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키스앤드 굿바이」
9-8. 「키스앤드 굿바이」(1983년, 분단)
‘교복 자율화’의 소식
그는 아까부터 그 자리에, 그런 자세로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읽다 만 석간신문이 펼쳐진 채 놓여 있다. 얼마나 되었을까? 벌써 반 시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마루의 한 구석, 의자 다리옆에까지 서향 창문으로 누운 듯이 들어와 비추던 늦저녁의 햇빛이 창밖으로 물러난 지도 한참이 되었으니까.
그는 오래간만에 혼자 집을 지키는 정숙 속에서 뭔가 회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 나이는 버스에서 앉았던 젊은이들이 냉큼 일어나 좌석을 비켜줄 생각이 날 정도는 아니고, 그렇다고 모르는 척하고 앉아 있기에는 좀 미안해질 그 정도의 지긋한 반백의 용모다.
한참 만에 명상하듯 감고 있던 눈을 뜬 그의 시선은 다시 신문기사의 커다란 글자의 제호에 멈추었다.
오늘부터 중고교생 자유복
오랜 제복 역사에 종지부!
제호를 둘러싼 지면에서, 남녀 고등학생들이 제복을 벗고 자유스러운 옷차림으로 등교한 첫날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는 몇 번 읽은 기사의 제목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제복에 대해서 각별한 감회가 있는 사람임을 쉽게 알 수 있는 분위기다.
사실, 그는 늦게 배달된 석간 신문을 읽고 나서, 아까부터 그 자세로 앉은 채 제복 속에 묻혀가버린 자기의 낭비된 인생을 회상하고 있던 것이다. 왜정 때, 색 바랜 국방색 제복에 중대가리로 깎은 머리, 그 위에 일본제국 군대식 전투모를 반듯이 쓰고, 다리에는 그것도 국방색 각반을 치다가 세월 보낸 중학생 생활 4년간. 5학년이 되어보지도 못하고 해방되자, 남북 분단으로먹고 살 길이 없어, 돈 안 들고 공짜 공부시켜준다는 특수한 대학에서 제복에 제모 쓰고 지내버린 4년간. 제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기분으로 시골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취미를 붙이려는데, 3개월도 안 돼서 전쟁이 그곳까지 밀어닥쳤다. 다시 외국인이 입히고 신겨준 서양식 군복 차림으로 형제끼리 죽이고 찌르는 군대생활이 시작되었다. 들어간 날과 나온 날에 하루의 가감도 없는 만 7년간. 군복을 벗어던지고 시작한 자유인으로서의 일은 황홀하기만 했다. 신문도 만들어보고, 많이 생각도 하고 글도 많이 썼다. 학생도 가르쳐보고 지식인들과 나라의 꼴을 걱정하는 많은 이야기도 했다. 그의 주조는 언제나 ‘제복(制服)의 사상’을 반대하는 정신이었다. 이 시기는 그가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진정 살아 있다는 희열에 잠겼던 생활이었다.
그러나 제복의 사상을 역겨워하는 그에게 제복의 우상의 노여움은 항상 따랐다. 한 번은 한 달, 다음은 2년, 세 번째는 두 달, 이렇게 높은 벽돌담과 깊은 지하실 속에서 푸른 제복의 생활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는 신문을 놓고 눈을 감고는 제복에 묶여서 마모되어버린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왜정 아래서 4년, 해방된 나라에서 13년 2개월. 합쳐서 17년 2개월! 철들기 전의 소년시절을 뺀, 지나간 전체 삶의 꼭 절반을 제복에 묶여서 지낸 셈이다. 그의 닫혀진 두 눈, 어두운 망막의 스크린에 그 17년 2개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제복을 입은 자들에 의해서 강요된 2년간의 푸른 제복의 고역을 치르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의 오후다. 그는 인생의 절반이 제복 속에서 해지고 닳아버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뜨고, 앞에 펼쳐진 채로 놓여 있는 신문기사의 제목을 다시 들여다본 것이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후다닥, 신 벗는 소리가 나더니, “학교……습니다”라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먼저 가방을 든 여고생이 들어섰다. 고등학교 3학년의 딸 정이었다.
생각지 않은 시간에 생각지 않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아버지를 발견한 딸은 또 한 번 같은 인사를 바삐 뇌었다.
“학교……습니다.”
“어서 오나, 정아! 오늘은 참 기분 좋았겠다?”
딸은 앞뒤 없이 불쑥 나온 질문의 뜻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서 있었다.
“네가 그렇게 싫어하던 제복을 여러 해 만에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자유로운 옷차림으로 학교 갔다오니 말이다.”
“아, 예, 뭐라고요. 정말 기분 좋았어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요.”
아버지는 그 대답에 만족하는 표시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좋아했겠지……?”
이 무렵에 딸은 잠깐 망설이면서 생각하는 듯했다.
“아니에요, 아버지. 그렇지도 않아요.”
딸의 뜻하지 않은 대답에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무슨 말이냐? 그럼, 그애들은 자유를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게 말이지요, 아버지……. 좋아하기보다는 오히려 걱정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아버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무슨 어려운 철학문제의 질문을 받은 학생처럼.
