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우선주의와 다극시대의 개막 / 박인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5-02-02 20:39
조회
270

미국우선주의와 다극시대의 개막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질문 1.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국은 그동안 자유주의 세계 패권을 추구하며 신자유주의와 금융화, 세계화 등을 추진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세계전략은 미국 자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했으며, 그 결과 미국 서민 대중들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에 대한 반란이 트럼프의 당선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위 1%만 살찌우고 하위 99%는 경제적 궁핍으로 몰아넣는 기존의 세계화 전략을 더 이상 감내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물가와 이민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내세웠습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물가가 9%까지 치솟았고,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이 겹쳤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낙태권 문제와 민주주의 위기를 강조했으나, 이는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 즉 민생 문제가 트럼프의 당선을 견인한 주요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미국 경제는 복지국가를 지향하며 부의 분배가 비교적 균등하게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1981년 레이건 행정부 출범 이후 시작된 신자유주의(부자 감세와 정부 규제 철폐)와 금융화라는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로 중산층과 하위 계층은 갈수록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탈냉전 이후 과거 공산권마저 미국의 경제적 지배 영역으로 편입되고, 클린턴 행정부의 세계화 정책으로 미국의 제조업이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 등 동아시아로 이전하면서 질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게 됐습니다.


부자들의 금융 소득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했지만,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1973년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60%가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입니다. 미 국민의 40%는 당장 수중에 500달러의 현금을 갖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며, 약 4천5백만 명은 건강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조업 일자리 감소로 인해 경제적 상승을 위해서는 대학 학위가 필수가 되었으나, 학자금 대출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미 국민의 학자금 대출액은 2018년 현재 1.7조 달러에 이르며 대학 졸업 후 20년이 지나도록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트럼프는 ‘미국 우선’을 내세우며 서민 경제 회복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강한 지지를 얻었습니다. 민주주의 확산을 명분으로 이라크, 아프간 등에 대한 끝없는 군사 개입으로 미국의 부를 탕진하기보다는 국내 경제 재건에 온 힘을 쏟겠다는 것입니다.


질문 2. 트럼프의 당선이 앞으로 국제 질서의 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까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트럼프는 미국의 패권(American Primacy)이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American First)를 지향합니다. 미국의 세계 지배가 아니라 미국이 다시 강력해지고 미국 국민이 잘살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미국 정치경제 엘리트의 초당적 합의였던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 추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통해 미국식 체제를 다른 나라에 확산시키려 했던 헛된 시도를 포기하고 미국의 국익만을 추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미국은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으로 통해 미국 대기업, 금융자본의 해외 진출을 도왔을 뿐입니다. 그 부작용과 피해는 대다수 미국 서민들이 부담해온 것이고요.


또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세계 경제는 두 개의 진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미국 주도 서방의 달러경제권과 중국, 러시아 주도의 비서방 탈달러 경제권이 그것입니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탈냉전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화는 미국 자체의 부의 양극화를 초래한 것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습니다. 미국과 유럽, 동아시아 일부 등 이른바 집단서방(Collective West)은 세계화의 과실을 누린 반면 나머지 국가들은(Global South) 그 피해자였습니다. 세계 인구의 약 15%에 불과한 집단서방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 85%에 이르는 글로벌 사우스가 희생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 플러스는 미 달러화를 사용하지 않는 국제 무역시스템과 국제 금융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즉 달러화에 의존하지 않는 무역 및 금융 시스템이 있어야 미국에 휘둘리지 않는 진정한 경제 자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국은 1970년대까지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했으나 베트남전쟁의 패배로 실패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1980년 달러 금리의 대폭 인상을 통해 중남미 국가들의 경제 자립을 무산시켰고(달러화 외채의 이자 부담 급증으로 상환 불능), 이후에도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등 잇단 금융위기를 통해 외국에 대한 금융 및 경제 지배를 강화했습니다. 즉 미국은 1980년대 이후 군사력이 아니라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무기로 세계를 지배해 왔던 것입니다.


