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선생님과는 직접 대면한 적이 없다 그리고, 방심위 내부고발 / 탁동삼
리영희 선생님과는 직접 대면한 적이 없다 그리고, 방심위 내부고발
탁동삼/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구위원
리영희 선생님과는 직접 대면한 적이 없다.
내가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던 1994년 선생님은 같은 과에 재직 중이셨으나 정년퇴임을 앞두고 대학원 강의만을 일부 맡고 계셨다. 학부 새내기로서는 수업은커녕 뵐 기회 자체가 없었던 셈이다.
생각해보니 한 번 멀리서 뵌 적은 있다.
1995년이었다. 동기들과 과방에 앉아 있었는데 대학원 과 선배가 갑자기 들어오더니 따라오라고 했다. 뭔지 모르고 따라간 그 곳은 선생님 특강이 열리는 강의실 앞이었다. 아마 정년 퇴임을 전후로 기념 특강을 하시는 자리였던 것 같다. 그때 그렇게 우연히 특강에 참석해서 선생님 말씀을 감명 깊게 들었다고 쓸 수 있으면 참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선배는 참석자가 많아 좌석이 부족하다며 나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간이 의자를 안에 들여다 놓으라고 시켰다. 줄을 맞춰 간이 의자를 배열하고 참석자들이 앉자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지금 생각하면 서서라도 강의를 들었어야 했는데, 그때 철없던 나는 술자리 약속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미련 없이 강의실을 나왔다. 리영희 선생님과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뵌, 사실 만남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기억이다.
선생님을 책으로나마 접한 건 ‘새는 좌 ․ 우의 날개로 난다’가 처음이었다.
선배들이 시대의 은사이자 사상가로서 선생님에게 받은 영향과 존경의 언사를 여러 번 말했지만, 솔직히 대학 새내기로서 20년 전에 나온 ‘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을 읽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1학년 2학기에 발간된 ‘새는 좌 ․ 우의 날개로 난다’는 북한 핵 문제, 통일, 한미관계에 대해 분석하는 논문에 가까운 글들과 언론, 종교, 독서, 문화에 대해 다룬 칼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선생님의 엄밀한 분석적 글에도 감탄했지만 일상을 소재로 가볍지 않은 주제를 쉽게 전달하는 칼럼에 더 마음이 끌렸다. 선배들에게 들은 시대의 은사, 사상가, 옥고, 복직 같은 단어들로 형성된 딱딱한 선입관과 다르게 칼럼에는 보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담겨있었다.
특히 자동식 칫솔과 관련된 1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을 좋아해서 친구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하며 책을 권했던 기억이 난다. 자동식 칫솔을 선물 받았다가 돌려준 일을 소재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닉슨과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소련의 흐루쇼프가 자동식 칫솔로 논쟁한 일화를 소개하며 기계와 인간, 자동과 수동,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 삶의 철학과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이 글의 영향으로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일부러 전동칫솔을 쓰지 않고 일반 칫솔만을 고집했었다. 지금은 일반칫솔과 전동칫솔을 가리지 않고 번갈아 쓴다. 선생님의 뜻이 ‘전동칫솔’을 무조건 거부하는데 있지 않을 거라고, 오히려 선생님이시라면 변화된 사회 상황에 맞게 유연한 사고를 셨을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이후에 접한 선생님의 책은 군대를 다녀온 직후인 1998년에 읽은 ‘스핑크스의 코’, 직장에 입사하고 몇 년 뒤인 2006년에 읽은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 전부이다.
대담 형식으로 선생님의 목소리를 직접 전하는 ‘대화’를 읽으면서 자세히 알지 못했던 선생님의 삶과 사상, 인간적 면모, 자유인/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의식과 성찰하는 자세까지 많은 것을 느끼며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몇 년째 직장을 다니며 월급쟁이가 되어버린 나로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공감했다고까지 하기엔 거리가 있었다. 선생님의 치열한 삶과 사상은 그 자체로 훌륭했지만 평범한 나의 삶과는 분리된 위인으로 느껴졌던 탓이다.
내 직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곳이다.
