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적이고 반이성적인 대한민국 - <21세기 첫 십년의 한국: 우리시대 희망을 찾는 7인의 발언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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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4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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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렇게 날씨도 궃은데 많은 학생들이 와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오늘, 한국, 조선, 한반도, 이 민족의 미래에 귀결되는 문제들을 가지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7,80년대 질풍노도와 같이 어렵고 피눈물나는 격동의 시기에 대학을 다닌 많은 학생들과 일반지식인들은 좋은 뜻에서건 나쁜 뜻에서건 저의 책에 의해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저는 제가 쓴 책으로 말미암아 투옥당하고 고문당하고, 또는 대학과 공장, 회사에서 쫓겨나서 몇 년씩 집에도 들어가지도 못한 채 피해다녀야 했던 후배, 후학들에게 굉장히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반지성적이고 반이성적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종교신앙처럼 강요되고 믿어져왔던 광적이며 병적인 극우반공주의에 길들여져 있던 젊은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저의 「전환 시대의 논리」라든가 「우상과 이성」, 「8억 인과의 대화」, 「베트남 전쟁」 등의 책을 읽고서, 올바른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 그리고 올바른 지식인의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런 신념과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회적 구성원들이 사는 사회와 국가는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문제들을 가지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결과가 20년 동안이나 지속된 오랜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처절한 투쟁의 싹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경찰이 길가에서 가방을 마음대로 뒤졌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영장이 있어서도 아니고, 길 가는 사람을 세워놓고 가방을 펼쳐서 검사했습니다. 그 속에 제 책이 한 권이라도 있으면 끌려갔습니다. 국가라는 것은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폭력장치 아닙니까? 젊은 학생들이 형무소에 가고 고문당하고 그래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우리 역사의 한 때는 정말로 그랬습니다.


우리는 시민이어야 합니다


70년대와 80년대 말에 걸친 20년 동안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해서 공장 노동자와 일반 사회인들이 사상적 혹은 의식적으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하던 때였습니다. 우리에게 극적인 변화와 정신 사상적, 문화적, 의식적 충격을 준 시기였습니다. 7,80년대는 극우 반공주의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그 밖의 일체의 것은 배격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학교 교육과 사회 교육, 국가 교육에 의해 물들었던 반지성적인 머리를 완전히 해독하고 새로운 신념과 사상 체계를 세운 지성사의 극적인 시기였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최루탄이 어떤 모양이고 그 가스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잘 모르실 겁니다. 여러분은 무지 행복하고 다행스러운 세대입니다. 당시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은 강의실에서 수업은 하루에 한두 시간 받을까 말까 했고, 밤낮 데모하느라 경찰에 쫓겨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군대가 학교를 폐쇄했으며, 워커를 신고 철모를 쓴 군인들이 강의실을 점령했습니다. 그런 때에 대학을 다녔던 여러분의 선배들은 지금 40~50대가 되었습니다. 그 선배들은 불행한 세대였습니다. 그러나 비인간화와 소외에 대해 항거하며 삶의 보람을 느꼈던 세대이기도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소외는 어떤 결정 권한을 박탈당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적으로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정신적인 존재가 진정한 자율적이고 주체적이며 자기 결정적인 인격체이기를 부정당할 때 소외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70~80년대 이런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자유로운 인간이고 정형성을 지닌 인간으로 민주주의적 시민이 되기 위해 불의에 항거했습니다.


여러분은 ‘국민’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됩니다. ‘민주주의적 시민’이라는 말을 써야 합니다. 국민이라는 것은 국가라는 상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봉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들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 오늘날까지도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결혼식장에서 주례사를 하면서도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존재의 구성원인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지칭하는 대신 ‘국민’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것은 벌써 소외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돈, 권력, 힘을 상징하는 국가라는 상위의 가치와 존재를 인정하고, 그 밑에 존재하는 개개인들을 ‘국민’이라는 정치 용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국민’이라고 부를 때 이를 소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민’이어야 합니다. 시민이란 어떤 권위나 권력도 어느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평등 사회인 시민 사회 속에 존재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방 후 50년 동안 권위주의적인 지배자로서의 국가 권력은 극우 반공이라는 광적인 사상 통제 수단을 가지고, 우리의 시민으로서의 삶을 부정하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해 왔습니다. 이런 지배에 항거하고 투쟁하며 죽어 간 선배들은 시민으로서의 자기 존재를 위해 싸웠기에, 소외를 극복하며 삶의 귀중한 보람을 느낀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독자성을 가지고 자기 결정적이며 자유로워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으로서의 시민의 삶은 자유로운 인간의 가치를 부정하고 억압하고 탄압하는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 항거하며 싸울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저항 없이 ‘편안한’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우리에게 소망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 의미랄까, 뭐 이런 것이 박탈되거나 퇴색되는 사회라고 볼 수 있지요.


