 병력 및 기구’는 유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평가된다. 그 수준이 얼마일지는 군사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산출능력 밖에 속한다. 그러나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신문보도들이 몇 년 후에는 5,000명 선까지 감축한다는 등의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은 이런 논리에서 수긍이 전연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상태를 지속하다가도 미국이 끈덕지게 시도하고 있는 중공과의 고차원의 정치적 상황 조성이 무르익었다고 생각될때 어떻게 할 것인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너무도 저차원적인 순 군사면에서 1만 명, 2만 명을 따지고 소총 몇천 정 추가원조니 뭐니 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 항상 잊지 말아야 할 정치적인 국제정세에 대한 통찰력의 필요성이다.
한미 방위조약은 우리가 영원히 바라더라도 미국의 세계정치라는 넓고 높은 마당에서의 정책변화에 따라서는 일방적인 1년 전 통고로 폐기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3) 대중공정책의 긴요성
한국이 지니는 중공 포위 군사기지망의 최북단 기지 역할은 미국의 대중공정책의 수정에 따라 양면으로 해석되고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 양면적 작용 또는 기능은 다시 정치적 차원과 군사적 차원으로 분류된다.

1) 정치적인 차원에서
① 단기목표인 중공 억제정책, 즉 현 정책하에서는 한국은 일본과의 유대관계를 통해서 북한과 중공을 상대로 하는 극동의 서방 정치권을 구성하는 플러스적 기능을 행사한다.
② 장기적 목표인 대중공 세력권의 재조정 단계에 들어서면 중공이나 소련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간주될 수가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 보다 높은 차원의 극동세력권(또는 그밖의 어떤 명칭으로 부르든 실제적 의의는 마찬가지지만)의 재조정 작업에서 한국(남한)이 대만과 마찬가지로 중공이나 소련을 상대로 하는 어떤 국제 정치의 흥정 대상이 안 되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즉 이 단계에서는 미국이 한국을 ‘부담’으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이 70년대 후반 또는 그 후 시대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한 가지 가능성이다.

2) 군사전략의 차원에서
① 중공의 핵군사력이 현재와 같이 미약한 단계에서는 한국은 미국의 대북한 및 대중공 핵공격기지의 역할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는 한, 한국의 미국정책상의 지위는 최우선적인 고려순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여태까지의 한국의 미국전략상 지위였다.
② 그러나 만일 중공의 핵공격력이 현재의 속도로 급속히 강화될 때, 미국의 전 극동 군사전략 구조는 따라서 수정되며 사실상 이미 수정되었다는 것은 미국 당국의 여러 가지 발표가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전략은 한국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미지상군의 주둔으로 말미암은 피해를 없애고, 그 대신 공ㆍ해군만에 의한 전략핵무기의 사용 등을 포함하는 비지상전쟁 전략인 것으로 이해된다. 미군 감축의 뜻이 여기서 부합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 극동정책ㆍ전략의 수정에 따라 미국 정책서열상의 한국의 위치도 변화한다. 금년 11월에 있을 의회 선거전략은 물론, 한국 장기주둔에 대한 미국 국민의 반대감정, 매년 10억 달러의 주둔비 문제, 50년대ㆍ60년대의 ‘세계의 경찰관’적 역할을 기피하려는 전반적 정세변화와 아울러 전개되고 있는 극동정치의 변화 속에서 미국의 한국 방위책임량을 경감해 가려는 동기와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의사표시가 즉 1969년 11월 17일 “한국의 안전은 일본의 안전에 긴요하다”를 선언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사토(佐藤) 일본 수상의 공동성명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오끼나와(冲繩)의 일본 반환과 함께 1972년부터는 한국에 대한 미ㆍ일 공동책임체제가 공식적으로 선언되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한국 방위책임의 축소 의도는 1969년 8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의 방미회담 끝에 나온 닉슨 대통령의 발언에서 이미 그 윤곽이 드러났다.
박–닉슨 공동성명은 앞서 검토한 바와 같은 현상유지만을 위한 한미 방위조약에 의거한 미국의 한국 방위책임을 강조했지만, 박대통령 환영만찬회에서 닉슨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한국은 막대한 군사비의 중압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타국의 원조 없이도 자립할 단계에 이르렀다.
……미국은 앞으로 한국지역에서의 긴장완화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닉슨은 이 연설에서 한반도의 긴장조성을 가급적 회피할 것과, 그럼으로써 한국의 자체방위 노력의 증대에 따라 1년 후에 발표될 미군 철수를 완곡하게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말하자면, 미군 감축계획은 그 회담에서 한국 측에 밝혀지고 금년 7월까지 그 준비를 위한 예비기간이 주어졌던 것으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1년 동안 한국에 대한 미ㆍ일 공동책임계획은 구체적으로 짜여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한국 안보책임 분담