특히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과 함께 미국은 러시아를 국제금융결제망(SWIFT)에서 퇴출시켰고, 러시아 외환보유고의 절반에 해당되는 3천억 달러 이상을(유럽 등 서방 은행에 예치된) 압류했습니다. 경제 제재로 러시아의 대외 경제 활동을 중단시킴으로써 러시아를 무너뜨리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부터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비해 왔던 러시아는 이러한 경제 공격을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탈달러 국제경제권의 형성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자의적인 러시아 외환 압류로 달러의 안전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실 미국(서방)의 경제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리영희 선생이 <전환시대의 논리>를 펴낸 5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베트남이 미국의 군사력을 이겨내고,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아랍 산유국들이 자원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석유 생산량과 가격을 국제 석유기업이 아닌 산유국이 정한다.) 제3세계 국가들은 유엔에서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 새로운 국제정보 질서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립 시도는 1980년대 달러 외채 위기로 결국 무산됐는데,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1970년대에는 제3세계 국가들의 경제 비중이 매우 작았던 반면 지금은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브릭스 플러스 국가들의 경제 규모가 서방 G7 국가들을 능가할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즉 탈달러 경제권을 형성할 만큼 기초 체력이 튼튼하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과 비서방의 탈달러 경제권 형성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로운 세계로 이어질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한국에 주는 함의는 매우 큽니다. 한국은 해방 이후 미국의 보호 아래 경제 성장을 이루고, 특히 탈냉전 이후 세계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국가 중 하나입니다. 두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대규모 교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17년 이후 한국은 경제 측면에서 탈중국, 군사 측면에서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질문 3. 미국의 전통적 자유주의 패권과 트럼프의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 기조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미국은 1945년 이후 패권국으로 자리잡으며, 자신들을 세계를 이끄는 필수적인 국가(Indispensable Nation)로 간주해왔습니다. 이는 신이 선택한 나라라는 인식과 세계 최초의 민주 공화국으로서의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미국은 자신들의 행동을 자유와 인권, 문명의 확산으로 정당화하며, 이를 ‘명백한 운명’이라고 불러왔습니다. 1846년 멕시코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며 자유와 문명을 전파하는 것이 자신들의 운명이라 주장했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러한 전통적 예외주의에 도전하며,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창했습니다. 소위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고 불리는 트럼프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내부지향적 정책 기조이며, 쉽게 말해 해외로 나갔던 미국 자본을 국내로 불러오고 관세 장벽으로 중국 등으로부터의 값싼 제품 수입은 막고 이민은 고급인력 위주로만 받겠다는 것이 경제적인 함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민주주의 수출이나 인권 개입과 같은 대외 개입을 축소하고, 미국 중하층 이하 계층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캐나다, 멕시코, 한국 등에 무역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내 제조업 부활과 인프라 확충, 에너지 자급자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세웠습니다. 이는 국제주의보다는 선별적 개입주의와 민족주의적 접근을 택한 것으로, 기존의 세계 패권 유지에서 탈피하려는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열린 행사에서 2016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걸었다. (출처: NPR 캡처)


MAGA 정책 기조에서 대외정책은 필요악입니다. 최우선 과제가 아니라 국내 정책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감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럽과의 나토 동맹, 한국, 일본, 필리핀과의 양자 군사 동맹은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고, 감당할 수도 없는 공약이라는 점을 공공연히 드러내 왔습니다. 미국의 자금, 인력과 에너지는 국내 경제를 재건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트럼프 1기에서는 이러한 대외정책 기조가 딥스테이트, 네오콘 때문에 좌절되었다고 한다면,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네오콘을 배제하고 본인의 충성파 위주로 캐비닛을 꾸리겠다는 것은 현재 내각 인선 과정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자유무역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의한 (그리고 세계화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로 뒷받침된) 자유주의 제국 팽창에 관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요새 (fortress) 밖의 미국의 적으로 간주되는 대상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군사적, 경제적 응징에 나설 것이라는 것이 트럼프의 기본 입장입니다. 이러한 트럼프의 접근 방식은 ‘고립주의’라기 보다는 ‘선별적 개입주의 selective engagement’ 혹은 ‘세력권 sphere of influence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관측이 맞다면 동유럽은 모스크바의 세력권이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나토의 동진을 포기하고, 우크라이나 종전을 속히 추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속속 보도되는 트럼프와 푸틴 사이 물밑 접촉 가능성은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또한, ‘국방비를 더 부담하지 않는다면 서유럽 방위는 서유럽이 알아서’ 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여지가 있고, 이는 중동 문제에 있어 이스라엘 방위에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크라이나전쟁이나 팔레스타인전쟁의 해결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또한 미국 패권의 유지를 고집하는 기존 안보 엘리트들의 방해 등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쉽게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입니다.


질문 4. 트럼프 2.0이 아시아 및 한국의 안보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요?


트럼프의 재집권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여러 도전과 변화를 예고하지만, 아직 대외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은 존재합니다. 한국은 세계화 속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지만, 트럼프의 정책은 이러한 경제 질서에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중국과의 무역 및 기술 전쟁을 지속하겠지만, 군사적 대결은 상대적으로 자제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만 문제에서도 과거보다 덜 적극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는 중국을 경제적으로 견제하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암묵적으로 중국의 세력권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미군 주둔 비용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으며, 북한과의 협상도 재개할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는 이미 “핵무기를 많이 가진 누군가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좋은 일”, “김정은은 나를 다시 보려 할 것, 나를 보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고, 전 국방부 인도 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랜달 슈라이버는 “취임 직후는 아니지만, 확실히 언젠가는 트럼프는 김정은과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다만,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협상은 군축을 중심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정은이 선뜻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추가 대북 유엔제재를 거부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김정은은 대등한 핵보유국으로서 군축회담의 형식을 지향할 것입니다.


미국 정치, 경제 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제국의 부담을 지고 있는 백인 중산층, 노동 계급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래도 하겠다는 트럼프의 거래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김정은과의 협상과 같은 ‘거래 (deal-making)’가 미국 국익 수호 및 증진의 주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트럼프-김정은의 협상 타결이 주한, 주일 미군의 전면 철수 또는 대규모 감축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는 남북 간 평화와 안정에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복잡한 외교적 과제를 남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트럼프 2.0은 기존의 미국 주도 세계 질서를 재편하며, 경제, 외교, 군사 모든 측면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것입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전략적 접근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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