우리는 항상 삶의 의미를 파악하고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시대의 선배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된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고통과 고민과 쓰라림과 두려움, 그리고 언제 잡혀 갈지 모르는 위협과 고통 없이 지낼 수 있는 행복한 세대이니만큼, 공동으로 영위해 나가는 우리 사회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부정에 대해 항거할 수 있는 자율적인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과거의 선배들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선배가 싸운 결과의 혜택을 받아서 상대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책이 안 팔릴 때가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솔제니친에 대해 감명 깊게 읽은 기사가 있습니다. 구소련 시대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쓴 솔제니친은 당대 소련 사회의 권력 지배의 부조리와 부정적 요소를 고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1974년 반역죄로 소련에서 추방되어 미국에 망명해서 살다가, 소련이 러시아로 바뀌면서 90년대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때 미국의 기자들이 솔제니친에게 “오랫동안 사회 계몽 활동과 훌륭한 저술을 많이 하셨으니, 이제 돌아가시면 러시아의 많은 독자분들이 환영하겠네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솔제니친은 "아마 돌아가도 내 이름을 기억하는 러시아의 젊은이들이 없을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그러면 섭섭하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솔제니친은 “제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책을 써왔는데요.”라고 답변했습니다.


가끔 인터뷰하러 오는 기자들이 저에게 “책의 인세가 얼마나 들어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한때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경우는 당시에 학생들이 안 읽으면 안 되었으니까 몇십만 권 나갔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부터 읽힐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10~15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제가 책에서 원하고 주장했던 방향대로 더디지만 힘들고 괴로운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여러분들이 현재 누리는 것처럼 변화되었습니다.


제가 책에서 주장한 “이래야 한다, 이런 가치가 중요하다, 이래서는 안 된다.”라는 많은 이야기들이 이제는 현실적으로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기에 읽힐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책에서 들어오는 인세가 완전히 0이 되었을 때가 제일 행복한 때일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은 “책이 잘 팔려서 인세가 많이 들어올 때가 행복할 텐데, 무슨 뜻이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저는 “제 책이 안 읽히고, 읽을 필요가 없고, 또 팔릴 필요가 없는 상태가 제가 책에서 쓰고 주장하고 요구하고 계몽하려고 한 것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고생하면서 책을 썼고, 인세가 0이 된 상태가 제가 싸워 왔고 노력해 왔던 것이 실현되는 상태이기에 제일 행복할 것입니다.”라고 한 겁니다. 이제 인세가 거의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문사에 간부로 있으면서 유일하게 베트남 전쟁과 베트남 전쟁 파병에 반대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저널리스트 중에서 마치 베트남 파병이 국익을 선양하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라크 파병보다 당시엔 더했지요.


우리 민족이 역사상 처음으로 남의 나라 영토에 가서 지팡이를 꽂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다는 따위의 허무맹랑한 애국주의, 민족주의, 폭력주의, 전쟁 숭배, 군대 숭배가 들끓었던 겁니다. 모든 신문이 베트남 파병이 반공주의 성전이라고 떠들었습니다. 미국의 꽁무니에 붙어서 용병 노릇하러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들떠 있을 때 유일하게 제가 반대하자 조선일보에서 저를 쫓아냈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을 탄압할 때, 군대가 대학까지 점령했습니다. 그 당시 ‘전두환’이라는 유명한 깡패(?)가 육군 중령이었는데, 그 친구가 고려대학교에 일개 대대를 끌고 들어가 점령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식인들이 “학원을 유린하지 말라, 학원의 자유를 빼앗지 말라, 학생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라고 성명을 냈는데, 이 때문에 지식인들이 대학에서 쫓겨났습니다. 당시 언론인이었던 저도 그 가운데 포함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또 쫓겨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었는데, 1977년에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교수 자리에서 해임된 후 형무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4년 뒤 정권이 바뀌어서 전두환 정권¹이 쫓아낸 38명의 교수들을 마지못해 복직시킬 때 대학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가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또 다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4년 후에 다시 교수로 복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신문사 간부 시절에 두 번, 대학교수 시절에 두 번, 제 평생에 네 번 형무소를 다녀옵니다. 이런 엄청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누리는 이 사회의 웰빙이 그냥 된 것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이런 격동의 시기를 거쳤다는 것을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참 행복한 세대입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다?