닉슨 정책의 첫 시험

『와싱톤 포스트』지가 평했듯이, 한국에 대한 미군 군사책임의 감축 결정은 이른바 닉슨 독트린의 시금석이 되었다.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 안보책임을 분담케 하는 이 70년대의 미ㆍ일 대한 안보공동체는 앞으로 42개국에 걸쳐 있는 미국의 군사책임을 점차로 줄여나가려는 미국정책의 한 프로토타이프, 즉 원형 역할을 할 것으로 믿어진다. 그러한 만큼 이 테스트 케이스로 한국이 선정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 결정의 전제조건이 되었던 제반 상황을 살펴보면,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추구하려는 한국 안보체제의 성격과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① 미국의 아시아 방위망 가운데서 한반도가 베트남 다음가는 가장 위험한 잠재적 폭발지점이라는 인식이다. 푸에블로 호, EC 121기(機) 사건을 비롯해 분단국가의 대립체제 사이에 지속되는 민족에네르기의 핵융합적 폭발에 미국은 다시는 단독으로 소방수의 역할을 맡지 않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② 아시아지역의 어느 미국 방위선상의 취약점을 보아도 한국처럼, 경제적 강국이 된 일본 같은 강력한 후견국을 근거리에 갖고 있는 국가가 없다는 사실이다. 한 국가의 안보에서 순군사적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종합적인 국가안보 보장이란 보다 큰 경제적 안정과 향상에 토대를 둔다고 생각할 때 일본의 역할은 한국의 경제와 경제를 통한 군사태세의 강화라는 간접적 책임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③ 일본의 경제권 확대 및 시장 확대 정책에 이미 한국은 전체적으로 편입되고 분야별로 강력히 계열화되었다. 미국의 군사책임의 일부를 분담하는 반대급부로써 일본은 한국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④ 일본을 미국의 포스트 베트남 대중공군사체제 속에 더욱 구조적으로 강력하게 편입할 수 있게 되었다. 오끼나와의 일본 반환은 반환 후 오끼나와 미군기지의 이용조건이 모호함으로써(계획적인 것이지만) 사실상 ‘일본 전토의 오끼나와화’현상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끼나와 반환 합의와 동시에 미ㆍ일 간에 결정된 대한 공동안보 책임체제는 그 체제 기능 대상인 한국을 중계점으로 하여 미ㆍ일 군사체제를 일체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⑤ 이것과 결부하여 중요한 사실은 일본의 군수산업을 본격적으로 소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1972년부터 시작되는 일본의 제4차 방위5개년계획은 현대무기의 총 국유화를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의 군사적 수요의 적지 않은 부분이 일본 군수산업의 고객이 되리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⑥ 일본 자체의 군사력 강화와 정비는 물론 일본군의 활동범위를 넓혀주는 기회가 제공된다. 이것은 제4차 방위계획을 거쳐 일본군을 전략핵무기를 제외한 세계의 일류군사력으로 향상ㆍ강화하려는 일본 군부와 집권세력의 꿈을 충족시켜줄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상황 분석이 마침내 여러 해의 준비 과정을 거쳐서 작년 11월 21일의 닉슨–사토 공동성명을 낳게 되었다.

일본의 ‘아시아의 주역’선언

닉슨–사토 공동성명은 당사국들에게는 오끼나와 기지의 1972년 반환문제가 초점이었지만, 우리는 일본이 ‘아시아의 주역’임을 처음으로 공언하면서 한국에 대한 군사적 책임을 지겠다고 한 의견표시에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다.
사토 일본 수상은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총리대신은 특히 조선반도에 여전히 긴급상태가 존재한다는 데 주목했다. 총리대신은 조선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한 국제연합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의 안전은 일본 자신의 안전에 긴요(essential)하다고 말했다……”(일본 외무성 공식 일문(日文) 성명, 진한 글씨와 영문–필자) 이것을 대만에 관해 “총리대신은 대만지역의 평화와 안전도 일본의 안전에 하나의 극히 중요한 요소(a most important factor)라고 말했다”(같은 글)와 비교하면 한국에 대한 강조가 뚜렷이 느껴진다.
사토 수상의 대한 군사자세는 공동성명 발표 직후 세계 각국의 특파원들이 모인 와싱톤의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한 가운데 더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것은 성명에 대한 일본 정부의 유권적 해석으로 인정되어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그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부연했다.



……만일 한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하여 이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 군대가 일본 국내의 시설ㆍ지역을 전쟁작전행동의 발진기지로 이용해야 할 사태가 생기면, 일본 정부는 (미국의) 사전협의에 대해 긍정적이고도 재빠른 태도로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진한 글씨 부분에 해당하는 영문은 positively and promptly로 되어 있다).




이것은 한국 방위의 전략공격기지로 우리 정부가 중요시하고 일본으로 반환하는 것을 거부하도록 미국에 압력을 가했던, 1972년 반환 후의 오끼나와를 포함해서 일본 전국 영토를 언제든지 한국 방위를 위한 미군 군사기지로 이용토록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일본은 미일 안보조약(미일 군사동맹) 제6조에 의해 일본 자체에 대한 공격이 아닌 것에 대한 주일미군의 행동이나, 일본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를 미국 군대의 일본 영토 이용에 관해서는 사전협의를 받도록 되어 있다. 이 ‘사전협의’의 기본정신은 그와 같은 미국 군대의 행동에 대해서 거부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수상은 한국 사태와 관련된 미국 군대의 일본 영토 이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그리고 재빨리(또는 즉각)”응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다음 기사에서 알 수 있다.



미국 정부 관리들이 특히 강조한 바에 의하면, 이 연설은 공동성명과 상호관련되어 합일체가 되는 것으로, 사토 수상은 연설에 앞서 이와 같은 공개적 발언을 하겠다고 닉슨 대통령에게 귀띔했으며닉슨 대통령이 공동성명을 받아들인 것은 사토 수상의 이 연설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뉴욕 타임스』, 11월 22일, 리처드 핼로란 기자).