직접적인 만남도 책을 통한 인연도 고작 이 정도인 내가 선생님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건 재작년부터 직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줄여서 ‘방심위’라 하는데, 방송과 통신의 내용을 심의하는 일을 한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민원과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방송사들이 방송한 내용에 대해 공공성, 공정성, 상업성 등 심의규정 위반 여부를 따져 방송사를 제재하고, 인터넷상에 유통되는 정보들에 대해 불법성, 유해성 등을 심의하여 삭제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방송의 질을 높여 시청자들의 권익을 증진하고 불법정보로부터 인터넷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과도할 경우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이에 정부 등 권력으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조직이 아닌 독립기구로,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기준을 반영하기 위해 독임제가 아닌 9명의 위원로 구성된 합의제 위원회로 운영된다.
명시된 법률과 규정을 기준으로 위원들 간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 교환을 통하여 방송과 통신의 내용을 심의하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제시하는 합의제 독립심의기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내부 구성원으로서 그리는 회사의 이상적 모습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을 따라가지 못했다. 대통령을 포함하여 여야가 6대3으로 위촉하는 정파적 위원 구성부터 한계는 명확했고 정치적 사안에 대한 편향적 결정 논란으로 끊임없이 사회적 비판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내부 구성원으로서는 위원 구성의 본질적 한계에도 최소한의 절차적 원칙과 기준만은 지켜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완전히 무너졌다.
시작은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위촉한 방심위 위원들에 대한 윤석열의 일방적 해촉이었다.
2023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의 회계감사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업무추진비와 근태를 억지로 문제 삼아 정연주 위원장 등 방심위 위원 2인을 해촉했다. 이어 과거 YTN 노조를 탄압했던 류희림을 새 위원장으로 선출하려 했으나 남은 위원들의 반대로 여의치 않자, 공정언론시민연대라는 보수단체를 통한 고발과 이어진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발표로 위원 1인을 추가 해촉했다. 모두 전례가 없는 해촉이었고 사유 또한 정당하지 않았다. 2023년 9월 윤석열은 기존 야당 다수(야6, 여3)의 방심위 위원 구조를 여당 다수(여4, 야3)로 재편하고 류희림을 새로운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류희림은 방심위 위원장 취임 일성으로 가짜뉴스 척결을 내세웠다.
당시 국회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에 대해 가짜뉴스라며 “중대범죄 행위, 즉 국기문란 행위”라고 언급한 직후였다. 류희림은 이동관과 보조를 맞춰 뉴스타파로 대표되는 인터넷언론/유튜브방송과 뉴스타파를 인용보도한 MBC/ JTBC 등 기존 방송사들을 제재하기 위한 심의에 착수했다.
나는 당시 통신(인터넷)심의를 총괄하는 통신심의기획팀장 자리에 있었다.
위원장이 되기 전 위원 류희림에게 업무설명을 하러 간 자리에서 난 그가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통해 인터넷언론/유튜브방송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가짜뉴스를 이유로 제재할 법률과 규정의 근거가 없고, 인터넷언론/유튜브방송에 대해서는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으로 인하여 방심위의 심의범위 밖에 있음을 설명하였으나 류희림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위원장이 되자마자 인터넷언론 등에 대한 위법적인 가짜뉴스 심의 정책을 내외부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류희림의 가짜뉴스 심의에 동조할 수 없었던 나는 ‘회피’라는 비겁한 선택을 했다. 류희림 위원장 취임 이후의 간부 인사에서 나는 원래 통신심의기획팀장으로 계속 유임될 예정이었으나 따로 찾아가 변경을 요청했고 가짜뉴스 심의와 무관한 부서의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릇됨을 알았으나 맞서 싸울 용기도 그래야할 당위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이 불합리한 상황 속에 내가 엮이지 않게 된 것에 안도하며 조용히 지나갈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다른 부서로 옮기고 일주일이 지난 2023년 9월 22일 금요일 오후, 갑작스럽게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당장 다음주 월요일부터 운영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법률적 근거가 없고 업무 절차도 불명확한 조직을 만들면서 아무런 동의 절차 없이 기존 부서의 직원들을 파견 보내 업무를 시켜 책임지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전 부서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도 파견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금요일 오후 내내 파견 명단을 바꾸고 조직 구성을 유보시키려고 윗선을 찾아다니며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나는 무력했고 회피하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더 이상 파견될 직원들 얼굴을 마주볼 용기가 없었다.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집에서 글을 썼다. 무엇을 계획하거나 용도를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무언가를 해야 했고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류희림 위원장님께 묻습니다. 저는 디지털성범죄심의국 확산방지팀장 탁동삼입니다.”로 시작한 글은 센터 설치와 파견 인사의 부당성, 가짜뉴스 심의의 위법성, 그리고 회사와 직원들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철회를 바라는 간청까지 포함하여 A4 10장 분량이 되었다. 완성된 글을 보고서야 나는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되었다. 일요일에는 회사에 가서 언제라도 짐을 뺄 수 있도록 자리를 정리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신임 위원장으로 기세등등하던 류희림이 직원들에게 엘리베이터나 음식점에서도 회사 얘기를 하지 말라고 협박에 가깝게 입단속을 요구하던 시절이었다.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었다.
