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멸칭 피폐해진 언론 환경 더 악화시킨다 / 김현석
‘기레기’ 멸칭 피폐해진 언론 환경 더 악화시킨다
김현석 / KBS 기자
아시안컵 축구 후폭풍이 거셉니다. 세계적인 선수를 보유하고도 졸전을 펼친 클린스만 감독과 정몽규 축구협회장에 비난이 쏠렸었죠. 그런데 영국의 <더 선>지가 선수 간 갈등을 보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축구협회는 선수들과 협의 없이, 보도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클린스만 감독과 코치들은 선수들의 감정적인 몸싸움으로 수개월간 쌓아온 모든 노력이 박살났다며 졸전의 책임을 선수로 전가했습니다. 축구협회와 감독이 23살의 젊은 이강인 선수를 욕받이로 내세우고 그 뒤에 숨어버린 거죠. 한국 언론 역시 이 조리돌림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2월 15일 하루 동안, 이강인 관련 기사가 1053건이었다고 하지요.(<미디어오늘> 2024.02.20) 게시판 글이나 댓글 몇 개 가지고 기사 만들기, 예전 기사 불러오기 등 다양한 조리돌림 수법이 동원됐습니다. 그 가운데 단연 제 눈에 띈 기사는 인터넷 언론사 「위키트리」의 기사였습니다.
이강인 선수가 바지에 손을 넣고 휘파람을 부는 듯한 입 모양을 하면서 경기장에 들어가는 영상이 공개돼 일부 커뮤니티에 비난 댓글이 달렸다. 뭐 그런 기사입니다. 댓글 몇 개 가지고 만들어 낸 전형적인 조회수 올리기 기사입니다. 더구나 언급된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비난 댓글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습니다. “생일 축하한다. 힘든 시기 잘 견뎌내기를 바란다”라는 응원 댓글이 더 많이 그리고 자주 보였습니다. 게다가 저 제목과 사진은 해당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 인터넷 언론사는 2월 14일 이후 열흘 동안 이강인 선수 관련 기사를 70개 넘게 내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0일에는 가세연이 폭로한 이강인 선수 관련 내용을 소개하면서 “사람 xx냐”라는 표현까지 사용했습니다.
출처: 위키트리
가세연에 저 내용을 제보한 회사는 이강인 선수를 협박한 혐의로 소송을 당한 회사입니다. 가세연은 그 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강인 선수를 향해 욕까지 했는데, 이 인터넷 언론사는 그 욕설을 “사람 XX냐”는 제목으로 전달했습니다.
<위키트리>는 김행 전 여가부 장관 지명자가 창업하고 부회장으로 있던 곳입니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라는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서 ‘기생 언론’이라고 비판했던 곳이지요. ‘기생 언론’은 독자적 취재가 아닌 다른 언론사 기사나 네티즌들의 글을 짜깁기해 기사를 쓰는 매체를 말합니다. 좀 점잖은 용어로 ‘큐레이션 저널리즘’이라고도 하지요. ‘유사 언론’이라는 멸칭도 있습니다. 김행 여가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위키트리 기사가 문제가 많이 됐습니다. 특히 제목은 입에 담기도 힘든 수준이었지요.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김행 당시 후보자의 답변이었습니다. “부회장이 기사를 직접 안 보니까, 그렇다고 면책하겠다는 얘긴 아니다. 저도 부끄럽다”라면서 “이게 현재 대한민국 언론 현실”이라고 말했지요. 이런 유체이탈 화법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요.