말하자면, 한국전쟁이 재발하면 일본 정부는 미군의 오끼나와(반환 후도)와 본토의 사용문제에 관해 거부권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것은 일본 정부가 한국 방위에 대해서 현 상태에서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다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반도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일본 영토로부터의 미국 군사력의 작전행동이 일본 본토에 대한 보복을 초래해도 좋다는 뜻이고 보면, 이것으로 미ㆍ한ㆍ일의 운명공동체가 이루어졌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순군사적 차원에서는 한국 외교의 하나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미국의 한국 방위 군사전략은 작년 3월에 실시된 미국 본토로부터 서울 교외에 대부대를 공수 투하한 포커스 레티나 작전으로 대표되는 ‘유사(有事)동원’체제와 오끼나와 일본을 기지로 하는 전략폭격 전략으로 수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쥔 일본의 이 결정이 이번 주한미군 일부 철수를 가능케 했을 것으로 믿어진다.

일본 군사력의 오늘과 내일

일본 군사력의 외부 지향성

서방세계 제2위의 경제력(1969년 국민총생산 약 2,000억 달러)을 뒷받침으로 하는 일본 군사력은 모든 강대국의 군사력이 그렇듯이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국내 좌익세력의 혁명적 사회불안에 대처하는 경찰 지원 역할과 순수한 방위적인 기능이 내향성이고, 경제ㆍ정치적 강대국의 대외적 이익확장을 뒷받침하는 힘으로서의 외향성이다.
미국의 일본점령정책의 원리였던 비무장 일본을 상징하는 평화헌법(특히 제9조)은 한국전쟁 발생 직후 일본 좌익혁명세력에 의한 일본 좌익화 위험에 대항하기 위해 급속히 조직되기 시작한 자위대(自衛隊, 그 당시는 경찰예비대)의 강화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나 그 후 급속히 발전한 일본 경제를 토대로 하고 그로 인해 강화된 일본의 정치ㆍ외교적 발언권을 보장ㆍ확장하기 위해 현재의 일본 군사력은 오히려 외향적 기능과 성격으로 변질해가고 있다.
금년 3월 28일 나까소네(中曾根) 방위청(국방성)장관은 중의원 예산 심의위원회에서 “앞으로 일본의 국제적 정치와 외교는 일본 군사력과 일체로 추진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 군사력의 이와 같은 외향성은 세 가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미국의 전반적 아시아 방위체제의 일환으로 미국이 책임지고 있는 취약한 아시아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통한 토착국가의 군사체제 강화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역할이 바로 이것에 속한다.
다음은 직접적으로 미국의 극동에서의 대중공 군사적 균형전략을 담당하는 미ㆍ일 군사동맹(안보조약)으로서의 역할이다.
크게는 후자도 전자에 속하는 것이라 하겠지만, 장기적인 대중공정책의 중요성으로 해서 구분된다.
그리고 전 세계, 특히 전 동남아와 극동(한국)에 일본의 경제적 이권 및 정치ㆍ외교적 발언권을 확보ㆍ강화하려는 실력으로서의 기능이다. 나까소네 장관이 말한 일본 군사력의 국제정치ㆍ외교와의 일체성은 이것을 뜻한다. 뒤에서 자세히 관찰하겠지만, “한국에 있는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을 받는 사태가 발생하면 자위대를 파견할 수도 있다”고 말한 일본 수상의 의회 발언은 이 선에서 한국 국민의 관심과 교차하게 된다.

군사강국 일본의 국가정책

일본 재무장은 이상과 같은 몇 가지 국가목적하에서 그 성격과 내용을 형성하게 된다. 일본 지도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외향적 군비확장이, 경제ㆍ정치 강국으로 재기한 ‘강국 일본’이 아시아와 극동에서의 파워 폴리틱스의 장에 군림하려는 강국정치의 한 수단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의식이 없다면 다음과 같은 발언은 하기 어려웠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바야흐로 인종ㆍ역사를 달리하는 태평양의 두 국가가 동맹관계보다도 훨씬 높은 차원에 서서 세계의 새로운 질서 창조를 위해 협력해나가는 세계사적인 대실험에 착수하려 하고 있다(사토 수상의 와싱톤 내셔널프레스클럽 연설 중에서, 1969.11.23).




(1) 대중공 균형작용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관련해서 그 전략구조면과 정책면에서 주목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대중공 정치정책과 관련된 것이다.
일본의 군사력이 중공에 대한 미ㆍ일 공동 억제 및 균형 목적을 가지는 이상 핵무기 문제가 제기된다. 일본의 경제ㆍ과학ㆍ공학의 수준으로는 핵무기 생산이 용이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본 국민의 핵알레르기적 반발, 미ㆍ소 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상호억제적 요소, 비용과 효과 면에서의 고려, 일본 핵화에 대한 아시아 인민의 불신과 공포…… 등 그밖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일본은 적어도 당분간 미국의 ‘핵우산(核雨傘)에 의지하고 비핵무기의 최신화ㆍ확장에 치중할 것으로 믿어진다.
이것은 일본이 핵군사화할 경우의 중공의 대응을 계산하는 일본 정치가들의 결론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군비나 군사력이 종합적인 국가목표를 초월하는 것이 아닌 이상, 장기적 국가목표인 중국 대륙 정권과의 접근 및 화해를 해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1억 인구 일본의 국민총생산이 7억 중국 인구 총생산의 2배라고는 하지만 중공은 비약적인 공업성장과 발전에 필요한 거의 모든 천연자원, 인적자원, 자체 국내시장을 가짐으로써 ‘아우타르키’가 가능하며 따라서 해외시장ㆍ해외자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할 일본보다 월등 장기적 이점을 가진 중공을 상대로 일본이 핵무기 경쟁을 하려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일본의 기본정책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공과의 관계향상인 이상, 미국의 핵보호하에 차라리 중공을 결정적으로 자극하는 핵생산이나 자체적 핵무장은 회피할 것 같다.