오늘은 뭐 특별한 이론을 여기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주로 남북 문제, 우리 통일 문제, 남북한 군사 문제, 미국과의 관계 문제, 한미 방위조약 문제, 군사 전략 문제, 중국과의 문제 등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를 주제로 해서 많은 글들을 써왔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과 교수들은 반공주의 폭력 세력인 군사정권에 아부하고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를 해야 할 사람들이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글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고 한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은 이라크 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이었거든요. 아직도 우리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미국이 하도 엉뚱한 짓을 하니까 조금은 보는 눈이 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군사독재정권과 극우 세력들이 자기들 세력의 기반으로 하고 있는 국제법적 근거인 “대한민국은 유엔총회가 한반도에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한 국가다. 따라서 북한은 괴뢰정권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극우 세력들은 이런 전제를 북한에 대한 공격에 이용해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유엔총회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 국가가 대한민국이라고 그렇게 알고 있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도 반공주의가 왜곡한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유엔총회가 승인한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가 아닙니다. 1947년 10월 15일에 승인된 유엔총회의 결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38도선 이남에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한다.”라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38도선 이남에 한정된다는 이런 엄청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겁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논문에 썼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기틀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부정한다는 것이랍니다. 그러나 이게 진실입니다.


이제는 북한과 대등하게 회담하고, 장성 회담 등 뭐든 다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유엔총회가 승인한 유일 합법 정부라는 과거의 그런 반공주의적인 대전제가 사실이라면 그런 행위는 전부가 불법입니다. 그야말로 남북 정상회담을 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형무소에 가야 하는 겁니다. 유엔총회는 “대한민국이 38도선 이남에 수립된 정부고, 그 전제와 조건 하에서만 유일한 합법 정부다.”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38도선 이남에서 어떤 자가 정부를 하나 더 수립했다면 그것은 괴뢰 불법 정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엔이 승인한 38도선 이남의 정부는 서울에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정부인데, 대구나 광주에 또 하나 들어섰다고 한다면 그건 괴뢰 정부이고 불법입니다. 그렇지만 북한의 정부는 남한의 정부하고 대등한 국가이고 정부로 봐야 합니다. 이런 얘기는 정말 이론적으로 끝이 없이 강의를 해야 합니다.


과거에 군사정권은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에 비해서 우월하기 때문에 하루 사이에 북한의 20만 병력이 포항까지 점령하고 내려올 수 있다는 식으로 겁을 주면서 통치를 해왔습니다. 이걸로 반공 통치를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북한이 전쟁을 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그 군사력이 엄청나서 남한에 하루 사이에 밀고 내려올 수 있다는 반공주의자들의 선전과 잘못된 주장을 믿고 있을 때, 저는 82년에 <남북한 전쟁 능력 비교 연구 시론>²이란 논문에서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의 군사력보다 월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금 남한의 군사력이 북한보다 월등하다는 게 아닙니다. 이미 82년 상태에서 남한의 군사력이 월등하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요즘에야 없겠지만 저는 이미 80년에 들어와서 모든 자료 & 사실을 통해 “우리가 강하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꿈을 깨야 합니다.


미국의 광역적 군사 행동


저는 85년에 한미 방위조약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우리는 한미 방위조약이라는 것이 미국이 남한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약이라고 생각하는데, 거의 90%는 사실과 다른 겁니다. 10%는 그런 효과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1953년 12월 체결된 한미 방위조약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미국의 군사력이 남한을 보호하고 국가를 보호하는 그런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년대에 들어오면 벌써 그 효과와 목적은 사라집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통일을 방해하고 거부하며, 오히려 남북한의 영원한 분단을 책동하고 그것을 고착화시키고 있습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에 들어오면 대한민국 군대는 북한을 군사적으로 섬멸할 수 있는 미군의 하부 구조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독립 국가와 주권 국가의 군대가 아닌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됩니다.


