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선생 3주기를 맞으며 (2013년 12월 4일, 박우정 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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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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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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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은 리영희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신 지 3주기입니다. 우리는 지금 안으로는 민주주의의 위기, 밖으로는 평화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타개해야 할 우리의 역량은 위축돼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3주기를 맞아 리영희 정신을 되새기면서 우리의 마음자세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리영희 선생은 생전에 수많은 인격적 전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오늘의 상황과 관련해 그 가운데 두 가지를 특별히 부각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철저한 자유인으로서 시종일관한 지식인의 전범입니다. 둘째는 전쟁을 절대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로서의 전범입니다.

 

역대 독재권력이 수차례에 걸친 투옥과 해직을 통해 진실을 외치는 선생을 침묵시키려 했지만 선생은 "자유인"으로서의 주체성에 끝까지 충실했습니다. 선생은 말년에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이 술회를 통해 우리는 선생이 왜 그토록 한평생 사상 양심의 자유와 언론자유 등 민주주의의 핵심자유를 지키기 위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했는지, 그리고 왜 진실추구를 지식인으로서의 책무의 처음이자 끝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한 현실참여를 자신의 시대적 사명으로 엄격히 설정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선생은 현역 장교로서 한국전쟁의 참상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든 이 땅에서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평생 간직한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강대국과 그에 빌붙은 세력에 의해 타율적으로 전쟁으로 치닫는 치명적인 과오를 저지르는 것을 항상 두려워하고 경계했습니다. 우리 운명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기 위해선 우리가 처한 국제적인 상황과 조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선생이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존립에 결정적 규정력을 행사해온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해방 후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중대하고 민감한 정치 외교 군사적 쟁점들을 정면으로 연구주제로 삼아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급정보와 자료를 근거로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심층적 진실을 파헤치는 데 헌신한 이유가 바로 이런 사명의식에서였습니다.

 

선생이 밝혀낸 진실 하나하나는 미국과 냉전 독재권력의 본질을 드러내고 그들의 지배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허위의식과 거짓담론 이념적 우상을 깨뜨리면서 한국사회에 엄청난 사상적 충격을 가져왔으며 변혁운동의 동력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오늘 냉전과 유신시절에 향수를 품은 낡은 세력들이 권력의 전면에 다시 등장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고 반대 세력을 저열한 종북 낙인찍기로 절멸시키려는 광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국정원과 군 등 국가기관들이 지난 대선에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개입한 엄청난 사실이 드러나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건만, 집권세력은 유린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려 하기는 커녕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며 전체주의적 공포정치로 국민들을 겁박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과 이를 봉쇄하려는 미국 일본의 패권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가 위태로워지고 있습니다. 집권세력이 대북 대결정책에 집착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일본과 한국을 묶어 중국 포위전략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의 주체적 결정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남북이 강대국간 대결구도에 억지로 떠밀려 들어가는 듯한 불길한 느낌입니다. 리영희 선생이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려는 투쟁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리영희 선생이 전범을 보여주신 진실과 자유를 위한 불굴의 용기와 투철한 사명의식입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운동에서 보듯이 이미 수많은 리영희들이 언론계·종교계·학계·노동계·문화계·법조계 등 각계각층에서 들고 일어나 진실과 자유의 편에서 저 거짓과 폭압세력들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로로 제1회 리영희상을 수상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도 우리시대의 수많은 리영희 가운데 한 분입니다. 리영희재단은 앞으로도 이 투쟁의 대열 맨끝에서나마 힘을 보탤 것을 다짐합니다.

 

이승을 떠나신 지 3년이 지나도록 평안한 영면에 들지 못하셨을 리영희 선생님, 이제는 모든 무거운 짐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십시오.   리영희재단 이사장 박 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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