“그래……? 그 이유가 뭐지?”
“간단해요.제복을 안 입으면 공순이들 하고 구별이 안 된다는 거예요”
“뭐하고 구별이 안 돼?”
“아버지, 몰라요? 공장 여직공들 말이에요. 식순이, 공순이, 그러지 않아요?”
20척 높이의 붉은 담에 갇힌 푸른 제복의 사회를 2년 동안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갓 나온 그에게 처음에는 쉽게 들어오지 않는 말이었다. 공장 여직공, 공순이!
학생 제복을 안 입으면 같은 나이 또래의 노동하는 여직공들과 구별이 되지 않는 것이 큰 걱정이라는 이 사회의 학생들! 자유보다도 신분적 허영심이 훨씬 소중하게끔 되어 있는 사회! 그런 정서를 의식화시킨 ‘제복의 사상’의 교육!
누구나가 속박에서의 해방을 갈구하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던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구속은 비인간화이기에, 그 철저한 인간 부정 상태에서 2년간을 겪고 나온 오늘의 그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한참 동안 생각하던 그는 딸에게 앉으라고 하고는 입을 열었다.
“너의 말을 들으니 이 민족의 상당히 많은 젊은이들이 왜 일제시대에 자기 발로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지원병으로 장교로 그리고 식민통치의 경찰에 들어갔는지 이유를 알겠다. 나는 그들의 제복을 비인간화와 구속, 굴종과 민족에 등을 돌리는 타락의 틀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가 보다. 그들은 그 식민군대의 제복을 걸침으로써 일본 황국이라는 막강한 권력체계의 가장 밑바닥에서 한 단계 위의 사다리 발판에 올라선 셈이었다. 같이 짓눌리는 종족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계급적 상승의 길이 그 제복을 입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일본 군국주의 군복을 자진해서 걸쳐 입고 그 칼을 차고 삐스또루를 찼을 때, 어제의 비천한 ‘조센징’은 오늘의 ‘충직한 일본 황국신민 ‘천황 폐하의 적자’가 될 수 있었다. 분명히 계급적 이전이다. 제복이란 그렇게 신통력을 가진 것인가보다.”
제복의 사상 또는 규격화의 사상
그의 말은 여기서 갑자기 중단되어야 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딸이 이 대목에 오자 느닷없이 못 참겠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린것이다. 그는 깜짝 놀라고 의아해했다.
“왜 웃니, 정아. 뭐 잘못 됐니?”
“그럼요. 크게 잘못됐지요. 아버지는 해방된 지 40년이 가까워 가는데 지금도 ‘도락꾸’타고 가느니, ‘삐스또루’찬 사람들이라느니, 일본식 발음을 못 고치고 있어요. 밤낮 ‘도라무통’이라 하고 ‘곱뿌’ 가져오라 하고……. 아버지도 일본 식민주의 교육에 보통 물든 게 아닌 것 같아요.”
아버지는 송곳 끝처럼 쑤시는 이 말에 자기도 모르게 폭소를 터뜨렸다. 딸과 아버지는 한참 동안 두 세대의 거리를 날려 보내기나 하듯이 함께 웃었다.
“네 말이 옳다. 50대 이상은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든 머리 속에 든 것이 자기 민족의 것이 아니야. 그래, 피스톨이다. 도락꾸도 아니고 트럭으로 해두자.”
18세의 해방 제2세대와 52세의 일제 식민지 마지막 세대의 웃음이 다시 한바탕 유쾌하게 합주했다.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정아, 내딴에는 일제의 제복사상을 철저하게 청산하려고 적지 않게 애쓰는 줄 생각하는데도 그렇다. 그런 의식적 개혁을 하지 않거나, 식민지 시대의 경력과 그 제복화된 사상을 오히려 해방된 나라에서 강요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어떡하겠니?
‘제복의 사상’은 ‘규격화 사상’이다. 삐스또루야 피스톨로 바꾸어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일제 아래서 ‘삐스또루’찼던 사람들이 해방된 신생 민주국가 사회에서 ‘피스톨’로 갈아 찼다고 해서 그 머리 속에 박힌 일제식 ‘국민 총규격화 사상’이야 어찌 쉽게 고쳐지겠니?”
여기까지 단숨에 이야기한 아버지는 딸이 잘 알아듣는지를 살피려는 듯 말을 멈추고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딸은 다만 가볍게 웃음지어 보였다.
“삐스또루 찼던 세대는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 해방 후에 삐스또루 찼던 선배 세대에게서 배운 피스톨 찬 세대의 사상이 그대로 삐스또루 사상이면 큰일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니?”
“아버지 책에서도 읽었고 좀 생각도 해봤지만 잘 모르겠어요. 일제 시대의 선배들에게서 해방 후, 특히 6ㆍ25 이후, 직접 정신적ㆍ사상적 영향을 받은 해방 제1세대가 오늘의 이 나라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렇지. 바로 그렇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이 반드시 삐스또루 사상, 다시 말해서 선배들의 규격화 사상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잘 이해했구나. 바로 그렇단다.”