세계적으로 지탄받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이라크 침략 전쟁에 대해 남한의 군대가 또다시 베트남 전쟁 때처럼 가야 한다고, 이런 것을 의무로써 생각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임 한미사령관이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슬쩍 한 마디를 넣었습니다. 전 그것을 뉴스로 보면서 ‘큰일 났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한두 신문이 그걸 파악하고 사설에서 반박을 했습니다. 뭐냐 하면 “앞으로 대한민국의 군은 미국의 광역 전략의 동반적 군사력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광역적 군사 행동이란 무엇이냐 하면, 한미 방위조약에 의해서 남한에 있는 미군은 한반도에서 북한군의 침략이 있으면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 명시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하고 전혀 관계없는 유럽, 라틴아메리카, 아랍 등에서 군사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미국이 20년 이내에 중국을 군사력으로 없애버리려는 전략에 의한 겁니다. 미국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남한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말하면, 미국은 앞으로 20년 이내에 미국보다 더 커지거나 또는 그 세력이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문화 모든 면에서 미국에 맞서 대등한 세력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중국을 없애려고 하는 군사 전략을 지금 동북아시아에서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1972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대만은 원래 중국의 고유의 영토이기 때문에 대만을 독립시키려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선언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30여 년 동안 대만 정권을 군사적으로 무장시키고 독립시키려 했습니다. 일본의 오키나와 기지처럼 대만을 이와 같이 요긴한 군사 기지로 만들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그래서 대만이 중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고, 중국에 내란이 발생하게 될 때, 미국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중국에 대한 전쟁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중국이 미국에 대항할 힘이 없으니까, 혹시라도 미국의 그와 같은 군사적인 압력에 굴하게 되거나 또는 그 전 단계에서 중국이 어떤 외교적인 해결을 모색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중국이 미국에게 “당신네들이 원하는 대로 북한과 전쟁을 해서 굴복시키든 지배하거나 해서 마음대로 한반도를 요리하고, 그 대신 대만은 손대지 말고 우리에게 약속한 대로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대만과 북한을 가지고 이런 흥정이 벌어질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권을 보호하는 한미 방위조약의 역할은 이제 끝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지금 아시다시피 경제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26분의 1 수준입니다. 지금 북한은 남한하고 전쟁할 여력이 없습니다. 평화적인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통해서 남한도 쓸데없는 국가 예산의 낭비를 막아야 합니다. 미국 무기 사다가 북한과 대항하는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은 바로 우리 남한 사람들이 그런 평화 지향 의식을 가질까 봐 계속 북한의 침략 위협을 강조합니다. 미국은 끊임없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극우 세력에게 주입함으로써 남한에 대하여 미국이 지배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의 그와 같은 전략에 마비되어서 “미국 없이는 못 산다.”는 그런 어리석은 정신병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SOFA(한미 주둔군 지위협정)와 관련해 미국과의 법적 지위 문제를 놓고 불화가 일어나면, 미국이 우리 주권을 침해한다며 마치 대한민국이 주권 국가나 독립 국가인 양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주권 국가가 아닙니다. 미국의 예속 국가입니다. 그런 의식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은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주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방위조약에 그렇게 결정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국제 간 생존에 있어서 분규를 해결하는 방법은, 처음에는 외교적 방법인 말로 하는 방법이 있고, 둘째는 어떠한 이익을 교환해서 상호 간의 선택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앞서 말한 두 가지로 해결이 되지 않을 때 전쟁으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쟁을 하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긴 하지만, 국가의 이익을 최종적으로 보호하는 수단은 결국 전쟁인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수행하는 최고의 국가 주권과 독립성의 보호 수단이 무엇입니까? 그 주체는 군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군대는 대한민국 대통령에 속해 있지 않고, 엉뚱하게 다른, 미국 대통령에게 속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최종적으로 국가의 이익이 넘어야 할 때 무력을 사용할 능력이 없습니다. 근원적으로 배제되어 있습니다. 아주 엄청난 사실입니다. 여러분들 혹시라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주권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외국하고 경기를 할 때 대한민국~ 대한민국~ 하고 떠드는 것은 괜찮아요, 운동이니까. 그러나 진정으로 대한민국이 주권 국가나 독립 국가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한미 방위조약 제13조에 어떻게 되어 있냐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의 합의에 의해서 그 영토와 영해와 영공을 미국의 군사력 배치와 관련해 조건 없이 무상으로 제공하고, 미국은 또 이를 수락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개인에게 있어 그 생존의 법적, 정치적, 물질적, 문화적 틀은 말하자면 내 가족, 내 집, 내 은행 통장, 내 울타리 안의 텃밭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미 방위조약에 의해서 대한민국은 국가의 생존의 틀인 영토, 영해, 영공을 미국에게 무조건 무상으로 시간에 제한 없이 무기한으로 양도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해놓은 국가나 국민이 어떻게 주권 국가입니까?


여러분! 미국이 주한미군 1개 사단 (3천 6백 명)을 이라크에 파병한다고 했을 때 한국 정부하고 사전에 얘기도 없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창피한 얘기입니까? 세계에 이따위 나라는 없습니다. 일본도 미국과 방위조악을 체결했을 때,그 조약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우리하고 비슷한데. 미국군 대가 이동할 때는 일본 정부와 분명하게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우리하고 또 다릅니다. 미국은 군사적인 차원에서 말한다 면 "한국은 내 영토고 내 영해고 내 영공인데 그걸 너희들이 간섭할 게 뭐 있냐?”라고 합니다. 조약에 의해서 미국이 한국에서 군대를 마음대로 움직인다고 해도 우리는 간섭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일 년에 2천 건의 미군과 관련된 범죄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미군 범죄 사건에 대해서 최소한 재판권 내지 조사권이라도 행사되는 것이 일본의 24% 정도밖에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필리핀 사람들이 여기 와서 식모나 하고 노동을 하니까 보잘것없이 보여 우습게 볼지 모르지만 필리핀은 우리하고 달랐습니다. 100년 동안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2차 대전 종결 후에 독립 선언을 했습니다. 그때 3억 7천만 달러를 미군 기지 사용료로 받았습니다. 필리핀에는 수빅만 기지가 있고 아시아 최대 공군기지인 클라크 기지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사용료를 받았던 겁니다. 우리처럼 “예~ 맘대로 당신네 겁니다.” 이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1983년 필리핀 정부는 이제 인플레가 되어 값이 올랐으니까 미군 기지 사용료로 8억 달러를 내라고 했습니다. 미국에 대해서 기지 사용료를 인상한 겁니다. 그래서 미국은 “꼴값하네, 이 새끼들.” 뭐 그러기도 했지만 베트남 전쟁이 끝나서 베트남에 근접해 있는 그런 엄청난 군사기지가 별로 효용이 없었기 때문에 8억 달러를 줄 바에는 나간다고 했습니다. 필리핀은 그 후부터 미국의 군사기지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경우만 그러했던 것입니다.