(2) 군사전략구조의 역전—그 양면적 의의
이것과 관련해서 이른바 미ㆍ일 안보체제와 자주방위의 우선순위의 역전현상을 볼 수 있다. 일본 정부와 군사전략가들은 종전에는 미국 ‘핵우산’, 즉 미ㆍ일 안보체제를 주로 하고, 자주방위를 보완으로 하는 국방전략에 입각해 있었다.
그러나 작년 말경부터는 자주방위를 주로 하고 미ㆍ일 안보체제를 보완수단으로 한다는 전략순위의 역전이 정부지도자들의 입에서 빈번하게 나오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두 가지의 문제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지난 6월 23일을 기해 미ㆍ일 양국 정부가 합의한 안보조약의 자동연장은 그 전과는 달리 어느 체약국(締約國)이든 1년 전의 통고로써 군사동맹 관계를 폐기할 수 있게 되었다. 10년이라는 고정적인 갱신ㆍ유효 기간이 없어진 것이다.

1) 자주국방정책
하나의 가능성은, 일본이 중공과의 정치적 앙땅뜨를 이룩하게 되었다고 판단하고 미국과의 핵 위주의 군사동맹 관계가 중공을 상대로 하는 화해에 불리하다고 판단하게 되면, 일본은 1년 전 통고로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폐기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이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한미 방위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의 간접적 연결로 구성되는 미ㆍ한ㆍ일 3국 안보체제도 해체된다. 최근 미ㆍ일 안보조약의 자동연기 결정을 전후해서 일본 정부 지도자들 사이에서 “우선 한 5년쯤으로 보고 그 뒤에는 정세를 봐서 결정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70년대 전반기까지의 자체 군비강화 과정과 겸행하여 대중공관계 개선의 기초작업을 서두르면서 70년대 후반기에는 대중공관계 정상화로 들어가려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정계와 재(財)ㆍ공계(工界) 지도자들의 구상과 견주어 생각할 때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2) 자주국방의 위험성
다음의 문제는 미ㆍ일 안보체제에서 분리ㆍ독립한 소위 자주방위체제의 일본이 중공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한국에 대해서 더욱 바람직한 일본이겠느냐 하는 문제다.
미일 안보조약은 한미 방위조약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한 군사적 보호기능과 함께 일본의 군사적 도발행위를 억제하는 양면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군사력이 미약한 단계에서는 이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핵무기를 제외하고는 중공에 비견하는 대군사강국으로 화했을 때는 그 힘이 자위에만 쓰이리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됐을 때 경제적 이권과 자원 확보, 자원 및 생산품의 수송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멀리 동남아 일대에 왕년의 ‘대일본제국함대’가 다시 모습을 나타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렇지 않아도 1972년부터 76년까지의 제4차 군비확장 계획(제4차 방위계획: 5년간 총예산 5조억 엔(138억 달러). 한국의 1970년도 국가 총예산 14억 4천만 달러를 기준으로 보아 매년 우리나라 국가예산의 2배가 군사비에만 투입된다)은 항공모함을 비롯한 최신형 미사일과 폭격기 세력을 중점으로 하는 ‘타격력’(打擊力) 편성에 목적을 두고 있다. 미일 방위조약도 1년 전 통고로 폐기할 수 있는 조약이다. 한미 조약이 1970년대까지 존속해도 그렇고, 만일 그것이 영원히 존속할 것이 아니라면 이와 같이 ‘강대국 정치’의 수단이 되는 70년대 후기의 강대한 일본 군사력이 미국의 억제적 기능이 제거되었을 때 한국에서 반드시 반가운 존재이겠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재군비 성격에 대한 한 평가

이와 같이 급속히 강화되고 있는 일본 군사력과 군대조직은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 성격ㆍ지향성 등에 차이 있는 평가가 나오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깊은 관심 대상으로 강화되고 있는 일본 군사력과 군대에 대한 어떤 종합적인 평가는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편견을 일단 버린 각도에서의 관찰이 필요하다. 한국이나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선입감이 작용하기 쉬우므로 차라리 미국의 권위 있는 평가를 통해서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음은 4명으로 구성된 미국 하원외교위원회의 아시아 현지조사단이 아시아 각국의 현실을 종합적으로 조사하여 하원에 제출한 보고서 가운데 일본에 관한 부분의 ‘군사부문’보고내용을 완역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1970년 4월 22일에 하원에 정식으로 제출되어 5월 초에 공개되었다.