류희림 위원장님께 묻습니다.
2023년 9월 25일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전 직원들을 참조로 하여 류희림에게 이메일로 글을 발송하고 회사 내부 게시판에도 게시했다. 출근하자마자 행동을 한 것은 시간을 가지면 두려움에 글을 올리지 않게 될까 또 비겁한 선택을 하게 될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우려 때문에 아예 고민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글은 회사 내부는 물론 언론과 국회 등 외부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내부에서 이슈가 되고 불이익 조치를 받을 것은 감수했으나, 외부에 알려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지만, 닥쳐올 상황을 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글이 보도되고 언론 인터뷰를 하고 국회에 나가 류희림과 이동관 앞에서 가짜뉴스 심의에 반대하는 증언을 하게 되면서 나는 회사에서 내부 고발자가 되었다.
내 글이 게시되고 처음 언론 인터뷰를 했을 때 류희림이 징계해야 한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들었으나, 역설적이게도 언론과 국회에 의해 공식적인 내부 고발자로 자리매김하자 징계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11월이 되고 나는 회사 내의 소문 하나를 접하게 되었다.
최고 징계인 ‘과징금’ 결정을 앞두고 있던 ‘뉴스타파 인용보도’ 방송사를 심의한 근거가 된 민원을 넣은 사람 중에 류희림의 동생과 아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이었다.
뉴스타파 보도내용은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을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보도한 것으로,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류희림은 자신을 위원장으로 만들어준 최고권력자의 의혹을 덮을 목적으로 가족에게 민원을 넣게 하고 본인이 직접 심의하여 방송사에 최고 수위의 징계를 내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도 언론에 대한 부당한 탄압이 될 것이지만, 그에 앞서 독립기구인 방심위 위원장이 가족에게 가짜 민원을 사주하여 마치 진짜 민원인 것처럼 접수하게 하고 다른 위원들과 직원들을 기만하여 회피하지 않고 심의에 참여한다는 것은 독립성과 공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방심위 조직에 대한 신뢰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내부 구성원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민원을 확인하니, 민원인 중 류희림의 아들과 동생 이름이 있었던 것 이외에, 류희림의 동생이 넣은 민원과 오타까지 동일한 내용의 민원이 백여 건 넘게 더 있었다. 민원인 이름은 각기 달랐지만 오타까지 동일하다는 것은 그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내용이 동일한 민원인의 이름과 이메일 등 기초 자료를 바탕으로 인터넷 검색하자, 그들이 류희림의 아들/동생/제수/처제/동서/조카 등 가족이며, 류희림이 이전에 소속됐던 여러 단체와 직장에 얽힌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류희림 동생이 운영하는 단체에 소속된 직원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민원인 중 일부가 아니라 대다수가 류희림의 가족과 지인 등 관계인이었다.
사는 지역도 성별도 나이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오타까지 동일한 내용의 민원을 며칠 사이에 한꺼번에 넣었는데,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류희림의 관계인이라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막상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당황했다. 감당하기엔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었고 내부의 정상적인 절차로는 밝히기 힘든 내용이었다. 몇몇 분들에게 대략의 내용만 알려주고 어떻게 해야 할 지 상의했다. 사안의 중대성엔 동의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대부분 만류했다. 윤석열의 임기가 반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사실을 밝힌 사람만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나도 주저했다.
그러나 12월이 되고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류희림의 아들과 동생이 민원을 넣었다는 소문은 점점 퍼지고 있었고 시기가 문제일 뿐 언론에서도 곧 다뤄질 것이었다. 아들과 동생만으로도 문제였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비하면 작은 부분이었고, 피상적 보도는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가릴 수도 있었다. 이왕 하려면 사실이 모두 밝혀질 수 있도록 제대로 해야 했다. 결국 나는 또 한 번 내부 고발자가 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날,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두 명의 직원들과 함께 익명으로 류희림 청부민원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이어 언론에도 제보했고 눈이 내린 크리스마스 오전 뉴스타파를 통해 첫 보도가 나갔다. 9분여의 보도가 끝나가자 후련함과 함께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걱정이 밀려들 때, 보도 말미 리영희 선생님의 생전 모습과 음성이 이어졌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한 것은 국가가 아니야, 소위 애국, 이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선생님의 삶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진실이 드러나는 그날까지 버텨야겠다고 다짐했다.