“그러면 그 제복의 사상, 즉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엘리트 의식, 지배자 의식, 규격화 사상이라는 것이 현재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쉽게 설명해주세요.”
“바로 학생 교복 자유화 문제를 놓고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냐?”
“그런데 선생님들은 큰 걱정이래요. 학생들의 복장 자유화가 자칫 사고방식의 자유화로 확대된다는 거지요. 학생이 자유롭게 사고하면 교권 확립이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시기상조라는 말씀들을 오늘 많이 하시던데요.”
딸은 교복이 자유화된 첫날, 학교에서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의 이야기, 교사들끼리의 담화, 학생들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재현하여 들려주었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답변을 기다렸다.
“참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형식은 내용을 규정하고구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생각이 차츰 정당한 자유를 요구하게 되리라는 것은 당연하지. 이 나라의 교육에서 80년 만에 제복이 사라졌다. 그것을 발전으로 보지 못하고 교권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보는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교권’이라는 것이야말로 해방 후에도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저지해온 지배자의 철학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의 중고ㆍ소학생에 교복이라는 것이 있니? 머리도 마찬가지란다. 군대를 제외한 제복은, 비민주적 지배자가 시민 개인에게서 ‘개성’을 몰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하나인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알아요. 며칠 전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방영된 히틀러의 나치당 청소년의 제복 행렬은 소름이 끼치던데요.”
“바로 그래. 참으로 흥미 있는 일이지만, 세계의 모든 독재자나 독재체제는 반드시 청소년뿐 아니라 전 국민의 제복화를 시도했다는 역사적 사실이야. 이제 우리도 비로소 그 범주에서 벗어나려는 거다. 그런데 시기상조라는 선생들이 있다니 한심한 일이다.”
아버지는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가 곧 말을 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문제점이 충분히 지적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인 듯 보였다.
“그렇지만 말이다, 정아. 잘 들어둬. 제복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제복이 아니다. 제복의 부자유는 벗기면서도 제복이 상징하는 규격화된 사상이나 획일적 세계관을 강요할 수도 있어. 현대와 같이 대중 조작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 강한 자들에게는 외형적 제복을 벗기고도 사상과 정서의 제복이라는 내면적 굴레를 씌울 수 있는 충분한 지능과 힘이 있단 말이다. 사실은 이 점이 더 중요하고 무서운 것이지……. 그런 뜻에서는 요새 말썽인 헤어 스타일도 그래…….”
‘제복의 사상’을 생각하는 그 머리
이야기를 계속하려던 아버지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말을 멈추었다. 딸과 아버지는 문 쪽을 돌아다보았다.
“학교……습니다.”
남자 목소리였다.
소리가 난 뒤에도 한참 지나서야 책가방 하나가 툭 하고 마루에 던져져 들어왔다. 키가 볼품없이 길기만 한 남자 고등학생이 들어섰다. 막내아들 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데 키는 아버지보다 세 치나 크다. 아버지와 누나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을 본 동생이 묻기도 전에 누나가 입을 열었다.
“지금 아버지하고 제복 이야기를 하다가 머리 스타일 문제가 나온 거야.”
소년은 아직 교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 교모를 들고 있었다. 장대같은 키에 빡빡 깎은 머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아들은 이야기의 뜻을 알았다는 듯이 옆자리에 다가와 아무렇게나 털썩 주저앉았다.
소년은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는 내년부터 자유복을 입는대요. 머리도 그때까지는 깎아야 한대요.”
이렇게 말한 소년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실시할 일이면 금년부터 할 것이지 뭐 내년이야! 교장 선생님이 말이지요, 아버지……, 몇몇 선생님들도 그래요……,
하기는 교련 교관이 제일 그렇지만, 고교생이 머리를 기르는 데 굉장히 반대예요. 남자란, 머리를 바짝 깎고, 용감하고, 씩씩하고, 절도 있고, 일사불란하고, 눈에서 불이 번쩍번쩍 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거지요…….”
소년은 교장의 말이 우스웠던지 말을 하다 말고 픽 웃었다. 누나와 아버지도 따라 웃었다.
“너희들도 텔레비전에서 기록영화로「히틀러 유겐트」를 봤겠지. 청소년 교육의 모범으로 그런 것을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파시스트적 경향이 강할수록 그렇지. 북한 청소년의 집단적 행동을 모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는 것 같다.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지. 그게 될 말이니. 그런 전체주의적 청소년관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제복의 사상은 통제된 사상이고, 획일화된 사상은 또 ‘일사불란’의 사상이야. 일사불란에는 그 나름의 미학(美學)이 있다고 역설하는 교육계의 훌륭한 분도 있기는 있더라. 나는 독일유학을 못해서 잘 모르겠다만…….”
아버지는 여기서 말을 중단했다. 자기의 교육과 지식으로 이런 이론을 펼 자격이 있을까, 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는 그 흔한 외국유학과 몇 개씩의 박사학위를 가슴에 매달고 다니는 학식 높은이들 앞에서 늘 주눅이 들어 있는 자신을 마음의 거울이 비쳐보는 것 같았다. 그는 이야기의 격조를 한결 낮추면서 말을 이었다.