서해 북방한계선


서해 북방한계선에서 꽃게잡이 때문에 남북한 해군이 충돌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북한 해군이 구축함을 몇 척 가지고 내려왔었는데, 이 나라의 신문들, 지식인들 너나없이 데모하고 북한 타도를 외쳤습니다. 신문들은 북한이 우리의 영해를 침범했다고 야단이 났습니다. 북한과 남한 사이의 영토에 대한 규정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협정만이 유일한 국제법적인 정치적 근거입니다. 거기에 대한민국 대표는 아예 참관도 못했습니다. 그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주권 국가가 아니었으니까요. 대신 남한의 모든 이권이나 전쟁의 결과를 대표해서 사인한 것은 미국입니다.


상대방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최종 승인은 북측 대표로 남일이 했고, 중국 군대를 대표해서 펑더화이(팽덕회, 彭德懷)가 사인을 했습니다. 휴전협정 문서는 세 나라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조선말, 중국어로요. 거기에 뭐라고 되어 있냐면 “법적인 해석과 분쟁이 있을 때에는 그 근거는 영어, 조선어, 중국어로 한다.”입니다. 한국어가 아닙니다. 한국어가 아니라 조선어예요.


그런데 거기에 “서해안에는 아무런 선을 긋지 못한다.”라는 말이 딱 못 박아 있습니다. “서해안 바다 밑에는 어떠한 분계선도 긋지 못한다.”라고요. “이 해역은 쌍방이 공유하는 해역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조인할 당시 연평도 등 다섯 개 섬은 미국의 공군력과 해군력이 막강하게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해안에 있는 다섯 개의 섬들은 앞으로 평화협정이 정식으로 체결되어서 그 영유권 관계가 최종적으로 해결될 때까지는 잠정적으로 유엔군의 관리하에 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섬들은 유엔의 관리하에 두는 것이지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닙니다. 이 바다엔 어떠한 분계선도 긋지 못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아주 중요한 겁니다. 그걸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이승만이라는 대통령이 감히 북침 통일한답시고 압록강, 두만강까지 가서 무력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휴전협정을 체결하려는 것을 강력히 방해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상상이 안 가지요?


판문점에서 전쟁 포로 문제를 포함한 정전에 대한 협정을 하고 있을 때, 이승만은 한국군을 시켜서 남한에 있던 5만여 명의 북한과 중국의 포로들 가운데 3만여 명을 야간에 전부 석방시켜버립니다. 엄청난 국제법 위반이었지요. 포로는 전쟁과 관련된 범죄여서 전쟁과 관련된 법률에 의하여 전쟁 포로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정전협정이 진행될 때 이런 일이 있었기에 북측과 중국의 항의가 엄청났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승만의 깡패와 같은 짓거리를 용서할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승만이 휴전협정을 결렬시키려고 하자, 비상사태로 보고 유엔군으로 하여금 이승만을 체포, 감금하려는 계획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를 해체하고 대통령을 새로 임명하려 합니다. 그래서 남한의 국가 관리를 유엔이 하게 하려 합니다. 그리고 유엔사령관이 이런 비상조치를 백선엽 당시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에게 위임합니다. 이와 같이 이승만을 잡아넣고 정부를 해체시키며, 유엔이 관리하는 정권을 수립하여 새로 들어설 정권에게 국제법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받으려 하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미국이 이렇게 강력하게 나오자 이승만은 할 수 없이 휴전협정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남한의 해군을 북한의 황해도에 상륙시켜 전투 행위를 계속했습니다.


서해를 살펴보면, 황해도와 인천 사이에 강화도가 있고 그 근처에 우도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그리고 판문점으로 이어지는 임진강이 있고 그것이 다시 개성으로 이어집니다. 휴전협정에는 임진강이 한강과 합쳐지는 지점까지, 남북 쌍방의 어선들이 왕래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국제법상으로 남쪽의 어선이 북쪽으로, 북쪽의 어선이 남쪽으로 와서 정박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서로 민생은 해결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강이 갈라지는 지점 이후부터는 DMZ이 갈라놓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연평도, 우도의 섬을 이어서 경계로 삼게 됩니다.