일본의 일부 세력에 의해서 재무장과 왕년의 ‘대동아공영권’의 부활 같은 것을 추구하는 강력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본 조사단은 일부 사람들이 일본의 군사적 우월과 확장을 점점 더 중시하고 있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바다. 일본은 이미 세계 제6위의 군사력을 갖고 있는데도 그 강화를 위해 더욱 힘을 기울이고 있음을 본 조사단은 중시한다.
일본 헌법은 무력을 본토방위에 한정하고 재무장에 대한 기본적인 제한을 하고 있지만 이런 헌법상 제한은 일본의 방위대상 범위의 정의를 넓힘으로써 얼마든지 유명무실화할 수가 있다.
사실 중동 석유의 일본 수송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공언된 의도에서 일본의 일부 세력은 중동 석유가 통과하는(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 말라카 해협까지 그 범위를 확장하자는 주장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사토 수상은 최근 일본의 신군국주의 지향성을 시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국민은 이미 나라의 안전만을 목적으로 하는 소극적 평화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 조사단이 들은 바에 의하면, 일본은 군사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현 상태의 지속을 바라고 있다. 우리 조사단의 접촉과 토의에서 나타난 사실은 일본이 다시 대(大) 해군국가로 재기하려는 결심임을 말해준다.
그 구실인즉 통상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것 역시 불길한 징조라 아니할 수 없다.
본 조사단은 이 국면을 주시하면서 일본이 신군국주의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명한다.
일본은 막강한 경제적 부를 국제적 규모에서 군사력의 재건에 투입하려고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는 군사비 지출의 증가, 방위범위의 확대, 핵능력 및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누구도 감히 생각하거나 생각하기를 바라지 않았던 규모의 ‘군사대국’이 되려는 분명한 결의가 포함된다(합동통신, 6월 24일).




한반도 정세의 여러 상정(한국 안보와 일본군 개입의 여러 조건)

앞서 관찰한 바와 같이 닉슨– 사토 공동성명으로 구체화한 일본의 한국 방위책임 분담체제는 제1차적으로 한국의 국가적 안정의 지속적 토대가 되는 경제적 지원과 협조일 것으로 생각된다.
주한미군 감축 결정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7월 10일, 일본 정부는 아시아에서 철수하는 미군의 대역을 떠맡을 의도가 없다는 뜻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기록으로 외신보도를 그대로 전재한다.



일본 국민은 미국이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서 철수한 후 그 지역에 대한 미군의 군사적 임무를 일본이 떠맡는다는 것을 결코 용납치 않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아시아 주둔 미군의 철수가 가능한 것인지가 의문시된다고 사토 일본 수상은 말하고 있다.
사토 수상은 10일 AP기자와의 단독회견을 통해 일본은 미군 철수 후 동부아시아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해 결국에는 일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일부 아시아 지도자들의 생각을 일축하면서,“ 우리는적절한자체방위적군사력은보유하겠으나 국민은(일본의) 미국의 역할을 떠맡는다는 것을 결코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그는 앞으로의 일본정책은 아시아국가들의 번영을 위해 일본의 국력에 알맞게 협력해나가는 데 있다고 말하고, 이러한 협력 추진에 있어서 쌍무적(雙務的)인 방법은 일본이 경제적인 지배를 원한다는 오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으므로 원조제공에 있어 다른 나라들과 제휴하는 방식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도쿄 AP=同和, 스펜서 데이비스).




사토 수상은 또 “일본은 결코 순전한 경제적 동물도, 군사적인 동물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하여간 일본 정부가 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따라서 일본 군사력(군대)의 한반도 개입을 어떤 기정사실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만 한미 방위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을 매개로 해서 만일 한반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어떤 행동이 취해져야 하고 또 취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 글 제목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모든 상황과 조건은 상정이고 가정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조약체제 구조상 휴전선을 넘은 남ㆍ북한 어느 쪽의 공격에 의한 것이든 결과적으로는 한반도상의 그 주변지역에서 남에서는 한ㆍ미ㆍ일, 북에서는 소ㆍ중공ㆍ북괴가 연합한 세력이 불가피하리라고 생각된다.

남침의 경우

미군이 아무리 소수라 해도 직접공격을 받을 경우에 미군의 대규모 보복은 당연히 예상된다. 미군에 대한 직접공격이 아니더라도 “한국이 도발하지 않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은 한미 방위조약을 발동시킨다. 다만 이 경우에 미국 정부가 어느 만큼 신속히 행동할 수 있느냐는 미국 의회의 의사와 판단에 달려 있다. 미국의 군사행동 책임은 미국 의회의 동의라는 “헌법상 절차가 필요하다”고 조약은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제3조). 극단적인 조문 해석을 하자면, 미국이 한반도의 분쟁에 “절대로 끌려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에는 남쪽으로부터의 도발이 있었다고 판단내림으로써 조약의무는 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를 가정해서 미국 상원의 조셉 타이딩스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또 남쪽에서 공격을 먼저 취할 때 방위조약은 미국에 원조책임이 없다는 양해사항을 갖고 있지만, 실제 일이 벌어지면 미군은 자체 생존을 위해서도 개전(介戰)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계속 증원군을 안 보낼 도리가 없게 된다(4월 9일 미상원 본회의 증언, 『한국일보』, 4월23일).