“너희들에게는 부끄러운 아버지라서 좀 자신있게 답변하기 힘들구나. 학식도 덕망도 없고, 애국심도 모자라서, 있던 대학에서도 쫓겨난 주제에 좀 주제넘은 생각일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남자라고 어째서 한결같이 씩씩하고, 용감하고, 일사불란하고, 눈에서 번쩍번쩍 불이 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무슨 도깨비도 아니고……. 남자가 갖추어야 할 덕성과 품격은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지 않겠냐? 나도 그런 헤어 스타일이 반드시 좋다는 것은 아니야. 오해하지는 마라.
하지만 교장 선생이 숭상하는 남자관은 지나치면, 지난날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프랑코, 도조 히데끼 같은 사람한테서 너무나 많이 듣던 남성관이 된다. 아버지의 세대에는 대일본제국 육군 대신 겸 수상 겸 광인이었던 도조 히데끼 대장이 그 철학의 교조였지. 그는 히틀러의『나의 투쟁』을 아침저녁으로 암송하고, 작은 히틀러가 되려고 꽤나 몸부림쳤지. 그래서 1억의 일본 국민을 한결같이 씩씩하고, 용감하고,머리 빡빡 깎고, 애국심의 불덩어리가 되어, 눈에서 살기가 번쩍번쩍 불튀는 남자로 만들어 전쟁판에 몰아내어 수백만을 개죽음시켰단다. 아시아의 수천만 생명을 죽였지.
그런데 그 다음이 재미있다. 전쟁에 참패하자 이 전쟁 광인은 삐스또루로……, 그때는 피스톨이 아니고 삐스또루였으니까…….”
아들 딸 아버지의 웃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이 전쟁의 신이 그의 피스톨로 자결하려다가 총알이 빗나가는 바람에 자결미수가 되어, 결국 교수대의 밧줄에 매달려 죽었단다. 육군대장의 피스톨 솜씨치고는 졸렬했지. 모두 비웃었어.
그와는 반대로 몇 번에 걸쳐서 총리대신을 지낸 문신(文臣)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는 순백의 수의를 입고 사상(死床)에 누워서 깨끗이 음독자결했지. 고노에에게 일제의 전쟁 책임이 없다거나 그러려는 것은 아니야. 다만 요란스러웠던 군신(軍臣)보다는 염치가 있었고, 덜 광적이었다고 말하려는 것뿐이다.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다.
헤어 스타일이 문제가 아니라, 머리칼이 덮고 있는 두개골 속에 들어 있는 물렁물렁한 것이 간직하고 있는 그 보이지 않는 무엇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냐는 거다.”
고등학생은 한 손으로 자기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학생 딸은 남동생의 머리와 아버지의 머리를 힐끗 비교해보았다. 아버지는 아들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 정부도 이제 대담하게 학생에게서 제복을 벗겨버리기로 했으니 참 다행이다. 올림픽이니 관광객 유치니 해서 외국인 보기가 창피하니까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잘된 일이다. 그런데도 아직 일부 교육자들이 학생에게 제복을 입히고, 자기 머리칼보다 짧게 깎은 머리여야 통제하기 쉽다는 생각이라면 참으로 문제다. 제복뿐만 아니라 국민생활의 모든 면에서 말이다.
머리칼의 길이를 일정한 센티미터로 규격화하려는 ‘제복의 사상’이 혹시라도 그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사상과 정서를 몇 센티미터로 규격화하려는 발상이라면 곤란하지. 그렇지 않겠니…….”
제복의 변종 ‘유행의 사상’
세 부자녀 간의 대화에 별로 관심 없이 부엌을 드나들던 아내가 저녁 식사를 알리러 나왔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기냐고 남편을 나무란 아내는 아이들에게 빨리 저녁을 먹으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청했다.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어머니도 들으세요.”
아들은 어머니에게 대충 이야기의 줄거리를 설명해주었다. 한참 서서 듣던 어머니가 왔던 목적을 잊어버리고 참견하고 나섰다.
“나도 교장 선생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사실 제복을 없애면 학생들이 옷치장, 얼굴치장, 노는 꼴이 세태의 유행ㆍ사치를 따를 테니까 걱정이 앞서요. 당신의 주장은 이상론이고 추상론이에요. 특히 여자들의 유행이 조석으로 바뀌는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거예요. 그렇다고 유행에 뒤떨어질 수도 없고…….”
잠자코 듣고 있던 남편이 아내를 향해 손을 저어, 앉기를 청했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아내를 상대로 입을 열었다.
“당신 걱정이 맞아. 여성의 유행 문제도 잠깐 이야기하고 저녁을 듭시다. 마침 좋은 주제를 제기했어.”
그는 아내와 딸을 향해 말을 시작했다.
“유행은 제복의 변형일 뿐 본질적으로 제복과 같고, 유행을 따르는 심리도 제복에 길들여져서 제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상과 통해.”