보도 다음날 류희림은 사실인정은커녕 오히려 회사 명의로 신고자를 고발했다.
민원인 개인정보를 유출했다는 혐의였다. 사건은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 배당되었고 2024년 1월에는 전산과 민원 팀에 대한 사무실 압수수색이, 9월에는 나를 비롯한 직원들에 대한 신체와 자택, 사무실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는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 담당 사건의 주요 피의자가 되었고 압수수색 이후에도 10여 차례 경찰청을 가야 했다. 아직도 나에 대한 조사는 진행 중이다.
반면 류희림은 청부 민원 의혹에 대해 지금까지 제대로 된 조사 한 번 받지 않았고, 오히려 윤석열에 의해 2024년 7월 임기 3년의 위원장으로 연임되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류희림의 청부 민원 의혹에 대해 6개월 넘게 끌다가 증거에도 불구하고 관련인들의 진술이 엇갈린다며 ‘방심위 송부’ 결정을 내렸다. 류희림이 위원장으로 있는 방심위에 ‘셀프 조사’를 맡긴 것이다. 방심위는 조사 연기를 통보하고 이후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았다. 청부민원 사건을 맡은 양천경찰서도 고발된 지 1년이 지나도록 류희림을 조사하지 않고 있다.
난 여전히 직원들과 연대하며 류희림과 싸우고 있다.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처음 가짜뉴스센터 운영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청부민원을 신고하고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였다. 그때마다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양심, 공적기구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처음 가짜뉴스 심의에 맞서지 않고 회피했던 부끄러움, 나의 회피로 가짜뉴스센터에 파견된 동료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 등 각기 다른 대답을 하곤 했다.
정확한 이유를 나도 몰라 인터뷰 때마다 매번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후배 직원에게 했더니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이 급박한 상황에 처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 때는 머릿속 논리가 아니라 배우고 기억했던 삶의 방식에 따라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된대요. 선배도 어떤 이유보다는 그냥 배웠던 삶의 방식을 본능적으로 실천하려 했던 것 아닐까요?”
후배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크리스마스 뉴스타파 보도 말미의 선생님 영상을 봤던 순간을 떠올렸다. 평범한 나의 삶과는 분리된 위인으로 느껴졌던 선생님의 삶과 말씀이 어느새 내가 배웠고 따르려 했던 삶의 방식으로 나에게 내재되어 있었음을 깨달았던 순간.
재작년 9월 이후 언론장악을 위해 방심위를 정치도구화하고 사유화하는 류희림에 맞서 방심위 직원들은 굴복하지 않고 연대하여 싸우는 것을 선택했다. 동료 직원들의 고충 호소에 연대 서명으로 화답하고 청부민원 익명신고자 탄압에는 단체 실명 신고로 대응했다. 명목만 유지하던 노조를 다시 구성하여 활동하고 류희림 퇴진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며 1년여 넘게 지치지 않고 싸우고 있다.
이 연대와 싸움의 주축은 20대 30대 젊은 직원들이다. 이 친구들은 류희림 체제는 물론이거니와 기존 회사의 보수성과 소통의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나는 이 친구들을 통해 그동안 내가 몰랐거나 또는 알면서도 눈감으려 했던 구조적 문제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친구들 덕분에 단순히 류희림에 맞서 싸워 이기는 것을 넘어 류희림 이후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친구들은 리영희 선생님에 대해 잘 모른다. 그저 뉴스타파 보도 뒤에 항상 나오는 사람, 책도 읽어본 적 없고 그냥 이름만 들어본 훌륭한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친구들의 바른 마음과 자세를 보며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통해 진전된 우리의 사회의식이 이들에게 이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그들이 다시 청년 리영희의 모습으로 우리 사회를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리영희는 우리 주변에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난 리영희 선생님을 잘 모르고 생전에 뵌 적도 없다. 내 삶의 방식으로 선생님의 삶과 말씀을 언급하는 것도, 젊은 후배 직원들을 보며 선생님의 이름을 함부로 갖다 붙이는 것도 모두 주제넘은 것임을 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 주고 계신 도움에 대해 이렇게라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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