그런데 북의 영토에서 그 선까지의 거리가 고작 6~8킬로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선에서 소리를 지르면 육지에서 들릴 정도였습니다. 당시 그곳은 미군이 점령했었기 때문에 중국과 북한은 도저히 그 영역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휴전협정에서 일단 유엔군이 그 영역을 관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합의했습니다. 평화협정으로 영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유엔군이 관리하는 것으로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바다에는 어떤 명분의 경계선도 그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일제 시대부터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는 우도를 기점으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 경계선에 입각해서 행동한다. 그러나 선은 그을 수 없다.”라고 서로 합의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휴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이승만은 남한의 군대를 황해도에 주둔시켜 북측을 계속 공격해 소도 끌고 나오고 사람도 죽이고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설명드린 것은 기록에 명확하게 나와 있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이 국제법을 상당히 잘 준수하는 나라라고 생각하실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 큰일입니다.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휴전협정은 북한과 중국, 미국이 함께 참여하여 체결한 조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이 이렇게 북의 영토를 침입하고 공격하자, 휴전협정이 언제 깨질지도 모른다며 이런 사태가 온다면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국제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권은 휴전협정 이후에도 계속 이승만이 북의 영토를 침범하자 유엔사령부로 하여금 줄을 하나 긋게 했습니다. 그것이 현재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서해 북방한계선인 것입니다.


이 선은 북한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측에서 올라가지 못하게 막는 선으로 유엔이 공표한 선입니다.


이런 문제는, 극우 반공주의와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적개심, 그리고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 사상 등으로 의식이 마비되지 않고 몽롱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판단력이 있고 의식이 선명한 개인이라면 초등학교 3학년 학생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북방한계선의 목적과 본질에 대한 이런 분명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북방한계선의 이름은 한자로 ‘北方限界線’입니다. 북방으로 올라가는 것이 배이든지 사람이든지, 북쪽으로 올라가려다가 한계선이 나오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북쪽의 한계선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북한의 배나 군대가 남쪽으로 침범해서 내려오려고 하기 때문에 만든 선이라면, 이름을 바꾸어서 ‘남방한계선南方限界線’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초등학교 3학년도 알 수 있는 이런 단순한 내용을 내가 논문에다 쫙 썼는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학장이라는 어느 교수는 이걸 가지고 “한국의 영토인데 무슨 소리냐?”라고 했습니다. 사태가 커지니까 유엔군사령부가 “북방한계선은 이런 이유로 공표한 것이다.”라고까지 해명을 했습니다. 반공주의에 찌든 남한의 지식인들은 이성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서울대 법대의 학장이라는 자가 북한이 남한을 침범했다고 핏대를 세우는 것을 보면 나머지는 더 알 만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뿐이 아닙니다. 저 평화의 댐이라고 화천에 댐 세운 거 아시죠? 여러분은 그 댐을 세우게 된 당시 상황을 잘 모를 겁니다. 당시 남한 독재정권은 남한의 국민들을 반공교육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적개심으로 몰아붙여야 했습니다. “북한이 화천에 있는 강의 물을 막아서 자기네 발전댐으로 사용하다가, 유사시 댐을 터서 남한을 물바다로 만들려고 하는 거다.”라고 하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 당시에 교수라는 지식인 작자들이 써놓은 논문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북한이 저 댐을 무너뜨리면 남한은 서울의 남산 꼭대기까지 물이 차서 순식간에 물바다가 된다는 어이없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한 사회 내에서는 한때 엄청난 야단과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정신을 제대로 차려야 해요. 정부가 발표하는 것, 신문이 발표하는 것, 군대가 발표하는 것들을 바라볼 때 기본적인 자세로써 데카르트가 말한 ‘To doubt is the beginning of reason’을 항상 염두에 둘 것을 당부합니다. “군대가, 정부가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정말일까?” 하는 의심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혹시 사실이 아니지 않을까? ‘To doubt’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달라는 것입니다. 지성인이라면 권력이 말하는 온갖 것들에 대해서 맑은 정신으로 ‘To doubt’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시 평화의 댐 이야기를 하자면, 북측에서 금강산댐을 만들어 물을 채우는데, 여기서 남한강으로 물이 내려가면 발전소가 남한 쪽으로 가까워지고 물이 남쪽으로 흐르니까, 전쟁 상태를 맞이하게 될 때 좋지 않기 때문에 터널을 뚫어서 물줄기를 돌리고 이것으로 발전기를 돌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북한의 댐 조성 이유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남한을 물바다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조작하여 떠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나도 한심해서 또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족 문제와 한반도 문제를 모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우리도 간첩을 보냈다