여기까지 이야기한 그는 일어나 책상 쪽으로 갔다. 잠시 살피고 더듬은 뒤에, 그는 외국서적 한 권을 끌어냈다. 책의 제목은 에두 아르트 푹스의『풍속의 역사』였다. 목차를 살피고, 찾는 페이지를 펼쳐든 그는 아내와 딸과 아들을 향해서 말했다.
“유행의 본질을 무서울 만큼 정확하게 정의한 글이 있으니 읽어 보겠다. 아버지보다 월등 유식한 학자의 말이니까.”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책의 표지와 그의 입에 교대로 시선을 집중했다.
현대적 의미에서 모드(유행과 사치)는 개인적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동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한 사회의 높은 계급이나 부강한 계층이 사회경제적으로 낮거나 빈약한 계급(층)으로부터 자기를 구별하려는 노력이다. 자기보다 낮거나 가난한 계층과 혼돈되는 위험을 예방하려는 외적 표현이다.
특히 여성의 유행과 사치는 자기와 같은 지위를 모방하려는 하층 여성의 모드를 파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새롭게 고안되는 하나의 계급적 표지이다. 말하자면 신분적ㆍ계층적 허영심의 경주(競走)인 것이다.
그 경주는, 한쪽에서는 조금이라도 앞섬으로써 자기와 자기에 대한 경쟁자를 구별하려는 노력이고, 다른 쪽에서는 새로운 모드를 모방함으로써 경쟁자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투쟁이다.
듣고 난 딸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많은 여학생이 교복을 안 입으면 여직공과 혼동될까봐 자유복을 꺼린다는 그 심리와 같군요.”
“잘 봤다. 바로 그 점이란다. 이 나라의 교육이 무엇을 가르쳤기에 학생들까지 그런 신분관을 갖게 되었는지 참으로 한심스럽다.
그것은 그렇고, 진실로 문제되는 점은 유행과 사치가 여성의 예속 상태를 영속화하는 효과라 하겠다. 그것은 여성의 해방을 방해하고 나아가서는 민족의 해방까지 저해하는 기능을 한단다. 유행과 사치는 3중의 예속 관계를 조성한다. 첫째는 여성의 남성에 대한 예속, 둘째는 자본에 대한 인간의 예속, 셋째는 한 국가 또는 민족의 다른 국가에 대한 예속이다.”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요. 쉽게 설명해주세요.”
딸이 요구했다.
“그래,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자. 작년(1982년 초)의 연구기관 발표 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 중 월수입 7만 원 미만이 59퍼센트라 하더라. 그런데 그 대부분이 너희들 여학생들이 ‘공순이’라고 천시하는 여직공들이라 한다. 7만 원에서 한 여공의 한 달 밥값을 제하면 뭣이 남겠니? 그런데 여공이 자기의 지체를 감추고, 수입이 많은 여성을 모방하려면 그 여인들이 그 값을 치를 밑천이란 뭣이겠니? 이 나라의 많은 가난한 여성이 유행의 사치를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의 몸을 남자의 애무의 재료로 맡기거나, 생명의 창조와 사랑의 행복을 위해서 신이 갖추어진 몸을 상품으로 팖으로써 남자에게서 그 대가를 받을 수밖에 무슨 밑천이 있니? 여공보다 조금 나은 지체나 직장이나 수입의 여성은 여공이 자기의 몸을 상품으로 내놓은 대상보다 조금 더 수입이 많은 남성에게 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여공보다 한 급 위의 사치를 구하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많은 탤런트가 재벌의 아들이나 정계의 거물들한테서 그렇게 해서 유행과 사치를 누린다는 것은 이 사회의 상식이 아니냐? 그 순서대로의 관계가 여러 가지 형태로 상층 사회 여성에까지 적용되는 현실을 우리는 매일 매스컴을 통해서 보고 들어 알고 있지 않니? 남자가 여자보다 수입이 많고, 큰 경제권을갖게 되어 있는 사회ㆍ경제구조에서 유행과 사치는 여성 스스로 남성의 예속물로 전락하는 가장 쉬운 길이야. 허영, 사치, 유행 때문에 신성한 결혼 관계가 깨어지고, 여학생이 홍등가에서 공공연히, 또는 사통(私通) 관계로 그 자금을 조달하고, 남학생이 그 밑천을 마련하려고 살인, 절도, 강도질을 하는 일까지 있다지 않니? 어른도 꼭 같지. 그 수법이 더욱 교활할 뿐이지. 결국 이것은 여성의 남성과의 관계에서 ‘인간소외’와 ‘불평등’을 영속화하고 ‘여성해방’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헌법에 남녀평등이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여성이 유행에 따라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남자의 팔에 매달려서 걷는 따위로 평등하거나 해방된 것은 아니야. 우리나라 여성은 사치와 유행을 거부할 줄 알게 될 때, 비로소 남성과 평등해지고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해방이 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니?”
“잘 알겠어요, 아버지.”
“그래 좋다. 그런데 인간의 해방이나 평등은 이성에 대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제1단계의 평등ㆍ해방일 뿐이야. 다음은 자본의 논리, 쉽게 말해서 물질의 지배로부터 해방이 돼야 해. 유행과 사치와 허영의 재료는(일부 정신적인 것을 제외하면) 물질적 생산품이야. 그리고 그것은 자본에 의해 우리 사회의 경제적 생산과 분배제도를 통해서 상품화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예, 그 정도는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의 수준인걸요.”
