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끝내 변할 줄 모르는 언론인들의 기회주의」

언론과 지식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21 20:20
조회
4353

9-4. 「끝내 변할 줄 모르는 언론인들의 기회주의」(1993년, 새는)


 


 


신문과 텔레비전을 비롯한 대중매체들이 문민정부의 과거청산작업과 사정활동에 뛰어들어, 마치 때를 만난 뭣들처럼 야단들이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언론이 도맡아서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다 좋은 일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본질이 되어버린 부정과 부패의 척결이 정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그런지 반갑다기보다도 어떤 걱정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곤 한다.
“뒤가 뻔한 짓을 또 시작하는 군……. 철저한 기회주의 언론들!”
자유당 이승만 정권 후반기에 기자생활을 시작한 나는 언론계를 떠나기까지 세 정권하에서 지금과 같은 작태가 되풀이되는 것을 체험했다. 그리고 대학으로 옮긴 뒤부터 지금까지 역시 세 정권 아래서 같은 꼴을 보았고 또 지금 보고 있다.
4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서, 6대의 정권이 바뀌는 동안에 목격하고 체험한 결론은 소위 ‘언론인’을 자처하는 기능인들의 전천후적 기회주의다. 영원히 변할 줄 모르는 그 일관된 기회주의의 속성은 바람의 방향이 살짝 달라질 듯한 낌새만 보여도 풍향침(風向針)보다도 먼저 재빨리 표변하는 뛰어난 선천적 처세술이다. 정말로 놀라운 재능이다.
부패ㆍ타락으로 이름난 이승만 정권이 그 악명 높은 폭정을 12년씩이나 계속할 수 있었던 배후세력은 두 가지였다.
4ㆍ19학생혁명의 기운이 수평선 위에 그 심상치 않은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여태까지 “국부(國父) 이승만 대통령” “세계적 반공주의 지도자”를 외쳐댔던 이날의 신문(기자)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이승만 대통령 자유당 정부의 부정ㆍ부패ㆍ타락의 폭로에 앞장섰다.
지금의 김영삼 정부처럼 이승만 독재정권의 뒤를 이은 민주당 정부도 초기엔 90퍼센트의 대중적 지지와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뭔가 바르게, 조금은 덜 부패하게 해보려는 민주당 정부를 이 나라의 신문(인)들은 그냥 두질 않았다.
민주당 정부가 이승만이나 박정희같이 신문(인)에 대해서 탄압과 ‘금일봉’을 넉넉히 그리고 적시에 처방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그리고 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진 군부독재 3대에 걸친 30년간, 이 나라의 높고 낮은 자리의 언론(인)들은 또 얼마나 입이 마르도록 그들에게 아부를 일삼아왔는가.
우리나라의 신문은 역대정권과의 관계와 존재양식에서 ‘무법’적인 강한 정권에겐 한없이 약하고, 총칼을 차지 않은 문치성(文治性) 정부에는 폭력적으로 포악했다. 같은 하나의 정권에게도 양면적으로 대응했다. 그 권력집단이 눈을 부라리면 언론(인)은 두 손 비비면서 정권 찬송가를 노래했다. 칭송 대상의 신세가 기울기 시작하면 비방과 매도를 일삼았다.
정권의 흥망성쇠가 되풀이되는 과정에서 반복된 동일한 현상은 그것만이 아니다. 새로 들어선 정권마다 “청렴ㆍ결백ㆍ정의”를 외쳤다.
그 속죄양으로 수많은 앞 정권의 권세가들이 형무소로 가고, 더 많은 감투가 굴러 떨어졌고, 더더욱 많은 사직서가 제출되었다. 각 분야에서 자기비탄과 반성의 소리도 심심치 않게 발표되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현상이 역시 변함없이 되풀이되었다. 언론사 사주, 간부 기자들 중에서 형무소엘 갔다거나 감투를 벗었다거나 한 사실은 들은 일이 없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세종대왕급으로 신격화한 언론인들 중에서 자기반성의 글을 썼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고, 부끄러워서 사표를 내고 신문사를 떠났다는 말을 더더구나 들어본 일이 없다.
이만하면 철저한 기회주의자라는 악평을 들을 만도 하다. 전형적인 전천후적 아세곡필이라고 말해도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제 언론은 달라져야 한다. 사주는 과거에 언론자유운동을 이유로 쫓아낸 기자들을 무조건 복직시킴으로써 속죄의 일단을 입증해야 한다. 언론인과 기자들은 뇌물과 촌지 없이 월급으로 살아갈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적 생활수준을 낮추는 훈련을 해야 한다. 신문기자들이 지금의 생활수준을 그대로 지키고 지금의 소비형태를 유지하려 한다면, 그들이 말끝마다 부르짖는 ‘사회의 목탁’도 민주언론의 대변자도 될 수 없다.
이 모든 일을 누가 추진할 것인가? 나는 다름 아닌 언론노동조합이 바로 그 일을 밀고 나갈 주동집단이라고 믿고 있다. 과거의 상태와 다른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깨어 있는 언론노조가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언론노보』, 19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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