남북의 통일과 관련된 내용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은 ‘우리의 판단력이 얼마나 흐려져 있나.’를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런저런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가령, 총격 사건과 같은 정전협정 위반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아실 겁니다. 북한과 정전협정을 맺은 1953년 7월 이후, 연수로 따져서 40여 년 동안 북쪽에서 휴전협정을 얼마나 위반했을 것 같습니까? “북한이 정전협정을 위반했다, 휴전협정을 위반했다.”라고 하면 얼마나 했을까요? 북한하고 남한을 비교하면 몇 대 몇 정도로 남한 쪽이 휴전협정을 위반했고 북한 쪽이 휴전협정을 위반했을까요? 지금 아마 북한은 한 십만 건, 남한은 한두 건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북한과의 정전협정을 다루는 판문점의 중립국 감시위원단에 공식적으로 접수된 내용을 보면, 총알 탄피 하나라도, 사람이 직접 보든지 미국의 정찰기가 정찰한 결과든, 남한으로부터 북한에 침투하든 김신조 일당처럼 북한으로부터 남한에 내려오든, 그 건수를 전부 합치면 여러분이 조금 놀라겠지만 그 비율은 1:1 정도로 거의 비슷합니다.


북한이 45만 건입니다. 그러면 남한은 한천 건 될까요? 우리가 더 많습니다. 46만 건 정도 됩니다. 약속, 협정, 조약을 위반한 객관적 통계 사실마저 반공주의 사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북한이 밤낮 간첩을 보내는 걸로 알고 있었을 겁니다. “공작원이 내려와서 수류탄을 던졌다느니, 간첩이 남한 사회에 우글우글하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굳이 예를 들면, 한심한 김○○이라는 링컨 숭배자가 있습니다. 또 박○이라는 신부가 있습니다. 하여간 자기 딴에는 최고 우파 기독교 신자고 신부이고 하나님을 믿고 정직하다고 하는데 뭐 이런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뭐냐면, “북한이 보낸 간첩 5만 명이 남한 사회에 우글거리고 있다.”입니다. 또 매일 5천 명씩 내려오고 있다고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겁 주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제는 알고 있으리라 짐작하지만, 북한에서 보내는 공작대와 간첩의 몇 배를 남한에서 북으로 올려보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김대중 씨와 이회창 씨에게 대통령 선거 때 물었습니다. “북한에서 내려온 소위 간첩이라는 사람들 중 미전향수가 한 30명 북한으로 다시 올라갔고, 아직도 몇백 명 정도 남아 있습니다. 평양에서 온 사람들은 그동안 형무소에 들어간 사람들을 다 합쳐봐도 그저 천 명이나 될까요. 그런데 북한에 우리가 올려보냈던 군 정보 부대와 그러한 분자의 수가 1만 5천 명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리고 그중에 6천 명가량이 그럭저럭 돌아왔고 아직도 북에서 죽었거나 행방불명됐거나 또는 포로가 되어서 전향한 후 그쪽 사회에 충실히 임하는 그런 사람의 수가 7662명이라는 이런 사실을 아십니까?” 그러자 그분들이 “아이고, 우리가 간첩도 보내고 공작대도 보냈어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게 한국 사람들의 전형적인 생각입니다. “우리가 언제 간첩을 북한에 보냈나, 이북에서 보냈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알게 됐지요. 그때 북에 갔다 내려왔던 생존자들이 군번도 안 주고 연금도 안 주고 하니까 “우리를 정규 군인으로 인정하고 연금도 달라.” 하면서 가스통에 불 지르고 광화문에서 데모하고 그랬던 일을 알고 계시지요?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우리가 북한에 가서 온갖 파괴와 살인 등 별짓을 다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 말 들으면 겁납니다. 농촌에 가서 사람들을 막 죽이고 건물을 폭파하기도 하며 북한군 장교를 끌고 내려오기도 하는 등 온갖 행동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앞으로 남북한 문제와 핵문제를 비롯하여, 한반도 문제를 생각함에 있어 제가 가지고 있는 요점을 결론으로 이야기해 드리고자 합니다.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주권 국가도 아니고 독립 국가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대한민국과 미국과의 관계는 1910년 일본의 식민지 합방 때보다 조금 낫습니다. 완전 식민지는 아니니까요. 그러나 1905년 을사보호조약에 의해서 외교권과 군사권, 주요 정치 결정권을 일본에 빼앗겼던 상황이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불쌍하고 창피한 인종들이며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에서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만도 못합니다. 제정신 하나도 없는 머릿속에서 그저 미국숭배나 외치니 이래 가지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북관계에서 오늘 말씀드린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잘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이 그러하듯이 민족도, 국가도 자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의 말씀을 드리면서 본 강연을 마칠까 합니다.


질의·응답


청중 아까 선생님께서는 우리와 상관없이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의 문제와 관련해 제2의 카스라-태프트 조약을 맺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과연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리영희 지금 대만과 북한, 한반도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두고서 중국과 미국 사이에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많은 시나리오 중에서 우리 한국 사람들이 거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대만 문제가 우리 남북한문제와 결부되어서 얘기될 수가 있느냐 하는 건데요. 그런 사태가 그 시나리오의 하나로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가능성,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개연성에 중점을 두어 얘기하기보다, 지금 미국이 북한과의 문제를 타협 지으려고 함에 있어 중국에게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북한 문제를 연결시킬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런 시나리오는 몇 개의 시나리오 중의 하나로 있는 것인데, 그것을 카스라-태프트 방식에 의해서 교환해 버리는 이런 확정적인 방안이 있다거나 합의가 있다거나 가능성이 뚜렷하게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대만을 북한 문제하고 관계없던 걸로 생각했던 우리들에게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 겁니다. 그리고 중국이 미국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 중에 지렛대 방식으로 북한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그런 얘기는 지금 중국 내에서도 많이 얘기되고 있습니다.


