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정상회담과 만만치 않은 북한의 등장 / 정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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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10-0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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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정상회담과 만만치 않은 북한의 등장



 


 


 


정욱식 /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9월 중순에 있었던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일단 구체적인 결과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두 정상이 회담 후 기자회견도 갖지 않았고 성명이나 합의문 발표도 없었으며 그 이후에도 추측만 난무하지 확인된 바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위험한 거래”로 일컬어진 내용이 그렇다. 이는 북한은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고 러시아는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는 물론이고 전략무기 개발을 지원하는 거래를 일컫는데 그 성사 여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지금까지도 상당수 국가들과 언론의 관심은 북러 간 무기거래 가능성에 맞춰져 있지만,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이것 말고도 많다. 특히 ‘익숙한 북한’과 ‘달라진 북한’의 차이가 거듭 확인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익숙한 북한은 주로 ‘가난하고 굶주리며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을 의미한다. 반면 달라진 북한은 ‘먹고사는 문제가 점차 개선되고 국제적 입지도 강해질 가능성이 높은 북한’을 의미한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졸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 참고).


 


북한이 식량 지원을 거절했다고?


북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러 나라의 정부·언론·전문가들은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완화하기 위해 러시아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고 러시아도 이에 응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이러한 전망은 윤석열 정부가 북한에서 아사자가 속출할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주장하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식량 지원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와 관련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 북한 러시아대사는 9월 17일 러시아의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러시아의 식량 지원 제의에 대해 “이제 모든 것이 괜찮다”며 정중히 거절했다며, “올해 정말로 그들은 매우 풍작을 거뒀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필자가 5월 중순에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의 소식통이 밝힌 내용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당시 이 소식통은 ‘북한에서 아사자가 나오고 있다는 정보는 없으며, 오히려 식량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이 사례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외부에 ‘익숙한 북한’은 주민들은 굶주리고 경제는 매우 어려운데 김정은 정권은 핵 고도화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핵무장을 고집하는 한 국제적 고립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위의 사례는 ‘달라진 북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식량과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3년 병진노선 선포 이후, 특히 2021년 8차 당대회를 거치면서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에 박차를 가해왔다.


북한은 지난 10년간 정부 예산에서 차지하는 국방비 규모는 동결한 반면에 농업과 경제 관련 예산 비중은 꾸준히 높여왔다. 특히 식량 증산과 더불어 먹거리 다변화도 꾸준히 추구해왔다. 이로 인해 곡물 위주의 식생활에서 육류·수산물·채소 및 과일·기호식품 등 먹거리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 국경봉쇄 해제 이후 북·중, 북·러 교역과 경제협력도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발전에 필요한 내적 역량과 외적 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있는 셈이다.


 


한미일과는 ‘손절’, 중러와는 ‘전략적 협력’


북한이 처해 있다는 ‘국제적 고립’도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2017년 북한의 잇따른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의하면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가속화되는 듯 했다. 그러나 2018년을 거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지만, 이 시기를 거치면서 북중, 북러 관계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김정은 정권은 대담판에 앞서 북중, 북러 관계 회복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급변할 것으로 보였던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서 발언권을 강화하려면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9년을 거치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좌초되자, 북한은 30년 가까이 품어왔던 한미일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미련을 거의 확실히 접었다. 그리고 이는 외부에서 강요한 것이라기보다는 김정은 정권의 자발적인 선택이다. 한·미·일이 대화를 하자고 해도 무시나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는 1990년대 초반 이래 최상이다. 과거엔 북한이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 중국과 러시아도 제재에 동참했던 것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공교롭게도 북한이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내딛은 “새로운 길”이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한미일의 결속과 맞물렸다. 미국과 치열한 경쟁에 나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문제를 ‘핵비확산’보다는 ‘세력균형’의 관점으로 바라보곤 북핵을 묵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방국인 북한의 핵무장이 미국 및 그 동맹국을 견제하는 데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북한도 강대국들 사이의 적대적 경쟁을 파고들었다. 미중 전략경쟁의 최전선인 대만문제, 대리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러-우전쟁과 관련해 중국 및 러시아의 입장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히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 처해 있다기보다는 ‘한미일과의 관계단절과 중·러와의 관계강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처럼 납득하기도, 인정하기도 힘들겠지만,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만만치 않은 행위자로 등장했다. 국제사회의 시선을 모은 북러 정상회담은 이를 알리는 장이었다.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추측’만 불러일으켰는데도 그 파장은 상당하다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는 러-우전쟁이 장기화되고 미중 전략경쟁이 치열해지며 한미일이 사실상의 군사동맹으로 향할수록 북한의 전략적 입지가 강해질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중국의 선택은?


북러 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선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이 한미일처럼 북중러 결속을 추구할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나게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은 러시아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중국과의 소통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중국에 대한 비난·비판의 수위를 낮추면서 한중일 정상회담 성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역시 북러 정상회담은 “두 나라 사이의 일”이라며 아직까진 거리를 두고 있다. 북한 및 러시아와의 양자관계는 중시하겠지만, 3자 결속에는 아직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일단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 가운데 하나는 ‘신냉전 반대’에 있다. 이를 근거로 한미일의 군사적 결속 움직임이 신냉전을 초래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해온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북중러 결속을 추구하면 ‘반대한다’는 신냉전을 고착화시킬 위험이 커진다. 또 중국은 북중러 결속이 한미일의 결속 강화 등 반작용을 야기해 한반도의 안정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내심 경계하는 일은 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러간의 무기거래가 가시화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때가 바로 그것이다. 북러 무기거래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보리 차원의 대응은 불가피해진다. 러시아가 거부권을 갖고 있기에 제재 결의가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미국 등 다른 이사국들이 중국의 입장을 강하게 추궁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중국으로선 무기거래를 규탄하자니 북한 및 러시아와의 관계가 걸리고, 묵인하자니 국제적 이미지 및 서방과의 관계악화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북한 및 러시아에 무기거래를 반대한다는 뜻을 비공개적으로 전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이 지금까진 3자연대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핵심 가운데 핵심 이익”이라고 공언해온 대만문제가 중대 변수가 될 수는 있다. 최근 한미일 등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며 ‘힘에 의한 대만해협의 현상유지’를 위해 결속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에서 민진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 중국의 셈법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고 미국 등이 이를 인정할 가능성은 없더라도 대만이 사실상의 독립을 향한 행보를 계속하고 미국 등이 이를 지원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는 중국의 눈에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뿌리째 흔들리고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동아시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대만해협의 뇌관은 이 지점에서 폭발할 수 있다. 그런데 대만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입장을 가장 강력히 지지하는 나라들이 바로 북한과 러시아이다. 특히 북한의 담화나 성명을 보면 중국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는 미국이 군사강국에 속하는 한국, 일본, 호주 등 동맹국들을 규합해 중국을 압박하고 봉쇄할수록 중국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중국도 북중러 군사협력을 통해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행여 대만해협에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조성되거나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북한의 전략적 입지는 훨씬 강해질 것이다. 핵무기와 다양한 탄도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은 대만 위기시나 유사시에 한미일을 군사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추측만으로도 서방세계를 긴장시킨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은 9월 25일자 <한겨레>에 게재된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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