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식 연대- 격려 저널리즘
리영희식 연대- 격려 저널리즘
리영희 선생은 원고를 쓸 때 혼신의 힘을 다해 한 글자, 한 글자 메워나갔다. 깨어 있는 지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내려놓은 적이 없는 선생은 가벼운 글이건, 무거운 글이건 최선을 다했다. 원래 완벽주의자이기도 했지만, 언제 날벼락처럼 들이닥칠지 모르는 ‘마녀심판’의 음모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깝게 지냈던 후배나 후학들 중에는 선생의 성격이 까탈스러운 편이었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편으로 선생은 비판적 지적활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따듯한 마음을 담은 격려 글을 보내 응원하곤 했다. <한겨레신문> 창간 주역이었던 선생은 신문사를 떠나 외부활동을 대폭 축소한 이후에도 신문을 꼼꼼히 보면서 마음에 드는 내용이 있으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선생의 다른 면모다. 유신독재 시절 <조선일보>의 해직 기자였고 한겨레에서 논설주간, 부사장을 지낸 성한표 선생의 글을 싣는다.
1997년 10월18일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로 한 장의 팩스가 들어왔다. 짧은 글이니 먼저 전문을 소개한다.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 여러분
오늘 아침 사설, 훌륭했습니다. 문제의 핵심 분명하고, 주장의 논리정연하고, 해법의 공정성 탓할 데가 없습니다. 아마도 정국을 향도할 여론조성의 일대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논설위원실 여러분의 판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당시 나는 논설위원실을 주관하는 논설주간을 맡고 있었는데 내용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8일자 사설을 극찬하는 리영희 선생의 친필 서신이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글은 지면 1면에 <‘대 정치회담’을 제의한다> 는 제목으로 실린 대선 관련 사설을 평가한 편지였다. 이 사설은 판세에서 밀리고 있던 신한국당이 대선(12월18일)을 두 달 열흘쯤 앞둔 10월7일 느닷없이 ‘김대중 비자금설’을 들고나와 대선정국에 소용돌이를 일으킨 일을 비판한 것이다.
당시 선거 판세는 김대중 후보가 승자가 될 것이라는 분위기로 정리되고 있었다. 9월27일 MBC가 실시한 여론조사는 김대중 31,9%, 이인제 22.3%, 이회창 17.1%로 김대중 후보가 앞서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대선판의 뜨거운 열기는 숫자로 나타나는 여론조사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김대중 후보가 승리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대선 후유증이 터질 것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김대중 비자금설’은 이와 같은 대선의 흐름을 바꿔보려는 신한국당의 과욕이 꺼낸 ‘비장의 카드’였지만, 검찰이 선뜻 움직여주지 않았다. 급해진 신한국당은 비자금설 폭로 일주일만인 14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김태정 검찰총장을 불러 당장 수사에 착수하라고 다그쳤지만 김 총장의 신중한 입장은 유지되고 있었다. 이틀 뒤인 16일 한겨레 논설위원들은 사태의 심각성과 상황의 절박성을 인식, 이 문제를 특별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있었던 1면 사설로 다루기로 의견을 모았고, 편집국도 동의했다.
대선과 비자금설과 검찰수사 문제 등이 얽혀 당시의 시국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으며, 이 상황을 논설위원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던가는 사설의 첫머리가 말해준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대선과 그 후보들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칼자루를 검찰이 쥐고 있다.” 나흘 뒤인 21일 비자금 수사를 유보한다는 검찰의 발표가 나왔고 대선은 정상궤도로 되돌아왔다.
나는 후배들을 정중하고도 따듯한 필체로 격려해주는 선생의 배려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의 친필서신을 지난 25년간 고이 간직해왔는데 이제 리영희재단에 내놓는다. 선생의 마음가짐과 처신이 후세에 길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1997년 10월 18일자 한겨레 1면에 통으로 실린 사설
성한표 전 한겨레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