이와 같이 한국이 공격을 받을 때 미군의 전쟁개입이 일본을 한반도 분쟁에 끌어들이는 과정은 두 가지로 예상된다. 하나는 간접적인 개입으로 미군이 일본 기지에서 발진하거나 일본 영역의 기지를 이용할 때 미일 안보조약상에 따른 일본의 허용으로 개입되는 것이다(제6조 제1항). 이 형식은 6ㆍ25 때의 일본의 위치와 같다. 앞서 관찰했듯이 일본 정부가 미군의 기지사용에 대한 ‘사전협의’에는 거부가 없을 것이다.
직접적인 개입은 북쪽(중ㆍ소가 개입해 있다면 중ㆍ소)에 의한 일본 영역의 미군 기지가 보복을 당했을 때다. 이 경우에는 다음 조문으로써 일본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즉



각 체결국은 일본국의 시정권(施政權)하에 있는 영역에서 어느 쪽 일방에 대한 무력공격이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자국의 헌법상 규정 및 절차에 따라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도록 행동한다(제5조).




이 경우에 일본이 지상군 투입까지 대규모로 할 것인지의 여부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좌우될 것이지만, 해ㆍ공군에 의한 개입은 현 일본군 전략으로도 분명히 가능하다.
가령 미일 조약의 적용에 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든 탄두(彈頭) 운반수단을 갖춘 강력한 일본 군대가 자위의 명분으로 개입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침의 경우

남쪽에 의한 공격(타이딩스 의원의 가정처럼)은 중공과 소련에게 베트남전쟁에서 받은 위협보다 훨씬 큰 위협으로 느껴질 것이다. 남쪽에 의한 북한 전역의 점령이나 통일은 중공의 공업요지인 만주와 소련의 극동지역 안전보장에 극히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공ㆍ소련에게는 남쪽으로부터의 진격이 북한만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미국ㆍ일본ㆍ한국의 공동세력권과 직접 대치하게 된다는 뜻에서 더욱 그러하다. 북괴가 중ㆍ소 이념분쟁에서 어느 쪽에 기울든 양국으로서는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사태로 간주될 것이다.
중공과 소련은 한국에서 군사혁명이 일어난 직후인 1961년 7월 11일과 61년 7월 1일, 북한과 ‘우호협력ㆍ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했다. 한ㆍ미ㆍ일이 두 조약을 매개로 해서 형성되는 공동방위체제인 것과는 달리 북한과 중공, 북한과 소련 사이가 직접적인 조약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중공이나 소련도 적어도 조약상으로는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북괴의 자의적인 도발행위를 견제하는 안전장치적인 문구를 넣고 있다.



양 체약국은 조선의 통일은 평화적ㆍ민주적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와 같은 해결은 조선 인민의 이익 및 극동의 평화유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조소조약(朝蘇條約) 제5조).



또 양 체약국은 조선의 통일은 평화ㆍ민주의 기초 위에서 실현되어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은 해결은 조선 인민의 민족적 이익 및 극동에서 평화의 목적에 합치한다는 것을 인정한다(조중조약(朝中條約) 제6조).




두 조약이 모두 ‘평화적인 기초 위에서’라고 한 것은 정치적 의도도 있겠지만 중공ㆍ소련이 다같이 무력도발을 억제하고, 그럼으로써 한반도의 군사분쟁에 끌려들어가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다만 지난 4월 7일 평양을 방문한 주은래 중공 수상과 김일성 사이에 발표된 ‘중(中)ㆍ조(朝) 양국정부 공동성명’과 캄보디아 사태 이후 평양과 북경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는 호전적인 태도는, 중공에 관해서는 이 조약정신이 해당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제반 상황으로 미루어 소련은 결코 북괴에 의한 모험적 도발행위에 찬의를 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이 두 조약은 모두 금년 7월로서 10년 조약기간이 만료된다. 양국이 그것을 각기 갱신했는지의 여부는 공식 발표가 없어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한미 방위조약에 대응하는 입장에서도 갱신 연장됐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일본 군대의 한반도 지향성

앞서 제7에서 본 바와 같이 사토 일본 수상은 한국 정부 지도자들의 미군 감축 통고 후에 밝힌 한ㆍ일 군사협조체제의 가능성 타진 의사에 대해 군사적으로 책임 이양은 거부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의 발언이 병력파견만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광의의 군사협조, 즉 전략구조의 일체적 편입, 병참지원 및 경제적 지원을 통한 군사력 강화까지 거부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앞의 모든 관찰을 통해 볼 때 병력파견만으로 국한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면 일본 군대는 절대로 한반도의 분쟁에 지상전의 요원으로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일본 국민은 정치적 좌ㆍ우를 막론하고 과거의 침략자로서의 반성과, 고도성장을 누리는 높은 생활수준 지속을 위해서라도 타국이나 타지역의 분쟁에서 죽게 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일반적 경향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대중적 희구와는 반대로 일본 군사력은 꾸준히 키워져왔고, 그것은 이제 자기충족적인 자기전개를 하고 있다.
그토록 일본 국민의강한 염원과 평화헌법에도불구하고일본 군대가 오늘날의 현실로 증강된 것을 생각한다면 이 땅에서 일본 군대를 다시 보게 되지 않으리라는 절대적인 보증도 없을 것 같다.
한반도의 긴장을 지속시키거나 촉진함으로써 자기의 이(利)를 찾는 사람이나 세력이 혹시라도 생겨난다면 일본 군대를 끌어들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가능성도 절대로 없다 할 수는 없을 것같다.
김유신(金庾信)이 당군(唐軍)을 불러들여 신라 통일을 이룩하고 연후에 당의 세력을 이 반도에서 밀어낸 역사의 한 단면이 그대로 되풀이될 수 있기에는 시대가 다르고 파괴무기가 너무나도 발전했다 할 것이다. 외세의 도입은 어느 시대나 어느 경우에나 위험하다.
금년 3월 21일부터 1주간에 걸쳐서 일본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일본 군대의 한국 파병 가능성 및 정부의사를 묻는 질의가 벌어졌다.
의원의 질의도 되풀이되었고, 사토를 비롯한 정부 책임관리들의 답변도 그때마다 되풀이되었기 때문에 그 의사록의 전 분량은 방대하다. 그러나 여기서 관련된 질의와 답변을 추려서 일본 군대와 일본 정부의 태도를 살펴보자.