당시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은 김행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이후 회사의 ‘수익성 개선’을 강조하면서, 이런 기사들이 더욱 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핵심을 잘 짚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 기사에 따르면(<미디어오늘> 2023.09.27.) 위키트리의 한 기자는 “이전의 규칙을 지키던, 양질의 기사를 쓰던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구조였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써도 트래픽을 이끄는 기자들이 더 고평가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졌다”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수익성 개선을 위해 조회수 올리라고 기자들을 독촉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이런 기사들에 대해 부끄럽다고 평론하듯이 말하고 있는 거지요. 축구협회와 감독이 젊은 선수들을 욕받이로 내몰았듯이 언론사들 역시 기자를 욕받이로 내몰고, 등 뒤에 숨어 뒷짐 쥐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기레기’라는 표현은 기자 개인에 대한 공격을 넘어서 데스크나 언론사 전체를 비판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제 국민은 비난의 화살을 온통 욕받이로 던져준 기자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모든 문제는 기자의 문제, 즉 ‘기레기’가 만들어내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기레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언론이나 기사를 비판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입니다. 워낙 많은 곳에 쓰이다 보니, ‘기레기’는 이제 모욕적인 단어도 아닌 수준이 되었지요. 그래서일까요? 이제는 기자와 구더기를 합친 ‘기더기’, ‘언창’ 등 더 모욕적인 단어들도 많이 사용됩니다. 단순히 댓글로 욕하는 것을 넘어 특정 기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집단적 신상털기(multiple-doxing)를 하기도 합니다. 여자 기자의 경우 더 심하지요. 각종 성희롱적 댓글과 더불어 문자와 이메일로 집단적 협박을 당하기도 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말 발표한 언론인조사를 보면1), 전체 응답자 가운데 45.5%가 언론인 대상 괴롭힘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응답자의 29.7%가 취재 및 보도로 실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 비율은 남성(28.3%)보다 여성(32.8%) 기자 사이에서 높았습니다. 많은 기자가 악성 댓글 정도는 늘 있는 일종의 디폴트로 인식해 괴롭힘 경험에 포함하지 않아서 저 정도 수치를 기록한 거지요.
『뉴스의 사회학』이라는 저널리즘의 고전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오는데요, 언론에 대한 미국 사회의 비평을 언급하는 대목입니다. 진보적인 진영에서는 미국 미디어 기업들이 거대 이윤추구 기업에 의해 소유 운영되고 있으며, 행정부 관료와 기성 권력기관들을 뉴스 정보원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언론이 보수 편향을 띤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보수진영에서는 비판이 없을까요? 물론 있지요. 보수진영 비판의 요점은 이른바 힘 있는 뉴스미디어의 기자와 데스크들이 진보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뉴스가 진보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다는 겁니다.
진보와 보수 모두로부터 욕먹고 있는 상황은 우리랑 비슷하지요.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2008년경에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 포커스’를 진행할 당시에 우리 언론환경이 미국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보진영에서는 우리 언론이 보수신문들에 의해 독과점적으로 지배되고 있다고 비판했지요. 독과점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온갖 불공정 경쟁 수법이 동원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한 대안도 제시하고 불법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등 다양한 행동도 했습니다. 미디어비평이 많은 관심을 받았던 시기이기도 하고, 또 나름 많은 역할을 했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진영에서는 민주노총에 장악된 진보적인 언론인들이 진보 편만 들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지요.
15년이 지나고 보니, 보수진영의 논리는 크게 변한 거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언론노조와 기자협회와 피디협회 등 현업단체가 장악한 언론인들이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진보적인 진영의 공격 방향은 바뀐 거 같습니다. 보수적 언론뿐 아니라 진보적인 언론을 포함한 모든 언론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 같습니다. 특히 비난의 대상을 기자로 집중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아니 요즘은 더 강하고 거칠게 비난합니다. 결국 보수와 진보 모두 저널리즘 저열화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기자에게 있다고 보는 데에는 의견 일치를 보고 있는 거 같습니다.
조회수 경쟁에 내몰아 저열한 기사만 삼아 남도록 몰아가는 미디어 환경, 언론사의 편향성, 보수언론 독과점 구조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던 ‘언론 비평’은 이제 거의 사라진 거 같습니다. ‘언론 비평’이 사라진 자리에 ‘기자 개인들을 향한 혐오, 괴롭힘’만 남은 거 같습니다. 기사를 보고 진정으로 화나서 기자 욕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저도 화나는 기사 정말 많습니다. 좀 더 전략적인 분들은 기자 비판을 통해 기자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기자를 비판합니다. 「기레기 추적자」라는 사이트들이 그런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거지요.
이런 기자 괴롭히기 전략 솔직히 좀 통합니다. 대표적인 게 젠더 기사를 쓰는 여기자들을 향한 공격이었습니다. 젠더 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 때, 젠더 기사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자들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젠더 관련 기사를 썼을 때 여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성, 성희롱성 댓글들, 문자와 이메일을 통한 욕설, 그리고 구체적인 협박까지 정말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아무래도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지요.
이런 식의 기자 괴롭히기 전략이 통하는 것으로 보였는지, 이제 기자 괴롭히기는 모든 진영이 즐겨 활용하고 있습니다. 젠더 이슈 등 각종 논쟁적 사안에 대해 기사를 쓰면, 여러 진영들이 게임 하듯이 경쟁적으로 기자를 괴롭힙니다. 각 정치세력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거나 상대방에게 유리할 것으로 추측되는 기사에 대해 각종 비난을 퍼붓지요. 보수 진보 떠나 모든 진영이 기자들을 적으로 보고, 기자 괴롭히기에 진정인 듯합니다.