아들의 소리였다.
‘소비미덕주의’의 논리와 모순
“그런데 그렇게 쉽지만도 않단다.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의 자본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것을, 수백 수천 가지의 현상적 변화로 유행을 창조해내는 거야. 미국의 자동차가 가장 좋은 예지. 미국 자동차의 꼬리에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두 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니, 석이야?”
“자세히 못 보았는데요.”
“그래, 옆으로 누운 것도 있고, 45도 정도 또는 60도 정도로 기운 것도 있고, 바로 서 있는 것도 있고, 큰 것, 작은 것, 뒤로 조금 젖혀진 것, 앞으로 수그러진 것, 끝이 뾰족한 것, 조금 뭉툭한 것, 아주 둥근 것, 그런 것이 있단다.
전문 서적에서 봤는데, 그 변형에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효과나 성능의 차이가 없다는 거야. 그런데 미국의 자동차 기업은 해마다 그 하찮은 변형을 가해가지고는 ‘뉴스타일’을 좇는 사람들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거야. 이것이 어찌 자동차뿐이겠니. 의복, 헤어 스타일, 구두, 액세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 반지, 시계에서부터 냉장고, 텔레비전, 가재도구에서 자동차, 주택, 콘도미니엄 등등 한이 없어. 이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도 그렇지. 생활의 본질적 가치의 추구는 제쳐놓고, 상품의 현상적 변화를 허겁지겁 따르다 보니, 인간은 그가 소유하는 물질(상품)의 주인이 아닌 노예가 돼버리는 격이야…….”
그의 말이중단되었다. 아내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여보, 그렇지만 그래야 정부나 학자들이 주장하는 경제발전과 현대화, 그리고 또 생활수준 향상이 되지 않겠어요? 또 우리 국민이 존경하는 높은 지도자께서 언젠가 ‘소비는 미덕이다’라고 말하면서 열심히 유행을 따르고 정신없이 소비하라고 국민에게 간곡히 훈시하신 일도 있지 않아요? 당신은 아까부터 훌륭한 지도자들의 말과는 걸맞지 않는 이야기만 계속 하고 있어요……. 야, 석아, 정아, 아버지 이야기 그만 듣고 밥이나 먹자. 아버지의 말이 좋다면 어째서 그 좋은 직장에서 계속 쫓겨나겠니?”
남편은 미소를 지으면서 아내의 웅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미안하우. 내가 그런 물건들을 사 갖추지 못하고, 해마다 바꿔대는 유행의 생활을 당신에게 누리게끔 해주지 못해서 참으로 미안하우…….
그렇지만 잠깐만 더 들으시오. 그것은 내가 그럴 경제적 능력의 유무의 문제는 아닌 것이에요. 존경하는 지도자들의 ‘소비미덕주의’가 지금 빚어낸 이 사회의 꼴을 보시오. 물질적 생산, 즉 인간의 노동의 결과가 허영, 유행, 사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물질적 궁핍이나 부족 때문에 억제되어 있는 인간 능력의 다방면적 발전과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ㆍ문화제도라면, 어째서 공업화되고 소비재가 늘고 이른바 생활수준이라는 게 향상한다는데 인간의 도덕적 타락, 정신적 빈곤은 더해가는 거요? 우리 사회의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디 ‘인간애’가 있소? 개인의 삶이 왜 이렇게 일그러지고 잔악하기만 하오? 선하고, 순수하고, 사랑하고, 위하고, 서로 돕고, 서로 주고……의 인간정신, 사회정신은 없고, 왜 그렇게 서로 빼앗으려는 풍조뿐이요? 당신은 설명할 수 있소? 한마디로 표현해서 ‘인간(성) 파괴’말이오.
에머슨이라는 이가 ‘simple life, high thinking’이라고 말했지. 물질생활을 간소하게 할수록 인간정신은 충족되고 높이 솟을 수 있다는 의미요. 알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상업주의의 논리와 주의와 제도의 밖을 볼 수 있는 의식과 사상이 필요하지요. 그렇지 못하고 허영, 사치, 유행을 찬양하는 자본의 논리에 묶여 있는 한, 인간의 해방은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요. 이것이 제2단계의 여성, 나아가서는 인간의 해방이요.”
아내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서 있다.
