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서 바라본 12·3 내란 사태 / 정욱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12-30 22:39
조회
151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서 바라본 12·3 내란 사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12·3 내란 사태’는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차원에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권은 국면을 전환하고 계엄의 빌미를 찾기 위해 집권 이후 누적되어온 남북관계의 적대성을 십분 활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은 그 의도를 간파하고선 수위를 조절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 참조: https://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1173324.html)


또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가치동맹’으로 격상한다는 것을 대표적인 외교 브랜드로 내세웠었다. 그러나 윤 정부가 ‘친위 쿠데타’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훼손하면서 가치동맹도 실종되었다.


특히 윤 정부가 남북 간의 무력충돌을 유도하려고 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한미동맹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남북 간 국지충돌이 발생하면 주한미군을 유지해온 미국도 연루될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인의 안전과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상대가 동맹국이자 미군 접수국인 한국 정부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윤 정부가 보여주었다.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이 이전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이 갈 수 있을까?


한미동맹의 구호는 ‘같이 갑시다’이다. 그런데 여러 미국인은 윤석열 정권의 행태를 보면서 ‘같이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있을 게다. 브래드 셔먼 미국 하원의원의 말처럼 한미동맹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동의 약속을 기반으로 한다”고 미국인들은 믿고 있었는데, 한미 가치동맹을 그토록 강조했던 윤석열 정부가 그 가치를 송두리째 무시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 자체부터 심상치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또 미국은 윤 정부가 계엄 선포를 미국에 사전 알리지 않은 점도 불쾌해한다. 12월 23일자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서도 이 점을 지적했다. “윤 정부가 주한미군 사령부에 알리지 않고 한국 군대를 계엄군으로 배치한 것이 동맹의 공조 상태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킬지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과 의회가 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원하지 않는 분쟁에 어쩔 수 없이 휘말리게 하는 ‘인계철선(tripwire)’을 건드리는 존재가 바로 한국 정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데에 있다. 인계철선은 주한미군과 동의어처럼 간주 되어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이 없기 때문에, 한반도 전쟁 발발 시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적 절차, 즉 미국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면 주한미군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면 미국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터이다. 그래서 주한미군은 미국의 개입을 보장하는 존재, 즉 인계철선으로 여겨져왔다. 미국 내에선 이를 모욕적인 현실로 여기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게 오랫동안 묵인되어온 한미동맹의 현실이다.


그런데 내란 기획자들의 의도대로 한국군이 조선의 오물 풍선 살포에 원점 타격을 가했거나 한국군의 NLL 인근 사격훈련에 조선이 무력도발로 응수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남북 간의 적대성과 군사적 준비태세, 그리고 판을 키우기로 작심했던 윤 정부의 태도를 종합해보면 확전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조선의 핵 독트린을 고려할 때, 핵전쟁의 위험도 커질 수 있었다.


이렇게 국지 충돌이 발생해 확전의 위험이 커지면 대북 방어태세인 ‘데프콘’도 정전 상태를 의미하는 4에서 3으로 격상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데프콘 3은 전쟁 위험이 매우 커졌다고 판단될 때 내려지는 조치로, 이렇게 되면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시작전통제권은 미국이 행사가 된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도 이는 엄청난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미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전쟁 결심과 흡사한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를 제외하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가급적 데프콘 3를 발령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한국 보수의 자가당착과 한미동맹의 미래


‘같이 갑시다’라는 구호의 전제는 신뢰에 있다. 또 신뢰는 조선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의 안보를 한미가 함께 보호한다는 믿음을 공유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러한 신뢰가 흔들릴 때는 있었다. 미국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대북 선제공격에 나서 한국이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는 과거에 종종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미국 내에서 대북 선제공격론은 자취를 감췄다.


이에 반해 한국 정권의 무모한 행태가 미국을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리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가끔 고개를 들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적극적 억제’라는 이름 하에 ‘선 조치 후 보고’, ‘북한 도발 시 도발 원점뿐만 아니라 지휘세력까지 응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미국 내에선 “진짜 위험은 한국의 과잉 대응”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전시작전권 전환에 신중한 자세를 보였던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윤 정부의 국지전 유도 시도는 이보다 훨씬 심각한 사안이다. 한국의 과거 정권에 대한 미국의 걱정은 조선의 도발에 대한 한국의 과잉 대응이 초래할 위험에 있었다면, 윤 정부는 선제 행동으로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선택도 마다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한다.


아마도 미국에서 오바마나 바이든처럼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성향이 강한 행정부가 계속 유지되었다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유지하면서도 전작권 전환에는 더욱 부정적인 태도로 임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2025년부터 4년 동안 마주할 상대는 ‘주한미군 회의론’을 품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이다. 회의론은 ‘왜 부자 나라 한국을 미국이 지켜줘야 하느냐’는 거래주의적 시각부터 ‘다른 나라에서 미군이 피를 흘리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는 고립주의적 시각까지 포괄하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와 그의 일부 참모들은 ‘미군을 빼거나 한국이 돈을 많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쟁유발자’가 한국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윤 정권이 보여주고 말았다. 이것이 주한미군을 포함한 한미동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단키 어렵다. 다만 한국의 대미 발언권이 위축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에서 전작권을 한국에 넘겨줘선 안 된다는 인식과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여건을 한국이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과도적인 정치적 상황에선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한미관계의 변화를 추구할 경우 한국의 입지가 불리해질 수 있다”며, 여기에는 “관세, 주한미군의 규모,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 2024년 11월에 체결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의 변경이나 철회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는 건강한 한미동맹과 2기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라도 조속한 한국의 헌정 질서 회복과 군의 정치적 중립 및 부당한 명령 거부를 의무화하는 국방개혁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출발점은 국익은 물론이고 한미동맹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윤석열의 조속한 탄핵과 처벌에 있다.


이 대목에선 한국 보수의 ‘웃픈 현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한미동맹은 한국 보수에겐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대선 때마다 ‘무너진 한미동맹을 다시 세우겠다’는 구호를 남발해왔다. 그런데 보수 정권에서 한미동맹의 가치와 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주류는 윤석열 탄핵 확정을 방해하거나 최대한 지연하려고 한다. 집회 현장마다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태극기 부대’도 마찬가지이다.

한미동맹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그 근간을 뒤흔든 윤석열 탄핵에 앞장서야 하는 게 보수다운 일이 아닐까?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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