왜 언론 비평은 사라지고, 기자 혐오, 괴롭힘만 남은 걸까요? 많은 학자들의 뉴스 소비가 디지털 중심으로 바뀐 데서 원인을 찾고 있는 거 같습니다. 예전에 주로 종이신문을 보고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시청하던 시절에는 1면에 어떤 이슈를 다루었는지, 뉴스 톱뉴스를 어떤 아이템을 다루었는지, 아이템 배열에서 균형있는 편집을 했는지가 우선 눈에 들어왔지요. 그런데 포털 중심의 뉴스 소비가 자리 잡으면서 언론사의 편집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개별 기사만 눈에 들어오게 된 거지요. 개별 기사가 선택받는 기준도 어떤 언론사 기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목이 얼마나 관심을 끄는가가 주요인이 되었지요. 이제는 기자 개인이 자기 기사를 가지고 포털이라는 뉴스의 바다에 던져진 거지요. 당연히 국민은 기자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처럼 언론의 모든 문제를 기자 개인의 문제로 삼는 것이 맞는 것일까요? 아니 우리 언론이 조금이나마 좋아지게 하는 데 의미있는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제 생각부터 말하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거 같습니다.
우선 기자 괴롭힘은 취재와 보도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앞에 언급한 ‘언론인조사’에 따르면, 기자 대상 괴롭힘에 시달린 끝에 논쟁의 소지 없는 안전한 기사를 쓰는 방향으로 자기검열하고 있으며, 직업 만족도와 사기 하락 속에서 많은 이들이 업계를 떠나려 하는 동시에 일부는 현실 안주를 택하고 있다고 분석했지요.(<신문과 방송> 2024.01.04.) 실제로 해당 조사에서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74%에 달할 정도입니다.
지난해 12월 이화여대 김영욱 교수팀이 언론인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는데2), 이 조사에서도 기자들은 언론 신뢰도 하락, 효능감 부족, 내외부 압력 등 많은 부문에서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있었으며, 사기는 바닥 수준이고, 이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서도 허무주의적 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 나은 저널리즘을 만들어 달라는 선의로 시작했던 수용자 수정 행동으로서의 언론비평이 기자 혐오, 기자 괴롭히기로 변질되면서, 저널리즘을 고립시키고 저열화시키는 역설을 낳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상실한 언론은 고립되고 무력한 존재입니다. 고립된 저널리즘은 권력과 자본의 공세에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지요. 윤석열 정부 들어서 언론과 기자를 그야말로 맘 놓고 공격해도 아무도 손 내밀어주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김건희 특별법’을 언급하며, 여사 칭호를 안 붙였다고 행정지도 처분을 당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지요.
일종의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널리즘 위기의 가장 큰 책임, 언론인한테 있는 거 맞습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해 나가려면, 기자들이 먼저 정신 차려야 합니다. 좋은 저널리즘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려는 기자의 사명의식, 노력 그리고 용기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부끄러움과 책임을 느낍니다. 기자들의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기입니다. 이제는 기자가 한 언론사의 직장인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작성된 기사를 가지고 시민들과 직접 만나는 하나의 브랜드로서의 개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 이름을 소중하게 여기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론사 내 압력에 굴복하고, 현실과 타협하기보다는 저널리즘 원칙과 소신을 지키려는 노력을 좀 더 경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자들의 각성과 노력은 시민들의 지지가 없이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좀 염치없지만, 기자들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따끔한 지적을 하고, 좋은 기사에 대해서는 좀 더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보내주는 건 어떨까요? 아직도 언론계에는 정의롭고 열정 넘치는 기자들 많습니다. 좋은 저널리즘을 만들기 위해 시민과 기자의 연대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쉽지 않겠지요. 기자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기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기레기’라는 멸칭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시민-기자 연대의 상징적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레기’라는 멸칭은 우리 언론의 모든 문제를 기자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제도적인 문제를 은폐하고 책임있는 자는 뒤로 숨을 수 있게 하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쓰레기 같은 건 우리 언론이 생산해낸 기사, 그런 기사를 쓰도록 만든 제도이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레기’라는 단어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안 쓸 상황이 될 수 있도록 기자들 노력도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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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언론진흥재단. <2023, 한국의 언론인:제16회 언론인 조사>
2) 김영욱외(2023). 나는 기자인가? 기레기인가? <커뮤니케이션이론> 2023년 19권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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