“당신 친구 중에 그 누구더라, 회사 사장 부인 말이요……. 예수 믿는다고 조상 제사 안 지내고, 우상숭배라고 부모의 묘지 앞에서 발딱 뒤로 자빠지는 여자 있지요? 그러면서 밀수 다이아몬드가 들어왔다는 정보만 있으면 수표꾸러미 꿰차고 서울의 보물상과 호텔을 뒤지고 다니는 여자 말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누가복음 15장인가 87장 몇 절인가를 줄줄 외우면서, 하나님은 차별 없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당신에게 열심히 설교하던 그 여자 말이에요. 그런데 그 여자의 회사와 공장의 노동자 임금이 너무나 수탈적이어서 노동자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리고 밤낮 경쟁회사나 공장에 노동자ㆍ기능공을 빼앗기고서는 그들을 ‘배은망덕한 놈들’이라고 매도한댔지요. 그의 저택에는 마당에 수영장이 있고, 승용차가 세 대나 있고, 아들 딸 모두 미국에 집 사 보내고, 가내 장식 한 가지도 몇천만 원이고, 아들 결혼에 혼수감만도 1억 원어치를 하고, 아침 나들이 나갈 때마다 다이아 반지, 귀고리, 목걸이, 팔찌, 구두, 브로치 등을 절대로 같은 것은 안 한댔지요.
이만하면 당신도 알겠지. 생활수준, GNP, 경제발전,공업화, 어느 나라는 굶주리고 우리는 어쩌고……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요.
사치, 허영, 유행은 하느님도, 공자도, 부처도 쫓아버리는 위대한 마력을 가진 것이오. 요새 저 절과 교회 짓는 꼴들 보시오. 위대한 유행의 광증이요. 그 속에는 허위와 위선과 물질숭배가 가득차 있을 것만 같소. 유행은 우상이에요. 우상을 안 믿는다면서 최고의 우상을 섬기는 꼴들을 보시오. 그것이 유행이란 말이에요.”
더 무서운 것은 자기문화 상실증
남편의 말이 차츰 열을 띠고, 그 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아들, 딸, 아내는 저녁 식사를 잊고 있었다.
“아……. 미안하다. 석아, 정아. 그럼 마지막 이야기를 하고 끝내자. 유행은 국가와 민족을 외세에 예속시킨다는 제3의 명제에 관해서다. 그중에서도 ‘문화적 종속’이다. 우리 사회를 한번 살펴 보아라. 서울뿐이 아니다. 지리산 기슭의 마을까지 왜 그리 외래유형이 판을 치니? 아이스크림이 어째서 외국 특허품이어야 하니? 운동화 한 켤레가 어째서 외국 자본의 상표만 붙으면 3만 원이어야 하니? 아까 말한 한 달 임금 7만 원의, 이 나라 근로자의 59퍼센트 남녀 노동자 월수입이 그 운동화 두 켤레 반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무슨 나라는 어쩌고, 어느 제도는 어쩌고 하는 것인지……. 넥타이, 헤어핀, 핸드백, 드로즈, 슈미즈, 와이셔츠, 팬티, 양말, 브래지어, 구두, 코카콜라, 화장품, 술 심지어는 아이들이 먹는 알사탕에 이르기까지 외국 상표 안 붙은 것이 없어. 이거 왜 이러는 거지? 값진 고가품은 말할 필요가 없어. 그리고 그런 상품이 즐비한 것을 처음 봤다는 사람이 이 나라의 풍요에 놀랐다는 따위의 말을 한다는 기사도 보았지. 아마 삐에르 가르댕 넥타이와 와이셔츠 뒤에 400억 달러가 넘는 나라의 빚은 보이지 않았던가 보구나.
가난한 나라의 유행은 나라와 민족을 외국의 탐욕스러운 자본에게, 그리고 마침내는 그 자본들의 소속국인 외국들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한(했)다는 것을 생각해본 일이 있니?
우리나라 정치ㆍ경제 분야에서의 ‘소비미덕주의자’들은 그 이권 관계로 인해서 자기 나라 국민의 이익보다는 그들의 이익을 뒷받침해주는 외국의 경제권이나 그것을 후원하는 외국 정치권력의 이익 옹호에 기울기 쉽다고 한다. 그 결과는 국민대중의 이중의 종속 관계지. 국내적으로는 국민대중이 그런 소비미덕주의 세력에 예속되고, 소비미덕주의 세력은 외국의 소비미덕주의 세력에 예속되니까. 또 깊이 생각할 현상이 있지. 잠시도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안 주고 텔레비전 앞에 청소년을 붙들어 매놓는 저 야구소동 등 스포츠 폭풍,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꽉 메운 연애물, 이거, 과거의 식민주의 3s(스리 에스=스포츠ㆍ섹스ㆍ스크린)정책 풍토가 아니구 뭐니?”
아버지는 아들과 딸의 반응을 살피면서 잠깐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일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실을 말하지 않고 미루어왔는데, 그것은 외국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문화적 예속’, ‘정신적 예속’이다. 물질적 유행을 매개로 해서 외국의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 길들어버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개체의 인간적 자율성을 상실할 뿐 아니라 국민적으로나 민족적으로도 외국문화 숭배자로 전락해버리기가 쉽다는 말이다. 인간적으로, 국민적으로, 민족적으로 ‘총자기상실’(總自己喪失) 상태가 되어버리지. 나는 지금의 우리가 바로 그런 상태의 환자라고 본다. 특히 미국의 그 추악한 소비문화에 대해서다. 해방 후 38년간 미국의 소비문화에 길들여진 결과, 우리는 뭣이건 US 것이면 무조건 숭상하는 문화적 정신파탄자가 되어버린 것 같애.