(1) 3월 2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이마즈미(今澄勇, 民社ㆍ山口 1區) 공동성명에 의하면 사전협의 정도에 대해서 (총리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해치지 않고”라고 말했다. 또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의 연설을 통해 “만일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재일미군의 발진행동에 대해 긍정적으로(위와 같이)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수상 ‘사전협의’는 협의인 이상 ‘예스’도 ‘노’도 있을 수 있다.
만일 한국 등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이웃나라니까 우리나라는 중대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따라서 협의가 나오면 되도록 신속히 하자는 뜻이다.
이마즈미 사전협의는 ‘노’가 기본원칙이어야 하지 않는가.
수상 ‘노’도 ‘예스’도 있을 수 있다. ……프에블로 호 사건 때나 정찰기(EC 121기) 사건 때는 사전협의는 하지 않았다. 북한 게릴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정도로는 ‘사전협의’없이 될 것이다.
이마즈미 국련(國聯)이 침략이라고 규정짓지 않는 침략도 있다. 조선반도에 관한 사전협의는 국련이 침략이라고 규정짓지 않은 침략에도 적용되는가.
수상 국련이 침략이라고 규정지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결정도 잘 안 날 것이다. 따라서 국련의 인정만이 조건은 아니다.
이마즈미 국련이 침략이라고 인정할 경우에는 ‘예스’, 아닐 때에는 ‘노’라고 할 것이라는 정도의 기준은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수상 국련이 인정할 경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걸려야 그런 결의가 내려질 것인데 그동안에 협의를 제의해오면 그런 상태에서는 뭐라고 구속할 수가 없다.
(어느 경우에든 미국 군대의 대한발진(對韓發進)을 즉각 허용하겠다는 뜻이 강력히 비쳐져 있다.)

(2) 2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가와사끼(川崎寬治, 社ㆍ鹿兒島 1區) 국련의 인정이 있기 전에 재일미군이 행동하고 그것을 일본이 승인할 경우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일미 안보조약과 미한 상호조약에 일ㆍ미ㆍ한의 3국 공동방위체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명백하다.
수상 지극히 불명확하다. 일본이 침략을 받았을 경우에 비로소 일본 자위대는 출동한다. 한국이 침략을 받고 재일미군이 출동, 그래서 보복을 받는다고 하지만 일본은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
마사끼(正木良明, 公ㆍ大阪 5區) 국련군이 출동하려면 새로운 국련 결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결의는 할 수 없다. 그 전에 재일미군이 한반도로 출동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상 관념적ㆍ가정의 문제다. 여하간 어느 경우든 일본의 안전을 주안(主眼)으로 ‘예스’라고 하기에 충분한 자료를 토대로 판단하겠다.
마사끼 미ㆍ한ㆍ일의 군사행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북조선에 대해서 손을 썼는가.
수상 ……사전협의로 미군이 (일본에서) 날아가면 일본이 공격을 받는다고 하나 침략에 대한 국련군으로서 행동하는 것이니까(제3국이 일본을) 공격할 권리는 없다. ……만일, 제3국에 의한 실력행위가 있으면 일본의 자위대는 출동한다. 상대방이 (재일)미군을 공격하면 일본은 분명히 공격당한 것이 된다. 북조선과의 인적ㆍ무역 루트는 개방되어 있다. 적대시하는 태도는 아니다(이상 기록『매일신문』).

미쓰야(三矢) 군사계획

일주일여에 걸친 이 의회 질의에 대한 일본 정부 최고지도자들의 답변 가운데서 일본 군대가 장차 한국에 대해서 취할 수 있거나 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간추리면 대충 다음과 같다.



일본 군대는 주로 미군의 한국작전을 지원, 일본 주변 즉 동해ㆍ서해ㆍ대마도와 대한해협의 해상봉쇄작전에 해ㆍ공군이 배치된다.
만일 북쪽으로부터의 선제공격이 있어 유엔군(6ㆍ25때와 같은 성격의) 파견이 유엔에서 결의되면 일본 지상군도 “유엔군의 일원으로는 파견할 수 있다.”앞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현재의 유엔 내 정세나 각국 정책으로 보아서는 제2의 유엔군 파견 결의는 극히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은 ‘미ㆍ일 방위조약’의 발동과 그 협동작전의 테두리 안에서 미ㆍ일 연합군의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하나의 가정으로서 “만약 한국에 있는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이 직접 위협을 받을 때에는 독자적으로 자위대를 파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이다”(사토 수상 답변).