청중 선생님이 “남북 체제의 수렴적 통일을 위해서는 남한 사회의 이념적 불균형을 하루속히 극복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2004년 총선을 통해서 진보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처음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러한 진보 정당이 이념적 문제를 극복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리영희 남북한은 각기 자신의 체제를 수정해서 체제 수렴적인 통일로 가야 합니다. 북한은 구소련 방식이 아니라 중국 방식으로 가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1991년에 구소련을 지배하면서 큰 실수를 범했는데, 뭐냐 하면 러시아 공산당 정치구조를 완전히 파괴해 버리고 경제구조 개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소련이라는 큰 국가가 무정부 상태가 되고 경제도 정치도 사회도 완전히 무정부 상태가 됐습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등소평은 중국에서는 정통성을 가진 중국 공산당이 어느 시기까지 개혁의 주체가 되어서 정치적 개혁보다는 먼저 경제, 사회적 개혁을 강력하게 실시하게 됐습니다. 지금 20년 됐는데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86년부터 시작했지만 아직 어렵습니다. 그걸 본 북한은 과거 러시아의 이론을 따를 것이냐, 즉 말하자면 '고르바초프식 혁명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등소평처럼 체제 개혁을 할 것이냐.' 하는 논의를 했습니다. 중국이 워낙 훌륭하게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김정일은 자주 베이징과 상하이를 방문해서 중국의 개혁을 배웠습니다. 이제 북한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중국처럼 시장경제를 하고 경제적 개방, 문호 개방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사회주의 체제의 상층체제 아래 시장경제의 하위적인 자본주의로 변형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신 일체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이 건재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이런 면에서 남한은 독일의 통일 과정을 보아야 합니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하면서 큰 부작용 없이 이루어진 까닭이 있습니다. 동독 공산주의는 상당한 정도까지 그리스, 로마 문명과 기독교의 문화적인 전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잠시 한 50~60년 존재했던 체제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서구 문화적 생존양식, 가치관이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다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서독은 자본주의면서 미국의 동맹 국가라고 하지만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국가의 정치적 대들보로써 사회주의 성향이 확고한 사회주의 정당이 자본주의적 보수 정당과 대등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선거를 통해서 이기기도 했습니다. 사상 교육, 이념, 생활양식에 있어서 사회주의를 몇십 년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유럽에서 제일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입니다. 동독과 서독은 이같이 서로 유사한 가치관과 생활양식, 관습,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할 때 부작용이 적게 일어나고 파괴적인 민족 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겁니다. 물론 문제가 없진 않지만 비교적 순조롭게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동독이 이와 같이 서구라파적인 문화전통과 정신, 문화적, 사회적, 관습적 토대가 없었더라면, 또 서독이 오로지 자본주의 정당만 존재하는 반공주의적 체제였다면 동·서독의 합방은 아마 내전과 내란을 겪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북한이 개방된 사회체제로 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과거의 엄청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체제였던 것에 비하면 최근 들어 굉장히 놀랍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남한과의 협력 관계가 일부 분야에서 이루어지면서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인 조류이기 때문입니다.


극우 반공주의자들은 인간을 미워하면 공산주의자가 된다고 하면서, 마치 천사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미국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이 이라크에서 자행하고 있는 범죄행동을 보면, 미국이야말로 세계 170여 개의 국가 중에서 가장 악랄한 국가입니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가 이스라엘과 미국인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비난을 받지만, 미국은 양의 탈을 쓴 자본주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비난받고 공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 내용은 뉴스레터팀이 편집을 하면서 추가•보완한 내용입니다.


¹리영희가 1976년 제1차 교수재임용법에 의해 교수직에서 해임된 건 박정희 정권에서 때이다. 4년후 1980년 ‘서울의 봄’으로 사면되고 복직되는데 전두환 정권은 쿠데타 이후 1980년 8월에 집권하므로 이 강연에서 ‘전두환 정권이’ 는 민심을 얻기위해 유화책을 쓴 ‘전두환 세력’으로 읽던지, 76년 교수들을 쫒아낸 ‘박정희 정권’으로 읽는게 맞겠다.


²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 시론 이 발표된 해는 1982년이 아니라 88년이다. 1988년 8월 국회 통일정책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요약형식으로 발표됬다가 한달 후 <사회와 사상>9월호에 보충 정리한 전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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