정아, 너에게 묻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나도 미국인과는 꽤 오래 같이 생활하고, 영어도 남 못지않게 할 줄 알고, 그들의 생활속에서도 살아봤다. 그런데도 모를 일이 하나 있어. 우리나라 젊은이들, 특히 여학생들이 미국의 무슨 가수, 무슨 유행가가 나왔다 하면 바로 그날로 그 음악 같지도 않은 소음에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순식간에 도취해버리는 작태 말이다. 텔레비전에서, 야외에서, 캠퍼스 미팅에서, 길가의 레코드 상점에서, 디스코홀에서, 그리고 국가 공영의 중앙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오로지 팔다리 흔들고, 몸통을 비틀고, 소리를 빽빽 지르고, 남녀의 무엇을 형태화하는, 그런 노래뿐이니, 나는 정말 알 수가 없다. 구역질이 난다고 하면 내가 고루한 탓이니? 미국이나 서양의 무슨 유행가수, 무슨 팀이 왔다 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그 앞에서 광적인 흥분을 하는 작태를 텔레비전 화면에서 자주 보는데, 어떻게 됐길래 그럴 수가 있니?
광란증이야. 최면술에 걸린 거야. 완전히 민족적 이성을 상실한 상태야. 듣자니, 그런 노래와 작태에 흥분해서 브래지어며 팬티까지 벗어던지고 난리가 난다고 하는데. 이거 미국 유행의 마력에 신들려버린 철저한 문화적 노예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가 있겠니? 민족적 이성이나 교양의 그루터기조차 찾아볼 수가 없구나.
우리 자신의 문화의 빈곤 탓일까? 그렇다면 우리 자신, 특히 문화활동과 관련된 이들의 책임일 수 있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더라. 아까도 설명했듯이, 외국 문화, 특히 저속하고 경제불평등적 물질문화를 나라의 정책으로 추진해온 세력의 사상적ㆍ철학적 빈곤 때문이기도 하겠지. 그 위험성은 아까 제2의 해방이라는 대목에서 잘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우리나라 가요에서도 유행했다 하면 으레 그런 양키 음악조의 곡조인 것 같다. 우리 국민은 몸은 한국인인데 머리와 가슴은 미국인인 것만 같아 보인다. 정치ㆍ군사ㆍ경제적으로 뭣이 되어도, 도덕ㆍ문화ㆍ사상적으로 예속되지 않으면 민족이 헤어날 길이 있을 거야. 유행이란 이토록 엄청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겠니?”
그는 딸과 아들과 아내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유행이란 여성의 경우엔 여성의 아름다움의 권리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여학생 친구들도 그런 생각인걸요.”
딸이 대답했다.
“나도 그랬어요. 하기는 우리 남학생들은 별로 유행을 따를래야 그럴 만한 것도 없는걸요. 그래도 나이키 운동화는 좀 신어보고도 싶기는 한데…….”
운동을 좋아하는 고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달라고 할 구실과 기회가 미리 봉쇄됐다는 걱정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종합해서 이야기를 끝내자. 제복과 유행은 인간의 도덕적ㆍ정신적 위대성에 씌워진 굴레야. 제복과 유행은 하나는 고정적이고 하나는 변화적이니까 상반된 본성인 것 같지만, 인간의 해방, 특히 여성의 진정한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저해하는 아름다운 독약이라고 말할 수 있지. 인간의 사회적ㆍ정신적ㆍ예속 관계의 의지가 그 속에 관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정신을 타락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의식을 ‘3s’로 마비시키고, 국가나 민족까지 외국의 자본과 외세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허울 좋은 현대화, 생활수준 향상의 알맹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
아버지는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시간이 늦었구나. 미안하다. 피로할 테고 시장하기도 할 터이니 그럼 그만 하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유행의 사회학을 좀더 깊이 연구하고 싶거든 이 책을 앞으로 공부해서 한번 읽어보아라.”
아버지는 책장에서 앞서 인용한 몇 권의 책과 푹스의『풍속의 역사』를 탁자 위에 펴놓았다.
창밖은 벌써 컴컴해져 있었다.
네 식구는 저녁밥을 먹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일어난 딸이 지나가는 길에 라디오의 스위치를 눌렀다. 디스크 자키의 호들갑 떠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금 야구중계 프로가 끝났습니다. ……그럼, 다음은 미국 헐리우드에서 바로 오늘 아침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대 히트곡, 차아리 리치 양의「키스 앤드 굿바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키스 앤드 굿바이」…… 얼마나 달콤한 노래입니까? 우리 젊은이들의 마음이 한껏 부풀어질 겁니다. 자, 그러면 미국의 차아리 리치 양의「키스 앤드 굿바이」에 도취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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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 집필생활 30년 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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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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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위기와 한국의 평화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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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독재자의 ‘눈엣가시‘ 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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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쉬운 문학, 아쉬운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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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D검사와 이교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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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왔다(來了)!-노신과 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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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광주는 ‘언제나 그 곳에’ 있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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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불효자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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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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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 「사회주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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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지식인의 기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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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제복과 유행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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