이 발언에 대해 일본 야당은 이것이 마치 일본제국 군대가 과거 중국 침략의구실로 내세웠던 낡은 제국주의수법이라고 명백히 비난했다. 1926년의 국제조약도 교민보호 명분으로 전쟁수단에 호소하는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사토 수상의 발언은 가정이라고 전제한 것이지만, 한국 내에서 일본의 경제적 이권이 커지면 커질수록 국제조약의 유무와 관계없이 일본 재벌들과 군부 내부에 생겨나는 그런 행동으로의 유혹이 비례적으로 커지리라는 위험성은 현실문제로서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일본 차관이나 경제적 이권이 지니는 군사개입의 한 유인(誘因)으로서의 가능성은 심각히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일본 군대와의 평상시 협조관계나 유사시 직접 개입의 가능성을 크게 하려면 우리나라에 일본의 경제적 이권을 더욱 많이 끌어들이고 그것을 장기간 고정시켜놓으면 된다는 역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일본군 참모부는 한반도의 분쟁발생을 가상하여 ‘미쓰야(三矢) 계획’이라는 종합 행동계획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의회에서 큰 말썽을 일으킨 일이 있다. 미쓰야 계획의 정식명칭은 ‘소화(昭和) 38년도(1963)통합방위도상(防衛圖上)연구실시계획’이란 것으로 우리나라 휴전선에서 ‘모년 7월 19일 전투가 발생한다는 가정하’의 일본 육해공군의 행동지침으로 짜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뒤 1964년 4월 6일부로 작성됐다는 ‘플라잉 드래곤(飛龍) 계획’(정식명칭 ‘소화 40년도 협동작전계획’)에 대한 세부 군작전행동 지침도 한반도의 ‘베트남전쟁화’상태를 가상 상황으로 한 것으로 의회 질의에서 밝혀진 바 있다. 어느 나라의 군대든 모든 가상 상황하에서의 모든 행동 가능성을 연구한다. 미쓰야 계획, 비룡 계획 등이 반드시 일본 군부의 행동원리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리적ㆍ정치적 그리고 현실적인 군사적 의무와 경제적 이해관계를 놓고 볼 때 한반도가 일본군의 제1차적 행동대상이라는 것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일본 군대는 ‘한반도 지향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남는 문제들

이상에서 대체로 여러 가지 각도에서 주한미군의 감축 혹은 철수와 관련돼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꽤 넓게 살펴보았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관찰을 하고도 문제는 남는다. 많은 문제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차원 높은 의식구조

우리는 반공주의와 반공전초를 자처하기만 하면 모든 서방 우방국가가 영원토록 국가안전을 보호해줄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국가는 특히 강대국들은 우리가 중요시하는 신의나 약속보다는 자국의 국가적 이익을 국제사회의 행동원리로 삼는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국가적인 인격형성이 시급하다 하겠다.

시대사조ㆍ국제정세 감각

우리는 아직도 6ㆍ25 당시의 전쟁의식과 덜레스ㆍ스탈린 시대의 냉전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겠다.
한국의 운명이 결코 강대국의 자의로 좌우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허용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한 국가나 국민이 국제 사회 속에서 생존하려면 국제정치의 변동과 시대적 정신에 많은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이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와 파악 없이는 민족을 움직여나가는 역사에 대해서 주체로서 움직일 수 없지 않을까.

국가안보 개념의 재평가

우리는 흔히 안보 하면 병력 수, 무기의 양과 수준 등 순수군사적 견지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 국가의 안보는 순수군사력에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도 더 그 국가사회의 전반적 체제와 기능, 이익과 기회의 균배(均配), 맹목적이 아닌 이성적인 민족애와 애국심등에 바탕을 두는 것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유럽에서 최강인 프랑스의 육군이나 마지노선(線)도 프랑스를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은 생각해볼 만하다. 다시 말하면 국방이나 안보 개념의 재인식이 필요하다.

의타심은 자기를 망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지난 25년간의 관계를 어떻게 성격지을 것인가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의타심과, 나쁘게 말해서 예속적 생존이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있었다면 국제사회에서 떳떳한 국가ㆍ국민ㆍ민족으로 존경받긴 힘들 것이다. 미군 감축 발표와 함께 이번에는 일본 군대에 눈을 또 돌려야 하는 것도 ‘진정한’자주의식 결핍의결과가 아닌가 싶다.

한반도에서 긴장의 단계적 완화

한반도에 긴장이 계속되고 증대되는 한, 한반도는 제각기 하나는 소ㆍ중공으로, 하나는 미ㆍ일로 강대국들에 의존하게 될 것은 당연한 국제적 원리라 하겠다. 동ㆍ서독의 경우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또 실제로는 다른 점도 많지만, 적어도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여지가 전혀 없는가를 생각할 필요는 있다. 우리가 북괴에 앞서서 그러한 방안을 마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장기적인 생존 형식을 상호간에 모색하고 정립하지 않는 한, 같은 민족의 군비경쟁은 그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강대국에 대한 경제ㆍ군사ㆍ정치적 의존상태를 영속화할 위험이 있을뿐 아니라, 유혈 없는 민족통일이라는 역사적ㆍ민족적 목표에 도움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안보나 군사문제를 생각할 때 사고의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고 이번 미군 감축문제가 줄 수 있는 하나의 교훈이 될 수 있다.

•『정경연구』, 197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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